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이 코너에서 자주 인사하네요.
휴가인데 그동안 읽은 책 정리하고, 서평 작성하느라 하루가 훗닥 가는 것 같아요.
아니, 싫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독서한 작품을 되새김하는 것도 의미 있고 재밌는 일이거든요.
게다가 누군가에게 권하고 공유한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죠.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소설입니다.
도서명: 내일
지은이: 기욤 뮈소
* 이 책은 넓은마을 도서관 1번 소설의 일반도서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둘 있다. 한 명은 ‘마르크 레비’이고, 다른 한 사람은 ‘기욤 뮈소’이다. 책은 기억해도, 작가는 잘 기억 못하는 내 머리에 남을 정도면 엄청 대단한 거다. 한때 ‘기욤 뮈소’의 작품에 반해서 ‘종이여자’나 ‘천사의 불음’ 등의 작품을 애독했던 적도 있었다.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과거형’이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 아쉽게도 요즘은 ‘뮈소’의 신간이 나와도 책을 펼치는 일이 뜸했다. 이 책, ‘내일’도 본 지는 좀 됐지만, 다운받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특히 소개글을 보고서는 더욱 망설였다. 시간여행, 소위 타임슬립은 전작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이미 한 번 선보인 적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같은 소재라도 작가의 필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쉽사리 도서를 다운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대하는 내 태도가 조금 변했기 때문이다. ‘서스펜스의 제왕’ 따위의 찬사나, ‘프랑스 문단의 호평’을 그대로 믿기에는 요근래 출판사가 ‘늑대’를 너무 많이 팔았다. 이쯤되면 양치기 소년도 질려서 이 장난 안 할 것 같은 수준이다. 근래 ‘뮈소’의 글은 좀 판에 박힌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전작이나 본작이나 엇비슷한 설정, 웬지 유사한 컨셉의 남녀주인공, 조금은 작위적, 내지는 억지스러운 설정과 결말 등에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걸 보면서 ‘나도 글 쓸 때 틀에 박히지 말아야지’라고 내심 다짐도 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을 펼쳤다. 당시 읽을 책이 없기도 했거니와, 그래도 나처럼 ‘초짜’도 아니고 유명한 작가인데 한번 더 속아보자 싶었다. 결과적으로 내 결정은 탁월했다. 작품 ‘내일’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엇갈린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마주한 사랑과 배반, 그 안에 담긴 놀라운 비밀!
매튜 샤피로는 하버드대 철학교수다. 그는 보스턴에서 혼자 어린 딸 에밀리를 돌보며 살고 있다. 매튜는 1년 전,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내 케이트를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튜는 벼룩시장에서 중고 노트북을 구입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분명 포멧을 했다고 했는데, 하드디스크에는 예전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사진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사진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아이디를 찾아 메일을 보낸다. 노트북의 전주인은 ‘엠마’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한편 엠마 로벤스타인은 뉴욕에 있는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와인감정사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만 매달린다. 그래서일까, 종종 정서불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만난 적 없는 남자에게서 이상한 내용의 메일을 받는다. 판 적도 없는 노트북인데, 하물며 사진을 돌려주겠다니 이해할 수 없다.
어쨌거나, 그 메일을 발단으로 엠마와 매튜는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매튜는 엠마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까지 한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엠마와 매튜는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어느 한 쪽이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 둘이 사는 시간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닷는다. 서로의 메일이 도착한 날짜를 보고, 매튜는 2011년, 엠마는 2010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컴퓨터에 설정된 2010년의 날짜 오류 때문이었다. 이걸 계기로, 즉, 2011년의 매튜는 2010년의 엠마와 통신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지는 생각하면 안 된다. 좌우간, 이 사실에서 ‘희망’을 본 매튜는 2010년의 엠마에게 부탁을 한다. 아내의 죽음을 막아달라고. 엠마는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그의 부탁을 받아드리고, 케이트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다. 그런데 매튜의 아내, 케이트에게는 남편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랐던 비밀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 시간을 뛰어넘은 만남과 사랑. 추적이 진행됨에 따라 밝혀지는 배신과 생각지 못했던 진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엠마와 매튜의 운명은?
‘내일’을 찾는 여정!
시간여행, 소위 타임슬립은 참 흥미로운 소재다. 너무나 다양한 작품에서 많이 사용된 거지만, 그런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가 사랑이라는 감정과 어우러지면, 감성적인 면은 배가된다. 시간도 비켜간 이들의 매혹적인 인생과 사랑. 그건 비현실적이기에 더 아름답고, 애틋하고, 애절하다. 시간여행 못지않게 사랑 역시, 비현실적인 감정이니까. 물론 아무런 개연성 없이 이루어지거나, 소재와 내용이 너무 비슷비슷하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없이 막무가내로 사용되는 작품을 만나면, 화도 나고 독서했던 시간이 아깝다. 그래도 예의상 끝까지 읽기는 하지만, 즐거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건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는 나의 신조에 어긋나는 경우다. 하지만 다행히 ‘기욤 뮈소’의 ‘내일’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엠마와 매튜, 둘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연히 채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번의 대화 끝에 호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둘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그들에게는 1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이다. 엠마의 힘겨운 시간은 2010년, 매튜가 힘들게 겪어오고 있는 시간은 2011년. 이 시차는 한 사람에게는 축복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으로 작용한다. 매튜에게는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엠마에게는 어쩌면 사랑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대를 한순간에 접어야하는 절망으로.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매튜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기까지 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소망을 판타지의 환상에 묶어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에 맞게 상황을 해석한다.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대입한다. 엠마와 매튜, 그들은 원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 그는 아내를 살리길 바라고, 그녀는 죄책감을 떨쳐낼 궁리를 한다. 매튜의 마음속에 있는 케이트를 자신이 대신하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갈등구조가 있어서 이야기가 더욱 진솔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에서 인간적인 ‘현실’을 느꼈다. 아내를 살리고자 과거의 그녀에게 부탁과 회유, 나중에는 협박까지 하는 매튜. 마침내 찾아온 사랑인데, 상대가 있다는 데서 오는 엠마의 좌절감. 미래의 그의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 진솔하게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녀. 둘의 입장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 읽는 재미가 더했다. 하지만 갈등하고 고민할지언정, ‘인간’의 선의는 언제나 빛을 발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이 글에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주인공들은 없었다. 시간여행을 통해 들어난 ‘하나의 사랑’이었다. 약간의 갈등 뒤, 엠마는 매튜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다만 세상일이란 언제나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살려고 노력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별개다. 망자를 되살리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 시간여행은 매튜와 엠마가 ‘진실’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2010년의 케이트를 살리기 위한 엠마의 추적과 함께, 작품은 본격적으로 스릴러의 색을 띄기 시작한다. 2011년의 매튜와의 교신이 가능한 이상, 그녀는 2010년의 매튜를 쉽게 찾아낸다. 하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케이트의 과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릴러는 바로 이 대목, 케이트가 살아있는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시간여행을 통해 사랑뿐 아니라, 감춰진 ‘하나의 집착’도 들어나기 시작한다. 케이트, 그녀가 감추고 있던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케이트의 사랑, 내가 볼 때 그건 집착이고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자 하는 마음, 거기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조’까지는 무리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케이트에게 동정을 느끼기도 했다.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이건 어쩌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일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엠마로 인해 밝혀진 진실은 충격적이다. 케이트가 놀이는 게 매튜의 목숨이었으니까. 흔히들 ‘진실만큼 잔인한 건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밝혀진 ‘진실’도 그랬다. 정말 많이 사랑했고, 아내가 죽고 나서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고, 그나마 딸을 위해 조금씩 힘을 냈던 매튜에게 눈앞에 펼쳐진 진실은 너무나 잔인했다. 이런 ‘진실’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될 만큼.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어떤 것들을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용납할 수 있는 것인지. 작품 속, 매튜와 엠마, 케이트를 지켜보면서 ‘사랑’이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튜가 과거를 돌려놓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그는 고통스러운 진실은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대신 거의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았을 것이다. 과연 어느 게 더 나았을까. 무서운 진실을 아는 것? 고통을 받더라도 제대로 된 진실을 아는 것? 이거다 하는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서는 밝혀져야 할 ‘진실’인 것 같다. 중고 노트북 컴퓨터를 인연으로 만난 엠마와 매튜. 그 컴퓨터로 보내는 메일만으로 대화가 가능한 두사람. 1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사랑. 그 속에서 밝혀지는 뼈아픈 진실. 그 인연으로 두 사람은 ‘터닝포인트’를 마지하게 된다. 그들의 본래의 운명은 이랬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엠마는 2011년 자살하게 되고, 2011년의 매튜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신비한 인연으로 둘의 삶은 바뀐다. 엠마는 매튜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재미를 찾게 되고, 매튜는 엠마를 통해 죽은 아내의 배신을 알게되고, 두 사람은 그를 계기로 과거에서 벗어나 ‘내일’로 한 발작 내딛게 된다. 이런 내용에서 ‘내일’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지나간 시간을 완벽하게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는 과거에서 태어나는 거니까. 과거에 매달려 있는 한, 과거를 직시하고 떨쳐내지 않는 한, 새로운 만남과 ‘내일’은 없을 테니까. 더불어 사소한 사건으로 변화된 그들을 보면서 ‘나비효과’가 번뜩 떠올랐다. 내가 무심코 건넨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서 받은 메시지가 오늘의 삶을 지탱하고, 나와 타인의 만남으로 내일이 열리는 .....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조금만 다르게 바라본다면, 우울하고 힘들기만 했던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작게는 누군가의 하루가, 크게는 어떤 사람의 인생이 변하게 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읽었던 ‘기욤 뮈소’의 ‘내일’은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가 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