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최용현(수필가)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2004년)는 찰리 카프만이 각본을 쓰고 프랑스 출신의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미국의 SF 로맨스 영화이다.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 및 미국작가조합의 각본상(찰리 카프먼)을 받았다. 새턴 어워즈에서는 SF 영화상을 받았다.
제작비 2,000만 달러를 투입하여 전 세계에서 4,7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재개봉까지 합쳐서 88만 관객을 기록했다. 이 영화 제목 ‘이터널 선샤인’은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서간시(書簡詩), ‘Eloisa to Abelard(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의 209번째 줄에 나온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앞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순결한 수녀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세상을 잊어버리고, 세상에서 잊혀가고 있으니.
티끌 한 점 없는 마음에 깃든 영원한 햇살이여!
어떤 기도는 이루어지고, 어떤 소망은 체념하네.
희극배우 짐 캐리는 ‘트루먼 쇼’(1998년)를 통해서 정극(正劇) 연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였고, 다시 이 영화에서 실연한 남자를 연기하게 된다. 촬영은 대부분 리허설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배우들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엘(짐 캐리 扮)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扮)은 몬토크 해변에서 처음 만나 오랫동안 사귀었지만, 사소한 다툼이 쌓이면서 헤어진다. 클레멘타인은 이별의 고통이 너무 힘들어서 기억을 지워주는 ‘라쿠나’라는 회사에 가서 조엘과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다.
밸런타인데이가 되자, 조엘은 사과도 할 겸 선물을 주려고 그녀의 직장에 찾아가지만,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상심에 빠졌다가 자신도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라쿠나’ 회사에 찾아간다. 조엘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지워지는 동안 두 사람의 연인 시절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최근의 안 좋은 기억에서부터 오래된 아름다운 기억까지 차례차례 지워지면서, 조엘은 기억을 지우는 작업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클레멘타인을 자신의 어린 시절로 데려가서 아름다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클레멘타인의 ‘몬토크 해변에서 만나.’라는 마지막 대사까지 그녀와 관련된 기억이 모두 지워지는 것이다.
밤에 조엘의 기억을 지우던 중에 에러가 발생하자, 기술자 스탠(마크 러팔로 扮)은 퇴근한 하워드 사장을 부른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의 하워드 사장은 여사무원 매리(커스틴 던스트 扮)와 부적절한 관계였는데, 아내에게 들키면서 메리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렸다. 하워드 사장이 기억을 지우는 동안 스탠이 잠시 밖으로 나가자, 매리가 하워드에게 키스하다가 남편을 미행해 온 아내에게 들키고 만다.
매리는 기억을 삭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나누었던 대화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주고, 회사에서 짐을 싸서 나온다. 기술자 보조인 패트릭(일라이저 우드 扮)은 조엘의 기억을 이용하여 클레멘타인과 연애를 시도하지만, 기억에 혼란이 온 클레멘타인은 불안 증세를 보인다. 클레멘타인은 평소에 자주 가던 몬토크 해변으로 간다.
조엘도 기억을 지운 다음 날 마지막 대사에 나오는 몬토크 해변으로 가는데, 거기서 클레멘타인을 만나게 된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라쿠나’에서 자신들이 했던 말이 담겨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듣게 된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우울하고 따분한 남자라면서 병든 강아지 같아서 함께 있기 싫다고 말하고,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머리에 든 것이 없으면서 성깔이 있고 남자들에게 쉽게 몸을 준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함께 있다가, 테이프에 나오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더 듣기가 민망한지 클레멘타인이 일어서서 가려고 한다. 조엘이 “괜찮아, 뭐 어때!”라고 말하자, 클레멘타인이 미소 지으며 동조한다. 엔딩 곡이 흘러나오고, 둘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하던 남녀가 이별 후에 오는 고통 때문에 기억을 모두 지우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서로 다툰 기억이 많은 최근의 기억들이 지워질수록 사랑이 시작되던 때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남는데, 그 기억들은 지우기 싫어진다. 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고, 추억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의 머리 색깔은 당시의 상황이나 심리상태, 기억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런 사실을 참작해서 영화를 보면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촬영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원하는 색깔로 염색하기가 어려워서 전부 유색 가발로 대체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찰리 카프만 작가와 미셸 공드리 감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작품으로, BBC에서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로맨스 영화로 뽑혔다. 그러나 관객의 의견은 호불호(好不好)로 나눠지는데, 불호 쪽의 의견은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으로 진술한 적나라한 녹음을 듣고서도 다시 연인 관계를 이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