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면을 엿 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를 부여 하는 것 같다. 첫째는 무엇보다 삶의 숭고함과 존귀함을 알도록 하는 겸손의 진수를 가르친다 28년 전에 중풍으로 왼쪽 손과 발을 거의 정상적으로 사용 할 수 없는 장애를 갖고서 28년 동안 살아 온 삶의 마지막 끝자락을 함께 하는 은헤를 입었다. 그 은혜의 마지막의 마지막을 세심히 공유 할 수 있는 것이 또 한편의 드라마 같은 것을 내게 선물 하셨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의 아들들이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런 것들은 별다른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장인 어르신 본인 자유 속에서 나머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의미로 다가 올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귀하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옆 집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인간은 시작과 그 끝이 비슷하다 아무래도 물질절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의 발견은 나에게 큰 소망을 주었다 그것은 영혼이다. 영혼을 믿는 순간, 비록 고통과 아픔 속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안타깝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절대 타자로서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시간들이 오히려 그 안에 갖혀있는 영혼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전환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혼과 관계를 기억한다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지금 그 순간이 숭고하고 존귀하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의 몸과 그 상황은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나를 깊이 바라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관계들이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지 지금 당장 확신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그 때가 되도록 할 수 만 있으면 준비하고 훈련하고 성실하게 나의 시간과 관계들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물론, 장인어른이 광주, 화순을 거처 대전으로 이사 오게 된 배경의 중요한 요인은 영혼 구원이 가장 큰 이유 였음을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그곳 광주에 동생들이 잘 살고 있고, 문중의 여러 친지들이 어울려 나름대로 잘 형성된 친족들을 떠나 아무도 모른, 그야말로 객지인 대전으로 자신의 마지막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결국은 대전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또 하나는 28년 전에 온, 중풍이라는 장애 요인이었다. 그 문제가 또한 대전으로 이사 오게된 이유 중에 하나였지 ... ... 지난 2017년 11월 겨울의 시작 부터, 찬바람을 맞으면 노인은 해롭다는 말을 하시면서 집 안 배란다에서 눈이 오는 것을 보고 그래서 한번은 또 깊은 나락에 들었고 그리고 건너편에 핀 벗꽃을 보고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삶의 단면을 엿 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를 부여 하는 것 같다.
첫째는 무엇보다 삶의 숭고함과 존귀함을 알도록 하는 겸손의 진수를 가르친다
28년 전에 중풍으로 왼쪽 손과 발을 거의 정상적으로 사용 할 수 없는 장애를 갖고서
28년 동안 살아 온 삶의 마지막 끝자락을 함께 하는 은헤를 입었다.
그 은혜의 마지막의 마지막을 세심히 공유 할 수 있는 것이
또 한편의 드라마 같은 것을 내게 선물 하셨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의 아들들이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런 것들은 별다른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장인 어르신 본인 자유 속에서
나머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의미로 다가 올 수 있는 것은
시간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귀하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옆 집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인간은 시작과 그 끝이 비슷하다
아무래도 물질절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의 발견은 나에게 큰 소망을 주었다
그것은 영혼이다.
영혼을 믿는 순간, 비록 고통과 아픔 속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안타깝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절대 타자로서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시간들이
오히려 그 안에 갖혀있는 영혼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전환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혼과 관계를 기억한다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느꼈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때문에
지금 그 순간이 숭고하고 존귀하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그분의 몸과 그 상황은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나를 깊이 바라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관계들이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지
지금 당장 확신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그 때가 되도록 할 수 만 있으면 준비하고 훈련하고
성실하게 나의 시간과 관계들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물론, 장인어른이 광주, 화순을 거처 대전으로 이사 오게 된 배경의 중요한 요인은
영혼 구원이 가장 큰 이유 였음을 숨길 수 없지만,
그래도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그곳 광주에 동생들이 잘 살고 있고, 문중의 여러 친지들이 어울려
나름대로 잘 형성된 친족들을 떠나
아무도 모른, 그야말로 객지인 대전으로
자신의 마지막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결국은 대전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또 하나는
28년 전에 온, 중풍이라는 장애 요인이었다.
그 문제가 또한 대전으로 이사 오게된 이유 중에 하나였지 ...
...
지난 2017년 11월 겨울의 시작 부터, 찬바람을 맞으면 노인은 해롭다는 말을
하시면서 집 안 배란다에서 눈이 오는 것을 보고
그래서 한번은 또 깊은 나락에 들었고
그리고 건너편에 핀 벗꽃을 보고
무성한 여름 더위를 잘 이겨내시고
노란 은행나무 그리고 붉고 고운 벗꽃 단풍을 다 보시고
따뜻한 가을 바람에 그 어는 시인의 싯귀처럼
소풍갔다 온
소년처럼 평안하게 소풍을 마치고 돌아 가셨습니다
ㅠㅠ
친구들의 관심과 위로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로맨티시스트의 삶을 향해 출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