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부적
박청륭
1.
저녁에 다시 비가 내렸다
오래지 않아 진눈깨비로 변하더니
박쥐 같은 어린 짐승들이 다녀 간 후로 어둠이 찾아왔다
새벽이 되어서도 날이 샐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돌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빙그르르 몇 차례 엉켰다 부서진다
이어 엷은 쇠톱, 칼날소리가 긴 꼬리를 남겼다
돌로 발등을 찍고
무릎을 찍고
다시 발등을 찍었다
타다 만 쭉정이 잿더미에 다시 불을 붙인다
불은 불을 일으키지 못하고 연기마저 사라진다
사늘한 잿더미 어둠 속에서 뼈를 찾는다
아직 피를 뒤집어 쓴 뼈들,
찢고 찢긴 뼈는 더욱 검게 변한다
아직 어둔 미명
등불 든 나비가 크고 작은 섬 몇 개 징검다리를 건넌다
2
7년 기근飢饉, 가문 땅에 불이 붙는다
수백 킬로 오일 파이프 긴 사막으로 이어진
원유저장탱크가 곧 폭발할 것 같다
바다로부터 침공한 안개가 자정 넘은 시각까지 주둔한다
땅속 깊이 묻힌 5미터가 넘는 대형수로로 망령들의 괴성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속 400킬로에 육박하는 눈에 불을 켠 흑표범
자기 부상 열차가 지나간다
출렁이는 태양, 밀려드는 자장으로
모든 통신은 두절되고
전용 회선마저 단절된 새들도 길을 잃는다
도금된 황금 탄알이 남긴 세 번의 메아리
길고 먼 궤적 가득히 혈혼이 번진다
던져진 별 별, 별이 찍힌 육모 주사위가
우주 깊숙한 핵 저장고 벙커에 떨어진다
방탄복에 방독면까지 뒤집어 쓴 ET들이
요가를 한답시고 발랑 뒤집힌 채 잠이 들었다
괴성인지 흐느낌인지 가늠되지 않는
긴 머리칼 밀어버린 맨머리 여자들의 울음소리
하나 둘 세포 분열에 들어간 수정란이 펼쳐낸
불꽃 하늘
세상의 성곽들이 무너지는 사막 끝엔
피 묻은 돌이 번쩍인다
현대시 200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