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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인상적인 일, 최근 근황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려올때가 있다.
외국에서 오라 할 때가 있었는데 3월부터 5월까지 국외로 나갔다.
독일에 두번째 번역시집이 나왔다.
스페인에서 한국작가초청. 소설가 김훈, 이인성과 함께 마드리드에서 낭독을 했다.
아르다운 항구가 있는 도시의 대학에서 낭독. 한국어로 읽는 시. 소설. 일부분은 우리나라말로, 스페인 번역자나 배우가 2/3을 낭독
질문, 대답은 통역이 함께 했다. 상당히 입체적이다. 단조로움이 없다.
또 한번은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는데 오래된 약속이라서 안갈수가 없었다. 사막에도 가보고 낙타도 타봤다.
중국의 큰 대학에 강의를 하러갔었는데 그곳은 여러 분교가있는 큰 대학이었다
청일 전쟁이 일어나던 그곳에 한국 대학원이 존재했다.
초청받아 함께간 소설가 김원일과 특강을 했다. 인터뷰도 하고 보람있는 고생이었다.
Q.2 그곳에서의 기억에 남는 일
스페인어로 번역된 시집. 2005년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시집을 사와 싸인을 받았다.
번역이 잘된듯 하다. 스페인에 처음 갔을때의 일인데 스페인어 권이 넓다. 정작 본인은 스페인어를 모른다.
어느 유명 가수가 부른 노래밖에 모른다. 스페인어는 소란스러운데 모음과 자음이 계속 교대된다.
생략이 없어 작품을 낭독하니 듣기엔 좋다.
Q.3 런던, 독일등등 여러국가에 시집이 출판되었는데, 세계적인 시인이 되니 평가가 어떠한가
일본어로도 나왔다. 내년쯤 프랑스어로 번역도 되는데 아마 보편성 때문에 그런것 같다.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 되는 듯. 호소력? 같은 것. 영어권은 1991년에 런던에 출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교과서에 내 시가 실렸다.
그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교과서 2권을 보내주었다. 미국 교과서는 무겁고 표지가 두껍다.
왜그러는지 알아보니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교과서를 물려준다. 그래서 낙서를 하면 안된다.CD로도 나왔다.
독일어권에서 묘비병이라는 시가 엔솔로지 라는 시화집에 실렸다.
세계적인 시인들이 실리는 것인데 자신의 시가 보편성이 있으니 실리는 것 같다.
Q.4 독자, 평론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데 왜 35살에 데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중 3때, 조병화 시인이 국어 작문을 가르쳤다. 본인이 서울중-서울고를 졸업했는데
그땐 문예창작전공이 없었다. 조병화 시인은 교과서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대뜸 글을 쓰라고 했다.
우리가 상징, 플롯 이런 것을 많이 한다고 글을 잘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단 쓰기만 하면 칭찬을 받았다. 다른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학원]이라는 학생문예교양집이 있었는데 투고를 하면 실어줬다. 본인의 글도 실렸다.
전국 시 콩쿠르에서 장원을 한적도 있어 우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독어독문으로 공부를 시작함.
남에게 뒤떨어지면 안되겠다 해서 15년동안 독어독문을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서 독어독문 교수를 생업으로 택했다. 난 언제든 글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34살에 한국으로 돌아와,35살에 글을 한국인으로서 시작했다.
Q.5 서울 문리대, 이 근처(혜화동)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전문 시인으로는 부산대에서
강의 할때이다. 4.19와 연결지어 말씀해주신다면
혜화동 로터리에서 이화동 대학로 쪽으로 가서 왼쪽 서울 문리과대학이 있었다.
서울대의 국문, 영문, 불문 등등이 다 거기서 공부했다. 대학생시절을 보낸 장소이다.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 1학년 1960년 4월초 입학했다. 들어가자마자 4.19데모가 일어났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앞으로 보낸다. 그런 기억들이 있다.
또하나는 이청준이다. 한글로 글을 쓴다는 말.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가 36년을 일제강점기에 있었는데 5년을 남기고 태어났다.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고 한글로 교육받은 첫번째 세대라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은 큰 의의가있다.
60학번의 문인이 많다. 소설가 이청준. 작품을 꼭 읽어봐야 할것이다. 내용이 깊고
새로 새로만들어낸 문체기 때문이다.
김현 비평가, 소설가 김승옥 외 여럿 서울대는 12년에 한번씩 그런 파도가 밀려온다고 한다.
대학로에 가면 의과대학 전전에 학림다방이라고 있다. 그곳에서 차 한잔시키고 하루종일 드나들었다.
작품을 읽고 서로 비평. 겨울에 가운데 연탄난로를 놓고 투고 이전의 글을 읽었다.
김승옥이 재학생시절 데뷔했을때 많은 부러움울 샀다.
Q.6 데뷔작을 서로 말해주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는 쓰면 된다. 다만 조금 있다가 쓸 뿐. 나는 그냥 읽을 뿐이었다.
나는 독일 문학을 마스터하고 쓰겠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자기가족을 돌보고, 큰일을 도모하는 것인데
그 친구들은 이미 [치국평천하]했다.
Q.7 명문대, 유학, 박사학위, 교수 순탄한 인생인데 삶에서 패배한 적은? 좌절, 절망같은.
인생을 살다보면 많이 겪는데 실패나 좌절에 깊이 빠지면 안된다.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 뛰어야한다. 인생 진로를 택했을때 내 인생은 한번 뿐.
여러가지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쓰면 간접적으로 살수있지만,
대졸 후 군대에서 만36개월을 지내며 그동안에 휴가동안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나는 써서 내면 된다 했지만 떨어졌다. 산문, 시 둘다.
글을 버린적은 없다. 800편 정도 시를 발표했는데, 숙달되지 않는 작업
많이 쓴다고해서 잘쓰는건 아니다. 끝 없는 좌절. 매일 새로 시작.
글 쓰는 자체가 매일의 좌절이다. 그런것 없인 성취도 없다.
Q.8 35살 나이에 본격적으로 글을 해야겠다는 계기는?
독일유학후 독일 현대문학을 섭렵하고, 조망 하게되었다. 독일문학이나 한국문학이나
본질적으로 같다는 깨달음을 갖고 귀국. 현실참여 문학이 국내에서 조금씩 나왔다,
그때의 문학은 하기 힘든 세계를 발표. 나는 이렇게 쓴다 라고 내 스타일대로 쭉 지속했기에 상도 받았다.
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 자신감을 갖고 쓴다.
이것이 시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도 속으로 후회할지도 모른다.
Q.9 결정적인계기는 없는가?
30대 넘어가면 안되고 언어감각이 무뎌질까봐 75~79년 사이 한권 분량발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이 첫시집.
박정희가 총에 맞아죽고, 다시 군부 등장. 그때 걸려서 다음해에 시집이 겨우 나왔다.
그래서 인쇄일과 나오는 일이 다르다.
Q.10우리는 늘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것이 무엇인지.
[영산]잃어버린 산을 찾는것. 여러가지로 해석가능하다. 순수한꿈, 자아실현의 이상
그것을 나이먹어가면서 세속화되고 잊기 쉬워지고 글보다 돈에 열중한다.
그래도 그 꿈과 이상을 되찾으려는 노력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되는 계기인것 같다.
Q.11 시집 [처음 만나던 때]. 그 신선함 떨림 보다 익숙해 지는 것을 말했는데
여행을 하고 자신이 있던 자리가 어떻게 보이는가
자식을 사랑하면 여행을 보내라. 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눈으로 그것을 보고 많은 새로운 깨달음을 주니 젊은날 여행이 꼭 필요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새로운 감수성의 연마이다. 여행이 필요하다.
독일어로도 쓰고 시 산문을 썼고, 전나무 숲에서 바라본 소나무 숲은 역시 아름답다.
우리나라를 다시 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12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선생님은 변함 없는가?
나는 변하지 않는 쪽에 기울어져 있음. 작품, 나 모두 보수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본의아니게 대표작이 되고 대학 다니던 1960년, 남미 그룹의 노래 제목이었는데
축음기에 판을 돌리면 나오던 노래였다. 원어는 달빛이었는데...
이 시가 4.19세대에 맞는 것이다. 솔직하게 쓴 절망의 노래.
여러사람의 애환. 18년 만에 쓰여진 것이다. 4.19를 찬양하는 많은시가 쏟아져나왔다.
솔직하게 절망을 노래해서 내 시가 아직도 살아남은 것 같다.
Q.13 일상적인 서정, 풍경, 상념의 작은 것을 다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전의 시는
다른 날카로움이 없어진 온화해진것 같은데 작품세계의 변화인가?
내가 쓰는 시는 모든 것이 사소한 일상이다. 다같이 살아가는 현실 생활.
근본적으로 위대한 역사가 큰 사건들은 아님. 사소한 생활이 모여 한 사회, 국가, 세계의 역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희귀한 사건이나 테마를 찾지말고, 바로 살고있는 생활을 쓴다.
관념, 철학 보다는 하찮은것 같아도 일부러 어느 방향으로 조정하지 않는다.
Q.14 [대웅전 뒤쪽]이라는 시가 순간에 간직한 영원한 아름다움인데, 작가세계를 정의 한다면?
나 김광규는 이렇다. 라고
김상옥 선생과 만나본적은 없고, 전화가 왔다. 시 잘읽었다고.
또 피천득 수필가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가 다른사람들에게 공감의 파장을 일으키는것 같다.
본적이 없는 뒷모습. 사실 부처의 뒷모습이다. 그 앞에 합장하지 뒷면은 보지 못한다
절의 뒤쪽에 가봤는데 부처님 오신날 때 쓴 연등과 거미줄, 고사리의 흔들림이 있었다.
부처님의 기척이 있다면 저렇게 흔들리지 않을까.
누가 지나가면 인기척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 부처 아닐까. 공감대가 형성된것 같다.
존재에 근원에 접하는, 안의 양파껍질을 벗기듯, 비평가의 글을 읽으면 깊은 속을 투시해 깜작 놀라기도 한다.
Q.15 영향을 받은 작가나 시인은?
어느 분을 딱 잡아 얘기는 못하겠고, 조병하 선생이 떠오른다. 처음 글을 잡은 것이 그분때문.
여러 사람들을 지나쳤다. 나 혼자 많은 작품을 읽고 섭취했다.
문학과 지성사, 4권으로 된 한국문학 전집 소설전집, 비평, 북한문학 그것을 보면
20세기 후반기를 읽고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 중심에 섰구나,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스스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배껴보면 깨닫게 된다. 스스로 터득. 좋은 작품을 되풀이해서.
김광규 선생님께서는 사람들과 공감을 얻는 그런시를 쓰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셨네여 큰선생님과 김광규선생님의 대담만 적어서
이렇게 올립니당 문우들의 질문은..적지못했..
EBS수능특강 언어영역 문학부분에 크낙산의 마음이 실려있었는데
고삼여러분들으 풀으셨나모르겠네여 암튼 김광규선생님의 시를보면
편안한 마음도 들고 공감할수 있는 부분은 확실히 다른시와 비교되게 많습니당
ㅎㅎ오타와 띄어쓰기는..애교로쩜..
첫댓글 ㅋㅋ 저 풀었습니당 ㅋㅋㅋㅋㅋㅋ 좋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