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인간들… 그래도 유쾌한 웃음
친한 선후배가 만나 여행 이야기 나누는데…
삶의 부조리를 보는 홍상수의 시각은 여전한 듯 한데 풀어내는 이야기와 화면은 더욱 밝아졌다. 그의 새 영화 '하하하(5일 개봉)'는 여전히 인간관계의 우스꽝스럽고 민망한 등짝을 따라가지만 영화 제목처럼 유쾌하게 시작해 웃으면서 끝난다. 이 영화가 올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함으로써 홍상수 감독은 장편 10작품 중 6개를 프랑스행 비행기에 태웠다. 칸의 애정이 이토록 무변한데도 여전히 그의 한국 관객이 적다는 것은 '참으로 홍상수적인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캐나다 이민을 앞둔 문경(김상경)은 고향인 경남 통영에 가서 며칠 머문다. 고향에서 그는 관광해설가 성옥(문소리)을 우연히 만나 따라다니며 구애한다. 그녀와 사귀는 시인이 있지만 굴하지 않고 애정 공세를 펴며 "같이 이민가자"고까지 한다. 문경의 선배 중식(유준상)도 비슷한 시기 통영에 휴가를 간다. 유부남인 그는 불륜녀 연주(예지원)를 그곳으로 불러 함께 지낸다. 시인인 후배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그의 애인인 관광해설가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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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후배 사이인 문경(왼쪽)과 중식은 청계산 자락에서 술을 마시며 각자 겪은 이야 기를 한다. /전원사 제공
영화는 선후배 사이인 두 남자가 청계산 자락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지난 여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두 사람의 술자리는 흑백 스틸컷으로 표현됐고, 영화는 그들이 각자 겪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보여준다.
두 주인공은 친한 사이다. 후배의 이민을 앞두고 두 사람은 등산을 하고 술을 마신다. 대화 내내 웃음과 격려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각각 통영에서 만났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얽혀 있고 서로 아는 사이이다. 그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오로지 두 주인공뿐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친한 사이인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이 영화 기저에 놓여 있다.
문경이 식당을 하는 어머니에게 선물한 모자는 이 식당 단골인 중식의 후배에게 가고, 중식은 그 모자를 쓴 후배와 시낭송회에 나란히 앉는다. 그런데 문경은 청계산에서 중식에게 "그 자식 모자가 내것하고 비슷하더라고"라고 말한다. 전지적 시점에 있는 관객은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문경과 중식은 "그랬단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하며 꼭두각시 놀음을 한다. 딱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그들도 관객처럼 전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 광맥 1㎝ 앞에서 곡괭이질을 멈춘 광부처럼 두 사람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허허허 웃으며 진실에서 유턴한다.
홍상수 감독의 캐릭터들은 많이 유연해졌다(어쩌면 노련해진 것인지도). 여자와 한 번 자려고 할딱거리는 남자는 이 영화에 없다. 오히려 성실하게 구애하거나 선물 들고 온 여자를 되레 나무란다. 홍 감독은 어떤 관계와 경험이든 전지적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결국 스스로 조작해 낸 상징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이 '나폴리 모텔'에서 잔다고 통영이 나폴리인 것은 아니며, 죽도록 깔깔거리다가 시간 됐다고 항우울제를 먹는 인물의 부조리가 그 예다.
홍 감독 영화 관객의 웃음 중 이 영화의 웃음이 가장 싱싱하고 발랄할 것이다. 그의 대부분 영화가 준 웃음이 '썩소'부터 피식과 킥킥이었다면, 이 영화의 웃음은 '하하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