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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아마 영화관에서 본 커피 광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시엔 멀끔한 외모에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를 보면서 '미국 교포 클래식 연주자인가 보다'라고 막연한 생각을 가졌을 뿐.그런데 그를 다시 발견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KBS1에서 방송되는 다큐멘터리는 용재 오닐이 시골 마을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49명밖에 안 되는 초등학교라 폐교 직전의 상황인 그 곳에서 그는 밝은 표정으로, 진정을 다해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가 연주하던 악기는 특이하게도 비올라였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튜닝이 낮은 악기로, 보다 깊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바이올린과 첼로 중간의 악기다.특이한 악기를 연주하고, 한국어를 거의 모르며, 아이들에게 열정을 쏟는 이 청년은 누구일까 궁금해 하던 중, 그가 2004년 KBS1에서 방영한 '인간극장'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인간극장을 다시보기로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느꼈다.
DMB로 본 다큐에서는 몰랐던 그의 일상들을 여과 없이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한국 정신지체 미혼모의 아들로서 당당하면서도 멋지게 사는 그의 모습이 그의 연주에 투영됨을 온몸으로 들을 수 있었다.용재 오닐의 어머니 콜린 이복순 오닐 씨는 한국전쟁 당시 고아로, 미국 부모에게 입양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데, 총 35명의 입양아들을 기른 정말 대단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복순 씨는 열병을 알아 정신지체를 가지게 되었고, 때문에 미혼모로 용재를 낳은 이후에도 용재를 돌볼 수 없었다. 용재 오닐은 그의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대학을 보낼 돈이 없으니 꼭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를 받았다. 엄격한 할머니였지만 80세의 나이에도 용재의 바이올린 레슨 장소에 차를 몰고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용재 오닐은 비올라를 전공하고 줄리어드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할머니 말씀대로 전액 장학금으로 수학을 했다.
'인간극장'에서는, 줄리어드 졸업 후에도 뛰어난 연주자에게 1년간 생활비 등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에 용재가 합격하는 모습이 나온다. 재능이 있다면 학비가 모자라도 학생을 충분히 지원해 주는 미국의 시스템을 보자면, 20세기 들어 미국에서 유달리 뛰어난 인재가 쏟아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복순 씨는 오르건 주의 작은 카페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빌이라는 남자친구와 살고 있는데, 두 분이 정말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삶에 행복이란 것이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이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또 내 행복을 찾는다면, 누구나 작은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이제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가 된 아들과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껴주는 남편 사이에 있는 이복순 씨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혼자말을 되내었다.
용재 오닐이 누군지 조금은 알고 나자 DMB로 본 다큐멘터리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을 더 챙겨주고자 하던 그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도 했다. 멋진 삶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그가 영상에서 계속 하던 말이 있다. "keep practicing". 결과란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연습, 그리고 열정을 가진 삶을 통해,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듯 소중하게 나오는 것이다. 나는 혹시라도 피나는 연습 없이, 원하는 목표를 거저 이루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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