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조) 시르렁 실근 당겨주소. 어허 여루 당기여라 톱질이야. 어와 세상 사람들아 나의 말을 들어보소. 세상에 좋은 것은 부자 밖에 또 있는냐. 요임금은 어이하야 부익 다사를 마다허고 맹자는 어찌하여 불인하면 된다 하느냐. 불인 해도 내사 좋고 다사해도 내사 좋구나. 이 박을 타거들랑 금이 많이 나와서 잃은 재물은 다 도로 찾고 부익부를 하여 봅시다. 시르렁 실근 시르 시르릉 시르렁 시르렁 실근 당기여라 톱질이야.
요임금 - 불인하면 된다 하느냐.: 요임금께서는 부자가 될수록 일이 많아지니 부자 되길 마다 하고 맹자가 이르되 (부자가 되려면 어질지 못하면 된다) 하느냐.
(휘몰이)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탁 타 놓으니,
(아니리) 무슨 끈 쪼가리가 박통 밖으로 뾰조록이 나왔으니 놀보놈 좋아라고, [옳다 이제 엽전 꿰미 나왔다]하고 확 잡어 당겨논 것이 엽전 나올리 만무하고,
(잦은몰이) 줄봉사(奉事) 오륙백 명 그 줄을 서로 잡고 꾸역 꾸역 꾸역 꾸역 꾸역 꾸역 꾸역 나오는데, 곰배팔이, 앉은뱅이, 새앙손이, 전동다리, 꼽사등이, 가슴에 구멍 난 놈, 얼어 부픈 낯바닥에 댕강댕강 물들은 놈, 입술이 하나 없어 이빨만 앙상한 놈, 등덜미가 쑥 내밀어 북통을 진 듯한 놈, 키가 한자 남짓한 놈, 입이 한쪽 돌아간 놈, 가죽관을 눌러 쓴 놈, 물매 작대 멜빵만 진 놈, 헌 멍석 말아 쥔 놈, 헌 바가지 손에 든 놈, 온 몸에다 재 칠한 놈, 두 다리에 피 칠한 놈, 패랭이 꼭지쓴 놈, 웅장건 끈 달아 쓴 놈, 그저 꾸역 꾸역 꾸역 꾸역 꾸역 꺼벅 꺼벅 꺼벅 꺼벅 꺼벅 덜렁 덜렁 나오는데 사람 모은 수를 보면 대구 시월령 같고 서울 장안 과거인들 이에서 더할소냐. 그저 꾸벅 꾸벅 꾸벅 꾸역 꾸역 찔룩 찔룩 꺼벅 꺼벅 나오는데,
새앙손이: 손가락이 잘라져서 생강처럼 된 손 병신
물매 작대: 나무에 달린 과실 같은 것을 떨어뜨리려고 팔매질하여 던지는 조금 긴 막대
웅장건: 곰의 발처럼 만든 두건
대구 시월령: 조선조 효종 때부터 시작되어 봄 가을에 약재를 매매하던 대구지방의 약령장
(아니리) 그 중에 영좌 영감이 나오는데 다년 과객(多年 過客)질로 공것 먹기 수가 나서 예상으로 하는 말이 사람 죽일 말이지, 나이는 한 오십 남짓한데 박통 밖으로 툭 나오면서, [여보소 공(公)은 거기 있는가? 친구들이 떠들으니 너무 그리 떠들지 말라고 하소, 아 이 공사(公事)가 한 두달에 끝날 일이 아닌 것을, 너무 그리 성급히 하지 말아라.] 차린 복색보면 개털버선 들메신고 삼베 중의 잠방이 떡 입고 나오면서 놀보 안채 대청위에 허물없이 올라 앉아, 끝없는 반말 소리, [바깥 주인이 어디 있는가? 이리와 내 말 듣지] 놀보가 전 같으면 이러한 과객 보고 불호령이 나올 터이지만 여러 걸인 호령 소리에 정신도 없고 그 어른 하는 거동 점잖키도 하여 할 수 없이 대청으로 올라가 절을 하고 공손히 여쭈오되, [어디서 오시오며 저렇게 많은 사람 성한 사람 하나 없고 모두 다 병신만 동행 하셨으니 어디서 오셨습니까?] 영좌가 그말 듣고, [오 네가 놀보냐? 우리 온 내력은 사 오일 후에야 알 일이로되 그 좁은 박통 속에서 여러날을 이 친구들이 굶어서 모두 다 죽게 되었다. 이토록 기갈이 자심하니 좋은 안주 술대접과 갖은 반찬 더운 점심 정결한 사처방에 착실히 대접하지] 놀보가 기가 막혀, [아이고 여보시오. 저렇게 많은 사람을 어찌 대접 하란 말이요. 살려주오. 대전(代錢)으로 바치리라] 영좌가 대답하되, [손님 대접하는 법이 밥상 하나 차리자면. 접시 일곱, 종자 둘, 조칫보에 갖은 반상, 반찬 값만 할지라도 닷 냥이 넘을 터이나 주인의 폐(弊)를 보아 매 명에 닷 냥씩 주소] 놀보가 기가 막혀 [사람의 수효가 얼마나 됩니까?] [못 되어도 오백명은 될 것일세] 놀보가 하릴없이 이천 오백 냥을 내어 놓고, 다시 빌며 하는 말이, [귀하신 손님네를 여러 날 만류하여 쉬어 가면 좋을 테나 내 집 십배 더있어도 못다 앉을 터이오니, 오신 내력 일러 주옵소서] [주인 말이 그러하니 아무렇게나 하여 볼까. 우리 나라 벼슬 중에 활인서 마름 있어, 관원 서리 고자들이 누만냥 돈 식리하여 수 많은 우리 걸인 료(料)를 주어 먹이더니 주인 조부 덜렁쇠가 삼천 냥 보전 쓰고 병자년에 도망하여 부지거처 되었으니 매년 삼리 삼삼 구를 본전에서 범용되어 그렁저렁 수십년에 본전이 다 없어져 우리 반료 못 하더니 조선 왔던 제비 편에 주인 소식 자세히 듣고 활인서에 백활 한즉 관원이 분부 내어, 만리 타국에 있는 놈을 패문왕복 번거로우니, 너희들이 모두 가서 축년 변리 받아오되, 만일 완거 하거들랑 그 놈의 안방에가 먹고 반듯 누웠어라는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 갚고 안 갚기는 주인의 소견이지] 놀보가 이말 듣고 공순히 다시 물어, [우리 조부 그 돈 쓸 제 수표 착명 증인 있소] [있지] [여기 가져오셨습니까?] [안 가져왔지] [수표가 있더라도 신사면(信士面)이 중한데, 수표도 안 가지고 빚 받으러 오셨습니까?] [일년쯤 되면 강남 왕래 할 터이니, 우리 식구 예서 먹고 동행 하나 보내어서 수표를 가저오지] 놀보가 들을수록 사람 죽일 말이로다. 무한히 힐난하다 갑절로 오천 냥에 사화(私和)하여 보낼 적에 영좌가 하는 말이, [갖다 바쳐 보아 당상께서 적다 하면 도로 찾아 올 것이니, 조홀(條忽)이 떠난다고 섭섭히 알지 마소] 일시에 간 데 없다. 박 타던 삯군들이 그 모양을 봐 놓더니만, [여보시오 놀보씨 놀보씨가 본래 욕심이 많은 양반이라서 설소리를 메기기 때문에 아마 이렇듯이 그 잡동산이가 모두 나온 모양이요. 이번에는 우리들이 설소리 한 번 메겨 봅시다] 놀보놈이 그 말 듣더니, [그러게 자네들이 한 번 메겨보소] 설소리를 삯군들이 메기는듸,
활인서: 조선조 때 서울의 의료에 관한 일을 맡은 관아
마름: 지주의 위임을 받아서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
고자(庫子): 각 군아에서 물품을 둔 창고를 맡아 보는 사람
식리(殖利): 이익을 늘림
보전: 돈을 꾸어옴
범용(犯用): 남의 물건이나, 보관 하여야 할 물건을 써버림
백활(百活): 이두 표기로 발괄이며 관아에 대하여 억울한 사정을 글이나 말로 하소연함
패문왕복: 옛날 공문의 한 가지로 패문을 가지고 왔다 갔다함
신사면: 신의가 두터운 선비로서의 안목
조홀: 재빨라서 붙잡을 수가 없음 -다음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