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풍연가] 조명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빌딩 전경
도심속을 질주하는 자동차들
#1 대기업 부장실 안 (낮)
책상앞에 마주 앉아있는 태희와 부장
부장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가서 한2년 MBA 과정도 밟고 일단 거기서 경험을 쌓는 거만해도
그게 어딘데 그래?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아무한테나 오는 기회가 아니라구.
오사카에 조현석 부사장을 좀 봐,
나보다 2년 늦게 입사했는데 지금 그렇게 돼있는 거 아니야.
태희 (무척 아쉬운) 전한텐 기회긴 한데요... 역시 안되겠어요. 죄송 합니다.
부장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깐 좀 더 생각해보자구
#2 동 욕실 (밤)
휠체어가 보이고 욕실문 사이로 태희 부와 태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태희부 (아기처럼 불만스런) 아이! 눈에 뭐가 들어갔다니까
태희 (의례 그러려니) 아이. 잠깐만 계세요 눈 뜨지 마세요
태희부 아유, 차가워!
태희 차가워요?
태희 얼른 수도 꼭지를 조정하는데
태희부 아 뜨거! 아 뜨거! 아 뜨거!
바삐 움직이는 태희의 얼굴엔 비누 거품이 튀어 오르고 정신이 없다.
태희부 (못마땅한) 야 좀 살살해라!
여자 손처럼 부드럽게 안되냐? 네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
#3 태희부 방 (밤)
아버지를 업어다 눕히는 태희, 이불을 덮어 준후 나가려다 말고 아버지를 내려다 본다
태희 (뭔가 할 얘기가 있는) 아버지...
태희부 응? (말이 없자 쳐다보는) 왜? 뭐 할말있니?
태희 아니에요. 주무세요
조용히 일아나 나가는 태희.
방문을 닫는다.
(이미지 샷)
출렁이는 푸른 바다 위를 경쾌하게 날 아가는 카메라.
성산 일출봉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화면
제주도의 바닷가와 거리풍경이 스치며 지나간다
#4 달리는 관광버스 안 (낮)
직~ 하고 전원이 들어오는 비디오 화면.
화면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영서의 얼굴.
마이크를 들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아직 어딘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다.
영서 (제주도 사투리) 제 이름은 예 고영서마씨. 제주도 토백이구 예
제주도 사투리로 말 호난, 무신 거옌 고람 신지 몰르쿠게?
(점프 컷)
영서 (서울말로) 5년 째 여행사 가이드를 하고 있어요.
일은... 재미있고 만족스러워요.
(점프 컷)
영서 나이는 스물 여섯이고 참고로 짝을 찾고 있는 중이죠 (점프 컷)
영서 어떤 사람이 좋냐구요?
음.. 밤새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남자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은 곤란해요
노인1 (화면 밖에서 끼여드는 소리) 그래? 그럼 나네?
내가 워낙 새벽잠이 없거든.
웃는 노인들.
알고 보면 효도관광 온 여행객들을 태운 버스이고 촬영기사가 비디오를 찍고 있다
노인2 아이구 잘됐네!
(옆 좌석의 영감을 가리키며) 이 분이 장가 안간 아들이 셋이야 셋!
영서 (인사를 하며) 할아버지 이따가 따로뵈요
(영감을 향해 쌩끗 웃는) 그럼 좋은 여행되세요
#5 관광지 주차장 (낮)
관광버스에서 내려 우왕좌왕하는 노부부들을 관광지로 인솔하는 영서
영서 특히 할아버지들!
혼자 다른 버스 타서는 내가 맞다고 우기시는 분들 꼭 있어요
저 잘 따라 오세요
#6 특산물 쇼핑 코너 (낮)
까다롭게 특산물을 고르는 노부부가 미스홍과 흥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죽물을 마시고 컵을 내려놓는 영서.
목이 말랐었다
이때 영서 앞에 나타나는 청년 여행자
청년 (열쇠고리를 들고 호기롭게) 저기요
영서 (계산하려는 줄 알고 미스홍을 향해) 이리 와봐 이거 얼마야? 열쇠고리
청년 (열쇠고리를 놓으며) 아니 그게 아니고요
영서, 어느새 다가온 미스홍을 뚱하니 본다
청년 시간있으세요 괜찮으시면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죠
제 첫사랑하고 너무 닮았는데
영서 (힐끗 볼 뿐 관심없이) 어쪄죠? 댁은 내 첫사랑하고 전혀 다른데....
청년 그래요? 할 수 없죠 뭐. (실망,, 그러나 씩씩하게 친구들 무리로 아웃한다)
수고하세요
미스홍 (청년을 보며) 왜? 괜찮잖아
영서 여행하는 남자들은 안돼. 믿을 수가 없어
미스홍 그럼 누굴 만나니? 여긴 온통 여행 온 남자들 뿐인데
영서 아무튼 안돼
미스홍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영서 정 관심있으면 네가 해보지 그러니?
미스홍 안돼 난.
영서 왜?
미스홍 (호들갑) 어제 점을 봤는데 말이야 연분을 좀 늦게 만난댄다.
한 서른살 쯤 (꿈꾸듯) 그 남잔 지금 평양에 살고 있대
통일이 되면 만나게 될거야
영서 (미스홍을 쳐다보며) 통일되기 기다리다가 늙어 죽겠다
미스홍 ('데이트 잘하는 법'이란 책을 넘기면서)
야 근데 말이야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 줄 알아?
(동전을 꺼내며) 바로 이거야!
영서 (시큰둥하게) 500원짜리 동전아냐?
미스홍 (동전을 들어보이며) 이건 그냥 500원짜리가 아니야.
1982년에 발행된 원년동전인데 이걸 써야 행운이 따른다구.
영서 그걸 어따가 써!
미스홍 어이구 이렇게 둔하긴 먼저 동전을 떨어뜨려야지
영서 떨어뜨려!
미스홍 그래 그러면 그남자가 동전을 집어 줄꺼아냐 그때 말을 거는거야
미스홍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는 영서
미스홍 (책을 펴 보여주며) 봐봐! 밑줄친데
영서 (책을 읽는) 항상 동전을 휴대한다?
미스홍 (영서가 보던 책을 뺒으며) 이게 중요해. 큰소리가 나도록 떨어뜨린다.
#7 공항 1층 도착출구 앞 (낮)
손아귀의 동전들 속에서 500원 짜리 주화를 하나 챙기는 영서
미스홍 (E) 주의사항. 절대 당황하지 말라
영서 초조하게 닫힌 출구를 보고 있다.
이때 자동문이 열리며 비행을 끝낸 승무원들이 나온다
영서의 시선이 그 중 눈에 띄는 남자 승무원 하나에게 쏘린다.
망설이던 영서, 머뭇거리다 동전을 떨어뜨리지 않고 주먹을 움켜진다.
그냥 지나가는 승무원. 허탈한 영서.
#8 공항3층 탑승 로비(낮)
영서 노부부들에게 비행기 티켓을 나누어주며 바쁘게 인원 체크를 하고 있다.
영서 할아버지, 할머니 서울가시면 아드님들 한테 제 얘기 꼭하셔야 돼요
웅성거리며 호응하는 노인들
영서 장남이라도 상관없고요 연하라도 상관없어요
할머니 (몹시 불편한) 나 화장실 좀 갔다오면 안될까?
영서 얼른 다녀오세요 저기 끝에요 보이시죠?
할머니 뛰어가고,
영감 미스 고! 그러지 말고 나는 어때?
영서 할아버지도 참~. 다음 번엔 아드님 꼭 보내셔야 돼요?
영감 왜 내가 어때서 (이때 화장실에 가던 할머니의 핸드백을 날치기하는 청년)
나도 왕년엔 미남이었다구
웅성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영서 순간적으로 돌아보고는 곧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청년을 쫓기 시작한다
영서 (쫓아가며) 도둑이야! 도둑잡아요! 너 거가 않서
청년은 에스컬레이터 중간쯤에서 난간을 뛰어 넘어 로비를 가로질러 공항 밖으로 향한다
영서 (달려 내려가며) 아저씨! 도둑잡아요! 도둑!
청년은 자동문을 빠져나가고 막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나와 넘어지는 영서
자동문을 빠져나가던 소매치기 태희와 부딪친다.
소매치기를 붙잡은 태희, 소매치기의 칼에 상처를 입는다.
칼을 버리고 도망가는 소매치기를 뛰어가 붙잡는 태희,
소매치기를 잡았다 쳐다보고는 그냥 놔줘 버린다.
차를 타고 도망가는 소매치기
태희 (지갑을 내밀며) 이겁니까?
영서 (숨을 고르며) 다쳤어요
#9 공항 밖 벤치 앞 (낮)
영서는 태희의 손을 벤티에 앉아 치료를 하고 있다
영서 일부러 놔준 거죠? 왜 그랬어요?
태희 너무 어려 보여서요 열여섯밖에 안되 보여서요
그제야 이상하다는 듯 태희의 얼굴을 힐끗 보는 영서
태희 (소독약이 쓰린) 아!
영서 아파요?
태희 괜찮아요. 근데 정말 잡겠다고 달려든 거예요?
영서 (당연하다는) 그럼요
태희 여자 혼자서 날치기를 잡겠다고요?
영서 왜요? 결국 잡았잖아요 제가 잡은 건 아니지만...
태희 칼 꺼내는 거 봤지요?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요 어차피 남의 일인데
영서 (붕대를 감기 시작하며) 그게 어떻게 남의 일이에요?
우리 여행사 고객한테 생긴 일이면 곧 내 일이죠.
(계속) 제주도에 온 사람한테 나쁜 일이 생긴다면 누가 제주도에 오겠어요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영서 (머쓱해서) 살짝 벤 거니까 아물긴 할텐데... 흉터가 남겠네요
그런 영서를 바라보는 태희.
그러다 영서는 문득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태희를 쳐다본다
머쓱해서 얼른 시선 돌리며 붕대가 감긴 손을 보는 태희.
약통을 닫고 일어서는 영서.
태희 (일어서며) 고마웠어요
영서 네
태희 (가방을 둘러매고 걸어가다 돌아서며) 잠깐만요. 여기가 어디에요?
영서 돌아보면, 태희가 내미는 관광엽서 한 장
영서 (얼굴만 들이밀고 보고는) 아! 여기요? 성산 일출봉이요
태희 네에...그럼(다시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영서 (괜히 새침하게) 저기 거기 보단 추자도가 더 좋아요!
태희 추자도요?
영서 네 추자도를 보지 않고는 제주도에 가봤다고 할 수가 없죠 꼭 가보세요
쭈삣쭈삣 하다가 그대로 돌아서는 영서.
죽 혼자서 걸어가는 태희의 뒷모습.
고개를 갸웃하며 걸어오는 영서
#10 약국 (밤)
약국으로 들어서던 영서, 투덜거리며 그냥 나오는 손님에게 길을 비켜준다
손님 (열받은, 사투리) 아무도 없수까! 아무도 없수까!
뭔놈의 약국이 약은 안 팔고 전시만 해남시니?
약국 안에 들어 선 영서는 자연스럽게 약장문을 열어 물파스르 꺼낸다.
털썩 의자에 주저앉는 영서
엄마 (내실에서 나오며) 언제 왔니?
#11 약구 내실 살림집 (밤)
넘어져서 멍이 든 곳에 물파스를 바르고 있는 영서.
엄마는 작은 방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르리고 있다.
영서 다 잡은 걸 놔줬다니까. 엄만 이해할 수 있어?
엄마 (쳐다보지도 않고) 그 사람이 강돈가 부다, 얘
영서 (표정 구겨지며) 엄만?
엄마 아니면 둘이 한팬데 잡힐까봐 서로 짜고 그랬나보지 뭐
영서 으~~ 엄마하고는 통하는 데가 없어!
그러다가 발을 얼굴에 들이대고 발가락 사이를 벌려 흉터를 본다
영서 이건 어쩌다가 생긴 거야?
엄마 (돌아보며) 뭐?
영서 내 발가락에 있는 흉터
엄마 그거?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자전거 뒷바퀴에 끼어서 그랬지, 뭐....
영서 (발을 보며) 그래...? 왜 난 기억 이 안 나지?
엄마 너무 어렸으니까
영서 (다시 물파스 바르고 후 불며) 근데 우리 자전거도 없었잖아.
엄마 (쓰던 걸 멈추고) 아빠가 태워 주시다가 그런 거야
엄마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2 동 방 (밤)
이불 속에 누워있는 영서.
엄마는 나란히 엎드려 스탠드 불빛 아래 소설책을 보고 있다
엄마 (뜬금없이 책을 덮으며) 명이 긴놈이래야 해
영서 명 짧아도 좋아 난 단 한번만이라도 죽도록 사랑해봤으면.....
시큰둥하게 스탠드 줄을 당겨 불을 끄는 엄마 누워있는 영서의 눈이 말똥거린다.
#13 호텔룸 (밤)
막 샤워를 끝냈는지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태희
낮선 호텔 방의 벽면엔 엽서의 그림과 똑같은 액자가 걸려있다
액자속의 풍경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태희.
#14 영어학원 (새벽)
강사 so much love, so little time,
사랑을 하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얘기죠.
자 그럼 다시한번 so much love, so little time
강사의 선창을 따라하는 수강생, 그속에 앉아있는 영서
#15 호텔 밖 (아침)
배낭을 매고 나오는 태희
#16 제주민속촌 (낮)
여행객들로 붐비는 관광지.
신혼부부들을 인솔해 브리핑을 하던 영서가 문득 혼자 배낭을 매고 안내판 보고 있던
태희를 발견한다
영서 자! 지금 옆에 보시는 곳이 마자앉은 세거리 집입니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아소요
초가집에다 짚을 묶어서 날아가지 않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원래 제주도에서는요
계집아이가 태어나면(잠깐 말을 멈춘 영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했구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볼기를 때려 울리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만큼 여자들이 하는일 많다는 얘기죠
다시 안내를 하며 바쁘게 걸아간다.
태희를 지나쳐 가는 영서.
영서가 지나간 뒤 태희가 영서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다.
돌아서는 태희.
#17 넓은 관광지 주차장, 버스 안(낮)
걸레로 앞 유리창을 닦던 영서,
슈퍼 앞 파라솔 아래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는 태희를 본다
영서 (걸레질 멈추며, 혼잣말) 왜 혼자 왔을까.....
장기사 왜? 궁금해?
영서 (얼른 자리로 가 앉으며) 아니요
차가 출발하고 안보는 척하지만 몰래 태희를 쫓아가는 영서의 시선
#18 중문단지 도로 달리는 관광버스 안 (낮)
노란불의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다.
썬글래스의 교통경찰이 인상을 쓰고 있다. 동하다
저 만치서 달려오는 영서의 관광버스.
버스 앞으로 들어서는 동하, 차를 세우라고 신호한다
장기사 (영서를 쳐다보며 열받는) 저 자식, 저기 또 저러네
껌을 씹으며 다가오는 동하
동하 (영서를 힐끔 보고는 장기사에게) 수고하십니다.
저쪽에서 신호위반 하신 거 아시죠?
장기사 노란 불인데 그걸 잡으면 어떡하나 이 사람아?
동하 일단 면허증 좀 주십시오
장기사 (주머니에서 면허증을 꺼내며) 아이참!
영서 야 지금 우리 바뻐. 늦었단 말이야!
동하 (딱지를 끊으며) 신호 위반이니까 벌점 15점에 벌금이 7만원이네요...
영서 야! 너! 정말 그럴래?
밖으로 나온 영서, 동하를 잡아끈다
영서 (동하를 잡아 끌면서) 강동하! 너! 이리 와봐
동하 왜 그래? 공무집행 중인데?
영서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늦어서 우리....
동하 (능청) 정 그러면 한번 봐줄 수도 있지
#19 택시 안 (낮)
같은 곳을 지나가는 택시 안.
태희는 도로에서 교통경찰과 실강이를 하고 있는 영서의 모습을 본다.
빙긋이 웃는 태희
#20 천제연 폭포앞 (낮)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신혼부부의 모습
신혼부부 저기요 저 뒤에 폭포까지 다 나오게 해주세요
영서 아 예 하나, 둘 셋....
웃으면서 카메라에서 눈을 떼는 영서
#21 관광지 (낮)
버스 문 앞에서 앉아 휴지통에 빈 캔을 넣고있는 영서
#22 달리는 관광버스 안 (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쏠어내는 와이퍼
영서 (혼자말) 어떡하지? 비행기가 떠야 될텐데....
이때 차창 밖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태희가 스쳐 지나간다
영서 (고개는 창 밖을 향한 채 장기사에게) 장기사님! 잠깐만 세워 주세요!
달리던 버스의 크락션 소리에 멈춰서 뒤돌아보는 태희
#23 달리는 버스 안 (밤)
영서의 자리에 앉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 태희
영서 (보조석에 앉아) 제주도는 원래 날씨가 흐렸다 개었다 하는데 몰랐어요?
태희 (안경도 벗어서 닦고) 네?
영서 우산은 필수라구요
태희 아 네!
태희가 닦느라 대꾸가 없자 영서는 이내 어색해지고 앞을 향한다.
이때 한 신혼부부가 투닥투닥 싸우는 소리 들려온다
신부 (갑자기 날카롭게 높아지는 소리) 그래! 헤어져 헤어지면 될꺼 아니야!
신랑 그래! 헤어져 내가 뭐 아쉽냐!
영서와 태희 동시에 돌아보면,
신랑 신부는 자신들에게 집중된 시선을 의식하며 뚱하니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영서 마이크를 들고 일어선다
영서 저! 현재라는 시간은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하다고 하죠?
자 지금부터 제가 찐드기 게임을 시작하겠어요
'찐득'이라는 말이 나오면 0.5초 안에 신랑님과 신부님의 입이 접촉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 접촉 상태가 열렬하지 않다거나 '찐득'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접촉된 커플이 발견된다면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 모두에게 캔커피를
사게 됩니다.
만일 틀리는 커플이 한 팀도 나오지 않는다면 화끈한 이 가이드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커피를 사드리겠습니다. 박수!
일동 (박수와 함께) 우와!
#24 공항 주차장. 버스 안 (밤)
비느 멎어있고 불이 꺼진 관광버스가 서 있다 여행객을 보내고 온 영서가
혼자 버스로 올라간다
#25 달리는 버스 안 (밤)
영서는 괜히 여기저기 좌석을 정리하는 척하며 잠든 태희를 본다
태희의 고개가 점점 옆으로 기울어지자 잡아 줄까 어쩔까 안절 부절하다가
시트만 만지는 영서.
그러다 깨는 태희와 눈이 마주친다.
영서 (당황해서 얼덜결에) 붕대... 아직 안 풀었어요? (통로 옆 자리에 앉는다)
태희 (부스스 일어나며) 아 예....
영서 그 거 한번 갈아줘야 되는데... 지금 갈아드릴까요? (일어나는데)
태희 아니요 괜찮아요
영서 (다시 앉으며) 그래도 덧나면....
영서 멋쩍게 히죽 웃는다. 분위기 어색해지려는데
영서 제주도엔 혼자 왔어요?
태희 (갑자기 받은 질문이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요
영서 혹시 실연 당했죠?
태희 아니요
영서 그럼 실직했어요?
태희 아니요
영서 그것도 아니면 혹시 도망 왔어요? 빚쟁이들한테 쫓겨서?
태희 아니에요
영서 아 알았다 혼자 온 여자 꼬실려고 왔구나!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태희.
영서도 그만두며 머쓱하게 웃는다
영서 웃으니까 인상이 휠씬 부드럽네요
태희 네?
영서 보기가 좋다구요 많이 웃으세요
또 잠시 어색해지는데
영서 숙소는 정했어요?
#26 고급호텔 로비 (밤)
데스크 앞에 서있는 영서와 태희
직원 (영서에게 키를 내밀며) 진짜라니까.
영서 (받지 않고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직원 졌다는 듯 다른 키를 뽑아 영서에게 준다
직원 그래 졌다 특별히 주는 거야 특실이야
영서 (받으며) 우리 친척 오빠니까 그러지 고마워요
영서 돌아서서 태희에게 키를 건네주며 눈짓으로 윙크한다
영서 오빠 그럼 잘자!
손을 흔들며 가는 영서를 보고 웃는 태희.
#27 호텔 앞. 버스 안 (밤)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문을 닫는 영서
장기사 수상해 너무 잘해주는거 아니야?
영서 (시침떼며) 뭐가요? 도둑 잡아줘서 방 잡아준 것뿐인데
이때 엉덩이 밑에서 뭔가 느껴진다.
핸드폰을 줍는 영서.
누구 거지? 하는 표정. 이내 혼자서 씩 웃는다
#28 호텔룸(밤)
들어서며 방 안을 둘러보는 태희 침대에 몸을 던져 쿠션에 튀겨보기도 한다.
기분이 좋다.
그러나 문득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는 태희.
거울 앞에서 혼자 웃어본다.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다.
무표정이 되며 안경을 벗는다.
다시 웃어보는 태희.
#29 영서집. 부엌(밤)
물안경을 끼고 양파를 다듬는 영서.
미스홍은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는다.
그러다 핸드폰을 발견하는 미스홍
미스홍 야! 너 핸드폰 샀어?
영서 아니 주운 거야
미스홍 우와! 땡 잡았네? 이거 최신형이다. 되게 가볍구?
영서 야! 돌려 줄 거야
미스홍 (아무 번호나 누르고는 기다리며) 걸린다. 걸려!
영서 (뺏으며) 야 야! 전화와야 된단 말이야
탁자 위엔 핸드폰이 놓여있고 만든 요기를 먹는 영서와 미스홍
영서 (혼잣말) 왜 안 오지....?
미스홍 누군데? 남자구나?
영서 아니야
미스홍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깨로 툭 치며) 야 가슴이 막 뛰니?
영서 (펄쩍 뛰는) 아니라니까!
미스홍 (시큰둥하게) 첫눈에 가슴이 뛰지 않으면 시간 낭비야
그 말에 영서는 오물오물거리며 생각 하는 표정이 된다.
그런 영서를 보던 미스홍, 얼른 책자를 펼쳐든다.
미스홍 (찾아서 주며) 봐봐, 밑줄친데
영서 (읽는) 처음 만나고 나서 3일 안에 절대로 전화를 하지 않는다.....
(찡그리며) 이게 뭐야?
미스홍 상대방에게 초조함을 유발시켜라 이거지 바보야.
(책을 뺏어 책장 넘기며 읽는)
만약 둘의 관계가 진전이 없었다면 그건 3일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영서 말도 안돼.
중요한 건 둘이 서로 얼마나 끌렸느냐지 기다리지 않아서가 아니야
미스홍 그래도 너 3일 법칙 꼭 지켜야 된다!
영서 (심란한 표정이 되며) 안돼...3일이나 기다리다간 그 사람은 떠날텐데?
미스홍 너어~ 혹시 여행 온 남자 아냐
영서는 자기가 한 말도 있고 해서 대답도 못하고 무색해지는데,
이때 휴대폰이 울린다.
미스홍 왔다 왔어
영서 (긴장하며) 여보세요
태희부 (큰소리로) 야 나다. 나야 (off sound)
영서 (예상이 빗나간) 네?
태희부 애비도 모르냐? (off sound)
영서 (인상 쓰며) 누구세요?
태희부 (궁금한 듯) 그러는 아가씨는 누구요?(off sound)
영서 (허둥대며) 네? 아, 저, 저, 전 핸드폰을 주운 사람이거든요
태희부 그래? 이거 큰일났네 내가 병이 나버렸는데.....(off sound)
영서 (점점 큰일 났다는 표정) 네 지금 편찮으세요?
태희부 내가 유언을 남겨야겠어? (off sound)
영서 (더욱 놀라며) 네? 유언이요? 지금 당장요?
#30 호텔 로비 (밤)
텅 빈 로비.
영서 (숨을 고르며) 아니 괜찮다니요
무슨 아들이 이래요? 위독하시다고 그랬다니까요?
태희 원래 그러세요 평소에도 그런 전활 자주하세요
전화가 없으시면 그때가 정말 무슨일이 있으신거예요.
그나저나 이거 미안해서 어떻하죠
영서 아 아니에요
태희 (핸드폰을 드렁 보이며) 어쨌든 고마워요
영서 (쌜쭉해지며) 근데 그 거... 어디 다 잃어버렸는지 알긴 알았어요?
태희 그럼요 안 그래도 너무 늦어서 내일 아침에 전화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뭐 돌아다니다 보니까 계속 만나던데요 뭘.
영서 (괜히 새침해지며) 나 내일은 못 만나요!
태희 왜요?
영서 가이드 일 없어요
태희 (섭섭한) 아 그래요...? (갑자기 할말이 없어, 멋적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러면 조심해서 가요 고마웠어요
영서 (섭섭한 듯) 예
태희 (뛰어 나오며) 저 혹시 내일 아르바이트 안하실래요 가이드가 필요한데?
영서 네? 가이드요? (선뜻 동의하지 않고 괜히 딴 척) 난 좀 비싼데....
태희 (빙긋이 웃으며) 얼마나 비싼데요?
영서 (계산하며) 시간으로 치면 5000원이구요 일당으로 치면 5만원요
그리고 식사비와 교통비는 따로 부담하셔야 하구요 대신 팁은 안 받아요
태희 (그런 영서를 보며 빙긋이 웃는) 좋아요!
#31 호텔 커피숍 (아침)
흰종이에 제주도 약도가 그려져 있고 그위로 영서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영서 (E 사무적으로) 이렇게 해안 일주도로가 있죠?
그리고 이게 한라산을 가로지는 산록도로예요
그럼 우리는 중문단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돌아서 서귀포에서
끝날수도 있구요
서귀포에서 시작하면 이렇게 해서 중문단지에서 끝나거든요?
어떻게 하실래요?
태희 (어이가 없어) 네
영서 코스를 선택하시라구요 여기서 부터 이렇게 시작하실거예요
아니면 서귀포시에서 반대로 하실거예요
태희 아니 여행을 이렇게 다니는 사람이 어더있어요
영서 (답답하다는 듯) 다른데서 시작하면 왔다갔다 겹치기만 하고
다 못보니깐 그렇죠
태희 아니요 이렇게 말구요 뭐 특별히 좋아하시는 곳 없어요
영서 제가요?
태희 (웃으며) 네 아니면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거나?
영서 (갸웃하며) 뭐... 특이한게 있나?
#32 택시 정류장 (아침)
정류장에 어색하게 서있는 두사람
영서 (혼자말로) 왜 이렇게 안오지
태희 (궁굼한 듯) 네
영서 아무말도 안했어요
영서 머쓱하게 앞을 향한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다.
영서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태희.
태희도 기분이 좋다.
#33 달리는 택시 안 (아침)
달리는 택시, 영서는 조수석에 태희는 뒷좌석에 앉아있다.
서로 먼저 말을 할까 망설이는 영서와 태희.
잠시 말이 없는 두사람.
영서 (돌아보며) 참 그쪽은 그쪽이라고 하니깐 이상하다. 뭐라고 불러야 되죠?
태희 아 예 제이름요 태희예요 박태희
영서 전 고영서예요
태희 알아요
영서 어떻게 알아요?
태희 이름표를 봤죠
영서 아 그래요
#34 산굼부리 매표소 앞 (낮)
매표소앞에서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두사람
영서 (소근소근) 안사도 된다니까요 빨리가요
태희 난 그런 거 싫은데....
영서 (먼저가며 오라는 손짓) 뭐 어때요 얼른
영서 (검표원에게 인사하며 사투리로) 혼저 잘 계셔수광?
오늘도 맨드롱 또똣할 거 같지예?
검표원 (사투리) 기여 경 할거담다. (태희를 보더니) 오늘은 그냥 놀러왔 시나?
영서 (사투리) 예 수고합서 빨리 오세요
영서 태희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신호한다.
태희도 쭈삣 검표원에게 인사하고 들어선다.
#35 산굼부리 (낮)
좀 떨어져 어색하게 둘러보는 두사람
영서 왜 공짜를 싫어해요? 머리 벗겨질까봐서요?
태희 (웃고는) 아니요 사람은 초라하게 만들잖아요 괜히 친한 척 해야 되고
영서 아 폼생폼사 스타일이시구나?
잠시 커다란 분화구를 내려다보는 두 사람
영서 산굼부리는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군에요 백록담보다 휠씬 커요
어때요? 느낌이 와요 (대답이 없자, 강요하듯)
참내! 화산분화구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거라니까요?
안 특이해요
태희 (웃으며) 네 특이하네요
#36 휴게소 (낮)
걷던 영서가 가판대에서 진열해 놓은 선인장을 발견한다
영서 (다가서며) 어 예쁘다. (선이장을 들어 태희에게 보이며) 예쁘죠?
태희 (이상하다는 듯) 선인장 좋아해요?
영서 안 예뻐요?
태희 그럼 하나 사줄까요?
영서 (놓으며) 아니예요 집에 많아요
태희 왜 하필 선인장을 좋아요? 예쁜 꽃이나 나무도 많은데
영서 오래가잖아요 변하지도 않고
#37 샛길 (낮)
저멀리 버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두사람
영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예요
근데 관광객들 데리고 다니다보면 이런데 그냥 지나치게 돼요
솔직히 길 같은데 관심있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사람들은 어디 도착해서 무언가를 보기를 원하지 가는 길에 뭐가 있는지
관심이 없나봐요
#38 산책로
귤나무 사이를 거닐며 얘기를 나누는 두사람
영서 이게 뭐야는 무신거라고요 그리고 드세요는 먹읍서
또 걱정하지마를 저들지맙서
태희 재미있네요 무신거라 또 뭐라고했죠 저들지맙서 그럼 귤은 뭐라고 그래요
영서 미깡요
태희 미깐
영서 미깐이 아니고 미깡요
태희 아! 미깡
이때 태희는 귤나무의 귤을 따려하자 말리는 영서
영서 이거 따면 안되는데....
태희 (귤을 따서 들고) 뭐 어때요?
영서 (당황해 하며) 그냥 돌아보지 말고 가요
이때 저멀리 과수원 농부의 소리가 들린다.
태희 죄송합니다
태희와 영서는 줄행랑을 친다
#39 송악산 동굴길 (낮)
좁고 가파른 길을 가는 영서와 태희
태희가 앞에가고 뒤에 영서가 간다
태희 정말 애인없어요?
영서 네 태희씬요?
태희 나도 없어요
영서 에이 있을 거 같은데? 말해봐요
태희 (난처한) 뭘 말해요
영서 (관심 없다는 듯) 그냥 서울 여자는 어떤지 궁금해서 그래요
얘기좀 해죠봐요
태희 참 내 그럼 하나씩 물어봐요
영서 거봐 있으면서 그 여자 직업이 뭐예요
태희 (말할까 말까)...은행원요
영서 이름은요
태희 김은영
영서 그럼 은영씨 어디가 제일 좋아요
태희 (잠깐 생각하더니) 어..화내는 걸 못 봤어요
영서 (조금씩 새침해지며) 어디서 젤 처음 만났는데요?
태희 은행에서요 우리회사 로비에 있는 은행에 근무하건든요
영서 (끄덕이더니) 집은 어딘데요?
태희 집이요? 몰라요
영서 아니 서울 암자들은 데이트하고 집까지 안 데려다 줘요?
태희 아 그렇진 않아요 아직 데이트를 못해봤으니까?
영서 (얼른 따라가며) 뭐라구요?
태희 은행 갈 때 보기만 했고 말은 아직 못해봤어요
영서 (어이가 없어) 아직 말도 못 붙여본 여자라구요? 왜 말을 못 걸었어요?
용기가 없어서요?
태희 아니요 그런건 아니고....
영서 그럼 왜요?
태희 글쎄요 말을 하고 나면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으테고 커피를 마시고 나면
손도 잡고 싶을 거고 손을 잡고 나면 뽀뽀도 하고 싶을 거고 그렇게 되면
집에 데려와서 같이 살고 싶어질텐데.... 그게 쉽지가 않을 거 같아서요
영서 왜요?
이때 유난히 높은 계단 하나, 힘들게 오르려하는데 태희가 손을 내민다
수줍은 듯 잡고 올라가는 영서
태희 우리 아버지하고 친해 질수 있는 여자는 드물거든요
막상 올라서니 좁은 계단에 비좁게 서 있는 두사람 잡은 손이 약간 어색하다
영서 (머쓱한 기분을 지우려고 농담) 아버지께서 되게 무서우신가봐요?
태희 아니요 꼭 그런건 아닌데 다른 분들 하고 좀 다르시거든요
#40 어촌 체험 어장 (낮)
드넓은 모래 뻘에 앉아 고개를 맞대고 조개를 캐는 영서와 태희
영서 (막대기로 파며) 마지막으로 연애한거 언제에요 진짜로 연애한거
태희 (맨손으로 퍽퍽 파내며) 한 1년 됐나....? 작년 가을에요
영서 그 여자한테 첫눈에 반했어요?
태희 과 동기였으니까 입학하고 내서 매일 봤을테데 생각이 안나요
언제 처음 봤는지...
둘을 엉금엉금 자리르 옮겨 나간다
영서 친구가 그러는데 첫눈에 반하지 않으면 시간낭비래요
태희 물론 첫눈에 반하면 좋겠죠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잖아요
영서 (빼꼼히 보는)....?
태희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사랑에 빠지게 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오래 지속시켜주는 건 아닌 것 같애요
영서 (끄덕이다가) 혹시 왜 헤어졌는지 물어봐도 돼요?
태희 (얼버무리는) 글세, 왜 헤어졌더라...
태희 (대답을 피하려고 갑자기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와! 되게 많이 팠네?
우리가 이만큼 다 판거예요
영서도 허리를 펴고 일어선다.
둘은 제법 넓게 파헤쳐진 곳을 둘러보며 웃는다.
#41 신양 해수욕장 백사장 (낮)
태희의 배낭과 영서의 가방 옆엔 햇살을 받는 둘의 신발 뿐.
두 사람은 없다. 그 위로
태희(E) 작년 이맘때쯤 해남 땅끝마을에 간 적이 있었어요
여자랑 헤어지고 나서 혼자 불쑥 떠났는데
밤이되니깐 기분도 울적하고 해서 밤바다에 나가롭라고 민박집 주인한테
바닷가가 어디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아저씨가 슬리퍼를 신고 가라고 노란색 슬리퍼있잖아요
그걸 내주더라구요
#42 해남 땅끝마을 (밤)
태희(E) 그래서 슬리퍼를 빌려 신고 소주도 한병 사가지고 바닷가에 나갔죠
내딴엔 온갖 심각한 폼을 혼자 다 잡고 있는데 갑자기 이만한 파도가
밀려와서 그만 슬리퍼 한짝을 싹 물고간 거예요
영서(E) 그래서요?
태희(E) 뭐 어떻게 해요 빌려온건데 찾아야죠 그런데 이거 밤이라 뭐가 보여야죠
그래서 한참동안 슬리퍼를 찾아 헤매다녔어요
그러고 있는데 갑작 황당 하더라구요
영서(E) 왜요
태희(E)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자 때문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심각하게 있다가
갑자기 슬리퍼 한짝을 찾겠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나를 보고 있으니깐
참 한심하기도 하고....
#43 신양 해수욕장 백사장 (낮)
영서 그래서요? 결국 못 찾았어요?
태희 아니요 찾았죠 그 놈의 노란 슬리퍼 찾자마자 바로 민박집을 직행했죠
깔깔대고 웃는 태희와 영서
#44 도깨비 도로 (낮)
두 사람은 음료캔을 굴려보며 신기해 한다.
캔이 오르막으로 거꾸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태희 아무리 봐도 신기하네 어떻게 이게 거꾸로 올라가지?
영서 그러니까 도깨비 도로죠
태희 (또 굴러보며) 꼭 마술에 걸린거 같애요
영서 (도려변에 앉으며)
우리 아버지가 이 도로를 만들다고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태희 (나란히 앉으며) 무슨일을 하셨는데요?
영서 전기 가설 공사 책임을 맡고 계셨대요
영서 단테 여행객들이 오면 이 도로에 내려놓고 공을 굴려보게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정말 신기하게도 공이 오르막으로 굴러 올라가면 아버지가
나한테 농담을 하고 계신다는 기분이 들어요
아버지를 기억도 못하면서요 우습죠?
이때 멀리서 트럭이 한 대 온다.
영서와 태희 트럭을 세우려고 손을 흔드록 달려간다.
트럭이 선다.
#45 달리는 트럭 뒤칸 (낮)
쪼그리고 앉아있는 둘.
둘은 무릎을 세우고 비좁게 닿을 듯 붙어 앉아있다.
두사람 뒤로 커다란 말 엉덩이가 보인다.
말들을 싣고 가는 트럭이다.
재미있어 키득거리는 두 사람.
그러다 웃음을 멈추고 어색해지면 달리는 풍경을 보는 영서와 태희.
번갈아 서로를 바라보다가 눈빛이 마주칠 듯하면 시선을 돌리는 두사람
#46 앞오름 숲길 (낮)
숲길을 걸아가는 영서와 태희
태희 아직 멀었어요?
영서 다 왔어요 조금만 더가면 돼요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태희 (배낭에서 꺼내며) 또 아버지 신가봐요 (전화를 받는 )여보세요...네?
무슨 차를 빼요?...네, 흰색 액센트는 마즌ㄴ데요
차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잠실이요?
(웃으며) 제차가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요? 제주도요 예!
(전화를 끊고 다시 배낭에 넣으며) 잠실인데 차 빼 달래요
둘은 웃는다
#47 앞오름 고목 나무 밑 (낮)
약간 사이를 두고 벤치에 앉아있다.
병에 든 음료를 빨대로 마시며 땀을 식히고 있는 두 사람.
태희 그런데 왜 하필 이 나무예요? 내가 보기엔 다른 나무랑 똑같은데?
영서 그냥요!
태희 그냥이란건 말이 안되요
영서 왜요?
태희 왜라뇨 좋아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영서 비밀인데...
태희 비밀 지킬게요
영서 좋아요 그럼 대신에 제가 먼저 뭐 한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태희 네 물어봐요
영서 (농담하듯 웃으며) 태희씬 첫키스 한 곳이 어디에요?
태희 (황당한 표정으로)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봐요? 아! 그럼 여기가
영서 실은 왠지 그날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준비를 좀 했죠
첫 키슨데....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되니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 뭐예요
그 남자 너무 놀래서 내가 자기 싫어하는 줄 알고
그후론 연락을 안 하는 거 있죠
크게 웃는 태희
영서 웃지마요?
(괜히 말했다는) 이 얘기 아는 사람은 제친구 한 명 뿐이란 말예요
태희 (웃음을 참으며) 알았어요 비밀 지킬게요
영서 (일상적인 투로) 언젠가 애인이 생긴다면 이 나무 밑에 다시 오고 싶어요
아름드리 뻗은 나무 밑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두사람
#48 강정포구(밤)
환하게 불을 밝힌 고깃배 위에서 부눚하게 일하고 있는 어부들.
서로를 부르는 시끄러운 소리 두사람은 구경하며 걷고 있다
영서 정말 왜 혼자서 여행왔어요?
태희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영서 그럼요 분명히 무슨 고민 있죠?
대답을 않는 태희, 이때 오토바이 한 대가 영서의 곁을 스치듯 지나간다
태희 (영서의 어깨를 확 끌어당기며) 어? 괜찮아요
영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네.
태희 큰일 날 뻔했어요
#49 포구근처의 식당(밤)
영서 섬 여자들을 좀 억세요 삶의 중요한 순간이 왔을때 무척 강하죠
태희 같이 근무하는 입사 동기가 그러든데
제주도 여자는 반응이 업다고 하대요?
바빠서 며칠식 전화를 못해도 전혀 화도 안내고 선물을 사줘도 기뻐하는
것 같지가 않대요
영서 더러 무덤덤한 여자들이 있지만 다 그렇진 않아요
태희 아무튼 그 친구는 무반응에 지쳐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서 (의미없이 끄덕이다 궁금한)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헤어졌어요?
태희 아니요 결혼했어요 얼마 전에....
영서는 그러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끄덕거린다
태희 무슨 표정이 그래요?
영서 제주도 여자들은 원래 물에 남자랑 결혼을 잘 안하거든요
태희 응? 왜요?
영서 모르겠어요 어쨌든 어른들은 결혼은 제주도 남자와 해야한다고 생각하세요
육지 남자는 떠날 생각만 해서 행복할 수가 없대요
태희 (궁금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해요?
영서 글쎄요 모르겠어요 누구랑 결혼하게 될 지 어떻게 알아요?
#50 정류장 (밤)
정류장 앞을 지나는 둘. 계속 걸었던 둘은 좀 지쳤다
태희 다리 아프지 않아요?
영서 조금요
이때 정류장에 혼자 서 있던 할머니가 둘을 부른다.
작은 가방을 들고 있다
할머니 (허둥대는 눈빛) 나 좀 잠깐 보소! 서울을 갈라고 그러는데요
영서 여기서 100번 버스 타시구요 공항에 내려달라고 하세요 할머니
태희 살펴가세요 할머니
영서와 태희 인사하고 돌아선다
할머니 (계속 따라오며) 저기 딸래집 간다 그래서 왔는데요
우리 아들을 찾아야 서울을 갈건데....
영서와 태희 다시 돌아본다
#51 경찰서 (밤)
배달된 국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할머니.
신경질적으로 동하는 어딘가와 큰소리로 전화하고 있다
동하 (수화기를 막고 할머니에게) 아니!
서울시내에 신사동이 하나인지 둘인지 잘모르잖아요!
예 잠시만요 할머니 댁이 무슨구 신사동인지 모르세요
할머니 번지를 몰르고 우리 아들 이름이 서준식이여 서준식이!
동하 (다시 전화에다) 여보세요 예?
무슨 구 신사동인지는 모르고 보호자가 서준식이 라는데요?
서짜 준짜 식짜 서준식 예 전화해주세요 예 수고하십시요
(끊으며) 아무튼 서울 놈들은 안돼
저쪽에 떨어져 있는 태희에게 딱 꽂히는 동하의 시선
동하 (영서에게) 뭐야? 아는 놈이야?
영서 (한번 흘기고 무시하는)
어차피 오늘은 어디 계셔야 되는데 어떻게 할 거야?
동하 (유치장 가리키며) 잘데 많은데 무슨 걱정이야
너야말로 여깃놈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만났어?
영서 유치장에다 재운다구?
#52 영서집 방 (밤)
잠든 할머니를 두고 방문을 닫는 영서
#53 약국 (밤)
엄마는 없고 영서와 태희는 차를 마시고 있다
영서 소설 쓰는 모임에 가신 모양이에요
태희 소설가 엄마를 두셨어요?
영서 소설가면 괜찮게요?
가족 중에 소설가 지망생이 있으면 얼마나 고충이 심한지 모르죠?
매번 탈고하면 읽어줘야죠 되지도 않는 칭찬해야지
게다가 읽고나서 흠이라도 잡으면 그대 부턴 모녀지간은 끝장나요
웃는 태희. 이때 손님 들어오는데
영서 (손님에게) 죄송해요 지금 약 못팔거든요
요기 밑으로 내려가다보면 한라약국이라고 있거든요 글루가세요
손님 아예 여기 옆에 골목에 있는거요
영서 (이야기 계속하는) 게다가 신춘문예 철만 돌아오면요
밥도 안하고 약방문 닫아걸고 집필에만 전념 한다니까요
(떨떠름하게) 진짜로 심한 건 가끔 소설 속에 나를 집어 넣는다는 거에요
아무리 찾아봐도 칭찬이라고는 한 마디도 없어요
태희는 웃는다
영서 아무튼 우리 엄마처럼 평생 혼자서 소설쓰는 사람도 전세계로 보면 꽤
있을거에요
(시간경과)
시진첩에 꽂힌 관광지에서의 부부 사진들이 보여진다.
신혼부부, 노부부, 여행지에서까지 화가나 있어 뚱한 표정의 부부,
흰머리를 뽑아주는 중년부부 등.
영서 (소리) 이렇게 보니까 참 많은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거쳐갔네요
5년 동안 매일 똑같은 코스에 똑같은 말만 늘어 논 거 같아요
영서와 태희는 약장 안쪽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첩을 보고 있다
태희 (미소를 지은 후) 그런데 왜 이런 사진을 모아두게 됐어요?
영서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추억이 많다잖아요
생각해 보니까 나는 추억이라고 할 만한게 없었던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내가 있을 테니까
나도 이사람들을 추억으로 만들기로 한 거에요
이때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들어온다
영서 (놀라 일어서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이때 엉거주춤 인사하며 일어서는 태희를 본다
엄마 (놀라) 누구니? 누구세요?
영서 여행 온 사람인데.... 박태희씨라고....
엄마 (다 듣지도 않고) 너 나 좀 보자 잠깐 들어와봐
엄마는 휭하니 약국 내실로 먼저 들어 간다.
이내 다시 나오는 엄마
엄마 (이번엔 더 놀라서) 저건 누구니?
#54 버스 정류장 (밤)
둘은 정류장을 향해 걸어나온다
영서 할머니 일로 괜히 태희씨까지 번거롭게 했나봐요
시간을 너무 많이 뺐겼죠?
태희 아니요 사진첩도 보고 좋았어요
영서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태희 (지갑을 꺼내 돈을 내밀며) 아 참 저...덕분에 고마웠어요
영서 (역시 아쉬운) 저두요 근데 이거 받아도 되나?
태희 그럼요 (농담) 대신에 팁은 없어요
가볍게 웃는 둘.
이때 버스가 온다
이제 둘의 표정은 좀 다급해진다
영서 저기 오네요 (머뭇거리다) 그럼 남은 하루도 잘 보내세요?
태희 영서씨도 잘 지내요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태희.
아쉽게 바라보는 영서.
태희 (돌아보며 큰소리로) 아참! 그날 나보고 가보라고 한 데가 어디였죠?
영서 추자도요
태희 (잘 들리지 않는) 네?
영서 추자도!
태희는 끄덕이며 버스를 향해 돌아서는데 그때 버스 떠나버린다
둘은 우스으며 서러에게로 가까이 걸어온다.
막상 만나니 웃음도 멎고 할 말이 없고 왠지 어색하다
생각은 딴데 있고 괜히 다른 말만 한다
영서 (태희를 힐끔 한번보고는) 추자도는 배가....
아마 하루에 한번밖에 없을 거에요 아홉신가?
제주항에 한번 전화해보세요 내이름 대면 뱃삯도 깎아줄 텐데....
그런거 싫다 그랬죠?
둘은 잠시 말이 없고 머쓱하다
영서 저두 작년 이맘때 가보고 한번도 못 가봤어요...
지금 이 맘때면 물빛이 투명한게 참 좋을때에요
태희 그럼 같이 갈래요? 아 참 내일 시간은 괜찮아요?
영서 (알면서 괜히) 내일이... 무슨 요일이지?
태희 금요일이요
영서 그럼 괜찬하요
(괜히 해명) 신혼여해은 주말에 많이 오니까 일월화까지는 바쁘고
수목금은 대개 쉬거든요
#56 공중전화 (밤)
상기된 표정으로 전화를 거는 영서
영서 거기 팀장님 댁이죠? 아직 안주무셨어요? 저 고영서 인데요
(울쌍이 되며 고심하는) 저기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열도 나고
(일부러 기침을 하면서) 감긴가봐요 그래서 내일 저 대신
(기침) 다른사람으로 좀 바꿔주셨으면 해서요
#56 약국 앞 (밤)
동하와 엄마가 할머니를 경찰차에 태우고 있다
할머니 (인사하고 나오며) 고맙십니더
영서 (가방 들고 따라 나와) 할머니! 걱정마세요
동하 영서야 니가 남자를 몰라서 그래. 여행 온 놈들이 말이야
여자 한번 꼬셔서 어떻게 해볼려고 그러는 거라니까
영서 신경 꺼. (할머니를 향해) 할머니 조심해서 가세요
할머니 걱정마이소 근데요 아까참에 그청년요 억수로 좋습니더
동하를 차에 타라고 미는 영서
동하 내가 경찰소에 있어서 잘 아는데
영서 알았어 너나 잘해
동하 (차에 타며) 다 너 생각해서 해주는 거야
너처럼 순진한 애는 더 위험하다구. 내말 깊이 새겨 들어! 갈게!
동하를 태운 경찰차가 떠나고 엄마와 영서만 남는다
엄마 (걱정이 섞인) 그래 어쨌든 그 사람은 곧 떠날 사람 아니니
그 말에 시무룩하게 돌아서는 영서.
영서 내가 뭘 어쨌다고
엄마 제주도 여자가 육지 남잘 만나면 불행해져!
영서 (돌아서며) 엄마도 만났으면서 뭘?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니. 보고도 몰라?
영서 아빤 다르잖아. 뭐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고 싶어서 그랬겠어?
약국 안으로 들어가는 영서. 엄마 혼자 남는다
#57 호텔룸 (밤)
맥주를 마시며 침대에 누워있는 태희.
손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만져본다.
멋쩍은 미소를 짓는 태희
#58 추자도 행 배 안 (아침)
상쾌하게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배
태희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은 어디로 신혼여행가요?
영서 설악산이나 경주요? 예전엔 동남아로도 많이 갔어요
태희 그럼 영서씬 어디로 가고 싶은데요?
영서 전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태희 제주도엔 눈 안 오나보죠?
영서 오긴 와요 한라산에 올라가면 내리죠 눈꽃 축제도 하는데요
태희 그럼 한라산에 가면 되겠네요
영서 근데 한번 가봤는데 눈을 맞니는 못했어요 쌓인 거만 보고
웃는 태희.
영서 정말 눈이 내리면 축복 받은 기분일거 같아요
이때 누군가 남자가 태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남자 저 죄송합니다 사진좀 찍어주시겠어요
태희는 카메라를 받아들고 화인더를 들여다본다.
촛점을 맞추는 태희.
화인더 안으로 남자가 들어가고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는 여자.
은미다.
은미 (태희를 알아보고 좀 놀라는) 어!
태희는 문득 멈칫하며 카레라를 내린다
은미 (먼저 다가오며) 우리과 동기야 박태희라고....
무심코 보고 있던 영서도 은미를 본다
은미 어 나 결혼했어 (남자를 소개하며) 우리 신랑.
남자 반갑습니다. 최철흡니다.
남자는 악수를 청한다.
머쓱하게 악수를 하는 태희.
태희 (은미에게) 신혼여행 왔나봐?
뱃전.
영서는 혼자 몇 발짝 떨어져 있고 서너 명의 사람들 너머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태희와 은미가 보인다.
은미 어떻게 지내?
태희 잘 지내? 넌
은미 나두 간간이 소식은 들었어. 광화문에 있다며?
태희 응
은미 어쩜 같은 광화문에 있으면서 1년 동안 한 번도 못 봤을까?
태희 난 너 본 적 있어
은미 그래...? 왜 아는 척 안했어? (마땅히 할말이 없어서) 아버님은 안녕하시지?
태희 집 안에서 살살 왔다갔다하실 수는 있어
은미 잘 됐다...참 그 카페 주인 바뀐거 알아?
태희 알어
은미 옛날 주인 친구래
이때 남자가 오고 태희는 다소 소외된다
남자 (대뜸 들어서며, 은미에게) 이렇게 하기로 했어.
오늘 추자도 에서 하루 묵고 내일 올라 가기로
은미 잘했어요
태희 (영서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남자에게 인사) 그럼 전 일행이 있어서 이만....
남자 아니 왜요? 같이 점심이라고 같이하시죠 추자도에서 내리는 거 아니세요?
태희 (머뭇거리다) 아니요 저흰...마라도까지 갑니다.
남자 아! 그러세요
그 소리에 돌아보는 영서, 태희 힐끔 영서를 보고 영서는 얼른 모르는 척 시선 돌린다.
#59 추자도 선착장, 동 배 안 (낮)
선착장에서 다시 출발하는 배 안.
선착장에 내린 은미와 남자가 손을 흔들고는 멀어진다
태희와 영서는 배 안에 남아있다.
태희의 무거운 표정을 읽는 영서
태희 (변명하듯) 어떡하죠? 못 내려서
영서 (태연한 척) 원래 추자도보다 마라도가 더 좋아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섬인데 깎아지르는 절경도 추자도 보다 휠씬
멋있고 등대도 얼마나 근사한데요 게다가....
그러다 태희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무는 영서.
둘은 잠시 어색하다
#60 최남단 비 앞 (낮)
최남단 기념비를 보고 있는 태희.
둘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좀 말이 없고 쓸쓸하다.
태희가 먼저 돌아서면 영서도 따라 돌아선다
#61 마라도 해안 절벽 (낮)
해안 절벽을 걸어가는 영서와 태희
태희 어제 그 여자하고 어떻게 헤어졌냐고 물었죠?
영서 (태희를 볼 뿐)....
태희 그때 우린 결혼을 3주일 앞두고 있었어요
집도 보러 다니고 혼수 준비로 바빴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큰 수술을 받으셨고 의사는 거동을 할 수 없을 거라고 그랬죠
난 그여자한테 결혼을 하면 아버질 모셔야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갑자기할말이 있다고 하대요
생각해보니 우린 안 맞는다며 결혼을 없었던 걸로 하자고요
여자들은 솔직하지가 않은 것 같애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다고는 말하지 않죠
우린 안맞는다는거. (가볍게 자조가 느껴지는 웃음)
여자들은 그렇게 얘기해요 우린 안 맞는다고
영서는 쓸쓸한 태희의 모습을 바라본다
태희 (계속) 돈이 없어서 싫다는 말도 우린 안 맞는다고 하고
부모를 모시기 싫다는 말도 우린 안맞는다고 하죠
집이 없어서 번듯한 직장이 아니어서 키가 작아서 어떤 말이든
우린 안 맞는다고 말해요 5년을 사귀었는데 우린 잘 안 맞는다니...
이때 언뜻 영서와 시선이 마주치자.
태희 참 웃기죠 여기까지 와서 만나다니
1년전엔 땅끝마을이고 지금은 최남단이라니
말없이 태희만 쳐다보는 영서
#62 사빈 백사 동굴 (낮)
비가 내리고 있고, 둘은 동굴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영서 (태희를 돌아보며) 아! 생각났어요
어제 제주도에 뭐 특이한 거 없냐고 했죠?
태희 (생각나는지) 아 네
영서 있어요 갈매기 낚시!
태희 갈매기 낚시요? 그게 뭔데요?
영서 물고기 낚시하듯이 갈매기 낚시하는 거예요
태희 (말도 안된다는) 아니 갈매기를 뭘로 잡아요?
영서 릴 낚싯대로요
영서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살아있는 미끼를 쓰는 방법이에요
물고기를 바늘에 꿰서 갈매기들이 막 하늘에 날아다닐 거 아니예요
그럴때 하늘에다 대고 낚시하듯이 휙 던지면 갈매기들이 물고기를 휙 물고
날아가요
태희 정말이요?
영서 네 그러면 하늘에다 대고 막 감는 거예요
미끼가 관건인데 파닥파닥거리고 신선할수록 더 잘 물어요
태희 그리고요? 또!
영서 두번째는 죽은 미끼로 하는건데
물고기를 바늘에 꿰서 물에 둥둥 뛰워 놓으면 갈매기들이 와서 휙 물어요
그때 탁 잡아채면되요
태희 (끄덕이며) 아...그렇지 둥둥 떠있으니까 와서 물겠네
영서 근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하늘에 다 하는 게 더 잘 잡힌 대요
태희 아무래도 살아있는 미낄 쓰니까 그렇겠죠
이때 낚시 채비를 들고 동굴로 뛰어 들어오는 중년 사내들.
어깨가 닿지않도록 움츠리는 태희와 영서
그러다 옆사람과 부딪치자 태희는 바로 옆 낚시 복장의 사내와 눈인사를 한다
태희 (어망을 들여다보며) 갈매기 낚시 하셨어요?
사내 (뭔 소리냐) 뭔 낚시요?
태희 갈매기 낚시요?
사내 (웃으며) 고래낚시 했수
킥킥 웃는 사람들.
이때 웃음이 터지는 동굴 안 사람들.
태희 둘러보더니 그제야 영서가 농담을 했음을 알게 된다
#63 동굴 (낮)
동굴을 구경하며 걸어 나가는 두사람.
둘은 숨소리와 발소리뿐 어색하다
영서 (문득 생각 난 듯, 태희를 향해 돌아서며) 서울가면!....
이때 동굴 벽을 구경하면서 따라오던 태희와 꽁 부딪치는 영서.
태희의 팔이 영서의 가슴을 스친다
태희 서울가면 뭐요?
영서 서울가면. 뭐하냐구요
태희 글세 뭐 일단 회사에 출근부터 해야겠죠 진짜로 짤리면 큰일나니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어 어색한 두사람.
이때 태희의 배낭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급히 배낭을 열고 탁상시계를 꺼내 알람을 멈추는 태희
영서 그런거 왜 가져지고 다녀요?
태희 일출을 보려고요...
영서 그래서 봤어요?
태희 아직 못 봤어요
영서 그럼..오늘밖에 시간이 없네요?
#64 해변 (밤~ 일출)
활활타고 있는 모닥불, 불을 피워놓고 있는 둘.
태희 무섭지 않아요? 낯선 남자와 밤에
영서 아니요
태희 정말 편해요?
영서 (끄덕이는)...네
태희 (배낭을 뒤져 긴소매 남방을 꺼내 주며) 춥죠! 이거라도 걸쳐요
영서 아니 괜찬하요
태희 (걸쳐주며) 입고 있어요
영서는 태희의 남방을 입고는 연기를 피하며 불을 피우는 태희를 본다
영서 (어느덧 편안해진 느낌으로) 공항에서 처음 봤을 때하고
지금하고 표정이 너무 달라보여요
태희 어떻게 다른데요?
영서 그땐 뭐랄까.... 약간 딱딱한 간장감 같은게 느껴 졌었는데
지금은 편안하고 여유있어 보여요
태희 그래요? 실은 제주도에 와서 오만에 많이 웃었어요
한 3년 치는 한꺼번에 웃는 거 같아요
편안하게 웃는 태희와 영서
(시간경과)
밤하늘의 별자리.
별을 가르키는 두 사람의 손갈가이 보인다.
그 위로 둘의 대화 소리 들려온다
태희(E) 저기.. 저기 보이죠 저기서 이렇게 이어지는...그게 물병자리에요
물병모양 보여요?
영서(E) 네 보여요 태희씨 별자린 뭐예요
태희 저쪽에 황소자리요
영서 어디요?
태희 저기 유난히 밝은 별 있죠? 왼쪽으로 죽 가면...(손가락으로 모양 그리며)
이렇게 있는 게 황소머리를 닮았다 그래서 황소 자리에요
영서 황소자리는 부드럽기는 하지만 우유부단 하다는데 정말 그래요
태희 그런편이죠
영서 안 그럴거 같은데? 결정같은거 잘할거 같은데...
태희 아니요 실은 이번 여행도 그래서 오게 된거예요
오랫동안 준비 했던 일이 있었거든요
외국에 파견 근무를 가기로 되어 있던 일이었죠
회사에서도 좋은 조건을 약속했고 정말이지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는데
영서 ...
태희 포기했어요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할수가 있어야죠
영서 그래도 태희씨 인생은 태희씨 꺼잔하요 후회할 일은 하지 마세요
씁쓸하게 웃는 태희.
영서, 그런 태희를 쳐다본다
태희 (애써 밝은 톤으로) 참 좋네요
마음만 먹으면 불과 한시간만에 이허게 올 수가 있는데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서울에선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거든요
영서 서울에 있다면 지금쯤 뭘해요?
태희 글쎄 전자파 같은 인간들한테 시달리고 있겠죠
아니면 전철에서 졸고 있거나
아!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친구들을 만나고 있겠네요
영서 친구들 만나면 뭐 하는데요?
태희 주로 술을 먹죠. 잘가는 카페가 하나 있어요
회사옆 건물에 있는데 2차로 주로 거기에서 당구를 치며 맥주를 먹죠
영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것도 매력이 있을 거 같은데?
태희 언제 한번 놀러 와요 그땐 내가 가이드 해 줄 테니까
둘은 기분이 좋아진다
태희 그런데 참 이상하죠?
지금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서울이 그리워져요
떠난 지 사흘 밖에 안됐는데
(갑자기 생각이난 듯) 옛날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 서울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빨리 돌아가고 싶고
다시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 들거든요
영서 나도 다른 곳에 가면 이곳이 그리워질까요?
태희 그럼요 여행은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하는 건데요
그 말에 영서는 갑작 우울해진다.
영서 (잠시 후 ) 맞아요 여긴 잠시 왔다가 가는 곳이죠
문득 영서를 보는 태희
영서 돌아가면 다른 사람처럼 날 기억해 줄건가요
태희 그럼요
영서 그래요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쉽게 낭만적인 감정에 빠져들죠...
그래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추억이 되버리는게
아닌가요
태희 (의아한)... 그게 뭐 잘못 됐어요? 추억을 같는 다는게....
영서 (은근히 화가 나는) 아니요
잘못된건 없지만 난 그런 추억 속의 상자가 되고 싶진 않아요
영서는 감정을 드러낸 것이 속상해 태희를 외면하고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터벅터벅
간다.
이런 영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희.
영서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있던 태희, 조심스럽게 영서에게 다가간다
태희 영서씨 나좀봐요 서울하고 제주도는 그렇게 멀지 않아요 알죠!
천천히 돌아서는 영서 두사람의 짧은 키스
(시간경과)
다 타버린 모닥불
이때 해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일출을 향해 나란히 선다.
태희가 손을 잡자,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는 영서
순식간에 둥그런 모습을 드러내며 쑥 올라오는 아침 해.
#65 항구 앞 (아침)
영서는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뒤늦게 전화를 하고 있다
영서 (쩔쩔매는) 엄마 그런 게 아니구...(펄쩍 뒤며) 일은 무슨 일?
그냥 마라도에 놀러왔다가....(놀라며) 뭐? 팀장님이 전화하셨어?
(괜히 태희 눈치까지 살피며) 아니 그런게 아니구...
원래는 감기에 걸리기로 되어있었지...(호통을 치는지 주눅들며)
알았어 지금 들어가 간다니까 엉.
영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돌려준다.
태희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는다.
태희 얼른 가봐요 집에 들렀다 또 출근해야 되죠?
영서 섭섭한 듯 끄덕이다가 이내 허둥채며 서 있는 택시를 향해 간다
태희 잠깐만요
태희도 따라가다가 급하게 영서를 잡는다.
태희는 얼른 영서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는다
태희 (다급하게) 핸드폰번호예요 지워지지않게 조심해요
영서 있다가 공항에서 만나요 3시 20분 비행기랬죠
이때 다시 크락션 울리자 택시를 돌아보는 영서
태희 그 전에 만날 수 없어요?
영서 몇 시쯤에요?
태희 1시쯤? 호텔커피숍 아니...그나무 아래 어때요?
영서 네 좋아요
영서 택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돌아선다
영서 안경 좀 벗어 볼래요?
태희 왜요?
태희가 안경을 벗자 영서는 미소를 짓는다
영서 (수줍게) 눈이 보고 싶어서요
영서는 택시안에서 태희가 적어준 번호를 본다
#66 미스홍 가게 (낮)
셀레는 마음으로 선물 고르는 영서.
심상치 않게 영서를 바라보는 미스홍
#67 앞오름 나무 밑 (낮)
손아귀에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영서.
흔들리는 나무 가지 사이로 서성이는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시간경과)
나무 아래 벤치에서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영서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태희는 오지 않는다.
#68 공항 탑승구 앞 (낮)
서울행 3시 20분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전자 안내판이 깜빡거리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여직원 (컴퓨터를 보며) 이 분 좀 일찍 떠나셨는데요
12시 비행기로 바꿔 타셨네요
실망해서 돌아서는 영서.
#69 전화박스 (낮)
영서 손바닥의 흐릿해진 숫자를 들여다보저니 전화를 건다.
흘러나오는 핸드폰 회사의 수신불가 메시지
소리 지금 거신 전화는 수신자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70 공항벤치 (낮)
멍하니 벤치에앉아있는 영서.
무릎위엔 태희에게 줄 선물이 놓여있다.
이륙하는 비행기를 쳐다보는 영서
#71 특산물 쇼핑 코너 (낮)
진열장에 턱을 고이고 있는 영서
미스홍 연락이 없는 거로 봐서 일부러 안 나온 게 틀림없어
영서 (버럭 화를 내는) 니가 뭘 안다구 그러니?
휭하니 나가는 영서를 보는 미스홍.
걱정되는 표정이다.
#72 몽타주
(공항 주차장 버스 안. 낮) 영서는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다
(비자림 그 나무 아래. 낮) 여행객들을 인솔하며 가이드를 하고 있는 영서.
예전과 다르게 시무룩하고 풀이 죽어있다.
둘이서 앉았던 벤치를 본다.
(약국. 밤) 퇴근하는 영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동하가 영서를 반긴다.
영서는 동하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들어가버린다.
(영어학원. 아침) 동하가 영서의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되지도 않는 영어를 따라하고 있다.
강의를 하고 있는 학원강사.
갑자기 울어버리는 영서, 영서를 쳐다보는 강사와 수강생들, 동하가 영서를 안아준다.
안겨서 우는 영서.
#73 영서집 거실 (밤)
다림질을 하고 있는 영서.
멍하니 딴 생각을 하다가 가이드 유니폼을 태워 먹는다
영마 (연기가 올라오자) 얘 좀 봐 얘!
영서 화들짝 놀라지만 이내 멍해진다
엄마 (한심하다는) 그 남자가 잘해준건 여행와서 들떠 있어서 그런 거야 알어?
영서 (스스로도 화가 나) 그래 엄마 말이 맞어! 다 맞다구 됐어?
엄마 얘가?....(그러다 미안해지며) 인줘봐
유니폼의 상태를 살피는 엄마
영서 그냥 버려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넣는다)
두 사람 다 속이 상해 서로 말이 없다
엄마 미안해 너한테 화낸 게 아니야 나 자신한테 화가 났던 거야
영서도 미안해지며 엄마를 본다
엄마 (자기도 속상한) 니 아버지 실은 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랑 날 두고 떠나버렸어
놀라는 영서, 엄마를 본다
엄마 육지 남자는 기다릴 거 없다. 알았지? (나간다)
혼자 남은 영서, 넋이 나간 듯 멍해진다
#74 해변 (밤)
비가 오는 밤바다. 영서가 비를 맞고 서 있다.
#75 영서 방 (밤)
태희에게 주려던 선물을 서랍 속에 넣고 닫는 영서
#76 여행사 사무실 (낮)
분주하게 바쁜 여행사 사무실.
한 여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다.
여직원 (전화를 받는) 고영서씨 오늘 비번인데요 (메모하며) 박대희 씨라구요
(글자 위에 굵게 수정해서 쓰며) 아 박태휘요? (전화 번호를 적으며)...네에
(전화를 끊고 메모지를 죽 찢어 다른 가이드에게 주며)
나 내일 비번이거든 이거 영서 좀 전해줄래?
여직원2 그래 알았어...가만있자...영서 자리가....
여직원은 바쁘게 나가고 메모를 받은 다른 여직원도 역시 정신없이 바쁘다.
메모지.
#77 태희의 몽타주
태희가 약속장소에 나오지 못한 사연이 몽타주로 보인다.
(호텔) 짐을 싸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있는 태희. 문득 놀란다.
태희 여보세요? 네!
(공항) 비행기 티켓팅ㅇ르 다시 하는 태희.
잠시 후 다른 남자가 와서 태희 배낭옆에 선물 상자들을 놓고 티켓팅을 시작한다.
티켓을 받아들자 배닝을 집어들고 사라지는 태희. (똑같은 다른 배낭임)
선물 산자들에 가린 배낭에 매달린 마스코트가 태희의 배낭임을 알 수 있다.
(서울. 병실) 배낭을 맨 태 달려들어오는 태희. 아버지가 누워있다.
태희 어떻게 된거예요?
파출부 지금은 괜찮으셔!
(태희집 거실)
배낭이 전부 풀어헤쳐져 있고 태희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
태희 (전화하는) 그러니까 제말은 새 핸드폰을 분실한 핸드폰 번호로 받을 수
있냐는 거죠.... 아 답답하네
정말 그 번호로 받아야 될 전화가 있어서 그런다니까요?...
(사무실)
태희는 제주도 114에 전화를 건다.
신호가 가는 사이 분재를 치워버리고 선인장을 놓는 태희.
태희 제주시에 있는 범한 여행사요
(병실복도)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는 태희
태희 고영서씨 계신가요?...아니 박대희가 아니구요
여직원 고영서씨 오늘 비번인데요(off sound)
태희 그럼 메모 좀 부탁하빈다. 제 이름은 박태희라고 하는데요...
여직원 박대위라고 그러면 그냥아나요 (off sound)
태희 아니요 대위가 아니고 태희요
여직원 박태휘요(off sound)
태희 클태! 희망할 때 희요!
여직원 클태 자에 희망할때 희요(off sound)
태희 예 예 들어오시면 전화왔었다고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방을 잃어버려서 그러거든요
#78 여행사 (낮)
영서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태희의 배낭.
영서가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가이드1 (바쁘게 서류 챙겨 나가며) 공항에서 보내왔어.
저 가방안에 니 명함이 들어있었나 보더라
#79 영서집 방 (낮)
결심한 듯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 속에서 핸드폰이 나온다.
이게 여기 있었잖아? 도통 알 수 없다
#80 병실 (밤)
잠들어 있는 태희부.
그 옆에 태희가 졸며 앉아있다.
어버지의 인기척이 들리자 얼른 깨서 일불을 덮어주는 태희.
#81 태희집 거실 (낮)
콘택트렌즈를 눈에 넣는 태희
#82 태희집 거실 (낮)
영서와 함께 보던 지도로 비행기를 만들어 날린다.
날아가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종이 비행기
#83 영서집 거실 (낮)
태희의 회사 수첩을 보며 전화를 하고 있는 영서.
대기업 회사의 대표전화 자동 안내메세지가 흐른다
소리 안녕하십니까? 저희 삼영그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부서의 번호를 눌러주세요
총무부는 3511번, 해외영업부는 3515번, 영업관리팀은 3521번,
종합기획실은 3528번, 홍보부는 3601번
번호를 모르시면 0번을 눌러주세요
수화기를 내려놓는 영서
#84 미스홍 가게 (낮)
손님이 없는 가게 안.
미스홍과 영서가 무료하게 앉아있다.
미스홍 무슨 부선지를 알아?
영서 몰라
미스홍 집은 어딘데?
영서 몰라
미스홍 생연월일이나 주민등록번호는?
영서 몰라
미스홍 그런 걸 알아야 찾지. 니네는 아는 게 너무 없다
#85 병실 (낮)
잠든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는 태희
태희 괜찮은 여자에요 조금만 더 사세요 아버지 직접 보여드릴게요
아버지는 잠들어 있다.
손 끝에 난 상처를 쳐다보는 태희
#86 경찰서 (밤)
컴퓨터로 신원조회하고 있는 동하.
그 뒤에서 영서가 보고 있다.
동하 이거 불버이니까 어디 가서 내가 해줬다고 그러면 안된다.
박태희...가족사항이 아버지 뿐이랬지?
미안한 듯 미소를 지으며 동하를 보는 영서.
#87 병원뜰 (낮)
태희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공원을 산책하낟
태희부 (진지하게) 내가 아차 죽는구나 하는 순간에 무슨 생각했는 줄 아니?
태희 무슨 생각하셨는데요?
태희부 내가 네 앞길을 막고 있구나 그 생각했다
태희 .......
태희부 너 없을 때 회사에서 사람이 다녀갔어. 왜 나한텐 말안했니?
태희 아버지 전....
태희부 (말 끊으며) 시끄러 임마! 내가 책임지고 널 보내겠다고 했다.
기회란 게 두 번 오는 게 아니다. 나도 너만 없으면 프리야 알어?
그리고 괜찮다는 여자는 어떻게 된거야? 정말 있기나 한거야?
#88 병원 복도 (낮)
전화를 하고 있는 태희.
태희 고영서씨는 그럼 언제쯤 나오시나요?
여직원 고영서씨 지금 휴가중인데요 (off sound)
태희 네
여직원 월요일에나 출른할텐데(off sound)
태희 그래요
#89 제주 공항. 탑승 출구로 올라가는 에스켈레이터 (아침)
배행기 티켓을 들고 있는 영서
미스홍 (태희의 배낭을 들고) 사랑한다고 말할 거니?
영서 (긴장되는) 응
미스홍 너 그렇다고 너무 자존심 꿇릴 것 까진 없다! 알았지?
끄덕이는 영서
미스홍 어떻게 됐는지 제일 먼저 나한테 전화해야돼?
영서 알았어
미스홍 (괜히 자기가 화난) 안되면 그냥 와 남잔 얼마든지 많다!
#90 서울 광화문 네거리 (낮)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전경.
바삐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들의 물결.
그 속에 영서의 모습이 있다.
#91 회사 로비(낮)
구내 전화를 하고 있는 인산이 더러운 수위 옆에 영서가 서있다
수위 (힐끔힐끔 영서를 보며) 여기 수위실인데요
누가 찾아와서 그러는데 총무과에 박태희씨라고 있어요?
#92 태희 사무실 (낮)
여직원이 깨끗하게 치워진 태희 책상의 전화를 받고 있다.
여직원 (댕그라니 놓인 선인장을 들어보며) 박태희씨 이제 출근 안하시는데요
일본에 파견근무 나가시거든요
#93 회사 로비 (낮)
수위 (전화를 끊으며) 그 사람 일본에 간다는데?
영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94 빌딩숲 (낮)
빌딩들 사이로 힘없이 걸어가는 영서
#95 은행 (낮)
업무를 보고있는 김은영, 김은영을 바라보는 영서
#96 전철 안 (낮)
잠이 들어있는 회사원을 보는 영서.
멀리 63빌딩이 보인다.
#97 태희집 거실 (낮)
파출부 태희 지금 없는데...낼 모레 일본간다고 요즘 바빠요
영서 (현관에 서서) 어디 갔는지 모르세요?
파출부 여자가 생겨서 만나려 간다고 그러는거 같기도 하고...
태희부 (휠체어에서) 그러는아가씨는 누구요?
영서 (당황) 네. 저 가방을 주웠길래 전해드릴려구요
배낭을 놓고 얼른 인사하고 나가는 영서
#98 백화점 앞 거리 (밤)
실망해서 우울하게 걷고 있는 영서.
갑자기 눈이 내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백화점 홍보직원들이 뿌리는 스프레이 눈이다.
울듯이 허탈하게 서울 거리를 바라보는 영서.
검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99 약국 앞 (낮)
셔터가 내려져 있는 약국.
그 앞을 서성거리는 태희.
#100 카페 (밤)
카페 안은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하는 손님들로 붐빈다.
유독 혼자 앉아있는 우울한 표정의 영서 탁자 위엔 식은 커피와 선물상자가 놓여있다.
영서 뒤편으로 당구를 치고 있는 남자들.
태희 친구들이다. 태희는 없다.
#101 약구 앞 (낮)
셔터가 내려져있는 약구.
그 앞을 서성거리는 태희.
#102 지하도 (밤)
벽에 걸린 커다란 광고판.
관광 엽서 속의 사진과 똑같은 그림이다.
"사랑과 환상의 섬! 제주도로 오세요" 쓸쓸하게 광고판을 보고 있는 영서.
#103 약국 앞 (밤)
셔터가 내려져 있고 불이 꺼져있는 약국.
태희는 없다.
셔터에 붙어있는 메모가 바람에 펄럭거린다.
"...3일후에 일본으로 떠납니다. 오늘 밤 꼭 연락을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적혀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메모.
#104 호텔 방 (낮)
짐을 싸는 태희.
문을 닫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온다.
#105 제주 공항 (낮)
비행기 티켓을 들고 에스켈레이터로 향하는 태희.
표정이 무겁다.
이때 1층 도착 출구로 영서가 나온다.
영서 뒷켠으로 에스켈레이터를 탄 태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우울한 표정의 영서, 어쩔까하닥 동전을 꺼내며 공중 전화로 향한다.
실수로 동전을 떨어뜨리는 영서.
굴러가는 동전.
동전을 주우려고 따라가는 영서.
구 뒤로 태희의 모습이 멀어진다.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점점 멀어지는 두사람.
동전을 집어들고 일어서는 영서.
이때 1층 도착 출구에서 스타급 영화배우 남녀 한 쌍이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로비로 나온다.
터지는 후레쉬 불빛과 꽃다발, 몰려든 팬들로 떠들썩 한 소리에 바라보는 영서.
2층에서 난간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태희도 돌아본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스타 커플의 행복한 모습
기자1 (소리) 결혼은 언제쯤 하실 예정입니까?
남배우 5월말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2 특별히 제주도에서 약혼식을 올리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여배우 사랑하기에 좋은 곳이잖아요. 낭만적이구.
기자3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했습니까?
남배우 한 1년 됐죠
화려한 커플에게서 눈을 떠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는 영서.
쳐다보던 태희는 다시 2층을 향해 숙 고개를 돌린다.
미처 영서를 발견하지 못한 채.
화려하게 주목을 받는 커플 뒤로 초라하게 서 있던 영서도 돌아서고
멀리 2층의 태희가 사라진다.
영서도 돌아서 나간다.
#106 태희 아파트 단지 (낮)
택시에 짐을 싣는 태희.
파출부와 아버지가 배웅을 한다.
태희 자리 잡히는 대로 곧 모시러 올게요
태희부 내 걱정은 말고 너나 몸 조심 해
태희 (인사하는) 다녀오겠습니다.
태희부 그래
택시를 타고 떠나는 태희.
바라보는 태희부.
#107 서울 공항 국제선 청사 (낮)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가는 태희,
이때 벽에 걸린 커다란 광고판 옆을 지난다.
관광 엽서 속의 사진과 똑같은 그림이다.
" 사랑과 환상의 섬! 제주도로 오세요" 광고를 보는 태희.
#108 여행사 탈의실 (낮)
가이드 복장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는 영서.
락커 안에는 태희에게 주려 했던 선물 상자가 놓영있다.
어두운 표정.
그러나 잊겠다는 듯 리본을 힘있게 묶고 락커문을 닫는다.
#109 관광버스 안 (낮)
영서는 마이크를 들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대학생 청춘남녀 관광단이다.
시선은 멍하니 창 밖을 향한 채 의미 없이 웃으며
영서 (사투리) 혼저 옵서예, 제이름은예 고영서마씨. 제주도 토백이구 예.
제주도 사투린데 재밌죠? 나이는 스물 여섯이고요 곧 스물일곱이 되요
참고로 짝을 찾고 있는 중이죠
유니폼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영서 약속을 잘 지키는 남자라면 좋겠어요
청년 (갑자기 끼여드는) 나 같은 남잔 어때요?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데?
웅성거리며 좋아하는 차안의 학생들, 쳐다보며 씁쓸하게 웃는 영서
#110 앞오름 숲길 (낮)
관광객들을 인솔해 가며 이야기하고 있는 영서.
영서의 뒷편엔 많은 젊은 남녀들이 영서의 설명에 귀기울이며 따라가고 있다.
영서 비자나무는 암 수 딴그루고요
가을에 빨간 열매가 열리는데 약재로 쓰인답니다.
옛날엔 고급 바둑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함부로 벨 수가 없겠지요
높이는 한 2미터 저옫 뒤구요 안으로 더 들어가보면.....
갑자기 말을 멈춘 영서.
영서의 시야에 나무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태희가 들어온다.
태희 발치에 놓여있는 커다란 여행가방.
영서의 말이 멎자, 궁금하다는 듯 일제히 영서를 보는 남녀 관광객들.
태희가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난다.
영서를 향해 다가오는 태희.
영서도 태희를 향해 이끌리듯 다가간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시선을 모으는 관광객들.
마침내 마주선 둘은 서로를 응시한다.
태희 (미소를 지으며) 오다가 낚싯대를 하나 샀어요. 갈매기 낚시나 할까해서요
그세야 영서의 얼굴에 눈물이 고이며 번지는 미소.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두 사람.
커다란 나무 아래로 두 사람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멀어진다. _ 끝._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