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의 빈곤과 영광
2005년 교우들과 함께 참여했던 서울 여의도 불꽃 축제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날 그곳을 향한 인파로 지하철 내부와 일대는 혼잡스러웠다.
목적지에 도달할수록 사람 행렬이 증가되고 지정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가을 깊은 밤 옷 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무릅쓰고 자리에 서서 기대하던 첫 발포.
드디어 캄캄한 창공을 배경으로 솟구치는 한 줄기 현란한 광채가
관중의 탄성을 이끌어내면서 풍성한 빛 잔치의 신호탄이 되었다.
하트 무늬, 해바라기 무늬, 국화 무늬, 분수 무늬, 갈대 무늬, 방사형 무늬의 빛이 한 시간 이상 밤하늘에 비경을 수놓았다.
사람들은 잠깐 잊었다. 가난과 외로움을. 그리고 축제는 끝났다.
썰물처럼 인간의 무리는 빠져나갔다.
여름 해변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빈 공간엔 쓰레기가 뒹굴고, 밤하늘엔 더 이상 불꽃과 불꽃을 터뜨리는 굉음이 없었다.
삶을 닮았다. 인생을 닮았다. 그 요란한 움직임과 괴괴한 종말이.
지금 우리는 세말에 서있고, 우리에게 지난여름 기승을 떨던 비와 바람과 태풍과 더위,
떠들썩한 휴가와 피서와 일상의 율동은 없다.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 떨게 만들던 세월호의 사연은 어디로 갔는가?
국무총리 후보의 개인적 소신의 발언을 매국적이니 광신적 편견이니 하며 비난하던 군중의 외침은 어디로 갔는가?
속박을 벗어난 듯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폴란드,
폴란드를 지나 체코로 이어지던 당신과 나의 여행은 벌써 아련한 추억 속으로 숨어드는가?
우리의 사연들은 모두 이 겨울 속에서 하얀 눈에 말없이 덮여있다. 지난날은 한 시절이었다.
일 년 사계는 인간 일생의 모습이요, 그것은 봄에 태어나 늦가을에 시드는 일년초와 닮은 것이다.
다만 동일한 이 한 시절이 사람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것이다.
어차피 한 시절을 사는 것뿐이라면 그 한 시절이 영광스럽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요망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한 시절이 추위와 가난과 허무가 아닌
의미와 행복으로 가득한 삶이기를 그 누구든 바라지 않겠는가?
어떻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영광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 은혜에 의지하여 인생의 요구에 대해서 진지했는가? 영혼이 동상에 걸리지 않았는가?
삶의 목적에 부응하면서 살았는가? 그래서 행복한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던 그 열심이 이런 질문에 답변할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것이라면,
이런 질문에 대한 생각조차 없이 살아왔다면 그가 이 겨울 추위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가난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삶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과오 많은 인간일지라도 주 안에 거하여 그분을 신뢰하면서 삶에 부응했다면
우리 머리 위엔 인자하심의 눈이 내릴 것이다. 그 인자하심이, 그런 삶이 영광이다.
아, 자기의 한 시절이 영광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는가?
현란하게 타오르다 공허로 떨어지는 불꽃 축제처럼 살지 말고
눈밭에 서있는 향나무처럼 살기를 기도해보지 않겠는가?
2014. 12. 28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주님의 향기가 넘치는 삶을 늘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