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칙과 반복 속에 갇힌 일탈 - 명이식展 』
Myung Yishik Solo Exhibition :: Photography
▲ 명이식, 남부 201110, 148x180cm
전시작가 ▶ 명이식(Myung Yishik)
전시일정 ▶ 2014. 03. 06 ~ 2014. 03. 25
관람시간 ▶ Open 11:00 ~ Close 19:00(일요일 휴관)
∽ ∥ ∽
트렁크 갤러리(trunk gallery)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28-3
T. 02-3210-1233
www.trunkgallery.com
● 규칙과 반복 속에 갇힌 일탈
★최봉림(사진비평가, 작가)
명이식의 4x5인치 뷰카메라view camera가 주목하는 것은 예외 없이 알루미늄 프레임과 유리를 사용하는 커튼 월curtain wall 구조의 도심 빌딩과 조립식 콘크리트로 이뤄진 산업건축물이다. 건축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위해 모듈module 공법이 동원됐으며, 그리고 완공 후에는 경제의 효율, 효율의 경제를 추구하는 건축물이다. 횡적 팽창과 더불어 높이의 성장을 거듭하는 메가시티, 신도시의 주역들이다. 그 건축물들이 지닌 규칙과 반복의 외관들이다. 최상의 지점과 시점vantage point에서 작가는 엄정한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현대 건축물의 형태론morphology의 특징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 명이식, 반포 201209, 180x148cm
▲ 명이식, 아산 201209, 148x180cm
▲ 명이식, 종로 201108, 180x148cm
▲ 명이식, 청주 201209, 180x148cm
작가의 사진적 프레이밍은 그의 재현대상, 즉 현대의 기능주의적 건축물의 특성과 일치한다. 뷰카메라의 무브먼트movement를 이용하여 완벽하게 수직과 수평의 건축선을 정열하고, 사진의 사각 프레임과 건축물의 그리드grid를 어긋남 없이 맞물리며, 재현대상을 본받아 3차원의 부조감 대신 2차원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그가 주목한 건축물과 사진적 재현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프레이밍을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엄정하고 명확하게 사진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주의적 현대 건축물 안에는 무엇이 기입되고, 무엇이 투사되는가? 그것은 인간의 공간과 시간을 수리적으로 구획정리하고, 개인의 일탈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면서 경제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술관료 사회의 기표signifiant들이다. 인간의 노동, 사생활 그리고 여가를 규칙적으로 반복시키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소비조작 사회의 징후symptom들이다. 다시 말해 획일성, 예측과 통제 가능한 일탈만의 허용, 끝없는 반복을 통해 생산과 소비를 고양시키는 현대사회의 상징symbol인 것이다. 명이식이 체계적으로 프레이밍한 대형 건축물 속에 내재된 현기증 나는 반복, 교차하는 직선들의 규칙적인 행렬은 최소 시간,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의 쿨cool한 표상emblem인 것이다. 기술관료 사회, 소비조작 사회는 이 건축물들을 통해 현대인의 노동을 조작, 관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재단하고 배치한다. 현대 건축물은 일종의 강제성을 갖추고, 우리 삶 전체를 실용적으로, 기능적으로 재편성한다. 한편으로는 산업사회의 산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사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피사체로 선택한 대상들은 모두 대도시에 설치되고 놓인 구조물들이었다. 똑같은 구조, 육면체의 수평, 수직으로 연속된 반복, 원형의 무한반복은 현대사회의 삶과 닮아 있는 현대 도시의 필연성이다.”
명이식이 강조하는 현대 건축의 그리드 혹은 원형을 통한 반복구조는 일견 개인의 주체성과 모든 개인들의 평등을 승인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이 승인은 언제나 명목적이다. 그리드로 개인의 개체성, 그리고 건축자재의 동일성, 크기와 형태의 동일성으로 완벽한 평등을 가장할 뿐이다. 실제로 반복구조는 차이difference 더 나아가 차별discrimination 그리고 대체를 전제로 한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구성요소는 다른 동일한 요소로 언제나 교체 가능하며, 동일한 구성요소는 그 위치, 즉 중심과 주변 그리고 높낮이, 즉 상층과 하층에 따라 계급과 직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빌딩의 그리드 속에 갇힌 모든 개체는 직위, 직책을 막론하고 경제의 효율, 효율의 경제에 강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만 평등하다. 현대 건축물의 반복구조는 불평등의 은폐, 획일화이며, 경제논리에의 종속을 의미한다.
작가의 시트필름 sheet film으로 전사된 건축물의 형태학에는 규칙을 깨뜨리는 우연, 반복에서 일탈하는 파격이 존재한다. 반복적 동일성이 주변 환경의 그림자에 의해, 빛의 반사에 의해, 떠가는 구름에 의해 혹은 시간의 파괴 작용에 의해 흐트러지는 순간들이 찍혀있다. 작가는 말한다. “피사체인 도시의 구조물들은 늘 그곳에 공존해왔던 주변 환경들을 묻히게 한다. 떠가는 구름과 빌딩 옆의 채 제거되지 않은 잡초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과 빌딩에 비친 풍경과 얼룩들. 사진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실제로 그곳에 ‘존재’하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대상들이다 (...)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기하학적여 반복된 도시의 구조물들을 찍는다. 이들을 강조해서 찍으면 찍을수록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것들이 더욱 잘 드러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명히 작가는 반복에 균열을 내는 우연과 일탈을 자신의 사진 속에서 ‘인지’하면서 미학적 기쁨을 맛본다. 그리하여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그는 ‘도시의 구조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작가의 객관적이고 중성적인 사진어법은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순간의 기쁨을 넘어서, 기술관료 사회의 억압적 효과를 지속적으로 ‘인지’시키고야 만다.
▲ 명이식, 한남 201007, 148x180cm
▲ 명이식, 행담 200908, 148x180cm
▲ 명이식, 행담 201009, 180x225cm
작가가 보여주는 건축물의 하위 구성물sub-component은 모두 상위단위 속에 일관되게 종속되며, 파격도 반복의 규칙 속에서 측정 가능하다. 무작위적인 장식, 예측을 벗어나는 일탈은 커튼월 구조와 모듈공법의 건축물에서는 곧 끝이 날 즉흥극에 지나지 않는다. 격자 유리창에 달라붙은 청소부, 수직으로 매달린 형상물, 블라인드의 각기 다른 높이, 창마다 상이한 빛의 반사율과 예측할 수 없는 주변 건물의 반영, 무작위적인 창문 색상의 배열, 노후 건축물의 불규칙한 칠 벗겨짐, 산업건설물의 일관성을 깨는 어수선한 건설 장비들은 기능주의적 건물 전체에 담보된 수학적 규칙을 깨트리는 일탈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일탈에 관계된 자유 혹은 저항이 아니다. 다양성, 탈중심이 아니다. 규칙과 반복의 지속 속에서 잠시, 때 아니게 일어나는 우연일 뿐이다. 조만간 동일한 규칙과 변화 없는 반복으로 되돌아올 유사성, 닮음일 뿐이다. 현대사회의 표준화된 패턴에 의도치 않게 생겨난, 그러나 지울 수 있는 얼룩일 뿐이다. 명이식의 사진에 일어나는 차이와 일탈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동일성, 획일성에 종속되고 말 운명에 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의 사소한 일탈, 파격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우리를 지배하는 규칙의 반복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다는 착각을 맛보기 위해, 반복의 규칙 속에 갇힌 일탈의 쾌감을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다. ⓒ
원문자료출처// http://www.arthub.co.kr/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베드로 형제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