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신도회장인 김태식 불자의 주관으로 청원군 북일면(현내수읍)외남리 오근장 이창원 신도의 집에서 40여명의 신도가 모여 법회를 봉행한 것이 우리 절의 첫 창립
1974-6
초대 김태식 신도회장의 주선으로 청주시 영운동에 회관을 마련하여 이전
1975-8-6
제2대 종정이신 대충 대종사님으로부터 바를 정(正) 글-문(文)자로 正文寺로 사찰명을 교시 받아 사찰을 등록함으로써 교세 신장의 기틀이 마련됨
1981-8
현재 이 자리인 대성동 205-1번지의 대지 852평과 건물 약40평을 매입
1982-9-21
영운동 정문사를 지금 이 자리로 이전
1983-5-27
그 당시 건물이 협소하여 노천법회를 봉행하는 등 애로가 많은 가운데 초대 박덕수 주지스님이 대충 대종사님의 증명을 받아 법당 및 회관 건립기공식을 봉행
1985-6-27
대충대종사님을 증명 법사로 모시고 전 신도의 소망인 법당과 회관 신축 법요식이 봉행
1986-1-1
본 종단으로부터 정문사 지회를 지부로 승격 승인받았음
1986-6-10
대충대종사님으로부터 정문사를 밝을 명(明)자, 씩씩할 장 (壯)자로 지금의 明壯寺로 개명 교시를 받아 사세가 더욱 신장하게 되었음
1998-5-26 (음 5월1일)
현 류화산 주지스님의 검증으로 신축불사의 밑거름이 될 千人佛事를 발원한바 1530명이 동참하여 불사의 열기가 타오르게 됨
한편 근래 들어 현 회관인 운학당 규모로는 법회에 동참 하는 신도를 수용하기가 어려워 신축불사의 명분이 대두되어 제3대 용덕궁스님, 제4대 김세운스님, 그리고 현 류화산 주지스님들께서 계속하여 부지 10여필지를 매입해 주시어 신축불사의 기반이 구축되었음
2001-4-8
종정예하의 증명을 받아 대승전 건립 기공식을 봉행
2004-5-12
지하2층 지상3층 연건평 1200여평의 대승전 낙성식을 봉행
2005-6-18
저희 명장사의 뜻깊은 창립 33주-기념법회를 봉행
2006-1-21
가족법회 시작(매주 첫째주 토요일 저녁 9시)
2006-6-18
창립 34주-기념법회
역대주지스님
초대, 제2, 3대 박 덕수 스님 제4대 용 덕궁 스님 제5대 김 세운 스님 제6, 7, 8대 류 화산 스님 제9대 김 용암 스님
역대신도회장
초대 장기평 불자 제2대 김학현 불자 제3, 4, 5, 6, 7대 지윤식 불자 제8, 9, 10대 최은식 불자 제11대 전승규 불자
진리의 빛이 아닌 다음에야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피어오르던 향운도 바람에 걷히고
영원할 것 같은 기둥도 세월의 바람서리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참된 것은 땅 속
을 흐르는 물처럼 다할 듯 다할 듯 이어지면서 끝내 샘으로 솟아 큰물을 이루니, 140
0년 전 중국 천태산에서 지자대사가 선과 교를 통합해 창종한 천태종도 고려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가 조선의 억불정책에 눌려 땅 속을 흘렀지만 500여 년만에 상월원각대조
사에 의해 중창을 맞이했으며, 이를 법맥이라고 합니다.
청주시 대성동 당이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명장사는 천태종의 총본산인 단양 구인사의
관문 역할을 하는 천태종의 중심 사찰입니다. 구인사가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소백산
깊은 자락에 자리했다면 명장사는 총본산이 있는 충북의 도청 소재지에 위치한 까닭입
니다. 그러나 명장사 역시 시작은 땅 속을 흐르는 물과 같았습니다.
1972년 9월 당시 구인사를 다녀온 김태식 불자 등 40여명이 청원군 북일면 외남리에 있
는 이창원 신도의 집에서 창립법회를 봉행한 것이 모태가 됐기 때문입니다.
1974년에는 뜻과 정성을 모아 청주시 영운동에 회관을 마련했고 이듬해 2대 종정인 대
충대종사로부터 정문사(正文寺) 라는 사찰명을 받았습니다. 또 1980년에는 현재의 대
성동 땅 852평을 매입해 사격을 갖추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
문사(명장사의 전신)는 40여 평 규모의 건물 한 동이 전부여서 노천법회를 볼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명장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법당
인 관음전과 회관인 운학당학 건립기공식을 봉행하면서 부터입니다.
관음전과 운학당은 당이산의 능선을 따라 운학당을 거쳐 관음전에 오르는 계단식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불사를 시작한지 2년만인 1985년에 낙성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정
문사는 대충대종사로부터 명장사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고 천태종 청주지회에서 청주지
부로 승격돼 관문사찰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여물통이 그득한 소
명장사가 자리한 당이산은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에서 뻗어내린 줄기입니다. 우암사의 옛
이름은 대모산(大母山, 臥牛山) 등인데, 소가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풍수지리
상 명당을 의미하는 우복동(牛腹洞)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토정 이지함선생이 보은으로 가는 길에 와우산에서 황소기질 같은 산세를 발견하고 그 혈
장에 푯말을 세웠는데, 조풍수라는 사람이 명당자리를 발견한 기쁨에 푯말을 뽑고 가묘를
썼지만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리는 변고 속에 가묘는 결국 돌로 변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운학당과 관음전 불사를 위해 터를 잡을 때 대충대종사는 명장사 자리가‘소의 머
리’부분에 해당되고 관음전 자리는 소의 입에 해당된다며 길지임을 예견했다고 합니다.
절 앞으로 여물통을 상징하는 작은 언덕이 있어 수많은 신도가 운집하고 불사가 크게 일
어날 명당 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언대로 명장사는 연면적이 1200평에 이르는 대승전(大乘殿)을 건립한데 이어
대웅전 불사를 눈앞에 두는 등 사찰의 면모를 날로 달리하고 있습니다.
명장사의 전각 가운데 시내 어디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은 2004년 5월
12일에 낙성법회를 봉행한 대승전입니다. 대승전은 현재의 주지인 류화산 스님이 1997년
제5대 주지로 부임해 사찰불사에 공이 큰 사부대중들을 위해 공덕비를 세우고 천일불사를
시작하면서 건립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천일불사란 1000명이 한 달에 한 번씩 초하루 법회를 보고 회비 1만원을 3년 동안 내기로
약정하는 불사로 시작한지 5개월 만에 1000명을 넘어서고 결국 1500명에 이르는 신도들이
3년 동안 빠짐없이 동참하는 성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결국 2001년 4월8일 대승전 건립기
공식과 함께 첫 삽을 뜨고 2003년 4월 대들보를 얹은 뒤 2004년 5월12일 낙성대법회를 봉
행하는 감격을 맞이 하였습니다.
대승전은 지하 2층, 지상 3층 연면적 1200평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철저하게 목조
양식을 따라 건립한데다 고운 단청 옷을 입혀 웅장함과 고전미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대승전은 특히 충북도청 인근 도심과 산자락이 만나는 위치에 지상 높이만 아파트 7층 규
모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구조는 지하 주차장을 시작으로
1층은 식당과 종무소, 2층 요사체, 3층은 법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당에는 십일면 사십이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셨는데, 보기 드문 좌상인
데다 불상의 광배를 대신해 천 개의 손과 눈을 표현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좌우 보처는
해상용왕과 남순동자로 무릎을 꿇어 공양하는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법당 안에는 또 신중전과 감로전을 비롯해 천태종의 중창조인 상월원각대조사를 모신 대조
사전이 있습니다. 대승전의 법당은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닷집과 불단 등의 조형미도 눈여
겨볼 만한데 부산과 경주 등 전국의 대목들이 불사에 참여했습니다. 또 청주 사람으로 무형
문화재 단청기능 보유자인 권현규 씨가 탱화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대승전은 24시간 개방
돼 기도 도량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