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알고 내년은 모르는 메뚜기
어느 여름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온종일 놀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놀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이해가 안 된다면서
메뚜기에게 되물었습니다.
"내일이 뭐야?"
메뚜기는 고민하다 밤이 지나고
밝은 아침이 오는데 그것이 내일이라며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메뚜기를 보고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며
놀렸습니다.
그 후 메뚜기는 그때의 하루살이를 만나지 못했고
개구리와 친구가 되어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윽고 가을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말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이제 그만 놀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
그러자 메뚜기가 내년을 알지 못했고
개구리에게 되물었습니다.
"내년이 무엇이야?"
개구리는 추운 겨울이 끝나고
날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오는 게 내년이라며 설명했지만
메뚜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개구리를 보고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며
놀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고 대부분 직접 겪은 후에야
믿게 됩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험'은 모른 채 겪었고 그 뒤에 믿음과 지식이
쌓였습니다.
그동안 겪은 경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움에 대한 관대하고 넓은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을 보는 시야가 커집니다.
# 오늘의 명언
경험하기 전에는 어떤 것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 존 키츠 –
* 무에서 유를 만드는 상생의 선각자
@ 선천은 상극의 운수이기에 악(惡)이 발생하므로 웅패의 세상이 되는 것이요, 후천은 상생의 운수이기에 선(善)이 나오므로 성현의 세상이 되는 것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2)
@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싸움을 많이 하였느냐." 대하여 가로대 "그리하였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표단(豹丹)이 들어서 싸움을 즐기나니, 이제 표단을 빼어내고 인단(仁丹)을 넣으리라. " 하시더니, 이 뒤로는 공우의 성질이 온순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혹 싸우는 자가 있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멀리 피하니라. (대순전경 p267)
@ 창조의 집에서 공우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많이 흘겨 보느냐." 대하여 가로대 "그리하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거늘, 공우 집으로 돌아올 때 길에서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안질이 크게 나서 달포를 앓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나았는 지라. 상제님께 와 뵈이니 가라사대 "안질로 고생하였느냐." 하시고 웃으시니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사나워서 싸움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이 고와지니라. (대순전경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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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익숙하게 살아온 한계치를 넘어서기가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어느 분야건 양적인 기준이 질적인 기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사를 건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사람하고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사람하고는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다릅니다. 상극세상의 기준과 상생세상의 기준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상극세상을 살아온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상극세상을 이어온 마음의 굴레를 쓰고 생각의 틀에 갇혀 상극의 말을 하고 상극의 글을 쓰고 상극의 행동을 합니다.
삶의 환경이 바뀌면 생활양식이 바뀌게 됩니다. 이제 선천상극의 금수세상이 후천상생의 태을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상극인간에서 상생인간으로 재생신되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상생의 태을세상을 성사재인할 주인공이 태을도인입니다. 천지부모님께서는 상생시대를 열어갈 선각자를 찾고 계십니다. 상극시대에서 상생시대의 길을 내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생사를 건 각오와 실천이 요구됩니다. 독기와 살기를 풀어없애 뼛속까지 상생으로 변화시켜야 상생인간입니다.
첫댓글 경험을 통해 믿음과 지식이 쌓이고,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이해도 넖어집니다. 연륜이 깊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 태을도인들은 겪지 못한 것을 믿으며 오만년 선후천의 바뀜이라는 거대한 시간대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큰 믿음으로 태을의 본질을 깨쳐 태을도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