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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동시집 [좋으면 좋다고 말하지☆]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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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 좋다고 말하지]
송근영 동시집 / 오늘의문학사(2013.03.0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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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 좋다고 하자
송근영
너는
나만 보면 왜 상긋 웃니?
난 몰라.
너도
나만 보면 왜 방긋 웃니?
나도 몰라.
몰라가
세상에 어디 있니?
좋으면 좋다고 하자.
네 얼굴이
정말 예쁘니까
너는 참 잘 생겼어.
하느님!
6학년으로 올라갈 때
같은 반으로 합쳐 주세요.
푸른 세상
송근영
오월의 빗
방울 속에는
푸른 주머니가 들어있다.
간밤에 단비가 다녀갔다
몰래 또 다른 주머니를 터뜨렸는지
푸르다 못해 검푸르게 되었구나.
푸른 산 푸른 들 푸른 강이
한데 어울려 노래하는
눈부신 오월의 한낮.
이쪽을 보아도 푸른 세상.
저쪽을 보아도 푸른 세상.
세발자전거
송근영
마당 한구석
팽개친 세발자전거
기운이 쑥 빠졌는지
엎어져 잠이 들었다.
너무나도 안쓰러웠는지,
달빛이 내려와,
쳐든 바퀴 세 개를
고루 어루만져 준다.
내일도
동네를 백 바퀴나 돌려면,
아기처럼 푹 자야지
아가의 친구
송근영
우리 아가
친구도 많지요
해님
달님
별님
꽃님과 바람
모두 천사지요.
해님이 포근히 안아 주고
꽃님이 입을 맞추고
아기 바람이 살랑살랑 장난을 거니
아가는 방긋방긋
낮에는 바쁘다고
밤에만 놀러오는 달님과 별님
머나먼 달나라 별나라
이야기 보따리를
듣고 오지요.
귓속말
송근영
한 여름이다.
맴맴 매맴, 맴맴 매맴
나무들마다 노랫소리 들린다.
듣기만 해도 시원하다.
오래된 느티나무에
찰싹 붙어 있는 왕매미
옷맵시가 곱다.
갓 물들인 모시로 지었을까?
“네 몸아 어찌 이리도 맑으니?”
귓속말로 ANE는다.
“이슬을 받아먹으니 그렇지.”
귓속말로 대답한다.
어느새 친구가 되어
“허물을 벗은 재주는 어떻게 배웠니?”
“그것은 절대 비밀!”
더운 여름을 즐겁게 지낸다.
아침
송근영
첫 아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한 엄마.
첫째 주는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둘째 주는 반만큼 데려다 주고
셋째 주는 반의 반만큼 데려다 주고
넛째 주는 문간에서 작별을 한다.
모퉁이를 돌아가며
손 흔드는 모습을
지켜 본 엄마
눈물이 글썽글썽.
이제는 보이지 않는구나
‘혼자서도 잘 가겠지?’
손 모아 기도하는 엄마.
자랑하고 싶어요
송근영
우리 한밭골은 냇물도 많지요.
자랑하고 싶어요.
뽐내고 싶어요.
한밭내 버드내 갑내
얼마나 예쁜 이름이어요.
내일은 한밭내에서 손을 씻고
모레는 버드내에서 발을 씻고
글피는 갑내에서 목욕하고 싶어요.
깨끗하고 단정하여야
선비 소리 듣지요.
우리 이모
송근영
시골에 사는
섯째 이모
오랜만에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코도 닮았고
웃는 모습도
걸음까지도 똑같다.
보고 또 보아도 우리 어머니다.
“엄마 생각이 나서 나를 보러 왔구나.
그 동안 잘 있었니?”
덥섟 두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놓지 않는다.
보름달
송근영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아! 달도 밝다.
옛날 어린이들은
망태 메고,
장대 들고
뒷동산으로 달 따러 갔다는데….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TV나 보고
컴퓨터만 두드리면 제일이냐.
친구들아!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와라.
모두 동산에 올라
목청껏 달 노래를 불러보자.
우리 꿈도 영글도록
두 손 모아 빌어도 보자.
두부와 콩나물
송근영
시장 모퉁이 좁디 좁은 바로 그 자리
할머니다 살아가는 생활의 터전
두부와 콩나물 두 가지만 놓고 파는
빵떡 모자를 쓴 멋쟁이 할머니.
네모 반듯한 흰 두부.
공들여 다듬은 콩나물.
곱게 늙어가는 할머니 마음만큼이나
깨끗하다.
‘오늘도 다 팔았구나’
허리 펴고 환하게 웃는 고운 얼굴.
종일토록 할머니를 지켜 본 해님.
위로의 노을 빛이 되어
오래도록 비추고 있다.
섣달 그믐
송근영
새해 아침 차례상
앞줄 왼쪽 두 번째에 놓을
밤을 깎으시는 할아버지
손자가 마주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할아버지 눈썹은 왜 희어지셨어요?”
“오늘 같은 섣달그믐에 잠을 자서 그렇단다.”
“저도 오늘 밤에 자면, 눈썹이 한 올쯤은 희어지겠네요.”
“암, 그렇다 마다.”
한 해를 보내며
아쉬워하시는
할아버지 날줄과,
새해를 맞아 설렘에 부푼
손자의 씨줄이 한데 어울려
새로운 동화를 엮어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
문 닫은 학교
송근영
교기를 운동장 한가운데에 묻고
우리들의 함성도 함께 묻고,
눈이 붓도록 엉엉 울면서
정든 학교를 떠났다.
그리운 선생님!
저희들은 헤어집니다.
정성들여ㅛ 가꾼 꽃밭도 잘 있거라
넓은 운동장도 잘 있거라.
주인들 떠나간 텅 빈 학교.
딱지치기
송근영
팔이 아프도록
힘껏 내려친다.
딱지가 벌렁 뒤집힌다.
야!
신난다.
안간힘 다하여
애써 딴 내 딱지
자랑스럽다.
해질녘
징독대 뒤
몰래 숨겨 놓는다.
빛깔
송근영
제 빛깔 뽐내도록
따끈한 가을 햇살이
정성 모아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대추는
더욱 빨갛게 빨갛게
김은
더욱 붉게 붉게
벼는
더욱 누렇게 누렇게
보면 볼수록
윤기가 번들번들
신기하기 짝이 없다.
통일 유치원
송근영
봄이 오는 한반도 복판에
통일 유치원을 세웠습니다.
꽃과 나비와 바람과 별이
나란히 입학을 하였습니다.
우리들 담임 선생님은
해님 선생님이시고
반 이름은 선생님 이름을 따서
해님 반이라고 지었습니다.
꽃과 벌이 짝꿍이 되고
나비와 바람이 짝꿍이 되었습니다.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지내자고
단단히 약속을 하였습니다.
지난 반공일
첫 ‘반 모임’을 가졌습니다.
3월에 지킬 생활 목표를 의논하였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따르기’로 정하였습니다.
끝가지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착하기도 하여라”
따스한 햇볕으로 얼싸안아 주셨습니다.
고추 꽃을 보며
송근영
일곱 개의 큰 화분에
싱싱한 고추 모를 옮겨 심었다.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어느새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예쁘고 고운 흰 고추 꽃
잎은 여섯 개
기도하듯 고개 숙여 피었다.
이른 아침, 숨 죽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보일 듯 말 듯, 아주 작은 푸른 구슬이
뾰족이 내밀었다.
참으로 신기하다.
꽃은 제자리를 내 준 거룩한 엄마!
대를 잇는 아들 고추를 낳고 진다.
세상사란의 입맛을 돋우는
신기한 고추!
어서어서 자라거라.
주렁주렁 매달려라.
꽃망울
송근영
예쁜 우리아가 아장아장.
예쁜 꽃망울을 보고
뽀뽀를 했어요.
소스라쳐 놀란 꽃망울
꽃 내음 풍기며,
막 터져 나온 꽃잎으로
아기 볼에 뽀뽀를 했어요
자라나는 우리 아가
피어오른 꽃망울
봄 햇살 화사한 대낮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서로서로 좋아서
사랑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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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말
동시집을 엮으면서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하나 둘 셋하고 여든 아홉까지 셀라치면 꽤 시간이 걸립니다.
사랑이 오래 살다보면 어린이와 똑 같이 된다는 말이 잇습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해 한 해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진짜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겨우 철이 났나 봅니다. 바로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면 되는구나 하는 해답을 얻어냈습니다.
저는 45년 5개월 동안 초등학교에서 교육자로 생활하였습니다. 눈만 뜨면 가는 학교, 밤만 먹으면 가는 학교가 그렇게 즐거울 수 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눈물겹도록 그립습니다.
그때 해맑게 웃으며 따르던 귀여운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정년한 지도 어언 20여년이나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넉넉한 시간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티없는 마음을 닮고 싶은 일념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동시공부를 하였습니다.
각종 문예지에 이미 선보인 글을 모아 용기를 내어 활짝 웃으며 동시집을 펴냅니다.
그동안 아낌없는 지도와 발문까지 써주신 리헌석 평론가님께 뜨거운 감사를 올리며 옆에서 부추기고 마음으로 선원하여 주신 분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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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영 동시집 [※좋으면 좋다고 하자※]
[ 해설 ] -
순정한 동심으로 부르는 노래
- 송근영 아동문학가의 동시 세계
문학평론가 리 헌 석
(사) 문학사랑협의회 이사장
1. 송근영 아동문학가에 대하여
아동문학가 송근영宋根永 선생님은 1925년 7월 7일(음력 5월 17일)에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당시는 충남 대덕군 회덕면 오정리) ‘오물’에서 태어납니다. 어릴 때 대전에서 성장하고, 전주사범학교(심상과)를 졸업합니다. 이후 초등학교 교사, 교감, 장학사, 교장으로 봉직한 후, 1990년에 정년퇴임을 한 원로 교육자입니다.
선생님은 천성적으로 초등교육에 헌신할 성품을 지닌 분입니다. 같이 근무하였던 선생님들과 제자들이 말을 맞춘 것처럼 추억합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선생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동시를 짓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인가를 알아보기로 합니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두 사례를 선별하여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에피소드 1〕눈이 펑펑 내리던 날
어느 겨울, 어린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교실의 스피커에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지금 눈이 펑펑 내립니다. 운동장에 소복소복 쌓였습니다. 모두 운동장으로 나와서 눈 놀이를 합시다. 조심조심 넘어지지 않게 나오세요.”
“선생님들께 말씀 드립니다. 수업을 방해하여 미안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눈 놀이를 하시지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게 잘 보살펴 주세요!”
그날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습니다. 수업 시간을 반쯤 빼 먹어서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들도 상기된 얼굴이었습니다. 다친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엉뚱함에 놀란 표정들이었지만, 새로운 발상이었다고 이구동성이었습니다.
〔에피소드 2〕날씨 한번 참 좋구나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전교생이 줄을 지어 서 있고, 교장 선생님이 훈화를 하려고 조회대에 올랐습니다. 갑자기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교장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나를 따라 외쳐 보세요. 날씨 한번 참 좋구나!”
“날씨 한번 참 좋구나!”
어린이들이 따라서 외쳤습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날씨 한 번 참 좋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다녀오세요. 선생님들, 어린이들을 교육적으로 지도해 주세요. 이상 훈화, 끝!”
어린이들이 신나게 손뼉을 쳤습니다. 선생님들도 싱글벙글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짧고 명쾌하여 모두 신나게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송근영 선생님과 함께 근무를 한 선생님들로부터 말로 들은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교육적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송근영 선생님에게 문의한 결과,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서술과 묘사는 조금은 현장과 같지 않을 수 있으나, 에피소드의 중심은 그러하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기발한 발상을 통하여 송근영 아동문학가의 열린 시심詩心, 확산적 사고思考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순수아동문학 작품 창작의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2.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를 빚고
송근영 선생님은 맑고 순수한 서정으로 작품을 빚습니다. 그 바탕에 교육자로서의 내면이 투영되어 문학의 ‘당의정설’에 접근합니다. 몸에 좋은 약은 쓴 것이 많습니다. 쓴 약의 겉을 달콤하게 만들면 환자들이 잘 먹습니다. 쓴 약의 겉을 달게 만든 약을 ‘당의정’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동시 작품에 교훈을 담아내는 것도 같은 격입니다. 많은 교육자들이 창작한 아동문학 작품에서 자주 목격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동시를 창작하기 전에, 노랫말을 지으면서 문학의 길에 깊이 들어왔던 분입니다. 1977년에 공모한 ‘충남 대교육 가족운동의 노래’ 노랫말 부문에서 입상을 하고, 1978년에 공모한 ‘충남 도민의 노래’가사 부문에서도 상을 받습니다. 이후에 노랫말과 성격이 비슷한 동시 창작에 집중하게 되어, 198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입상하여 등단합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작품을 창작하여 1990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앞두고 동시집『까치나무』를 발간합니다. 선생님은 <45년 5개월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교직을 마무리 짓게 되는 이 마당에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소박한 심정에서 감히 용기를 내어 이 조그마한 동시집을 엮어내기로 결심을 했다.>고 발간의 뜻을 밝힙니다. <교육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밝게 키워보자는 정열에 불타보기도 하였다. 교육은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라고 평소의 소신을 밝힙니다.
소복소복 쌓인
새벽 눈길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조심조심
엄숙하게 걸어간다
얼마큼 가다가
뒤돌아본다
위대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큼직한 발자국에
깜짝 놀란다
눈앞에 펼쳐진
넓고 넓은
흰 바다
배도 타지 않고
깨끗한 천사가 되어
흰 바다를
뚫고 간다
-「새벽 눈길」전문
198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작품입니다. 아동문학가로 등단하는 이 동시의 공간적 배경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눈 길’이고, 시간적 배경은 ‘새벽’입니다. 눈이 쌓인 후 처음 걷는 길이어서일까, 시인은 ‘조심조심 엄숙하게’ 걷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지자들의 걸음을 연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가는 자신의 걸음걸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하여 뒤돌아 본 발자국이 평소보다 엄청나게 큰 것을 보고 잠시 놀랍니다.
이러한 바탕에 5연과 6연이 금상첨화錦上添花를 이룹니다. ‘금상첨화’라는 말은 비단처럼 고운 천에 꽃무늬를 그려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눈앞에 펼쳐진/넓고 넓은/흰 바다>는 발상이 놀랍습니다. 눈이 쌓인 세상을 하얗게 펼쳐진 바다라고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욱 빛나는 작품을 빚습니다. <배도 타지 않고/깨끗한 천사가 되어/흰 바다를/뚫고 간다.>는 맺음부분은 가장 훌륭한 작품을 일컫는 ‘절창絶唱’의 ‘절구絶句’입니다.
3. 노래에 가족 사랑을 담아
아동문학가 송근영 선생님은 나무나 풀을 보면서도 가족을 연상하는 분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마음이 선한 분들에게서 자주 드러나는데,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석류」에서도 이러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석류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겨울을 나기 위해서 둥치를 짚으로 싸서 보호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추위를/ 잘 탄다고/아예/짚단 씌워/키운> 나무라고 말합니다. 그 나무를 할머니께서 잘 갈무리한 듯합니다. <할머니/정성으로/자라고 큰/석류나무>라고 노래합니다. 그 나무에 달린 석류는 입을 벌려서 석류알이 잘 보입니다. 그래서 <가을 햇살/머금고/입 벌린 모습/화가/ 잔뜩 난/누나 잎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 석류를 달여 먹으면 감기가 잘 낫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감기 드신/어머니 드리려고/석류 달이는/약탕에서/김이 나온다>고 묘사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호박 넝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호박넝쿨이 <온/ 세상을 두루 살핀다./ 수염넝쿨/훠이훠이/이리저리 돌다 바람을 잡고>의 표현도 신선합니다. 또한 <애기가 좋아하는/호박꽃 초롱><요속엔/애동호박이 열리고/저 속에선/늙은 호박이 익어간다.> <아빠의/손바닥만큼이나 넓은 호박잎> <7월의 태양이/호박꽃/만큼이나 환하게/우리집에 가득하다.> 등에서 다양한 표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개 속에
통통통
경운기를 잠 깨워
논을 가는 아버지
호미와 함께 나가
달밤에
텃밭의 김을 매는 어머니
논 갈고 오셔서
아침 식사 하시고
김매고 오셔서
설거지 하신다
농사도
공부도 모두가
때를 놓치면 안 되느니라
할아버지 말씀을 잘도 따르는
우리 집 식구들
-「우리 집」전문
이 작품은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어려운 말이지만 ‘7차 교육과정’에 의해 편찬된 교과서에 모범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근면한 모습을 잘 표현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침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에 경운기로 논을 갈러 갑니다. 첫 번째 연에서는 <통통통/경운기를 잠 깨워>라는 부분이 돋보입니다. 무생물인 경운기의 잠을 깨운다는 활유법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같이 이른 새벽에 밭에서 김을 맵니다. <호미와 함께 나가/달밤에/텃밭의 김을 매는> 분입니다. 2연에서는 <호미와 함께 나가> 가 중심을 이룹니다. 어머니가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호미를 사람과 같이 독립적인 사물로 보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호미와 ‘함께’ 밭으로 나간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3연에서 정리를 잘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논 갈고 오셔서/아침 식사를 하시고> 어머니는 <김매고 오셔서/설거지 하신다.>는 표현은 1연과 2연의 자연스러운 마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맺어도 좋은 작품이지만, 시인은 좀 더 교훈적인 내용을 넣고 싶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농사도/공부도 모두가/때를 놓치면 안 되느니라>라고 하신 할아버지 말씀을 덧붙여서 어른을 섬기는 가족을 노래합니다.
자신의 할 일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하면서, 어르신의 말씀을 잘 따르는 가족의 모습은 화목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이렇게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극진합니다.
모처럼
어머님 손톱을 깎아드리는 순간
그 단단하던 손톱이
부석거린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슬가슬하신 손을 잡으니
어머님의 따뜻한 체온은
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으시다
밝은 달밤에도
텃밭의 김을 매시고
하루 한날
참는 공부만 하시던 어머님
7살까지 젖을 먹여주시던 어머님!
지금껏 그 젖값을
갚을 수가 없네요
갚을 수가 없네요
-「손톱」전문
늘 숨쉬고 있는 공기, 생각 없이 마실 수 있는 물의 고마움을 잘 모르는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평소에는 잘 모르고 삽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새롭게 고마움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송근영 선생님은 늙으신 어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립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만지던 단단한 손톱이 아리고, 부석거리는 손톱이어서 힘없이 깎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선생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돕니다. 옛날에 어떤 효자는 늙으신 아버지를 업고서야, 가벼워진 아버지 체중 때문에 통곡을 하였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럴게 효성이 지극하신 선생님은 어머니의 은혜를 갚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크신 은혜를 갚은 기억도 없고, 앞으로 갚아나가기도 쉽지 않아 슬퍼합니다. 이러한 작품은 자신의 체험을 작품으로 빚어서 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갖습니다. 자라나는 손자 손녀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도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송근영 선생님은 아들의 생활을 노래한 작품도 빚고, 손자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십니다. 그런 작품들을 통하여 가족들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기게 하십니다.
4. 표현의 멋이 빛나고
송근영 선생님이 동시 창작에서 즐겨 사용하는 기법은 연상聯想입니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거나 할 때, 그와 관련 있는 다른 사물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연상이라고 합니다. 연상 기법은 어떤 사물의 특성과 또 다른 사물의 특성이 교집합交集合을 이룰 때 멋집니다.
봄에 피는「라일락」을 보면서 시인은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그 할머니는 <라일락꽃에/입 맞추시던> 분입니다. 라일락꽃이 활짝 피는 때를 맞추어, 아버지는 할머니 산소의 사초를 합니다. 사초莎草는 무덤에 잔디를 심거나 무너진 곳을 고치는 일인데, 라일락꽃이 피는 봄에 합니다. 아버지 뒤를 따라간 시인은 <할머니 묘 앞에 엎드려/절>을 합니다. 할아버지에게는 꼼짝을 못 한 할머니였지만, 온 집안을 편안하게 하시려는 깊은 뜻을 손자도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라일락꽃을 볼 때마다 라일락꽃을 좋아하시던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누나에게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베틀에서 베를 짤 때 날을 고르며 씨를 치는「바디」를 보자마자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벽에/걸어 놓은 바디를 본다//베를 매고/베를 짜는 길쌈으로/한 평생을 사신 어머니를 본다>고 노래합니다. <실오리/꿴 바디와/실꾸리를 담은/북이 한데 어울려 오갔던 바디>에서 그 사물의 역할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 바디의 역할처럼 베를 잘 짠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은 분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누나에게로 전이되기도 합니다.
몇 날 며칠을
서 있더니
오늘 아침에사
뜨락 가득 웃네
노랑 저고리
빨강 꽃무늬치마 입고
시집갔던 누나가
성큼 마당에 와 서 있는 것 같네
지금쯤 누나는 무얼 하며 지낼까
빨강꽃
푸른 잎 그려
누나한테 보내면
꽃처럼 누나도 활짝 웃겠지
-「모란꽃」전문
이 동시는 1990년『아동문예』작품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모란꽃은 늦봄에 핍니다. 봄이 되자마자 피는 꽃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을 기다린 다음에 만날 수 있습니다. 뜨락에 서 있던 모란꽃이 오늘 아침에 빨갛게 피어나서 시인을 보며 웃습니다. 그 모란꽃에서 시인은 <노랑 저고리/빨강 꽃무늬치마 입고/시집갔던 누나>를 연상합니다. 그토록 그립던 누나가 <성큼 마당에 와 서 있는 것>같아서 모란꽃이 정겹습니다.
모란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던 시인은 시집 간 누나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빨강꽃/ 푸른 잎 그려/누나한테 보내면> 그림을 받아 본 누나도 꽃처럼 활짝 웃으리라, 혼자 생각합니다. 꽃을 보며 누나를 연상하던 시인은 다른 작품에서「누나」를 그리워합니다. <잔디싹이/돋아난/시냇가 언덕>에서도 그립다고 합니다. <봄볕을/배에 안고/흘러가는/구름>을 보면서도 그립다고 합니다. <무심한/나비 한 쌍>을 보면서도, 싸늘한 바람에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버들강아지’를 보면서도 누나를 그리워합니다.
흰나비 한 마리가
거실을 맴돌았다
날갯짓에 힘이 없다
불쌍한 생각이 문득 들어
가만히
창문을 열어 주었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바람기가 차가운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비」전문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생님처럼 나비를 살려 보내겠지만, 그렇게 실천을 하고 작품으로 빚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 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크게 울리는 감동을 생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은 바람기가 차가운 초봄인데, 밖으로 날아간 나비를 걱정하는 <어떡하지/어떡하지?>라는 표현은 성공적인 표현입니다.
나비가 날아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손자들에게로 이어집니다. 「우리 손자」가 <검은 콩을 넣고/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보글보글 구수한 냄새/된장국> <뜨거운 고기 미역국>을 잘 먹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정환아! 모처럼 왔으니/맛있게 많이 먹어라>권하며 <할머니 정성으로 만든/푸짐한 밥상>에 손자와 함께 앉습니다.
이렇듯이 사물의 속성에서 사람의 정서를 찾아내어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연민(憐憫)에 바탕을 둡니다. 연민은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과 걱정에 바탕을 둡니다. 이러한 연민은 수많은 그리움과 사랑으로 나타나서 감동적인 글을 빚게 합니다.
5. 사랑은 지칠 줄을 모르고
아동문학가 송근영 선생님은 연세가 많습니다. 2012년에 88세가 되어 미수米壽를 맞았습니다. 어르신의 연세를 숫자 대신 호칭을 붙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77세는 희수喜壽라고 하고, 99세는 백수白壽라고 하는데, 모두 중국의 글자인 한자漢字를 나누어서 만든 말입니다. 77세를 나타내는 희喜는 ‘기쁘다’는 뜻도 있지만, 한자로 77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습니다. 88세를 나타내는 미米는 ‘쌀’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한자를 분해하면 88이라는 숫자가 됩니다. 99세를 나타내는 백白은 ‘하얗다’는 의미이지만, 100을 나타내는 백百의 위에 있는 일一을 덜어낸 것이어서 99세를 나타냅니다.
88세를 맞은 송근영 선생님은 고장의 어르신입니다. 교육계의 원로입니다. 교육계에서 봉직할 때에도 어린이 마음을 헤아려 많은 분들로부터 ‘참교육자’라는 칭호를 얻은 분입니다. 대전일보에서 제정한 신춘문예 제1회 수상을 하였으니 이 분야에서도 앞선 분입니다. 훌륭한 동시를 빚기 위하여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려서 새로운 작품을 짓고, 다듬고, 다시 퇴고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엄마 따라
성당을 갔습니다
고해성사는 하기 싫습니다
잘못이 조금 있기는 한데
먼저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아니 되나요?
저는
엄마가 하느님 같은데요
정말 착한 사람 되겠어요
신부님, 미안해요
하느님
죄송해요
-「성당에서」전문
이 동시는 2007년『문학사랑』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그 해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진실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정직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선생님의 진면목眞面目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순정한 동심을 작품으로 창작하는 분이지만, 우리 겨레의 아픔에는 눈물겨워합니다. 1945년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억압에서 해방을 맞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감격도 잠시였습니다. 1950년에 북한의 공산군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참으로 많은 장병이 부상을 당하고, 또 나라를 위하여 전사하였습니다. 민간인들도 그들의 총칼에 부상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휴전이 되었습니다. 휴전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쉬는 것입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이제 60년이 넘었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분들이 별세하기도 하였습니다. 살아남은 분들이 공동으로 가족을 만납니다
“수일아! 많이 먹으렴”
59년 만에 불러보는 아들 이름
“예, 어머니!”
고기 한 점 아들 입에 넣어주는데
59년이 걸렸다
이를 지켜본 금강산이 울었고
동해바다도 울었다
북쪽 백두산도
남쪽 한라산도 함께 울었다
-「울음바다」부분
가족 상봉의 안타까운 모습을 작품으로 그린 것이「울음바다」입니다. 이러한 눈물이 흘러서 남북 정치가들의 차가운 마음을 녹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눈물이 모여서 남북통일의 걸림돌을 깨끗이 쓸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깊이 새기면서 송근영 선생님의 작품 감상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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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꼬옥 쥔
단단한 아가의 주먹
예쁘기도 하다.
입안에 쏘옥 넣고 싶다.
저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햇살도
바람도
한번 잡혔다 하면
도망칠 수가 없다.
엄마가 살며시 만지니
스르르 펴진다.
햇살과 바람이
“아, 이젠 살았다.”
방긋방긋 웃는다.
― 「아, 이젠 살았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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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영 동시인∥
∙ 1925년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에서 태어남.
∙ 1945년 전주사범학교 심상과 졸업.
∙ 1945년~1990년 초등학교 교사∙교감∙장학사∙교장 역임.
∙ 1977년「충남 대교육가족운동의 노래」가작.
∙ 1978년「충남도민의 노래」가작.
∙ 1985년 대전일보신춘문예(동시부문) 당선.
∙ 1990년 제36회 월간《아동문예》신인작품상(동시부문) 당선.
∙ 1990년 동시집『까치나무』발간.
∙ 1990년 대전광역시 문화상(교육부문) 수상.
∙ 2000년 동시「우리집」이 중학교 1학년 국정교과서에 수록됨.
∙ 대전목동초등학교 외 9개 초등학교 교가를 작사.
∙ 2012년 제 24회 대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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