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마음은
그때 내 마음은 복잡했다.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라는 책 제목은 나에게 우리 아이들의 세계를 잘 이해시켜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했다. 책을 추천한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신뢰와 저자의 강의에서 느꼈던 진정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책은 현직 교사인 김선희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례별로 적당한 분량과 따뜻한 표현으로 쓰인 글은 쉽게 잘 읽혔다. 읽는 동안 저자에게도 때로 동료 교사나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도 공감이 되었다. 너무나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저자의 마음과 태도는 부럽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였지만 한편 이질감이 들었다. 27년간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한 선생님에 비하면 나의 두 아이 17년 양육 경험은 너무 부족했던 것일까?
우리 집에도 두 명의 청소년이 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이다. 가족 간에 관계도 좋고 대화도 많은 편이지만 생각보다 감정 충돌이 꽤 있다. 나는 종종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아 불만스럽다. 작은딸은 평소 용돈, 휴대폰 사용시간, 앱 설치 제한에 불만이 많다. 나는 조금씩 조정해주는데도 아이에게는 언제나 부족한 모양이다. 큰딸에 대한 나의 불만은 학업에 쏠려있다. 나의 기대치도 문제지만 아이의 마음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방학을 한 지 이제 열흘 남짓. 하지만 벌써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긴 겨울 방학을 좀 더 효율적이고 알차게 보내길 바란다. 계획을 잘 세우고 실천하면서 생활 리듬도 유지하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기를. 하지만 그건 내 희망일 뿐이다. 기상부터 취침 때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거의 없다. 중고등학생이 방학 동안 공부를 저 정도밖에 안 하고, 이렇게까지 나태해도 되는 건지 화나고 걱정된다. 이 시기의 갈등을 보통 사춘기의 특징으로 뭉뚱그려 설명하지만 요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단지 이 시기만 지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괜찮아지는 걸까? 이건 아이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아이들과 갈등을 겪을 때면 엄청난 감정 소모를 하게 된다. 아이를 이해하려 좋은 의도로 시작한 대화도 결국은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고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대화를 할 때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묻고 들어주었는지. 나의 불편한 마음을 전달하려 애쓴 건 아닌지.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늘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던 게 아닐까.
이 책에서 보여준 저자의 공감 대화 사례들을 보며 ‘나도 저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랬다면 나도 그런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친절에 따뜻함을 느끼면서 나도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책을 읽고 글을 쓰기까지 몸과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비상계엄 이후 매일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연말에는 비행기 참사까지. 나는 계속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상태였다. 이런 시국이 나만 힘든 건 아니겠지만 건강에 여러 문제가 생겼고 오래 아팠다.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되는 상태에서 글쓰기 마감을 앞두고는 강박에 시달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무겁고 괴롭게 하는 걸까. 아이들을 떠올리며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의 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위로할 필요를 느꼈다. 그동안 너무 밖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 한동안 잊고 소홀했던 내 마음 살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요즘 관계가 불편해진 아이들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와 나를 위한 시간과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 내 마음은 잠시 가벼워진다.
첫댓글 성실한 명보쌤의 퇴고👍
저는 지난 모임 이후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이 지나가고.. 퇴고는 또 못하고.. 반성합니다;;
카페도 오랜만에 들어왔네요..;;
방학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선생님의 생각, 생생한 일상이 들어가니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됩니다. 역시 퇴고는 해야 하는 것!! 매번 고민하고 때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성실하게 글을 쓰시고 퇴고까지 하시는 명보쌤의 모습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