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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15일, 일요일.
사흘전 동아리 산행에 나섰던 노인봉 등반시에는 워낙 날씨도 봄날처럼 포근했었기 때문에
오늘 산행에는 공연히 중량과 부피만 차지할 천덕꾸러기로 여겨서 방한쟈켓 챙기는 일을
등한시 하게 되었다.
워낙 산행이 잦다보면 오히려 갖추어야 할 장비를 소홀히 할 우려는 있다.
언제나 처럼 배낭 한 구석을 차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그러려니 하고 간단한 행동식만
챙기고 배낭을 둘러 메는 것이다. 세탁을 하기 위해서 배낭을 벗어난 장비를 다시 챙겨야
하는 수고를 간과 한 것이다. 어쨋던 산행지인 오대산이 가까이 다가 올 수록 겨울 산행의
필수 장비의 절박함이 간절해지기 시작한다.
거치른 바람을 타고 싸래기 만한 눈가루가 차창을 두드린다.
둔내터널을 벗어나고 A팀( 진고개~두로봉~상원사)의 들머리인 진고개를 오르도록
거센 서북풍을 탄 눈발은 잦을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B코스(상원사~비로봉~상왕봉~사원사)보다는 장거리코스인 A코스를
희망하는 동료들이 별반 없다. 예닐곱명 정도의 동료들이 서북풍을 안고 산행에 나선다.
기상예보대로라면 기후상태는 호전될 것이 기대 되기도 한데 시작부터 A팀의 고행이
예상되지만 면면으로 보면 그리 염려는 안되지만,그래도 걱정스러운 기운을 가라 앉히기가
쉽지 않다. 행장을 챙기며 진고개 너머 동대산 쪽을 바라보는 고인돌님을 비롯한
A코스 동료들의 표정이 다소 심각하다.
월정사를 지나고 상원사 주차장에 다다르니 이미 주차장은 발디딜 틈 없이
차량들로 넘쳐난다. 가까운 코스인 비로봉 왕복코스를 다녀오기로 한 마누라는
산행을 못 하겠단다. 날씨 탓인가? 아니란다. 둘쨋 놈 장가 보내느라고 그동안 피곤이
쌓인 모양이다. 어지간 하면 자식 놈 결혼식 이튿 날에는 일정을 피하려 했으나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단체예약이 오래전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부득불 산행에
나서는 것이다. 첫째자식 장가 보낼때는 어떻게 치뤘는지 정신이 없었는데,
그것도 뭔 일이라고 이제는 이력이 붙은 것 같은데도 결혼 당일까지 심신이 바쁘다.
몸으로 때운다면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겠지만 정신적으로 부딪치는 세상사가 피곤을
가중 시킨다. 그중에서 제일 신경이 쓰여지는 부분이 청첩장을 보내는 일과 사돈가에
보내는 예단(禮緞)이다.
흔히 하는 말로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세금고지서란 말이 나돌 정도로 보내는 사람은
미안하고 받아보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법이다.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의 애경사(哀慶事)에 많은 분들이 왕림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이 더없는 바램이다.
여러 애경사의 통지를 받아보면 받아보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다. 보내야 할까
말까 망설여 지는 경우도 만나게 되고, 공연히 보내서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경우도
발생 할 수 도 있다. 그래서 애경사의 통지서는 안 받아보면 서운하고 받아보면
시큰둥한 것인지도 모른다.물론 고지서 발송의 경중(輕重)인 A,B,C는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세금고지서를 받아 본 사람에게는 먼저 참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고, 참가를 하려면 세금(?)을 얼마를 자진납부를
할것인가를 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납부 할 세금의 액수가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세금을 직접납부 할 것인가, 간접납부를 택 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단이란 가문과 가문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이 아닌가, 그러니 피차간에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명약관화 한 사실이다.
선물이란 받아서 즐겁고 주어서 흐뭇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상사가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데 고충이 따르나 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실감난다.
인간은 홀로 살아 갈 수 없는 동물이라는 말 일 터, 쟝글의 맹수 호랑이나 초원의 황제인
사자처럼 강한 힘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군락을 이루워 함께 살아가라는 조물주의
주문인 것이다. 혼자의 능력으로는 당할 수가 없으니 떼거리로 힘을 합쳐 어려움을
헤쳐 나가라는 조물주의 지혜인 것이다. 그걸보면 강한 힘을 갖춘 맹수들은 대신 생식능력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약한 동물들은 어차피 다른 짐승들을 제어 할 수 없기 때문에
초식을 주식으로 할 수 밖에 없고, 개체수를 늘려 강한 상대에 맞서려면 생식능력이
뛰어나야 수(數)를 늘려 갈 수 있는 것이다.
좌우지간 인간사회에서 자식 장가들여 제금내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니고
큰 행사임이 틀림없는데 다행스럽게도 성황리에 마치게 되어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닌지 모른다. 작금의 결혼식이야 예식장에서 예약된 시간에 시작하여 예정되어있는
스케줄따라 진행이 되고 끝나므로 옛적에 치뤘던 풍습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이합집산이 되어있는 여러 친지나 동료,친구,선후배들을 핑게삼아 한데 불러모아 근황을 전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랑과 우정을 끌어 내는데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적은 비용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서 사귈 수 있고 서로 근황을 살필 수도 있는 기회도
되고 친밀감도 쌓을 수 있는 장소이기에 정치인들이 빠지지 않고 애경사에 참석하는 게
아닌지 모른다. 왜냐하면 애경사의 참여도 일종의 공동사회의 품앗이기 때문이다.
희끄므리한 작은 날벌레들이 거센 바람에 휩쓸리듯 하던 눈발도 잦아 졌다.
상원사 방향의 산문(山門)드는 길가에 아름들이 거목들이 그나마 궂은 빛깔의 계곡명암에
어두운 덫칠을 한다. 널찍한 산길은 간밤에 내린 눈이 그동안 오고 간 입산객들의 발아래에서
갑작스레 하강한 기후 변화로 빙판으로 변해 버렸다.
중사자암 입구에 모노레일이 설치되어있다. 아마 중사자암에서의 살림을 위한
편의시설일게다. 중사자암 진입로는 경사가 급해졌기에 계단으로 이루워져 있어서
미끄러운 가운데서도 오름에는 불편이 없다. 모노레일차의 엔진소음이 요란하다.
젊은 사내 한명이 박스 두어개를 싣고 중사자암으로 모노레일차를 몰고 오른다.
암자에서 공양에 쓰일 물건인 모양이다. 용맹정진의 기나긴 동안거(冬安居)도 이미
마쳤으니 운기조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공양을 시주나 탁발에 의존하던 시절이 언젯 적 얘기였는지 가물가물 할 정도로
사찰들의 살림살이도 꽤나 늘어났지 싶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아이젠도 없이 진행을 하려니 이동시에는 한시라도
한눈 팔 사이가 없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다간 엎어 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조금전 주차장의 빼곡한 차량이 알려 준 대로 산길은 입산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짜증을 낼 일도, 화를 피울 필요는 없다. 길이 막히면 잠시 호흡을 조절하고,
주변의 경치에도 눈길을 보낼 여유를 말없는 오대산이 당신에게 내밀었다 하면 될게다.
조금전까지 휘날리던 작은 눈발들이 나뭇가지마다 달라 붙어 설화를 피어 놓았다.
짙은 운무가 중허리를 맴돌고 있다. 기온이 매서운 걸 보면 현란한 눈꽃을 만날 게
틀림없다. 눈꽃의 기본재료인 운무는 베이스(Base)고, 영하의 기온은 양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적멸보궁의 기와 굴곡을 따라
내려 앉은 흰눈이 흰 눈썹을 닮아 간다. 적멸보궁입구에서 산길은 능선의 허리를
감돌며 이어간다. 여전히 오대의 웃질에서는 거뭇하고 우울한 잿빛그늘이 잔뜩
둘러쳐져 있다. 그러나 시야는 점점 밝아오기 시작한다. 눈꽃이 암묵(暗默)의 산하를
밝게 밝혀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방한쟈켓의 고마움이 절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바람이 맵고 거칠게 부는 걸 보니 정상 가까이 다가 선 모양이다.
신(神)의 입김인가, 한없이 높은 곳 만 지향하려는 인간에 대한 신의 경고가
담겨 있는 지 도 모르겠다.
수많은 인파가 넘쳐나는 비로봉! 해발1565,1m. 구비구비 산여울을 넘어온 거뭇한 구름이
템포빠른 춤을 춘다. 거센 바람에 몸을 맡겨버린 구름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바람의 박자와 구름의 몸짓이 어우러진 춤사위가 오대산을 흔들어 춤판을 벌일 태세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수많은 등산객 사이에서 눈꽃님과 윤부장 내외를 만나니
그저 반갑기만 하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카메라 밧데리가 강추위에 제기능을
쏟아 내지를 못한다. 간신히 따뜻하게 구슬려 정상에서의 사진을 담는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척인데 오대의 산등성이에는 엄동설한의 혹한이 입산객들의
호연지기를 시험한다. 바람의 기수를 남에서 북으로 바꾸어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게 하는데 고집을 꺽지않고 기수를 바꾸지 않음은 만화방창의 춘삼월을
시기함 이리라, 그러나 미련을 간직한 고집도 결국은 스스로 삭일 수 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자연(自然)이란 물이 아래로 흐르고 구름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며
온갖 수목들도 태양을 향해 가지를 뻗어 가듯이 그렇게 흘러 갈 것이기 때문이다.
호령봉 방향에서 몇몇 산꾼들이 비로봉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 발갛게 언 코끝이
추위의 강도를 나타낸다. 상왕봉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호령봉의 반대 방향의 산길로
접어 든다. 그 동안 내린 눈이 산꾼들의 발길에 다져져서 자연스럽게 다져진 산길만을
따라 가야 한다. 그런 산길을 벗어나면 한 자 이상의 눈이 쌓여있어 무릅까지
눈속에 빠질 수 가 있기 때문이다. 수백년의 수령은 됐음직한 주목이 검푸른 이파리를
애써 내 보이고 한아름의굵기를 자랑하는 신갈나무의 허리가 믿음직 스럽다.
여전히 거뭇거뭇한 구름과 바람이 벌이는 춤사위는 막을 내릴 줄을 모른다.
거칠고 험한 환경 탓인지 민둥의 벌거숭이 봉우리, 1541,5m! 헬기장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듯하다. 흰눈으로 덮혀있는 상왕봉이 우뚝하다.혹한을 동반한 서북풍을
애써 외면한채 고지식하게 상왕의 등허리를 밟는다. 평평하고 둥구스름한 상왕봉에는
정상석(해발1,493m)이 우뚝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 멀리 대청봉이 가늠이 되고,
머리를 돌리면 남쪽 아래 하얀 마루금을 긋고있는 노인봉,황병산 능선이 장대하다.
암묵의 천상아래 눈부신 눈꽃이 빛을 밝히고, 오대산은 쉬지않고 산길을 내 보이며
山客의 참을성을 시험한다. 푹 꺼진 뱃골이 인내심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갈증이 생기기전에 물은 마셔야 하고, 음식도 허기까지 이르기 전에 취해야
에너지로 활용하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는 법, 윤부장 내외와 눈꽃님이 오대산의
점심 파트너가 되었다. 둘째 사돈가에서 보내 온 이바지 음식중에 한주와 쿠리쿠리한
냄새가 피어 오르는 삭힌 홍어를 배낭에 넣어 준 손길이 고맙다.
40도 안팎의 돗수에 알곡 향이 스민 지방 토속주 한주는 사돈 할머니의 소문 난
솜씨란다. 반잔 밖에 안마신 눈꽃님의 표정이 천진 스럽고 기껏해야 작은 잔으로
소주 한잔 실력의 윤부장이 내심 한잔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넘긴다.
혹한을 동반한 바람은 식후의 여유를 허용 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행장을 챙길 수 밖에 없다.
굵직하게 성장한 신갈나무와 흰피부를 자랑하는 자작나무, 간간이 피나무와
비자나무등의 식솔들이 오대의 산등성이를 굳게 지키는 모습이 가상하다.
가파르게 내려 꽂던 산길은 이윽고 평탄하고 아늑한 산길로 변한다. 바람의 기세를
상왕봉 식솔들이 막아 준 덕분이다. 그러나 아이젠을 착용 안한 山客에게는
조금의 방심은 금물이다. 반질반질하고 미끄러운 산길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헛점을 노리고 있다. 북대사 미륵암쪽으로의 지름길에 통행금지의 줄이 둘러쳐져 있다.
등산객들의 발자취도 보이질 않는 걸 보면 임도로 내려서서 줄창 임도따라
하산길을 서두를 수 밖에 없다. 산길은 슬그머니 임도에서 꼬리를 묻고 바톤을
임도에게 전한다. 이곳 임도는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잇는
446번 지방도로인 셈이다. 남향받이 따스하고 한적한 미륵암의 고즈넉한 풍경을
그리던 심사가 틀어졌다. 섬돌위에 가지런이 벗어놓은 흰 고무신, 희끗희끗 잔설사이로
푸릇푸릇 생기를 보였던 남새밭, 허름하지만 깔끔했던 암자의 모습이 갑자기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구절양장(九節羊腸)! 이리구불 저리구불 이어가는
임도는 상원사 주차장까지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 폭이 넓은 관계로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산꾼들에게는 재미 없는 산길이다.
관대걸이 삼거리에 도착하니 앞서 하산한 동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빼곡하게
들어찼던 차량들도 어지간이 빠져 나가서 오전에는 주차장에 들어서지도 못했던
우리 버스도 버젖이 자리를 차지하고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 초,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衣冠)을 걸어 둔 곳이라는 유래가 전해 오는 관대걸이
일대에는 하늘을 가리는 전나무, 잎갈나무, 느티나무등이 자연 문화재 역활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장거리 A코스 팀의 선발대가 한분 한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세 사람은 상왕봉과 비로봉까지 주파를 한 모양이다.
대단한 주력의 김일규,이명상,온명석씨! 충청도 말로 대간하시내유!
아직도 오대(五臺)의 산등성이에는 운무(雲霧)가 남아서 열심히 하이얀 눈꽃을
피워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