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정말로 무덥고 길었습니다.
정순덕 할머니(가명·76)는 더위 뿐만 아니라 온갖 벌레들, 악취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35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4남매를 키우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하면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아온 정순덕 할머니. 이제는 나이도 들어 교통이 편리하고 깨끗한 곳으로 이사하려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방 2칸짜리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 착한 아들과 딸들이 조금씩 모아서 세간도 모두 새것으로 사주었습니다.
살림살이 다 타버려 남의 집 생활
형편 어려운 자식들 기댈 수 없어이사하면서 2층 계단 입구에 있는 방 한 칸을 보았지만 집주인이 조금 있으면 이사갈 집이라고 말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인기척 없이 항상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는 기초생활수급자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대인기피증세가 있어서 낮에는 집에 가만히 있다가 밤만 되면 거리를 활보하고 밖에서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수집병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벌레가 자꾸 보이고 악취가 나서
청소를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할머니는 동사무소에 청소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동사무소 직원들이 청소를 하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내가 하겠다"며 거부의사를 밝혀 부엌에 있는 쓰레기만 치웠는데 그 양이 1t
트럭을 가득 채웠습니다. 복지관
사회복지사에게 관리를 의뢰하고 구청 서비스연계팀을 통해 청소
사업단에서 나와 청소를 하려고 한 시간 넘게 할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문고리를 잡고 끝내 거부해 관할 통장이 쓰레기 봉투를 주고 자발적으로 처리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단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새벽 늦게 집에 들어와
모기향을 피워놓고 잠을 자던 중 쓰레기에 불이 옮겨 붙었던 겁니다.
정순덕 할머니는 연기에 깜짝 놀라
휴대폰만 들고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급히 119에 화재신고를 했지만 70평생 모아둔 살림살이가 재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던 할머니는 "내가 복이 없어 이웃을 잘못 만나 이렇게 되었지"하며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생활이 어렵고 멀리 살고 있어 할머니는 살던 곳을 버리고 자식에게 갈 수도 없습니다.
지금 할머니는 동사무소의 주선으로 한 달간만 임시로 살기로 하고, 이웃 할머니집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한이 끝나면 할머니는 당장 거처를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집수리를 하려면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다행히 집수리가 끝나서 집에 들어간다고 해도 살림살이가 없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번 충격으로 건강도 나빠져 일을 할 수도 없는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십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이웃의 잘못으로 큰 피해를 입으신 할머니가 고단한
다리를 뻗고 편히 잠 잘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송지아 금정구 남산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051-519-5385)
△지난 9일자 김철수 씨 이야기 94명의 후원자 402만 5천 원.
↓ 이렇게 됐습니다
지난 9월 25일자 진순영 할머니 이야기
진순영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된 후 많은 분들의 정성의 손길이 모아져 381만 원의 성금이 할머니에게 전해졌습니다. 모인 성금으로 그동안 500만 원이 넘게 밀린
병원비를 내는데 큰 보탬이 되었고,
간병인도 신청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병원비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 어머니의 병원비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아들도 직접 동주민센터를 찾아와 어려움 속에서도 큰 도움을 받아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중환자실에 계시다 상태가 조금 나아지셔서 중증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고 계시지만 여전히 사람도 못 알아보시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십니다.
뇌출혈로 인해 편마비가 심하게 와서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투병생활을 하셔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계시리라 믿으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빨리 건강이 회복되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