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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Ⅰ
현철큰스님과의 대화
현철큰스님이 LA 반야사의 주지로 부임해온 것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스님은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10개 종교 단체를 모아 힐링 콘서트를 여는 등, 열린 불교 운동을 펼쳐왔다. 반야사 경내에서 스님을 만나 말씀을 나눴다.
기자 출가하셨을 때 얘기를 들려주세요.
현철큰스님 1971년 6월 신록이 우거져 있을 무렵,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했습니다. 당시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나는 무엇인가?” 등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하느라 밤잠을 못 이뤘었고, 불면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그 시절, 홍제동에는 화장터가 있었어요. 화장터란 낮에 가도 썩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밤에 잠이 오지 않자,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 홍제동 화장터를 지나 이화여대 뒤에 새 절(봉원사)까지 걸어갔었습니다. 도착하면 새벽녘이었는데 스님들이 법당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 드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초여름 날씨라 대웅전 문을 열어 두었기 때문에, 저는 마당에 서서도 예불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예불이 끝나고 나면, 그 옆의 약수터에 앉아서 시원한 약수를 마셨는데, 마치 울던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름 동안 매일 그렇게 새벽에 봉원사에 가서 해가 중천에 뜨면 내려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저희 집에서는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대학로에 있었는데 큰 형님이 사시던 문화촌이 당시만 하더라도 완전 시골 분위기였던지라, 부모님들은 형님 집에 가면 잠이 잘 올 것이라면서 저를 문화촌으로 보냈었어요. 그런데도 잠이 잘 안 왔습니다.
그러던 중, 청계천의 헌 책방 가게를 지나가는데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 라는 책이 보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류 승려 시인인 김일엽 스님이 쓴 수필집이었어요. 책에는 여러 스님들의 출가 동기가 나오고, 부록으로 만공스님 법어집이 실려 있었습니다.
만공스님의 법어집을 들춰보니 “자기가 무엇인지 알면 만사가 해결되고, 인생관과 세계관이 저절로 정립된다.” 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딱 눈에 꽂혀, 그 책을 구입했습니다.
낮이면 안암동 고려대학교 뒷산, 소나무 숲에 앉아 개운사를 내려다보면서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를 계속해서 읽어내려갔습니다. 선사스님의 법문이 좀 알쏭달쏭하고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일주일 동안 읽고 또 읽었더니 출가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러던 중, 새벽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마당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송암스님이셨습니다. 당시에는 그분이 송암스님인 줄도 몰랐습니다. 송암스님은 범패 인간문화재로도 잘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아마도 그때 마당에 서서 송암스님에게 출가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제 말을 들은 스님은 “학생, 이런 절 말고, 대규모 승가대학이 있는 법주사나 해인사, 또는 통도사나 범어사에 가보게.” 라고 소개해주시더군요. 그래서 지도를 봤더니 속리산 법주사가 가장 가깝더라고요. 그래서 법주사로 갔습니다.
기자 몇 년도에 어느 스님을 스승으로 비구계를 받으셨나요?
현철큰스님 1974년도였고, 혜정스님이 스승이셨어요.
혜정스님은 44세에 총무원장을 지내실 만큼 대단한 스님이었어요. 혜정스님께서 속리산 법주사에 계실 때 만나 제자가 되었습니다.
기자 미국에는 언제 어떤 연유로 오셨나요?
현철큰스님 출가 후 지리산 반야봉의 칠불암에서 3년간 묵언 정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공양하러 내려갔다가 <채근담>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 “덕수량진(德隨量進) 양유식장(量由識長). 고욕후기덕(故欲厚其德) 불가불홍기량(不可不弘其量). 욕홍기량(欲弘其量) 불가불대기식(不可不大其識). 즉 덕은 도량에 따라 발달하고 도량은 식견에 따라 커진다. 그러므로 그 덕을 두터이 하려면 기필코 그 도량 넓힐 것이요, 그 도량을 넓히려면 기필코 그 식견을 키워야 한다.” 라는 한용운 스님의 해설을 접한 거에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우물 안 개구리는 태평양이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한다.”라는 해설이었어요. 어찌나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던지 몰라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계곡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바로 속인(俗人) 같은 거에요. 속인(俗人)은 사람 인(人) 변에 계곡 곡(谷)자를 쓰거든요. 참선을 하더라도, 도를 닦더라도, 세계일주를 한 번 하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3년 묵언정진을 마치고 범어사의 선방인 청풍당에서 살게 되었는데 내 사형인 석지명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석지명 스님은 미국 LA로 건너가 반야사를 세운 분인데, 자신이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에 가서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이라 주지가 공석이 될 터이니, 미국에 와서 포교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 의중을 묻는 거에요. 저는 여행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스님은 막무가내로 “무조건 LA로 오라.”고 하셨어요. LA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 1990년 11월 6일 오전 9시 53분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33년간 이 곳 반야사의 주지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 세상을 보겠다는 원은 어떻게 하셨나요?
현철큰스님 LA에 오자마자 여행부터 했죠. LA를 기점으로 미국 전역과 캐나다를 다 여행한 것을 포함해 모두 38개국을 다녔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10차례 방문했고 유럽도 2번씩 다녔어요. 북조선도 열흘간 시골 구석까지 여행했습니다.
기자 어떤 인연으로 북조선에 가게 되셨는지요?
현철큰스님 1990년대 북에 큰 물 피해가 있었습니다.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의회의 초대회장인 송월주 스님께서는 북에 가봐야 균형감각이 생긴다며 방북을 권하셨어요. 송월주 스님은 사숙이자 반야사 회주스님이시기도 합니다. 나는 판문점을 통해 북에 가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중국을 통해 갔던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른의 말씀이라 따랐습니다. 북에는 65개의 불교 사찰과 2개의 교회, 그리고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찰은 대부분 시골에 있어요. 우리 방문단은 그동안 사리원에 금강국수 공장을 세워 3천 명을 먹여살렸다는 공로로 시골에 있는 사찰들과 그 주변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죠.
기자 지난 33년간 LA에서 사원연합회와 지구촌공생회, 미주종교평화협의회 등 여러 활동을 하셨죠?
현철큰스님 반야사에서 주지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차례가 되어 ‘사원연합회’ 회장도 1995년과 2005년 2차례나 했습니다. ‘미주승가회’라는 조직은 동부와 서부에 미국 공동 회장을 두고 있는데, 제가 서부 회장 직을 맡기도 했었죠.
미주종교평화협의회는 여러 종교간의 대화를 위해 도안스님, 양현승 목사, 김세을 신부 3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임이에요. 후에 김기대 목사, 김요한 신부님도 함께 했습니다. 벌써 30년이나 되었네요.
창립 멤버였던 도안스님은 이 모임에 큰 애착을 갖고 계셨는데 돌아가시면서 제게 이 모임이 없어지지 않게 마음을 써달라는 유언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 모임의 명맥을 유지하고 종교 평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에서는 종교 평화상을 제정해 법타스님, 한국의 김광진 신부 등에게 상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 이 모임을 통해 불교, 원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미주 지역의 4대 종교인들간의 친목도 다졌고요.
2022년 6월 25일,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며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살아 있는 사람도 스트레스가 크던 시기에는 미주종교평화협의회를 통해 힐링 콘서트를 열어 한인 사회에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몰몬 교회 성전에서 10대 종교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행사를 열었는데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를 통해 종교간의 대화를 도모한 데에는 도안스님의 유언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한국에서부터 타종교와의 교류에 큰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기 때문입니다. 대형 버스에 수녀님들을 모시고 큰스님들의 법문을 함께 들으러 가는 행사를 하는 등, 여러 교류가 있었어요.
막스 뮐러는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종교를 알아야 비로소 종교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웃 종교를 알아야 자신의 종교도 깊어집니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일어났던 전쟁의 79퍼센트가 종교 전쟁이라고 합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자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다른 종교에 대해 잘 모르고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종교만 제일이라는 아집과 독선에 빠져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다른 종교 간의 평화는 너무 중요합니다. 또한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랑과 평화입니다. 그래서 여러 단체 가운데 미주종교평화협의회의 활동을 나름대로 정성껏 했던 것이고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지구촌공생회는 송월주 스님께서 만드신 비영리기관입니다. 좋은 의도의 단체이니 만큼 능력 닿는대로 도와드리려 했던 것이고요.
기자 반야사는 법당과 그 옆 건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 불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현철큰스님 미국에 처음 와보니 현재 법당 건물만 있어서 신도들이 차를 세울 공간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주차장을 확보할 요량으로 1995년도에 반야사 바로 옆 건물을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반야사 법당과 분리되어 있었던 대지를 연결되게 만든 것이죠.
옆 건물의 리빙룸은 그동안 10여 명이 모여 음악, 미술, 문학을 배우는 불교문화회관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는 “음악과 미술, 문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한다.”라던 괴테의 말에 깊게 공감합니다. 그래서 그 불교문화회관 공간에서 이 3가지 예술을 모두 아우르고자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세계적 화가이자 서예가인 선생님을 모시고 붓글씨를 배워 회원들 모두 출품할 정도의 실력을 키웠고, 클래식 음악 지휘자를 초빙해 클래식 음악 강의도 들었으며, 시인 협회 회장과 함께 시를 공부해 10여 명의 시인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삼보(三寶) 하면 불법승(佛法僧)도 삼보이지만, 괴테가 말한 음악 미술 문학도 삼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반야사의 불교문화회관의 이름을 ‘삼보문화원(三寶文化院)이라고 정하고 붓글씨 선생님께 부탁해 나무 현판도 미리 준비해놨
습니다. 훗날 새롭게 건물을 지으면 이 공간을 불교 문화회관으로 하려고 합니다.
기자 앞으로 두 건물을 통합할 계획을 갖고 계시는 군요?
현철큰스님 두 동의 건물이 모두 오래되어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고, 이를 위해 2004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금오국제 선원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 행사를 크게 치렀습니다. 금오국제선원은 반야사의 금오 선사상을 세계화 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현재 반야사는 한인타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포교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입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발족식에는 스님이 500명, 신도들이 500명 총 10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고 가수 남진 등 유명인도 왔었습니다.
그렇게 금오국제선원 건립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긴 했지만 당장 삽을 뜨기에는 조금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사업이 폭삭 망한 신도들도 있었고,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거나 힘들어진 신도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보류하고 한인타운 한복판에 주택을 한 채 구입해두었습니다.
이제 적당한 시기가 되면 불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10년 전이었던 당시, 구입해놓은 그 건물에서 임시 개원식을 했었어요. 법주사 불국사 금산사의 여러스님들이 개원식에 오셔서 함께 축하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새롭게 단장된 건물을 지으려 계획 중입니다.
기자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종교시설이 비어가고 있는데 반해, 반야사에는 젊은 불자들이 꾸준히 오고 있고, 반야사라는 우산 아래 여러 온라인 모임들이 있어서 더욱 풍요로운 공동체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현철큰스님 제가 젊기 때문 아니겠어요? (웃음) 너무 종교 얘기만 하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지죠. 문화 예술을 통해 젊은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이 절에도 오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젊은이들과 콘서트와 전시회에도 함께 동행하며 공감대를 넓히고 있습니다. LA 카운티 아트 뮤지엄 (LACMA)에서 했던 박대성 작가의 <불국사 설경>그림은 무려 17회나 보러 갔었습니다.
반야사에는 명상에 관심있는 비한인 기독교 신자들도 제법 찾아옵니다. 미국의 명상 인구가 5천만이라고 해요. 이들 가운데는 기독교 신자도 있고 유대인들도 있어요. 1960-70년대부터 유대인들 중에는 자신의 문화적 전통을 지키면서 불교 수행을 함께 하는 이들이 생겨났죠. 이미 30년 전, LA 타임스 1면 기사에 “주부를 아시나요?(Do you know Jubu?)”라는 기사가 실렸던 적이 있어요. 주부(Jubu)는 유대인 불교신자(Jewish Buddhist)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 약 30퍼센트가 주부라는 통계가 있었는데 이제 그 수치도 더 상향조정되었을 거에요.
최근에는 기독교인도 명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명상 참선하는 사람이 늘고 있죠. 팬데믹 이전, 반야사 법당에서 진행했고 지금은 온라인으로 하고 있는 목요 명상 독서 모임에도 기독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 그 모임에는 시인, 화가, 음악인, 물리학자, 정신과의사, 임상심리학 박사 등 지성인들이 명상과 참선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화요일에 만나는 김지영 변호사의 불교 인문학 강의도 반야사의 자랑입니다. 김변호사는 동서고금의 철학과 문학 여러 방면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불교를 종교 신앙적 차원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니 참여하는 분들이 재미있어 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반야사의 역사에 있어 굵직한 매듭을 지었던 사건이 있었는지요?
현철큰스님 법주사 조실로 있는 석지명 대종사가 와서 반야사를 창건했다가 동부로 유학을 가면서 내가 주지를 하게 되었던 일, 그후 전두환 정권 시절, 총칼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송월주 스님께서 자의반 타의반 한국을 떠나 3년 반 동안 LA 반야사의 회주로 계셨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LA를 근거지로 견문을 넓히시다가 귀국하셨는데 계시는 기간 동안 포교도 많이 하셨어요. 송월주 스님이 계셨던 기간 동안 반야사에는 큰 내적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에도 다녀오시고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견해를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정치 참여에 대한 스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현철큰스님 지나치게 간섭하며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간접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설법을 통해 참여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미국도 보수와 진보가 양분돼 팽팽하게 맞서 있어요. 사찰에는 나이든 보수 세력이 더 많은데, 제가 얘기한다고 그분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보수와 진보가 양날개라고 생각해요. 한쪽 날개만 건강하면 안 됩니다. 두 날개 모두 건강해야 비로소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어요. 둘 다가 필요하고 서로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떻습니까? 죽기 살기로 서로 비판하고 있죠.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겠지만 지금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서로 함께 상생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의 대립되고 불안한 정치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저 혼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도사상은 중간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모두 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양변에 치우치지 말고 허공 같은 우주적 마음을 내는 것이 중도입니다. 다
른 종교도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들은 더욱 양극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해야겠죠.
기자 만년 동안(童顔)인 현철스님이지만 이제 서서히 후진을 양성하셔야 할 때가 아닐까 해요.
현철큰스님 맞습니다. 세수 70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삶을 정리하고 후진도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협의회도 불교계 대표로 고려사 주지인 묘경스님을 내세우고 저는 일선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고문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반야사의 주지스님도 계속해서 물색 중입니다.
기자 불교를 접해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다양화된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고 묻는 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현철큰스님 보통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행복만 추구하다 보면 불행이 따라옵니다. 이 세상 만사는 모두 빛과 그림자이거든요. 그래서 계속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는 일이에요. 권력과 명예, 재물을 모두 다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면 반드시 고통, 즉 불행이 따라 오는 것이 바로 윤회의 세계에요. 그러니 진정으로 행복하길 원한다면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보세요. 불교의 목적은 해탈 즉 영원한 자유와 평화입니다. 이는 행복만 추구하는, 상대적인 세계가 아니고 너와 내가 허공과 같고, 우주와 같은 한마음, 한몸이 되는 상태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는 어리석고 작은 세계에서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삼법인을 깊이 깨달아야 해요.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윤회에서 벗어난, 영원한 자유와 평화야말로 부처님의 도장이 찍힌 것 같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죠. 여러분께서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일시: 2023년 8월 25일
장소: LA 반야사
참석자: 현철 큰스님, 스텔라 박
글 스텔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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