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러시아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는 한 편의 대하소설과도 같으며, 그 명성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
하는데다 줄거리를 명확하게 요약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리스 파스테르
나크는 본래 시인이었으므로 소설 속에서 간간히 시적 표현을 찾을 수 있기에,
혹자는 "시 소설"(?)로 보기도 한다.
또한 파스테르나크가 식물에 관한 지식이 많아서 자연물 묘사가 제법 세밀하게 되어 있다.
영화를 보고 단순히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안됩니다.
휘모리장단에 맞춰 휘몰아치는 러시아의 격동적인 역사적 상황은 둘째치고 괭이갈매기 울 적에 마냥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는 인물들에 먼저 떡실신당한다. 옆에 메모지를 놓고 인물을 차근차근 적어가며 읽거나 한 글자 한
글자에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부록으로 '유리 지바고의 시' 25편이 있다. 주인공이며 의사이자 시인인 유리 지바고의 정신세계와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지바고(Живаго/Zhivago)는 러시아어로 '살아있는(alive)'을 뜻하는 '지보이(Живой)'의 소유격 형태로,
이 소설의 배경과 관련이 있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체제가 아직 살아있으며, 파스테르나크가 당시 소련의
사회 체제를 반대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실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정치나 사회에 깊이 관여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고수하며 당시 소련의 체제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체제에 맞서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활동했을 시절 혁명의 물결에 치여 죽거나 멀리 떠나버린 동료들에게 진 빚을
갚고, 그 틈에서 용케 살아남아온 것을 속죄하는 의미가 더 컸다.
이 책은 완성되고 나서도 본국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파스테르나크는 이 원고를 가지고 모스크바의 문학지 '노비 미르'에 기고하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대신 1957년에 이탈리아어로 첫 출판을 했다.
그리고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됐다.
파스테르나크는 수상자 발표 이틀 뒤 소감을 이렇게 표명했다.
너무나 고맙고, 감동적이고, 자랑스럽고, 놀랐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또 이틀 뒤, 파스테르나크는 입장을 바꿔 이런 서한을 보냈다.
제가 속한 사회의 수여하는 이 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수상을 사양할 수밖에 없으니 제 결정에 노여워하지
마시기를...
소련은 파스테르나크를 지속적으로 압박했고, 결국 파스테르나크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거절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파스테르나크는 소련작가동맹의 명단에서 아예 제명되었고 국외로 아예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다.
파스테르나크는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저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라는 말로 간곡히 청원
하여 겨우 망명만은 면한 채,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폐암과 심장병을 안고 모스크바 외곽 페레델키노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몇몇은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수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맞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을 거절한 케이스로는 많이 소개됐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제대로 밝혀주는 곳이
별로 없다. 위처럼 파스테르나크가 상을 물릴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파스테르나크의 부탁을
사실상 들어주지 않고 수상을 뒤로 물렸을 뿐이었다.
1988년 금서(禁書)였던 닥터 지바고가 소련에서 출판됨으로써 파스테르나크의 명예가 복권되면서, 받지 못했던
노벨문학상은 1989년 파스테르나크의 장남이자 문학연구가인 예프게니 보리소비치 파스테르나크가 대리수상
했다.
예프게니는 "아버지는 이 상을 생각지도 않았는데 괜한 고통만 안겨주었다"며 제법 의미심장한 소감을 전했다.
여담으로 닥터 지바고를 닥터 지바고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선 닥터와 의사가 다른 뜻인데, 닥터는 군의관을 뜻하며, 의사는 врач(브라치)라는 표현이 따로 있기에 의사 지바고가 아니라 닥터 지바고가 맞는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지바고의 행동이 이상한 부분이 바로, 지바고 본인이 군의관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더 표가나게 써놓았다.
첫댓글 명화 중의 명화 닥터 지바고 ,라라의 테마 잘 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