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족장의 가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송병선 譯/민음사 2022년판/397page
중남미의 대부, 그들의 투박한 삶을 온전히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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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이라는 유명한 소설작품의 작가로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자신 스스로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소설 <족장의 가을>은 한 편의 서사시 형식을 따른다. 긴 문장은 두 장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길지만 시의 운율을 지키는 까닭에 산만하지 않다.
처음 읽는 독자는 기존의 소설적 기법과 많은 면에서 파격적으로 다른-한 문장이 보통 한 페이지를 넘긴다-이 소설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이 작품의 진면목을 알게 됨과 동시에 시를 음미하듯 내용을 천천히 이해하며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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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살던 중남미는 스페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치하를 막 벗어나며 어느 나라 막론할 것 없이 ‘독재자의 국가’의 길을 따라간다. 멕시코의 포르피리오 디아스, 과테말라의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 베네수엘라의 후안 비센테 고메스, 도미니카 공화국의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니카라과의 소모사 일가 등이 대표적이다.
독재와 라틴 아메리카는 불가분의 관계로 많은 중남미 국가가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며 민주국가를 열망했지만 그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고 로마제국 이후로 가장 많은 독재자를 배출한 불명예스러운 대륙이 되었다.
해서 많은 중남미 작가들이 독재자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다량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그 대열에 합류하며 독재자를 배경으로 한 자신만의 특유한 작품 <족장의 가을>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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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내 왼손보다 더 외로운 신세가 되었는데, 내가 내 의지로 이 나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내게 주어졌으며, 당신이 본 것처럼 이 나라는 태곳적부터 항상 비현실적인 느낌을 발산했고, 이런 구린내를 풍겼으며, 삶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이 역사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요, 이게 바로 나한테 묻지도 않고 억지로 떠맡긴 조국이라오. (본문중)
이 작품의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모든 독재자는 희생자이기 때문에 독재자를 호의적으로 그리는 작품을 썼다고 밝혀,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가 지식인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 불행한 진실이라고 주장했고, 독재자 대부분은 가난한 계층 출신이며, 그들이 탄압했던 사람들에 의해 전복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밝혔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인 독재자 역시 사생아로서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자랐지만 전근대적인 족장의 면모를 보이며, 국민 개개인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보살펴 초기에는 인기가 좋았고 존경까지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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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긴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많은 독재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독재자들을 역사 속에서 단죄하곤 한다. 이후 현존하는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독재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여론은 렌지 위의 끊는 냄비처럼 대번에 달아오르며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당연하다. 한 명의 독재자를 키우기 위해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양민과 그들의 재산이 처절하게 희생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독재자를 바라보게 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치와 역사의 최정점에 위치해서 국가의 장래를 이끌어가게 되는데, 여하튼 ‘독재’라는 형식 외에는 달리 통치 방법이 없어 무작정 외곬으로만 그 길을 걸어가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세력’에 이용당하는 어느 외로운 독재자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재자들의 전형인 권력추구에 과몰입하여 국민에게 뻔뻔하고 무정하며 자신의 욕심밖에 모르는 잔인한 기질의 소유자라는 인식과 달리 ‘자신을 낳은 어머니에 대한 서민적인 애정의 소유자이면서 욕심의 극한을 이미 본 결과 욕심을 버렸고, 차라리 권력의 계층구조에서 평범한 삶에 대한 기대치가 큰’ 한 마을의 어른인 족장에 가까운 인격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재자에 대한 인간적인 관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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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문장들 대부분은 쉽게 끝나지 않는 서사시로서, 장문이고 비현실적인 신화적 성격을 곳곳에서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근대 문학의 딱 부러지는 이야기 구조와 판이하게 달라 읽다가 쉽게 멈춰버리게 되거나, 이야기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이해능력 부족으로 중도에 읽기를 그만 두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자신했듯 <백년의 고독>을 능가하는 작품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문체 방식을 도입하고, 라틴 아메리카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 인식과 민중의 아픔을 바닥에서부터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신화적 전개방식을 도입함으로서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