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0주일 강론 :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53) >(8.17.일)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라고 말씀하시면서, 더욱더 강력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너무 미적거리지 말고, 예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이고, 또 우리 삶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진리의 불이 가져오는 분열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은 ‘진리의 불’이었습니다. 이 불은 거짓과 위선을 태워버립니다. 진리 앞에서는 적당한 중간 선택이 없고,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세례명은 ‘토마스’였고, 사제가 되고 싶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습니다.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아들이 이토를 처단한 후 투옥되자, 법원에 항소해서 목숨을 구걸하느니 영광된 죽음을 맞이하라고 수의를 지어보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런 일을 했으니 이 어미는 기쁘다. 너는 죽더라도 조선 사람임을 잊지 말아라.”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항일독립운동의 명문가문입니다. 부모님, 동생들과 사촌동생 외 많은 친인척이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생각하며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친척은 그의 행동이 가문에 화를 불러올 거라며 걱정했습니다. 이처럼 안중근의 신념은 가족 안에 분열을 가져왔지만, 그분 같은 독립운동가 덕분에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통치에서 좀 더 빨리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2) 가족 안에서의 분열
우리나라의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성인의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습니다. 김대건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어머니 고 우르술라는 아들의 선택이 가져올 고통을 걱정했고, 가족들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어떤 친척은 위험한 길을 포기하라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라!’고 격려했습니다.
15세 소년 김대건은 다른 두 신학생과 함께 중국 마카오로 유학길을 떠나, 수많은 고생을 하다가 유학 9년 만에 사제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제 된 지 겨우 1년이 지난 1846년 9월 16일, 25세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선택은 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한국교회가 시작되는 데 아주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4년 5월 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03위 시성식 전에, 김대건 신부님 업적에 감사하며 ‘김해 김(金) 가(家)’ 중에 ‘김대건 성인 공파’를 따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탈리아 유학 때 ‘김대건 성인 공파’ 출신의 수녀님을 만났는데, 수도성소동기가 감동적이라 소개합니다. 그 수녀님은 수녀가 되고 싶어도 성소동기가 없었습니다. 여러 수녀원을 다니며 평생 살 집을 찾다가, 노인복지를 하는 ‘성가소비녀회’를 택했는데, ‘나는 다른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노인들 똥기저귀는 잘 빨 수 있다.’라면서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김대건 성인공파는 역시 뭔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3) 현대의 양심적인 선택들
금방 얘기했던 실화들과 비슷한 상황들이 지금도 일어납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했던 선택인데도,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는 병원 측이 충분한 보호장비 없이 환자들을 돌보라고 지시했을 때 이를 거부했습니다. “환자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의료진의 안전 없이 지속적 치료가 불가능하다”라며 적절한 보호장비가 확보될 때까지 치료 업무를 거부했는데, 그 결정은 논란이 되었습니다.
어떤 동료들은 그녀의 용기를 지지했지만, 다른 이들은 “환자를 버리는 것”이라면서 비판했고, 가족들도 걱정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라며 우려했고, 부모님은 “순종하는 것이 덕”이라면서 반대했지만, 그녀의 주장은 병원 측이 보호장비를 보강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른 의료진들의 안전도 지켜냈습니다.
예수님이 ‘분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정말 분열되기를 바라셔서 그러신 게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찾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분열은 더 큰 일치를 향한 정화 과정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했습니다. B는 ‘Birth’(탄생), D는 ‘Death’(죽음), C는 ‘Choice’(선택)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며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우리가 누구였고,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뭘 해나갈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냥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매 순간의 선택이 모여 나를 이룹니다. 살아가면서 그때그때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잘 선택한 것이 모여 내가 되는 거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실패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박하고 힘든 인생살이 동안, 안중근 의사와 조 마리아 여사, 김대건 성인처럼, 우리도 용기 있고 현명하게 선택하며 살아갑시다! 우리 생명과도 같은 신앙을 매일 조금씩 더 성장시키며,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께 특별히 간구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