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3.土. 거친 바람이 불어대니 땅바닥에 쌓인 미세먼지가 치마위로 흩날리누나
05월13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6.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토요일을 예전에는 반공일半空日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를 통째로 노는 일요일이 공일空日인 까닭에 오전에는 근무하고 오후에만 노는 토요일은 자연 반공일半空日이 된 거지요. 일요일을 휴일休日이라기보다 공일空日이라는 개념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휴일이라면 休日 한자 뜻 그대로 사람이 나무 그늘에 앉아 등을 기대어 쉬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비해 공일이라면 空日 한자 뜻 그대로면 비어있어서 존재하지 않는 날이니 자못 의미意味가 심장深長해집니다. 무無가 유有의 상대적 개념이라면 공空이란 유무有無를 초월해버린 절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월화수목금토月火水木金土가 활발하게 뛰놀 수 있는 허공, 즉 빈 공간으로써의 공일空日을 생각하다니요. 그런데 그것이 공일도 아닌 반공일이라면 半空日 한자 뜻 대로면 반만 비어있는 날이 되니 공이 반으로 나누어질 수도 있는 것인지요. 유有라면 반으로든 셋 중 하나로든 나누어질 수 있을 테지만 상대적인 무無나 절대적인 공空이 어떻게 반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인지 솔찬히 흥미롭습니다. 그나저나 토요일은 반공일이었으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일요일에 이어 또 하나의 공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공일空日이 두 번이나 들어가게 되어버렸네요. 그러면 월화수목금토月火水木金土가 뛰놀 수 있는 허공, 즉 빈 공간이 두 개가 되었나요. 아니라면 허공이 부풀어 두 배만큼 커졌나요? 이제 옛적에 사용하던 공일空日이나 반공일半空日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세대들이 어른이 되어있는 세상이니 ‘물 쓰듯 쓴다 ~’ 는 물의 자존심을 건드는 말과 함께 공일과 반공일은 말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세상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말이 된 것 같습니다. 생물학적 유기체有機體인 생물뿐만 아니라 말이나 글인 언어言語나 현상現象들도 사회적 생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언중言衆이나 대중大衆의 쓰임을 받지 못하면 그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열반 전 마지막 말씀이 “그대들에게 간곡히 이르나니,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임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오늘은 돌풍이나 천둥과 함께 요란하게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난 뒤라 한손에는 핸드폰과 다른 한 손에는 접이식 우산을 들고 봉은사로 향했습니다. 구름에 가린 햇빛으로 세상은 반투명하게 간접조명을 받고 있어서 은근하고 운치 있는 정경情景이었으나 뭔지 불완전한 계절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있어서 걷기에는 목과 어깨가 선선한 것이 딱 좋았습니다. 봉은사 대웅전 앞에 탑이 있습니다. 탑을 향해 선 채로 삼배를 올리고 있는데 탑 뒤편 대웅전 돌계단에 모여 앉은 채로 한 가족인 듯한 외국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돌탑 옆에서 어느 젊은 친구가 사진기를 들고 돌계단위의 외국 사람들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두어 번 셔터 소리가 들려오고 땡큐~ 땡큐우~ 하는 소리와 함께 대웅전 돌계단에 비둘기 떼처럼 앉아있던 사람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외국 사람들의 구성이 좀 흥미로웠습니다. 성인 남자가 둘, 성인 여자가 둘, 그리고 서너 살가량의 아이들이 네 명인데, 내가보기에는 성인 남자 한사람은 미국이나 서구사람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인도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맨 앞에서 아이를 한 명 품에 안고 돌계단을 내려오는 백인에게 잠깐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 나는 USA에서 왔구요. 저분들은 인디아에서 왔습니다... 저분들이란 돌계단 위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검은 머리칼의 남자와 젊은 여자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면 내 옆에 서 있는 빨간 면바지 여자 분은요? 하는 눈으로 내가 백인 친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 이 여자 분은 내 아내고요. 저기 두 분이 또 부부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그럼 이 분도 인도에서 오셨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우리 부부는 피츠버그에서 왔고요, 저 부부는 인도에서 왔습니다... 피츠버그는 미국 중북부 펜실베이니아 주州에 있는 상공업 대도시입니다. 그때 돌계단을 내려온 까만 머리칼의 인도 남자가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습니다. 악수를 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인도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어느 지방에서 삽니까? 아, 델리에서 삽니다. 혹시 델리에 온 적이 있습니까? 네, 물론 여러 차례 갔었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예, 나는 불교도입니다. 그래서 불교성지순례 차 인도를 많이 방문했답니다. 그러자 인도 남자는 아, 그러세요? 하면서 반갑게 웃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입고 있던 여름 반팔 상의에 쓰여 있는 SYRACUSE라는 로고를 보고 있던 미국 남자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SYRACUSE를 나오셨습니까? 내가 아니고 내 딸이 SYRACUSE를 졸업했습니다. 또 다른 자녀도 있나요? 아들이 있는데 인디애나 캘리스쿨을 나왔지요. 그러자 옆에 서있던 빨간 면바지 여자 분이 물었습니다. 그럼 가족들이 모두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네 나는 한국에서, 딸은 뉴욕에서, 그리고 아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답니다. 등등 이런 일상적인 대화가 한 오 분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남자와 빨간 면바지 인도 여자 분은 부부인데 함께 피츠버그에서 살면서 한국에 온 것이고, 까만 머리칼 인도 남자와 검정 면바지 인도 여자 분은 인도 델리에서 사는데 한국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인도 여자 분들의 영어가 정확한 영어였습니다. 인도에서는 중산층이상이면 근래에는 남녀가 대부분 대학에 진학을 하는데 영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경향이어서인지 영국식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를 합니다. 인도 남자의 이름은 방카시이고, 미국 남자의 이름은 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인도 여자 분은 자매姉妹였습니다. 네 명의 아이들은 두 부부의 자녀인데 각각 두 명씩이었습니다. 아빠보다 엄마를 빼닮은 세 살가량의 남자아이가 미국인 아빠 품에 안겨서 낯선 아저씨와 아빠의 대화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탑 앞에서 초를 켜거나 선 채로 참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도 남자는 까맣게 곱슬거리는 약간 긴 머리인데 인도인 특유의 명랑함을 가진 모습이었고, 미국 남자는 삼십 대 중후반 또는 마흔 전후정도로 보였는데 사람을 대하는 차분한 모습이 신뢰감을 주는 타입이었습니다. 여러 생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무슨 인연因緣인가 선종禪宗 사찰寺刹 봉은사 돌탑 앞에서 뜬금없이 만났다 소소로이 헤어졌습니다. 장엄한 삼층 돌탑 앞에서 잠시 동안 그랬습니다.
대웅전에는 오늘도 재가 있는지 공양물을 괴어올린 상이 차려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부터 기도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는 법당 오른 편에 좌복을 깔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먼저 입정에 들었다가 천수경과 금강경을 읽었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10독 하였는데 천수경을 다 읽어갈 즈음에 검은 통옷을 입고 법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잔영殘影만보고 재를 지내러온 신도님들인줄 알았습니다. 천수경을 마치고 나서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일반 신도가 아니라 통옷으로 길게 늘어뜨린 검은 도포 같은 승복을 입고 있는 낯선 스님들이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고 어디에서 오신 스님들이냐고 물었더니 스님 한 분이 얼른 건너편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법당 문 옆에 서있던 두 명의 젊은 남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한국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한국분이세요? 아니요,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그래요, 처음보고 한국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스님들과 함께 오셨나요? 아닙니다. 우리들은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고 스님들은 베트남에서 얼마 전에 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한국에 얼마 동안이나 있었나요, 한국말을 참 잘하는데요. 네, 감사합니다. 한국에 칠년 동안 있었습니다. 지금 학생입니까? 아니요, 근로자입니다. 스님들은 어디에서 오셨나요? 저 스님들은 호치민에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면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검은 옷은 베트남 스님들의 외출복입니까? 네, 주로 베트남 스님들이 외출할 때 많이 입는 겉옷입니다. 절에 있을 때는 검은 겉옷은 벗어놓고 회색 옷이나 누른색 옷을 많이 입고 있습니다. 베트남 스님들이 수受하시는 가사는 무슨 색입니까? 네, 보통 노랑색입니다. 이 스님 법명은 무엇이지요? 하고 나는 앞에선 스님을 가리켰습니다. 아마도 스님 법명이라는 용어가 우리 대화중에서 베트남 아가씨가 유일하게 못 알아듣는 말이었나 봅니다. 아, 스님 이름말입니다. 그러자 베트남 아가씨가 스님에게 뭐라고 묻고 나더니 말했습니다. 팃 땀구엔이랍니다.
기도를 마치고 법당에서 밖으로 나갔더니 베트남 스님 두 분이 대웅전 돌탑 앞에서 참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뒤에 서서 참배를 하는데 두 스님이 뭔가 경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독경하는 소리울림과 길이로 미루어 반야심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 베트남에서도 반야심경般若心經은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즐겨 독송讀誦할 수 있는 인기 있는 경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독송을 마친 두 분 스님과 베트남 사람들이 탑돌이를 시작했습니다. 탑을 옆구리 오른 편에 두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뭔가 독송을 또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잠시 쳐다보다가 절에서 나왔습니다. 절을 오고가면서 스마트폰과 함께 손에 들고 다니던 접이식 우산은 한 번도 펴볼 기회가 없었지만 집에 도착을 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날이 금세 어두워지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어느 순간 거센 비바람이 유리창으로 몰아쳤습니다. 엄청 많이 오는 비도 아니련만 한바탕 요란스럽게 토요일 오후 풍경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질質보다는 양量으로, 좀 더 육감적으로 표현한다면 소리만 크고 알맹이는 시원치 않은 허튼 방귀와 같았다고 하면 사실적인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