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한 자라와 똑똑한 토끼의 얘기로만 알던 ‘수궁가’에는 의외의 재미가 있다. 용왕과 별주부를 지배층으로, 토끼를 서민으로 그려 해학적 풍자를 담은 것. 또 병에 걸린 용왕에게 내려진 처방이나 음식을 보면 ‘약과 음식의 뿌리는 같다’는 약식동원 사상이 드러난다. ‘수궁가’ 를 통해서 우리 음식에 담긴 지혜를 살펴보자.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도움말 김남희(약선 요리 연구가) 참고 자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포교 한 놈이 이른 말이 이런 무식한 말이 있나, 돼지의 피가 사슴의 피보다 효험이 낫고 제육 첫 점이라니 술안주에 제일이요, 비빔국수 탕평채에 적육 없으면 맛있다더냐. 잡말 말고 잡아라.”
‘수궁가’ (심정순·곽창기 창본 중에서)
>> 탕평채는 조선 후기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하고 설명한 <동국세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녹두 포를 만들어 잘게 썰고 돼지고기와 미나리 싹, 김을 넣어 초장에 버무린다. 서늘한 봄날 저녁에 먹고 그 이름을 탕평채라 한다”고 기록되었다. 탕평채라는 영조 때 여러 당파가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묵(흰색)은 서인을, 미나리(청색)는 동인, 고기(붉은색)는 남인, 김(검은색)은 북인을 의미했다고. 영조는 탕평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백성도 탕평채 먹을 것을 권유했다.
“지갈생진하며 조영양위로다. 백출은 감온하니 건비강위하고, 제사제습하고 겸치담비라. 감초는 감온하니 구주온중하고 생즉 사화로다. (중략) 아무리 약과 침을 쓰되 병세 점점 위중터라.”
수궁 도사가 용왕을 진맥한 뒤 온갖 약과 침을 쓰는 대목
>> ‘수궁가’ 에는 대추 감초 은행 황기 등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온갖 약재가 등장하는데, 이는 음식 재료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식의 기본 정신인 약식동원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조상은 약밥과 약고추장, 약포(꿀을 넣어 만든 육포)처럼 약을 짓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특히 복날에 더위를 이기고 기력을 보충하는 삼계탕이나 산모의 건강을 위한 용봉탕 등 다양한 보양식이 발달한 것도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고 병을 예방·치료하고자 한 약식동원 사상의 일면이다.
“수궁조정 만조백관을 일시에 모이라 하니 (중략) 수국이라 물고기 동물들이 각각 벼슬이름만 맡아서 들어와 보는디 승상은 거북, 승지는 도미, 판서 민어, 주서 오징어, 한림 박대, 대사성 도루묵 (중략) 어전에 입시하여 대왕에게 절을 꾸벅꾸벅”
용왕이 어전회의 소집하여 신하들이 들어오는 대목
>> ‘수궁가’에는 다양한 물고기 이름이 등장한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배와 어망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 어획량이 늘었다. 육류의 섭취가 부족한 서민에게 수산물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다양한 어패류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유통되면서 서민들도 여러 생선을 맛볼 수 있었고, 화려한 궁중 음식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수산물은 건어물이나 염장, 젓갈 형태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수산물의 유통은 조선 후기 상업이나 화폐경제 발달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