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지독하게 더웠다. 110년 만에 최고 더위였다니 비록 에어컨의 힘을 살짝 빌리긴 했지만 이런 더위를 무사히 견뎌 준 내 몸이 대견하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한테 상이라도 줘야겠는데 이왕이면 버섯이 좋겠다. 버섯전골도 좋고 버섯구이나 버섯볶음도 관계없다.
뜬금없이 왜 버섯이냐 싶겠지만 역사 이래로 사람들이 가장 환상을 품고 먹어 온 식품이 버섯이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버섯에 대한 기호는 나라별로 시대별로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대부분 버섯을 먹으며 천상에 오르는 환상을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는 버섯을 먹으며 신선이 된 기분을 느꼈고 서양에서는 아예 신이 된다고 믿었으며 중국은 황제라도 된 것처럼 좋아했다. 그런 만큼 지난여름 더위와 싸우느라 고생했으니 가을에는 버섯 먹고 신선이 된 기분이라도 맛보자.
▶진시황도 껌뻑한 버섯
역사를 보면 버섯 먹으며 환상에 빠졌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중국 진시황도 그중 하나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진시황은 늙지도 죽지도 않겠다며 어린 소년과 소녀 3000명을 뽑아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동쪽 삼신산으로 보냈다. 불로초 탐사의 책임자는 서복이라는 술사였다. <사기>를 비롯한 역사책에는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복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나오지만 민간에 전해지는 전설에서는 이야기를 살짝 변형시켰다. 서복이 다시 돌아오기는 왔다. 하지만 거액의 돈을 쓰고도 불로초를 구하지 못했으니 곧이곧대로 보고했다가는 목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못할 것이 뻔했기에 대신 다른 약초를 바쳤다. 동쪽 봉래산에서 신선을 만나기는 만났는데 불로초는 구하지 못하고 대신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며 내놓은 것이 신령스러운 버섯인 영지였다.
장마당 약장수들이 하는 이야기 같지만 사람들이 영지버섯에 대해 품었던 환상이 반영돼 있다. 실제 정통 역사책에서도 버섯은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삼국사기>에도 영지에 관한 기록이 모두 네 차례 나온다. 웅천과 상주, 공주와 춘천에서 각각 상서로운 버섯을 발견했다면서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다. <고려사>에도 태조 왕건에게 영지를 바치니 왕이 창고의 곡식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듯 버섯은 보는 대로 임금에게 진상했으니 영지(靈芝)는 특정 버섯 이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신령스러운 버섯, 그래서 상서롭다고 여겼다.
버섯은 종류가 많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신선이 된다고 믿었던 버섯은 송이다. 이태백에 버금간다는 고려 시인, 이규보가 신선이 되는 지름길로 송이버섯을 꼽았다. 신선의 정의가 세속을 초월해 자연과 벗하며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송이버섯을 먹고 충분히 신선이 될 수 있다. 이유는 송이버섯의 특징 때문이다.
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은 송이버섯에 대해 처음에는 땅의 힘을 빌려 생겨나지만 자라기는 바람소리와 맑은 이슬만 먹고 크는 고고한 식물이기에 송이버섯을 먹으면 그 향기로 온 몸의 기운까지 평온해진다고 설명했다. 동의보감에서도 송이버섯은 깊은 산속 늙은 소나무 밑에서 그 기운을 받아 자라기 때문에 나무에서 나는 버섯 중에서는 으뜸이라고 했다.
소나무가 무엇이기에 소나무의 기운을 받은 버섯을 먹었다고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소나무가 절개의 표상이었고, 십장생 중 하나로 꼽히며 장수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아예 신들이 소나무에 깃들어 산다고 믿었다. 송이버섯은 이런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자라니 맛이 향긋하고 풍미가 뛰어나다는 것인데 특히 살아있는 소나무 뿌리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더욱 인체에 좋다고 여겼다. 이슬만 먹고 사는 요정처럼 소나무 정기를 먹고 큰다는 송이버섯이니 이런 버섯을 먹으면 육신은 물론이고 정신까지도 정화될 것 같다. 그렇지만 송이는 너무 비싸 기분이라도 신선되기가 어려우니 양송이나 새송이 버섯으로 대체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름이 비슷하니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은 착각이다. 양송이나 새송이는 모두 느타리버섯 종류로 우리나라에서 송이의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서양 송이, 새로운 송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다만 송이 같은 향은 없어도 먹으면 맛도 좋고 다 좋은데 값이 저렴한 이유는 진짜 송이가 아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흔하기 때문이 아닐까. 400년 전인 17세기부터 인공재배에 성공해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그러고 보면 느타리버섯이나 싸리버섯도 맛이 좋은데 썩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이유 역시 흔하게 발견되는 데다 다른 버섯과 달리 진작부터 인공재배를 했다.
▶버섯 먹고 신이 된 로마 황제
인공재배가 안 됐을 때의 버섯은 여전히 환상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고대 로마에는 버섯 먹고 아예 신이 됐다는 황제까지 있었다. 주인공은 서기 1세기 때 클라우디우스 황제다. 달걀버섯을 먹었더니 신이 됐다는 것인데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의 주장이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네로 황제의 양아버지다. 네 번째 부인인 작은 아그리피나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네로로 아들을 빨리 황제의 자리에 앉히려고 남편을 독살했다. 클라우디우스가 죽을 때 먹었다는 버섯이 바로 달걀버섯이다. 이 버섯은 빛깔이 화려해 얼핏 독버섯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식용버섯이다. 날로 먹어도 맛있고 불에 구우면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예전 이탈리아에서는 고급요리의 재료로 쓰였다. 역대 로마황제들이 좋아해 황제버섯(Ceasar’s Mushroom)이라고도 부른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역시 이 달걀버섯을 좋아했는데 황후인 아그리피나가 달걀버섯이 담긴 접시에 비슷하게 생긴 독버섯인 광대버섯의 즙을 발라 남편을 살해했다. 황제가 죽자 자리를 이은 네로는 죽은 황제가 달걀버섯을 먹었기에 신이 됐다며 전 황제를 신격화시켰다. 덕분에 달걀버섯은 졸지에 신의 음식이 됐다.
표고버섯은 먹으면 신이 된다는 소리는 없지만 대신 버섯의 황후라는 소리를 듣는데 역대 중국 황제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명 태조 주원장이 특히 표고버섯을 좋아했는데 관련 일화가 전해진다. 건국 후 심한 가뭄이 들어 주원장이 기우제를 지냈는데 몇 달간 기도를 올리며 제대로 먹지 못해 기력이 떨어졌다. 그러자 한 신하가 먹으면 100살까지 산다는 장수식품이라며 표고버섯을 구해 바치니 주원장이 표고버섯 볶음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 이때부터 표고버섯 볶음이 명나라 궁중요리가 됐다는 것인데 표고버섯 스토리에는 다른 버섯과 달리 특이한 부분이 있다.
영지나 송이나 아니면 달걀버섯조차도 천상의 음식이니 먹으면 신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중국에서는 최고로 꼽는 표고버섯임에도 기력을 되찾는 장수 버섯에 지나지 않는다. 왜 표고에 대해서만큼은 신이 먹는 버섯이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걸핏하면 신과 연결 짓기 좋아하는 옛날 중국이지만 표고버섯을 신의 음식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진작부터 표고버섯을 인공 재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표고버섯은 13세기 초, 송나라 때 벌써 인공재배 기록이 보인다. 일찌감치 인간의 손을 탔으니 표고버섯이 신들이 먹는 음식의 지위를 내려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진작 사람의 때를 탄 표고버섯조차도 장수식품으로 꼽는데 사람들은 왜 버섯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것일까?
여러 설명이 있지만 옛날에는 버섯이 워낙 귀했기 때문에 환상을 품게 됐다는 풀이가 가장 그럴 듯하다. 사실 음식이라는 게 맛있어서 비싸다기보다는 비싸서 더 맛있는 측면이 있는데 버섯도 그런 식품 중 하나다. 세상에는 모두 2만 종류의 버섯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식용은 1800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요즘 이야기이고 옛날에는 버섯이 더욱 귀했으니 광해군 때인 17세기에 발행된 동의보감에 수록된 버섯은 20종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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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공지보기▶ 하물며 영지버섯과 송이버섯, 달걀버섯 이야기가 나오는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식용 버섯은 불과 몇 종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면서 먹으면 신선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환상을 품었을 것이다. 버섯의 제철인 가을이다. 버섯전골 먹으며 식사하는 동안이나마 신선이 되는 환상을 품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