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코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내건 개혁의 표어는
“솔라 스크립투나”, 즉 “오직 성경만이”였었다. 그러니까 교회(캐톨릭)의 체질변화가 필요했을 만큼
그 부패가 심각했음이 들어난다는 반증이었다. 요즘처럼 성경이 흔치 않을 때인 중세기를 지내온 교회가 온전치
못했던 그 주된 이유는 뭐니 뭐니해도 사탄의 개입을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도 없고 사도들로 없는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하수인(카톨릭)을 내세워 온갖 비리들을 양산, 이를 교회의 제도로 둔갑시키곤 했는데, 성경과는 너무 다른 이같은 일에 반기를 든 개혁자들의 지적은
당연한 수순(手順)이었다.
교회가 정화될 뻔한 좋은 기회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이 역부족이었다. 카톨릭의 오래된 관습을 고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오히려 개신교의 탄생만을 부추긴 셈이었다. 응당 개신교의 탄생이 가져다준 의미(意味)들이야 당연히 축하해 줄 일이었지만 여러 갈래로 찢어진 교파의 난립도 문제이거니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시에 구현하신 사람을 위한 제도(cf 막2:27), 즉 “7일 일주일”제도의 원형(原形)이
일요일로 인해 심각히 훼손된 사실에는 개혁자들 누구하나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구교(캐톨릭)와 신교(개신교)들에게서 매주 반응해야 하는
일요일 기준으로의 변형(變形)이 된 “7일 일주일”제도가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탄생한 안식일이 그 기준이 된 원형(原形)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cf 출20:8,11)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은 체, 세상 끝까지도 이어질 태세다. 이에 받을 상벌(賞罰)이 분명한 건
예수께서 그 엄중한 기준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다.(cf 마7:21)
즉, “착하고 충성된 종”(마25:23)과 “악하고 게으른 종”(마25:26)이 받을 처우가
동일(同一)할 수가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cf 마7:21-23) 결단코 일요일에는 하나님에 의한 천지창조의
원대한 의미라곤 전혀 찾아 볼 수도 없거니와 때문에라도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은 더더욱 될 수가 없는 날임은 물론이요,
마치 현세의 상황이 애굽과 같은 죄악 세상이나 다를 바 없는바,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도록 구해 주심에 감사하고
이를 기념하는 것과 천지창조의 명분에서 안식일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명령하는
것이다.(cf 출20:8,11;; 신5:15)
- 김종성 -
첫댓글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세우기 위한 목사님들의 순 엉터리 같은 수작(酬酌)들을 보고 있노라 치면
가슴에 의분(義憤)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음을 어떻게 주체(柱體)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필자가 본
이들은 하나같이 매주(每週)마다의 “7일 일주일”제도에 목을 매고 있으면서도 이 제도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누굴 위해서 만들었는지조차도 모르겠는 양,
이 제도와는 아무 관련도 전혀 없는 주님의 부활 사건을 끌어 드리는 것도 모자라 부활이 일어난
당일(일요일)마저 끌어 드려 이를 주일(主日)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더 나아가 이를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로 격상 시킴으로서 이미 이 제도의 운행 기준으로 천지창조를 상기시킨 하나님의 말씀(cf 출20:8, 11)
조차도 매주(每週)마다 무시(無視)하는 참람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를 예수께서 그냥 못 본체 하실까? 절대 용납지 않을 것은, 아무리 목사라 할지라도
주(主)의 이름을 사칭(詐稱)하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뜻대로”(마7:21) 행하기를 거절(cf 출20:8,11; 신5:15)
하는 등의 “불법을 행하는 자들”(마7:23)로 간주되어 내치심을 받을 건 분명하다.
왜냐하먼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결과로 “7일 일주일”제도를 만드시고, 그 명분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기
때문이다.(cf 출20:8, 11) 고로 그 변경은 절대 불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변경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는 물론 그 과정들을 지적한 글이 201~204편에 실려있다. 이를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