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한 해 전망을 가늠해 보는 잣대는 당연히 각 교구에서 나온 교구장 사목교서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각 교구 홈페이지에서 교구장 사목교서를 찾아보려면 정말 숨바꼭질을 하듯 여기저기 다 눌러보며 일부러 찾아야 했는데, 올해는 한두 교구를 빼고는 모두 사목교서 발표 전후에 곧바로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첫 화면에도 바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교구장 사목교서의 위상 변화와 실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연두 사목교서는 교구별로 공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도 각 교구의 사목교서를 한꺼번에 모아 공지사항에 게시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0년에는 교구장 사목교서를 몇 년에 한 번 비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춘천교구를 제외하고, 16개 교구 중 15개 교구가 대림 제1주일에 연두 사목교서를 발표하였다.
2010년의 화두, 신자들의 내적 성숙
2010년 각 교구 사목교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자들의 내적 성숙을 향한 ‘새 복음화’의 요구이다. 워낙 신자들의 신앙생활 참여 열기가 둔화되고 쉬는 신자가 증가하다 보니 교회로서는 신자들이 신앙의 열정을 다시 찾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성경을 가까이 하자는 것이다. 대전, 원주, 의정부, 청주, 마산, 전주교구는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성경을 가까이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말씀을 증거하는 삶으로 친교의 교회 건설”(대전),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원주), “말씀 실천으로 복음화 토대를 놓읍시다”(청주) 등과 같이 사목교서 주제 자체를 성경으로 다루고 있다.
성경이 아니더라도 쇄신과 성찰을 촉구하며 새로운 복음화를 강조하기도 한다. 제2차 교구 시노드를 진행 중인 대구대교구는 시노드를 “새시대, 새복음화” 라는 지표 아래 ‘새복음화의 비전’과 ‘성숙한 교회공동체실현’이라는 두 개의 의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고, 이를 사목교서에서 강조하였다. 2008년부터 교구 발전 3개년 추진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광주대교구는 “새로운 복음화의 해”라는 2010년 실행지침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기존의 선교 개념을 넘어서 신자 개인과 공동체의 회개와 쇄신으로 복음화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란 기존의 ‘선교’ 혹은 ‘복음화’의 개념을 바탕으로 교회의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교회 내적인 진정한 복음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의 회개와 쇄신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 하려면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광주 2010년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역시 쇄신과 성찰을 통해 복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고 하였고, 인천교구도 교구설정 50주년 기념을 위해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강조하였으며, 마산교구는 순교영성, 군종교구는 기도와 봉사의 삶 등 거의 대부분의 교구에서 신자들의 삶이 좀 더 신앙적이 되도록 강조하고 있다.
구체성을 띄지 않는 사목교서
올해 사목교서의 또다른 특징은 전년도 사목교서의 내용을 돌이켜보면서 시작하는 사목교서가 여럿 눈에 띈다는 점이다. 사목방향으로 제시했던 것들을 상기시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평가의 내용이 모호하기 그지없다. 열심히 노력하여 결실을 이루었다거나, 지난 해 수행하고자 했던 목표에 함께 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정도의 형식적인 평가이다. 그나마 전주교구 사목교서는 지난 10년 동안의 사목교서에서 제시했던 목표들이 어떻게 수행되었는가를 구체적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목교서들은 그런 목표가 제시되었다는 것은 언급하는데 이후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평가가 하나도 없다.
사목교서에서 지난 번에 제시한 계획에 대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것은 계획을 제시할 때 그것을 어떤 과정으로 수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목표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도 많은 교구에서 신자들의 내적 쇄신 방향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신자들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모호한 제안들이 대부분이다. 성경을 가까이 하자고 방향을 제시했다면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교육이나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사목교서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교구청 부서별로 세운 연간계획이나 본당에서 세울 사목계획에는 그 지원책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이런 사목방향을 지원하기 위해 교구로서도 어떤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는 밝힐 필요가 있다. 많은 사목교서들이 신자들에게 개별적인 신앙의 삶을 강조하지만 교회나 교구 차원의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실행했는지도 가늠할 수 없고, 결국 구체적인 평가로도 연계되지 않는 것이다.
사목교서는 신자들을 향한 훈계이기에 앞서, 교구 전체의 사목 계획을 밝히고 구체적인 실천에 함께 동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될 것인가?
2009년 사목교서를 분석할 때도 같은 아쉬움이 들었지만, 2010년 사목교서 역시 시선이 교회 안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아쉬움이다. 전반적인 주제가 신자들의 신앙쇄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그런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상관없이 교회 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신앙의 모습이다.
지난 2009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두고 ‘공동선의 위기’라는 지적이 많았다.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해 교회는 어떤 식으로 응답해야 할지 한국 천주교회 전체뿐만 아니라 각 교구의 처지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일례로 2010년에 사업 계시가 예정된 4대강 사업에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는 생태위기와 막개발을 우려하면서 성명서도 냈지만, 그 개발이 실제 진행될 교구의 사목교서에서는 이와 관련된 주제나 언급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은 아쉽기 그지없다.
이밖에도 2010년 한국 사회는 의미있는 역사의 마디마디를 짚어보는 해이기도 하다. 경술국치 100년이니 친일 역사에 대한 성찰이 쏟아질 것이고,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교회의 역사도 성찰이 필요한 해이다. 그리고 4․19혁명 50주년이며 5․18민주화운동 30주년으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짚어볼 계기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민족이 분단된 6․25전쟁 60주년이며 이를 극복하고 평화와 화해로 나가고자 했던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니, 민족화해와 통일의 문제를 되새길 뜻깊은 해이다.
그동안의 연두 사목교서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데, 그나마 올해 광주대교구 사목교서 안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상기하고 이를 함께 준비하자는 짧은 실천 사항이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깨어 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교회, 그 교회의 사목계획을 제시하는 사목교서를 기다려 본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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