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메 쭐거리
'고메 쭐거리'가 뭐냐고요? 제 고향 사투리로 고구마 줄기(고구마 순)을 말합니다. 한여름부터 반찬으로 많이도 먹었습니다. 자주 먹은 탓인지 맛있었다는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어릴 때 지겹도록 먹어서 보기도 싫다는 고향 친구도 있습니다.
고구마 줄기가 무성해지면 영양분이 뿌리로 안 가고 줄기나 잎으로 가기 때문에 순을 따거나 질러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옛 어른들은 고구마 순을 따서 뿌리도 알차게 하고 반찬거리로 이용하였습니다. 먹거리가 부족한 시절 삶의 지혜입니다.
봄에 고구마를 조금 심었습니다. 제 기준에는 얼마되지 않은데 평생 처음 심어본 집사람 눈에는 엄청 넓은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처가 쪽 친척들을 만난 자리에서 처사촌들 주소를 물어 적고 있었습니다. 가을에 고구마 수확해 보내준다고... 땅속에 고구마가 주렁주렁 많이 달릴 것이라고 상상을 한 모양입니다. ㅎㅎ 올 가을에 사서 보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밭이 맹지라서 퇴비를 운반하기 쉽지 않습니다. 고구마는 거름을 많이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고구마 밭에는 잡초도 잘 자라지 못 하기 때문에 제 밭에 심으면 딱 좋은 작물입니다.
장맛비가 쉬지 않고 내려 어디 마실 나가기도 그렇습니다. 고구마 순(고구마 줄기)을 큰 소쿠리에 가득 따와 껍질을 벗깁니다. 지루한 단순 노동이지만 텔러비젼 보면서 시간 보내기에 딱 좋습니다.
어릴 적에도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기도 했습니다. 엄지 검지 손톱 밑에는 때가 끼인 것처럼 검게 물들고 손가락 지문은 보라빛으로 물들어 쉬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내인 저야 둔했지만 우리 누나들은 그런 손가락으로 학교 갔으니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얼마나 부끄럽고 속상했을까요. 생각하니 가슴이 저립니다.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다가 집사람이 그랬습니다. 시장에 갔더니 고구마 손 조금 묶어놓고 5천원씩이나 하더라고 우리 순 따서 장사하러 가자고... 제가 그랬습니다. 많이 따 줄테니 당신이 나가서 팔라고 나는 못 한다고 ㅎㅎ
난전에서 물건값 하나 깎지 못하는 사람이 장사는 무슨...괜히 하는 말인줄 압니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껍질까기가 귀찮고 힘들어서 까놓은 것 사먹는다고 합니다. 순을 따서 나눠주고 싶지만 껍질을 까지 않고 그냥 주면 귀찮아 할 것 같고 또 버려질 것 같기도 해서 나눠주기가 좀 그렇습니다. 껍질까지 벗겨 보내주기엔 힘이 너무 많이 듭니다.
고구마 순으로 김치도 담그고, 건멸치 건새우 담치(홍합)를 넣어 다글다글 볶아먹기도 합니다.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고 싱그러운 느낌이 납니다. 추억이 서려있는 밥반찬입니다.
가을 고구마 뿌리 수확할 때까지 여러 차례 순을 따야할 것 같습니다. 가을 햇살 좋을 땐 삶아 말려 묵나물로 만들면 두고두고 나물반찬이 될 겁니다. 농약 한번 치지 않으니 완전 무공해 식재료입니다.
고구마순이나 잎의 색이 두 종류입니다. 녹색과 자색입니다. 또 다른 색깔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라니가 고구마잎을 잘라먹는데 자색 잎만 골라먹었습니다. 녹색 잎은 입도 안대고요. 어느 자리에서 이야기했더니 자색 잎이 영양분이 많아 고라니같은 짐승도 아는 것 같다고 말들 합니다. 언뜻 들으니 사실 같기도 합니다. 근래 자색 채소가 각광을 받습니다. 자색 고구마, 자색 감자, 자색 양파, 자색 옥수수 , 가지, 순무 등등 말입니다.
고구마 순 껍질을 벗기다 보니 대체로 녹색 줄기는 껍질이 끝까지 잘 벗겨집니다. 반면에 자색 순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녹색 순 껍질은 질기고 자색순은 부드러워 잘 끊어집니다. 고라니가 자색 잎을 따 먹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라니는 연한 잎을 즐긴다고 하니 말입니다. 정확한 건 아니고 그냥 제 생각입니다.
검색해 보니 고구마 순으로 요리하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할 일이 없어 시간이 철철 넘치면 도전해볼까 합니다.
올 장마 기간엔 지겹도록 비가 내립니다. 엘리뇨 때문에 올 여름 비도 많고 무덥다 하니 걱정입니다.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불어 꿉꿉한 기운 싹 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淸安한 나날 되십시오.
2023.7.17.
김상옥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