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영산 신씨(靈山 辛氏)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신경(辛鏡)은 1138년(고려 인종 16년)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영취산(靈鷲山) 아래에 뿌리를 내렸다.
◎관향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강원도 영월군
시조 -신경 (辛鏡)
주요 인물 -신원경, 신돈, 신예, 신부, 신유정, 신인손, 신석조, 신영희, 신응시, 신경행, 신경진, 신초
신계영, 신격호, 신상우, 신춘호, 신준호, 신동주, 신동빈, 신건, 신학용, 신기남, 신경민, 신경림, 신정훈
인구(2000년) -영산 신씨 83,798명 -영월 신씨 67,489명
●시조
영산 신씨(靈山 辛氏) 시조 신경(辛鏡)은 중국 8학사의 한 사람으로 동래하여 고려 인종 16년(1138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영취산(靈鷲山)
아래에 뿌리를 내려 한국 신(辛)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본관
영산(靈山)은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이다. 본래 신라의 서화현(西火縣)인데 경덕왕이 상약(尙藥)으로 고쳤고
고려 때 영산으로 개칭하였으며 1913년에 창녕군에 병합하여 영산면이 되었다.
●분파
신경의 8대손에서
덕재공파(德齋公派)·초당공파(草堂公派)·상장군파(上將軍派)·부원군파(府院君派)·판서공파(判書公派)의
5파로 갈리는데, 앞의 3파는 영산신씨, 나머지 2파는 영월신씨이다.
영산신씨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낸 신천(辛蕆: 신지화(辛至和)의 장자)을 파조로 하는
덕재공파(德齋公派)와 좌찬성(左贊成)을 지내고 영산부원군(靈山府院君)에 봉해진 신혁(辛革: 신지화의 차자)을
파조로 하는 초당공파(草堂公派), 중정대부(中正大夫) 신성렬(辛成烈: 신공근(辛恭近)의 아들)을 파조로 하는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로 갈라졌고, 영월부원군(寧越府院君)에 봉해진 신온(辛蘊: 신지화의 3자)을 파조로 하는
부원군파(府院君派)와 이부판서(吏部判書)를 지낸 신한(辛{革+漢-氵}: 신지화의 4자)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후손들은 영월로 분관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영산 신씨
◎덕재공파(德齋公派) - 신천 ◎초당공파(草堂公派) - 신혁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 신성렬
●영월 신씨
◎부원군파(府院君派) - 신온 ◎판서공파(判書公派) - 신한
●인물
신천 - 고려 충숙왕 때 판밀직사사를 지냈다.
신돈(辛旽) - 여종의 아들로 태어난 고려 공민왕 때의 혁명가이자 요승이다.
신예(辛裔, ? ~ 1355년) :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좌정언(左正言)과 지신사(知申事)를 거쳐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다. 충목왕이 즉위하자 전 첨의참리(僉議參理)로서 서연(書筵)에서
시강(侍講)하였으며, 1345년(충목왕 1) 정방(政房)을 복치하였을 때에는 참리로 그 제조관(提調官)이 되었다.
충목왕 때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신부(辛富, ? ∼ 1360년) : 고려 후기의 무신. 신혁의 손자. 1355년(공민왕 4) 취산군(鷲山君)에 봉하여졌으며,
고려 공민왕 때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로 재임 중 홍건적의 난 때 함종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신유정(辛有定, 1347년 ~ 1426년) : 고려 말 조선 초 무신.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용맹이 뛰어났다.
1386년(우왕 12)에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어 족형인 충청도도원수 이승원(李承源)의 휘하에서,
남해에 출현하여 노략질하는 왜구를 무찔러 크게 용맹을 떨쳤다. 그 뒤 이성계(李成桂)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워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조선 태조가 즉위하자, 그는 곧 태조를 시종한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1397년(태조 6)에 이산진첨절제사(伊山鎭僉節制使)가 되었고, 1400년(정종 2)에 왕세제가 된 이방원(芳遠)의
추천으로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이 되었다. 이어서 공조·예조·형조의 전서(典書)를 역임하였으며,
1403년(태종 3)에 강원도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는 왜구를 크게 무찌른 공으로
판강릉대도호부사(判江陵大都護府事) 겸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었다.
1407년에 의주도병마사가 되었고, 1410년에 야인 우디거(兀狄哈)가 경원에 침입하자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로
부원수가 되어 도원수 조연(趙涓)과 함께 출정하여 이를 토벌하였다.
그 뒤 충청도병마도절제사·평안도도안무사가 되었다. 시호는 무절(武節)이다.
신인손 : 조선 세종 때 경상도관찰사·병조참판·형조판서 등을 거쳐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신균 : 조선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신영희 :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신윤 : 조선 중종 때 15세로 진사가 되고 명종 때 형조, 공조, 예조의 정랑을 지낸 후 광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신응시(辛應時) : 조선 선조 때 전라도관찰사·예조판서·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신계영 : 조선 현종 때 판중추부사를 역임한후 기로소에 들어갔다.
신격호 : 롯데그룹 회장
●항렬자
영산파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口식(植) |
용(容) |
口기(基) |
종(鍾) |
口수(洙) |
병(柄) |
口환(煥)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철(喆) |
口현(鉉) |
해(海) |
口치(致) |
석(錫) |
口한(漢) |
목(穆) |
●집성촌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후포리
충북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충북 괴산군 화평읍 남차리
충남 금산군 제원면 수당리 -충남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 -충남 금산군 남일면 덕천1,2,3리
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경북 월성군 강동면 모서리 -경북 김천시 아포읍 국사동
함남 이원군 차호읍 포항리 -황해 평산군 적암면
경남 창녕군 영산면 -경남 창녕군 계성면 -경남 창녕군 도천면 -경남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전남 나주시 왕곡면 장산리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
신빈 신씨(信嬪 辛氏,? ~1435년),조선 태종의 후궁으로, 2남 7녀를 낳았다.
임언군(정종의 서자) 사위 신여걸
양원군(성조의 서자) 사위 신경
숙정옹주(태종의 서녀) 사위 신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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