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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사 2: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북한이 2월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의 얼어붙었던 관계가 조금씩 풀리고 있습니다.
9일에 있었던 남북 회담에서, 우리 측에서, 평창올림픽에 남과 북이 공동입장하고, 공동응원단을 꾸리자고 제안했고, 북한은 이에 선수단, 고위급 대표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등 4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 파견을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북한 고위급 인사도 평창에 올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과 미국 트럼프의 딸 이방카가 평창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평양에서는 여성응원단이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될까요?
매년 새해가 되면, 각국의 지도자들은 신년사들을 내놓습니다.
북한의 김정은도 신년사를 내놓았습니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 자신의 책상 위에 핵 단추가 놓여져 있다며, 미국을 위협했지만, 한국을 향해서는 화해 제스쳐를 취하였습니다.
매년 신년사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며, 주체 노선을 걸어가고, 핵강국이 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북한이 한국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평창 올림픽에 참여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화해 모드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남한의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핵을 포기하고, 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속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만나야 합니다.
만남이 있어야, 평화로운 통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정은이 왜 무자비한 숙청을 하는 것일까?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물을 먹었다. 김정은이 지금 숙청하는 사람들은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다. 김정은은 그들을 다 숙청하고,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 것이다. 남북의 통일은 김정은이 이룰 것이다.”
여러분! 그럴싸한 말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한 분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 정세를 보면, 참 어렵습니다.
같은 핏줄인 북한,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 누가 우리의 적이며, 누가 우리의 편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앗수르가 세계를 제패하던 때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으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은 어디로 가야 하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초청하십니다. 가까이 오라고 부르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온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출 29:42-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고, 바로 그 성막에서, 이스라엘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5:21-22절을 보면, 하나님은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고 싶어하셨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성막에서 너희를 만나며, 너희에게 말하리라”
그렇습니다. 모세는 성막을 만들 후에, 매일 성막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세가 성막으로 나아갈 때,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장막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때, 구름 기둥이 내려, 성막 문에 서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성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출 33:8-11)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였습니다.(신 34:10)
하나님은 성막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에서, 그들을 만나주셨고, 그들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에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들어가면, 대제사장은 그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며,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고, 교회에서 위로받고, 교회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하고,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전 마당만 밟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와 이야기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에, 복을 받습니다.
주님은 주님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여러분!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성전에 나올 수 있겠습니까?
누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습니까?(히 4:16)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은혜와 사랑의 동산, 축복의 동산인 하나님의 교회에 올라와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하기를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손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청결하지 못합니다.
뜻을 허탄한 데에 둘 때도 많습니다. 거짓 맹세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곳에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죄와 허물이 많습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너무나도 많아, 주님의 산에 오를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하기를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시 15:2-5)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정직하지 못합니다. 진실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혀로 남의 허물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이웃을 비방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다 따져보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깨끗함과 정결함으로는 도저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라”고 초청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오라” 하실 때, 가면 됩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게 될 것이다”(시 24:3-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산에 오르는 자,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는 자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오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일을 맡았던 고라 자손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라 자손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5-7)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으로 늘 올라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두려움 없이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여러분! 왜 우리는 교회에 나와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통해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생명수가 주의 제단으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며 역사하십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가 전파되는 장소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들을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곳입니다.
교회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왜 주일날 교회에 나옵니까?
하나님을 만나고자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나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나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자 나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고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세파에 시달린 지친 영혼이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하며,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도를 닦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수양을 하거나 교양을 쌓는 곳이 아닙니다.
재산 증식의 비법을 전수받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성도는 그 선포된 말씀을 아맨으로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기도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 그 말씀을 읽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세상엔 참된 평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고 선포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아멘.
보습은 밭을 갈 때, 사용하는 쟁기 끝에 달려 있는 쇳조각을 말합니다.
전쟁을 상징하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칼과 창을 평화의 도구로 만들자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세계평화를 염원합니다. 누구나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믿어야 할까요?
일본의 아베 총리를 믿어야 할까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믿어야 할까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믿어야 할까요?
북한의 김정은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을 믿어야 할까요?
이사야 2:22절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시편 146:3-4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 국제정세가 참 어지러웠습니다.
남유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는 북이스라엘입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앗수르”라는 작은 나라가 점점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힘이 강해집니다. 점점 이스라엘 쪽으로 몰려옵니다.
북이스라엘은 침략자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하여, 주변에 있는 작은 나라들을 규합하여, 연맹을 만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그 연맹에 남유다가 합류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도와서, 앗수르와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를 공격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남유다는 “앗수르”에게 뇌물을 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남유다로부터 많은 뇌물도 받았으니,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모아, 자기들에게 뇌물을 주고, 도움을 요청하였던 남유다를 정복하기 위하여, 많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공격했습니다.
전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이익을 따라, 동지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수많은 피해가 발생합니다.
미얀마의 로힝야족을 아십니까?
로힝야족은 미얀마 북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입니다. 그들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 소수 민족으로 지속적인 차별과 억압을 받아왔습니다.
미얀마가 독립하기 전, 영국이 미얀마를 지배할 때에는 로힝야족 사람들이, 영국 편에 서서, 미얀마 사람들을 차별하고 억압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그 신세가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2017년 8월 로힝야 무장단체 ARSA(아라칸 로힝야 구원군)가 미얀마의 경찰초소를 습격했습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얀마군이 무차별적으로, 로힝야족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총을 들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이고, 그들이 숨을 수 있는 곳은 다 불태워버린다는 것입니다.
억압과 차별, 그리고 학살을 피하여, 65만 명에 이르는 많은 이들이 방글라데시 등으로 도망쳤지만, 그들은 난민촌에서, 위생, 식수, 식량부족, 영영결핍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난민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지구상에서, 언제 전쟁이 그치고, 언제 참된 평화가 찾아올까요?
우리나라 사정은 어떻습니까?
북한의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합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도 핵 단추가 있다”며, “김정은의 책상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누군가 김정은에게 이 이야기를 꼭 알려 달라”며, “내 단추는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전쟁의 아픔을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이번 남북 대화를 통하여, 설날을 기점으로, 이산가족이 상봉했으면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여 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전쟁 무기들을 감축해야 합니다. 핵미사일 등을 폐기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어디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뿐이겠습니까?
여야, 통합과 반통합, 노사, 갑을 관계, 이권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인권침해 등, 이 나라 안에 만연해 있는 대립과 다툼과 분열이 사라지고, 일치와 화합과 평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지구촌 곳곳이 전쟁과 테러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 전쟁이 그치고, 참된 평화가 올 수 있을까요?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결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죄의 본능 속에 소유욕과 지배욕, 공격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전쟁과 테러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3절)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인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므로,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의 주님, 우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에 참된 평안이 있게 하시고,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참된 평화가 있게 하여 주옵시고, 온 누리에 전쟁이 멈추고, 테러가 그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