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이 지나고 이제 사십 중반이 넘어서 양쪽 귀 옆으로 갈대숲에 하얀 서리가 내리도록 아직 따끈한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의 골짜기는 커녕 " 아니, 그거는 어떻게 해결해? 하고 똘똘이 오형제 큰형님을 꼭 모셔다가 물어보는 주위의 짖굳은 질문에도 " 어 요즘 금욕중이지 머" 하거나 " 머 명상중이지 머" 하며 슬쩍 넘어가는 우씨가 눈을 뜬 것은 아침 아홉시였다. 어제 저녁부터 아홉시까지는 한여사하고 춘화여사하고, 열시부터는 마씨까지 함께하여 두 여사들과 열두시에 헤어진 후 새벽 세시까지 마씨와 함께 술장구에 목구멍꽹과리, 나팔까지 불고서 반지하 셋방, 방 세칸짜리 곰팡이 냄새가 퀘퀘하고 화장실냄새까지 쿵쿵거리는, 게다가 윗층에서 창문벽 모서리 쪽으로 이어져 있는 하수관을 통해서 "꾸르륵 꾸르륵", "콸콸" 들리는 우씨의 방으로 " 헤이일 수 없이 수 많은 바아암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어" 노래를 부르면서, " 나는 발꼬랑내가 많이 나는데 많이 나는데' 하며 미안해하는 마씨를 데리고 들어오는 기억들이 사진처럼 한 장 한 장 떠올랐다.
" 너 고자냐? 넌 왜 남들 다가는 장가도 못가냐?"
" 초저녁부터 술이나 입에 쳐마시고 술귀신이 바글거리는 이 집안에 누가 그 아들 아니랄까봐 오! 주여! 우리 아들놈이 술을 마시면 속이 니글니글거리게 하시옵소서"
몇 해전부터 음주가무를 하고 들어온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듣는 소리지만, 이 날 만큼은 새벽에 문을 여는 어머니의 모습이 다른 때와는 달리, 검은 산에 흰눈이 펑펑 내리는 것 처럼 보였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더 조마조마했다.
" 마형! 아홉시가 넘었는데 정사장한테 전화 안해줘도 되우?"
우씨는 마씨가 빨리 일어나서 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 원래 몇 시까지 출근이우?"
우씨는 방문 밖의 어머니 인기척을 살피면서 물었다
" 응, 여덟시 반 , 아! 좀 며칠 푸욱 쉬고 싶네, 내가 정사장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빵꾸 내보긴 처음이네"
마씨의 입에서는 아까까지 마신 소주냄새가 물씬했다.
" 어제 말야 우리 그 여편네들과 헤어질 때 내가 살짝 아무도 모르게 명함을 춘화에게 주었거든 그런데 금방 춘화에게 해드폰 연락이 왔더라고 "
마씨는 일어나서 담배와 라이터를 찾았다.
" 햐! 근데 어쩜 그대로냐, 탄탄하고 얼굴도 안변하고 아이구 "
마씨는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두 번 째 손가락으로 담배필터를 빨래집게처럼 잡고서 오른쪽입술 끝으로 담배를 빠끔빠끔 빨아댔다.
항상 만날 때 마다 " 춘화여사는 어떻게 지낸데 " 하고 묻던 마씨라, 어제 저녁의 마씨와 춘화여사와의 만남은 마씨의 새로운 러브를 위한 마씨만의 인생설계였고 설레이는 희망이었다.
모출판사 창고에서 경리를 보다가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그만둔 후 가슴에서 "악악" 불길이 치밀어 올라 죽겠다는 한여사를 우씨가 위로주(慰勞酒) 한 턱 내신다고, 곱창에다 소주를 한 잔 사면서 한여사가 춘화여사를 부르고 우씨가 사무실에서 배송작업을 하고 있던 마씨를 부르니, 밤 열 시가 되어서야 마씨와 춘화여사의 따끈한 만남이 이루진 것이었다.
" 어머! 얘! 봉춘아! 증말 오랫만이다 얘! "
둘은 오십오년 양띠생 동갑내기라고 예전에도 일찌감치 말을 트고, 야야하던 사이라 금방 "헤헤헤" "호호호" 했다,
" 어머 봉춘씨 한 잔! 우리 한 오년만이지? "
춘화여사는 오른 쪽 눈을 살짝 감으며 마씨에게 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 어이구! 형님 바지 못보던 바지인데"
우씨는 곱창을 한 점 집으면서 마씨의 위 아래를 흝어보았다.
조카딸 시집 갈 때 형님이 해준 사십만원짜리 양복 아랫바지라고 바지 어떠냐고 물으면서 "구두는 길거리표 구두인데 만원 주고 샀다." "오늘의 패션은 맘에 드시는지? " 춘화여사에게 능청을 떨었다.
" 아이구 가야겠다 "
마씨는 열시 반이 되서야 일어섰다.
" 아니 진짜 정사장에게 전화 안해두 되는거여?
마씨가 빨리 가기만을 우씨도 기다리던 터이라 우씨는 하이구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걱정을 해주는 척 했다.
" 근데 우씨! 밥은 먹구 가야할 것 아녀?"
마씨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면서 우씨에게 아침밥을 청했다.
" 아니, 형! 그게 아니구 아침밥은 나가서 먹읍시다. 사실 내가 밥상을 차려야 하는데, 솔지기 반찬두 마땅찮구 "
아까부터 문틈으로 늙은 노모의 분위기를 살피던 우씨였다.
" 그래 그럼 "
조마조마 하며 우씨는 방문을 열었다.
축축하고 항상 곰팡내가 나는 반지하 거실은 말만 거실이지 사실 사람이 숨쉬기에는 서글픈 곳이었다.
" 하이구 어머니! 건강하십니까?"
마씨는 우씨의 어머니손을 두꺼비 같은 손으로 꼬옥 잡으며 다정스럽게 인사를 했다.
" 어머니! 건강하시고 오래사시고 부자되시고 돈 많이 버세요 "
마씨는 구십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용수철 튀듯 인사를 했다.
" 어 그랴, 그랴, 근데 아침은? 어딜가? 감자 씻는 중인데 국해서 아침 먹고 가야지"
우씨의 어머니는 반지하 현관문에 서서 이빨이 다 빠진 주름웃음을 지으며 종이태극기를 흔들듯 손사래를 저었다.
" 감자탕이나 한 뚝배기 어때? 해장술에다"
" 아냐, 우리네 가끔씩 뱃창자 터지는 소리 나는 단장인생(斷腸人生)들은 순대국이 최고여"
작년 팔월 추석 며칠 전 술을 마시다가 대장이 터져서 급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던 마씨인지라 항상 순대국을 즐겨 찾았다.
"뽀얀 국물에다가 머릿고기며 고사리감투며 순대에다가 파 하고 청량고추 좀 "송송" 썰어 넣고 거기에다가 들깨가루에다가 다대기까지 "으흐흐흐" 그리고 소주 딱 반 병만 "
마씨는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손가락들을 별처럼 모아서 " 송송송" "송송송" 침이 꼴깍 넘어 가도록 쩝쩝거렸다.
순대국집은 아침 열한시 전이라 손님은 한 사람 뿐이었다.
" 아줌마아! 여기 순대국 보통으로 뚝배기 두 그릇"
식당에서 아줌마를 부를 때도 방법이 있다고 마씨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자기 엄마 부르듯이 "엄마아아"하고, 길게 부드럽게 부르면 영락없이 식당아줌마들도 자기 애들에게 "으으응" 하듯이 "네에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반찬도 많이 주고 밥도 곱배기로 준다고 목소리를 은근히 높이었다.
" 맛있게 드세요"
순대국은 깔끔했다. 연두초록의 고추는 맵기는 했지만 작은 고추씨들과 어울려 고왔다.
반 그릇 쯤 비어 갈 무렵 한 남자가 냄비를 들고 들어왔다.
그 남자가 든 냄비를 보는 순간 우씨는 갑자기 늙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 아줌마! 이 순대국 싸주기도 하나요? "
우씨는 밥을 먹다 말고 냄비를 든 사내를 흘깃 쳐다 보면서 물었다.
" 마형! 이 순대국 마형이 사서 보냈다고 할께요 우리 어머니 만수무강하시라고!"
" 하이구! 그랴! 그럼 난 머 고맙지 머 그대 덕분에 순대국 따끈따끈하게 먹고 그리고 자네 어머니에게 점수 따고"
마씨와 우씨는 뚝배기 그릇을 입술에 대고 후루룩 후루룩 거리며 남은 국물을 기분좋게 다 마시고 있었다.
'새벽에 문을 여는 어머니의 모습이 다른 때와는 달리, 검은 산에 흰눈이 펑펑 내리는 것 처럼 보였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더 조마조마했다.'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심상은 뜨끔뜨끔 애련하지요....................................鳳春 + 春花女士.. 一百
첫댓글 즐감이요~! 내일도 기대하믄 얄미울랑강...
'새벽에 문을 여는 어머니의 모습이 다른 때와는 달리, 검은 산에 흰눈이 펑펑 내리는 것 처럼 보였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더 조마조마했다.'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심상은 뜨끔뜨끔 애련하지요....................................鳳春 + 春花女士.. 一百
저도 잘 읽고 있어요. 계속...얘기꾼 이군요 가리봉님!
가리봉님 저 순대국 무지 좋아하는데요, 언제 같이 소주랑 한잔 하고 싶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