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인가 새해첫날 아침.. 새벽4시경에 눈을 떴었다..
순간 새벽에 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면 좋을거라는 생각에 서둘러 일어나 5시에 북한산입구에 도착.. 정상에 오르니 8시경 ..
첫날 첫햇살을 받으며 야~~호를 외쳐보고.. 조금은 차게 느껴지는 큰 바위에 걸터 앉아 한해를 새롭게 출발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올해도 그렇게 해 보려마 며칠전 부터 생각해 두었는데..
막상 눈을 떠 보니 이미 8시였다..
아차.. 자명종을 켜놓는걸 잊은 것이었다.
어찌할까..
올해는 그냥 집에 있을까?
하지만 어머니께서 끓여 주신 간이 떡꾹(만두는 없고 떡만 넣어 만든 것이라...)을 먹고는 기운이 솟는지라 눈깜짝할 사이에 후다닥 짐을 꾸려 산행에 나섰다..
북한산 입구에 도착하니 9시 반경.
입장료를 파는 근처에서 한 가게 주인 아저씨가 정상은 미끄러워 아이젠을 사야 한다며 가게 입구에서 호객 멘트를 날리고 계셨지만
이내 속아서 샀다가 후회하지 않으려는 재빠른 계산법적 두되는 그냥 지나치라고 판단을 내렸다..
입구를 막 들어서니 두갈래로 사람들이 갈라지고 있었다..
한 길은 예전에 많이 다녀본 길이 었고..
다른 한길은 작은 사찰로 향하는 길인듯 싶었는데..
새로운 시작이니 안 가본 길을 가보자는 심리는 새로운 길로 나의 발길을 향하게 했다..
한참을 가다보니 오늘 나의 선택은 탁월한듯 싶었다..
보통 그길은 여름에 수영장으로 연결된 길이라 위에서 보면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보이던 길이 었지만 겨울철엔 정말 운치있는 길이 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찬 기온에 더욱 청명했고..
크고 작은 바위들은 흰 베레모의 눈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아기자기했다.
멀리서도 물속이 너무 시원하게 보여 가슴속까지 깨끗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듬성 듬성 나타나는 철다리와 나무다리의 운치는 설악산을 등반하는 기분까지 들게 했으니..
저~~엉말.. 기분 짱!!
그렇게 시원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며 개미처럼 질서있게 좁은 길을 오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오르다가 문득 한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귀에 들어 왔다..
"허..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이
제대 말년 휴가 나가는데 신병 들어 오는걸 보는 기분이야.."
하시는 말을 들었다.
뒤에 오시는 한 아저씨도 그 말을 들으셨는지..
"하하하~~!! 맞아 그 기분 나도 알지.."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예전 새벽에 등반을 마치고 돌아 올때 느꼈던 기분이 다시 떠올랐다..
나도 그때 아침 9시경에 내려 오면서 왠지 그때 올라 오는 사람들은 조금 한발 늦어 아쉬워해 주고싶은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아저씨의 느낌을 조금은 알것도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려니 제법 눈이 얼어 미끄러운 막바지 길에 접어 들었다..
위문이 시야에 들어 오고 있을무렵 갑자기 경사가 심해 지는데 내려 오는 사람들은 이미 발에 아이징을 붙이고 내려 오고 있었다..
순간 계속 올라갈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아이젠을 사라던 가게 아저씨의 말을 들을걸 하는 작은 아쉬움도 함께..
그 작은 아쉬움은 이내 큰 아쉬움이 되었다..
도저히 미끄러워 오르는데 한계를 느끼고 내려 오는 것이 심히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순간의 느낌은 마치 소주 5잔을 비우고 나서 느낄때의 느낌이었다..
땡기지만 계속하면 분명히 취해서 괴로울걸 감지 하는 그 순간..
그때는 마저 한잔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을지 아니면 잔을 뒤집어 놓을지를 결정해야할 기로에선 느낄때의 feel... 바로 그 것 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런 느낌을 넘어서 계속 전진을 결정하기엔 목숨이 달린 기로일지도 모르기에 과용은 피하기로 했다..
아침 집을 나설때... 눈이 아직 안 녹았을테니 조심하라던 동생과 어머니의 당부도 있었거니..
나는 걸음을 멈추고 조심 조심 몸을 틀었다.
얼음이 깔린 돌계단을 한참을 올라 왔으니 내려 가는 일이 슬슬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내려 오면서 2번 정도 삐끗..엉덩방아를 살짝 찧었을뿐
맛난 빈대떡 냄세를 풍기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까지 무사 안착..
그곳에선 오히려 산 정상에서 보다 많은 새소리가 들려 왔다.
겨울이라 새들도 따뜻한 아랫쪽에 와 머무는가 보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1시가 지나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지났으니 아직 새해 인사를 못나눈 이들에게 전화나 해볼까나?
그래서 혼자 병원에서 근무하느라 적적해 있을것 같은 모임에서 만나 알게된 아끼는 동생에게 우선 전화 한통을 하고..
처음 올라 올때 선택한 계곡길로 다시 내려 오는데..
새 소리가 너무다 예쁘게 계곡에 울려 퍼졌다..
햇살이 가장 따뜻하게 느껴지는데다 새는 눈맞은 강아지처럼 기분좋게 뛰노는 소리를 내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철다리에 몸을 기대 눈덮힌 바위들과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있노라니
점점 그 계곡물의 소리가 또렷하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음향효과에서 많이 듣던 바로 그소리..
계곡물과 새소리1,2,3..
그 소리를 어찌 나 혼자 들을수 있으리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두드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받은 친구들은 예상외로 즐거워 했다..
계곡물 소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처음있는 새로운 체험의 순간이었다..
난 좋아 하는 그들이 물소리를 어떻게 느끼는지 나는 느낄수 없음에 속이 탔지만 (하도 멋있다고 즐거워 하기에..)그게 무슨 큰 상관이겠는가..
이런 기쁨을 함께 나눌수 있음에 마냥 즐거운 마음인걸..
나는 친구에게 내가 보고 있는 모습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큰 바위에 걸터 앉아 있으며..
그 옆 바위밑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고..
바위 아랫부분에는 고드름이 달려 지금 햇살에 반짝이면서 끝이 녹아 내리면서 물이 또~옥..또~옥.. 한방울씩 떨어 지고 있다고..
그리고 물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나뭇잎에 걸린 호두 3알이 모여 있는데 누가 먹다 버린것은 아닌것 같고..
떠내려 온것 같은데.. 참 신기하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다 보니 정말 그 호두 세알이 신기하게 느껴 졌다..
얇은 얼음이 호두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라 더 신선함이 더해졌다.
나는 손을 뻗어 보았지만 중간에 물이 바위로 흐르고 있어서 자칮 미끄러지면 물속으로 풍덩 할것 같아 주춤 주춤 손만 쭈~욱...뻗어 보았다..
약 30cm만 내 팔이 더 길었더라면 주울수 있을것 같은데..
이런 아쉬움을 이야기 하면서 수다를 떨다가 다시 한번 그냥 무심하게 손을 뻗었는데 이번엔 쉽게 호두가 손에 잡혔다..
"야~~ 그거 호두는 아들이라는데.. 너 올해 시집가서 아들낳으려나 보다..ㅎㅎㅎㅎ"
친구의 말이 더 우수워 한참을 서로 웃어댔다..
그렇게 손에 넣은 호두는 기념으로 보관할 예정..
또 누가 알랴.. 친구 말이 사실이 될지..
156번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옮겨 타고는 이제 어디를 갈까 생각했다.
오래전에 혼자서 조용히 절두산 성지에 가서 기도 하고 싶었는데
오늘이 좋을듯 싶었다..
그래서 성지에 도착하니 막 미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성물판매소에서 기도용초 하나를 사서 초를 모아둔곳에 가져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죽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하려고 준비해간 연도를 바쳤다..
14처를 돌면서 특별히 기억하고픈 한 영혼을 생각하며 기도를 바치려니 한강쪽으로 기우는 해가 보였다..
한강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14처의 마지막 부분에 계신 성모님앞에서 마지막 마침 기도를 드리고 나니 성당 위쪽의 중간 계단에 마련된 구유가 보였다.
구유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어디서 "꽤~엑~~!!"하는 소리가 났다.
가만 보니 구유옆에 거위 우리가 있었다.
언제 부터 그곳에 우리가 있었는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니 이제 저녁이 되어가는것 같았다.
성지를 나오면 외국인 묘지를 지나치게 되는데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한뒤라 그런지 오늘은 왠지 그곳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묘지를 들어 가는 사람들도 보여 함께 따라 들어가 보았는데
먼저 들어간 사람 2명은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방문한 사람들인듯 싶었다.
삼각대를 펼치고 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새해에 참 많은 곳에서 나름대로의 새해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예전에 새해 첫날 묘지 사진을 찍으러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기에.. 내게는 이런 풍경이 참 새롭게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신부님이 광주에 놀러 갔을때 묘지를 한번 가보라는 권유를 해주신적이 있었다.
참 많은걸 느끼게 해 준다고..
그때의 말씀을 생각하며 묘비를 하나씩 읽어 나갔다..
그곳은 기독교가 운영하는 묘지로 주로 외국 선교사들을 위한 곳이었다.
처음 우리나라에 결핵환자를 위해 씰을 도입해온 선교사 묘지도 있었고.
광혜원이라고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셨던 많은 선교사 의사들과. 우리나라의 외교를 위해 파견되었던 외국인들,일본 배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아내와 아이를 위해 나란히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글귀를 적어놓은 묘비며, 입양기관으로 홀트 복지회를 설립한 홀트여사가 우리나라에서 아버지가 미국인인데 버려져 있던 아이를 자녀로 입양하였으며 그 자녀가 묻혀 있다는 묘비도 읽을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함께 한 외국 선교사들을 기억할수 있었고..
그 묘비의 모습도 외국풍이라 색다른 감흥을 느꼈다..
나오면서 그들의 평안한 안식을 빌어 보았다..
이렇게 2003년의 새해 첫날을 보내고 있다..
아름다운 현재와 아름다움을 위해 살았을 과거를 함께 느껴 볼수 있었던 하루를 허락해 주신 알수 없는 분께 감사하며 올해도 절두산 성지에서 밝혀져 있는 촛불처럼 꺼지지 않는 존재로 우리를 이끄시는 그 분을 바라보며 걸어 갈수 있는 한해이길 조용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