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크게 적자만 보지 말고 주변이 개발될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도곡타워점은 3개월 만에 흑자를 실현했다. 양재천 건너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물려왔기 때문이다. 도곡타워점은 7개월 만에 현재의 매장으로 이전하면서 3배나 넓어졌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우리밀과 수수, 검정 쌀, 보리, 율무 등 한국적인 소재로 빵과 과자를 만들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빤한 재료나 조리법으로는 남들과 다른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그전에 갖춰야 할 것이 바로 기본입니다. 정량과 정석대로 만들지 않으면 맛있는 빵은커녕 몸에 해로운 빵을 만들 수도 있어요. 빵에 대한 역사를 꿰뚫고 있어야 창의적인 제품도 만들 수 있죠.”
- ▲ 김영모 회장(맨 오른쪽)이 도곡타워점 2층 작업장에서 제빵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위생복과 위생모가 없다는 이유로 밀가루 반죽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과자점을 오픈한 이후 매년 2`~3차례 해외 연수를 통해 빵의 역사를 익히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국내 최초로 천연 발효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됐다. “1996년 독일에 연수를 갔는데 거긴 이미 천연발효법이 일상화돼 있더군요. 균을 공수해왔죠. 그런데 3개월 만에 부패하더군요. 프랑스나 미국에서 가져온 균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우리 기후와 토양에 맞는 발효법을 찾아야 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죠. 천연발효법을 완성시키기까지 8년이 걸렸어요.”
그는 해외연수에서 배운 노하우나 대표 제품의 레시피를 저술활동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공개한다. “주기적으로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어요. 성공에 도취해 제자리에 안주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다른 제과점에서 우리 레시피로 빵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긴장도 하고, 공개한 기술이 돌고 돌면서 부메랑처럼 더욱 풍부해져 되돌아오기도 했어요.”
“두 아들이 가업 이어”
김영모과자점의 로고에는 두 명의 제빵사가 나란히 서있는 이미지 아래 ‘김영모&피스(KIM YOUNGMO&fils)라고 적혀있다. 피스(fils)는 프랑스어로 아들이라는 뜻이다. 현재 장남 재훈씨와 차남 영훈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영훈씨(31)는 재료 구매와 창고 관리, 제품 출고 등 말단 사원 업무부터 시작해 현재 기획, 마케팅, 점포관리 등을 담당하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빵사의 길을 선택한 재훈씨(30)는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다. 재훈씨는 2003년 프랑스 제과월드컵에서 개인상을,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제과부문 동메달을 수상하는 등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는 1년에 두세 차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둘째가 이제는 자신에게 대들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을 대견해했다.
“가업을 이어주길 바란 것은 사실이지만 억지로 시킬 순 없잖아요. 진로는 자신들이 결정했어요. 어쨌든 두 아들이 제과·제빵업에 뛰어들게 돼 기쁩니다. 가업 승계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저는 뒤로 물러나 후배 양성에 나설 생각입니다.”
이미 그는 경기도 하남에 교육시설을 지을 부지도 마련해둔 상태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명장’이라는 칭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제10대 대한민국명장회 회장에 취임했다. 명장은 한 직종에 15년 이상 종사하면서 기술 발전에 공헌한 기능인을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금속겣돛未?목공예 등 공예분야와 기계겵떼콅건축 등 산업분야, 제과겧結?세탁 등 서비스 분야 267개 직종에서 명장을 선정한다. 현재 496명의 명장이 등록돼 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 하루 3시간 이상 10년을 투자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명장이 되려면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대부분의 명장들이 한 분야에서 40~50년 이상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명장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전시해 명장뿐만 아니라 기능인에 대한 사회적인 위상을 끌어올리고 외국인들에게도 우리 문화에 대한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명장들이 수십 년간 쌓은 ‘국보급 기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전국의 마이스터고겿倖?娩淪?등과 후진양성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론이 아닌 후배들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칠 예정입니다. 머리에 들어 있는 좋은 생각을 손으로 빚어내는 것이 기술이고 기능이기 때문이죠.”
요즘도 앞치마를 두르고 빵을 만든다는 그의 꿈은 천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150년 제빵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 100년 된 과자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는 그는 우리도 이제 전통을 이어가는 장수기업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럽이나 일본에는 600~700년 된 과자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역사가 깊은 과자점에 들어가면 느낌이 다릅니다. 코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냄새가 있어요. 무척 부러웠어요. 유럽과 일본의 수백 년 된 점포에 못지않은 천년 기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 이코노미플러스
장시형기자
첫댓글 배고파서 빵집에 취업해서 빵집CEO로 대박을 냈는데 정말대단한거같아요. 그때는 남들이 똑같이하는것만 보고 그냥 다 똑같이 만들어서 대충 팔았는데 혼자서 특별하게 만들어보기도하고 재료를 다르게 넣어보기도하고 독창적이였던거같아요. 그리고 그 기술을 후배들에게 가르쳐줄려고하니까 겸손에 실력까지있는 CEO네요.
저도 그의 겸손과 한가지를 파고드는 그런노력정신이 필요한거같아요! ㅎㅎ
와 대단한 사람이네요....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