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香爐)는 고대 동양의 인도(印度), 중국(中國)등 여러나라에서 냄새의 제거, 종교의식, 그리고 구도자(求道者)의 수양정진을 위하여 향을 피웠던 도구로 중국에서는 훈로(熏爐)라고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서 한 대(B.C. 206~A.D. 219)에 이르는 시기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승반(承盤)위에 한 개의 다리와 중첩된 산봉우리형의 몸체 를 갖춘 박산향로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사실상 중국박산향로의 시원(始原)형식이다.
박산향로는 당시의 산악숭배, 무속,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방생술(放生術)과 양생(養生)술, 무위(武威)사상, 음양(陰陽)사상 등을 쫓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이 조형적 배경이 되었으며, 신선사상이 가장 유행했던 북중국 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고 낙랑(樂浪)의 고분(古墳)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박산향로는 우리나라에도 전래된 듯 하나 부여 능산리 절터유적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되기 이전에는 사실상 알려진 예가 없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승반과 하나의 다리를 대신하여 머리를 들어 올린 용을 조각하여 받침을 삼았고, 그 위에 산을 표현하였으며,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서 있어 외형적으로는 신선사상의 지향처인 삼신(三神)산을 가리킨다는 박산향로의 형식과 유사 하다.
그러나 이 향로는 높이가 64cm나 되는 유례없는 대작(大作)인 데다가 용과 봉황의 비중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다. 그리고 박산이라는 명칭이 중국에서 남북조시대 이후 점차 중국의 특정지역에 비 정하는 중국적인 체취가 남긴 이름이므로 여기서는 우리 선조들에게 삼신산 중에서 가장 오래도 록 친근하게 불리워 온 봉래산(逢來山)이란 이름을 붙여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逢來山香爐)로 불리게도 되었다.
이 향로의 외형적인 구성은 "연화화생(蓮華化生)"이란 불교관과 깊은 관련을 보이고 있다. 연화화 생이라 연꽃이 만물을 화생(化生) 즉 성서로운 조화로서 탄생시킨다는 불교적 생성관으로 육도 (六塗) 및 정토(淨土)에서는 모든 존재가 화생(化生)이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순환하는 육도에서의 화생과는 달리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의 화생은 오로지 연꽃을 통 하여 만물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이 연ㄱ에 의하여 탄생될 때에는 화생의 기를 의미 하는 빛을 뜻하는 불꽃이 먼저 발산된다고 한다. 이렇게 연꽃이 위대한 힘을 가지게 됨은 예로부 터 인도나 이집트 등에서 광명과 생명 탄생의 상징으로서 신성시 되었던 것에서 유래하였고 이러 한 관습이 불교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향로에서 연봉오리, 또는 보주형으로 나타낸 몸체는 결국 연꽃 모양인데 이 연꽃은 연화화생 의 기운을 뜻하는 불꽃과 함께 한대 전통의 박산, 즉 여기서는 봉래산이란 신비로운 삭악으로 솟 아오르고 있다. 여기서의 불꽃들은 뚜껑과 향로의 몸체사이에 있는 2조(條)의 유운문계당초문(流雲文係唐草文)에 뿌리를 둔 훼룡문계화염( 龍文系火焰 : 이 화염은 사실은 박산무늬의 테두리를 장식한 것임)과, 산악의 능선마다 테를 두르며 그 안에 빗금 무늬로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또 전체의 산악들은 지금도 화생(化生)이 계속되어 마치 작은 나무와도 같은 33곳의 작은 봉 우리들이 움트리고 있으며, 이 화생된 작은 봉우리의 능선 테두리에도 역시 불꽃을 의마하는 빗 금무늬가 빠짐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연화화생에 의하여 봉래산을 탄생시키는 표현은 공주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 나온 동탁 은잔(銅托銀盞)이나 부여 외리(外里)출토 산수문전(山水文塼), 산수봉황문전(山水鳳凰文塼) 그리고 청풍출토품으로 전하는 활석제불보살병립상(滑石製佛菩薩竝立像)에서도 공통적인 예를 볼 수 있 어 당시 백제에서는 불교의 연화화생에 의한 조형원리가 널리 적용된 듯하다.
그러나 이 향로에서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주제는 한 대의 향로에서 볼 수 있던 봉래산을 중심으 로한 신선의 세계이다. 향로의 꼭대기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봉황은 봉래산에 살고 있는 상서러운 전설의 새이며 천하가 태평할 때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 봉황의 속성 가운데 하나 가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춘다고 하여 예로부터 춤과 음악에 흔히 동반된다. 이러한 봉황의 묘음(妙音)에 귀 기울인 듯 5마리의 기러기로 보이는 원앙(옛기록을 보면 봉래산의 원앙은 기러 기를 닮았다고 한다.)의 시선과 동작이 봉황을 향하고 있으며, 선계(仙界)의 악사(樂士)들도 봉황 을 맞아들이기라도 하듯 각기 다른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산중의 신선들은 명상(冥想)에 잠기기도하고, 낚시도 하며, 머리도 감고, 말을 타고 달리거나, 수렵을 즐기기도 한다.
이 향로 뚜껑에는 74곳(41곳의 능선을 가진 산과 화생중인 33곳의 산)의 봉우리와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 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 사슴,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 39마리의 동물과 5인의 악사, 산중의 신선 등 16인의 인물상이 표현되고 있다.
이밖에도 6군데의 나무와 12군데의 바위, 산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낚 시터가 된 잔잔한 물결까지 나타낸 호수가 있다. 또 향로의 노신(爐身)을 싸고 있는 연꽃잎들에는 두 신선과 날개달린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생물, 물가의 생활과 밀접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슴과 학등 26마리의 동물이 보여 결국 이 향로 전체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 18인, 동물 65마리가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 향로에 보이는 또 하나의 전체적인 구성원리는 음양의 체계를 이루어 아래로부터 수중동물의 즉 음(陰)의 대표격인 용을 등장시키고, 그 위 몸체에는 연꽃과 수중의 생물이거나 또는 물가와 관련된 동물, 뚜껑인 지상(地上)계에는 산악과 짐승 및 신선 그리고 천상계인 정상(頂上)에는 봉 황과 원앙을 배치하였는데 봉황은 양(陽)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향로에 용을 대좌로 삼는 예는 중국의 한대부터 나타나며, 향로에 연화화생을 표현한 예는 중국 의 남북조시대 400년경부터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대의 향로는 용의 표현이 미약하고 연화화 생과 관련되 표현도 없으며, 남북조시대에서도 이같이 고도로 고안된 연화화생의 표현이나 봉래 산에 전개되는 다양한 인물, 동물 등의 묘사는 찾아 보기 힘들다. 또한 향로의 다리를 용이 실제 로 역동적인 용트림하는 모습의 작품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찾아 보기 힘들다.
이 향로에는 음양의 체계 또는 인도의 전통적인 사고와 과련된 또다른 연화화생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즉 힌두(Hindu) 설화에서는 물이 곧 생장의 근원이라고 한다. 이러한 생장의 근원인 물 은 수중세계를 대표로 하는 동물인 용을 통하여 자연계에서와 같이 물속에서 물위로 연꽃을 피워 올린다. 그런데 이 연꽃은 신비의 광명과 탄생을 담은 연꽃이다. 결국 용은 연꽃으로 화생한 것이 다. 이때 용의 입에서 토해낸 화염이 연꼿으로 화생되고, 이 연꽃은 다시 중국 한대 이후의 박산 향로에서 보이는 산모양으로 호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향로의 연화화생은 대좌인 용, 몸체인 산, 정상의 봉황에 이르기 까지 전체에 걸쳐 가득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에 장식 된 인동문(忍冬文)이나 불꽃무늬, 여섯잎의 연꽃, 향로 몸체에 가득 표현된 불꽃무늬와 두겹의 당 초문, 봉황의 대좌인 보주(寶珠)와 봉황의 날개와 몸통에 가해진 불꽃무늬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향로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였으되 조형성이나 회화적인 구도는 오히려 중국을 뛰어 넘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초에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것이다. 그리고 불교와 신선사상이라는 동양인의 사 고체계를 형성한 장엄한 두바퀴가 불꽃처럼 어우러져 성취된 백체인들의 세련된 공예문화요, 화생예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