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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이기는 법
민 14:4-10
현대인들은 대부분이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살기가 어렵다.’는 말이 그치지 않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편리해졌으나 전쟁과 핵무기 개발로 인류를 파멸로 몰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암과 같은 불치의 병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어디가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암이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사고로 인한 불안 때문에 차를 타나, 비행기를 타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자연재해로 인한 두려움, 경제 불안과 실직으로 인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이 겨우 의지하는 것이 보험입니다. 사람들이 보험을 찾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신을 의지하고 무당과 역술인, 점쟁이 등을 찾아갑니다.
또한 마약과 술, 도박, 선정적 오락에 손을 댑니다. 이때 각종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은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을 틈타 독버섯처럼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가에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 사이비들이 양두구육으로 위장하고 신입생 새내기들을 노리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우십니까? 조금 두려우십니까? 전혀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엄청 높은 은혜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비행기 타고 10,000미터 상공을 날라보세요. 소리도 없고 아주 조용합니다. 오늘 그런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문턱에서 이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해서 망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고자 했던 곳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까지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지금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 바로 가기를 원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지름 길 대신에 둘러가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가기 힘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었기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했는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일정기간이 지나고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강하였기에 그들의 힘으로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밤새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불평하다가 그들 스스로 결론을 낸 것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3절)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을 보내신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게 하신 것은, 첫째, 그 땅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땅인지를 미리 보여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더욱 추구하고 갈망하게 하시려고, 그래서 더욱 힘을 내어 광야생활을 잘 견디고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탐지한다”(민 13:2)는 동사는 “정탐하다(spy out)”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추구하다(seek)”, “자세히 살펴보다(view closely)”, 또는 “탐험하다(explor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추구하게(seek) 하라”(민 13:2).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보내어 탐방하게 하신 두 번째 이유는,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인간의 힘과 역량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땅의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거민들 앞에서 메뚜기 같았고, 도저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어 그 땅을 미리 정탐하게 하신 것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무능을 깊이 절감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굳게 믿고 붙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아니고는 결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들의 마음에 각인시켜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의도를 정반대로 이해했습니다.
첫째 : 두려움은 실패와 패망의 길입니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4절)
또한 그들은 한 장관(지도자)을 세우고 사람들을 모아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의 힘과 역량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타개해 보겠다는 태도입니다.
지금 당장 내 인생에 큰일을 만나서 너무나 경황이 없고 두렵고 낙심이 되니, 믿음으로 사는 것은 잠깐 중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우리들이 지금도 반복해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모든 반응은 한 마디로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제발 두려워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9절)
성도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영혼과 육신을 다 망가뜨립니다. 결국은 죽음과 패망에 이르게 합니다.
가령, 질병의 문제만 해도 두려움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요즘 의학이 발달되어 웬만한 병은 다 고칩니다. 불치병으로 인식되는 암도 완치율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치료 과정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치료가 어렵게 됩니다.
여러분, ‘고양이 앞의 쥐걸음’이라는 말이 있지요. 쥐는 본래 뒷다리가 길어서 얼마나 빠르게 도망을 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일단 고양이를 보면 부들부들 떨면서 맥을 못 추고 기어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잡혀 먹히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런 꼴입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을 가지고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지레 공포에 빠지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두려움 많은 부분이 이런 것이랍니다.
우리는 이런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결코 두려움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쫓아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쫓습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두려움을 쫓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9절)
어려움이 있다고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발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거역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가망이 없어보였던 바로 그 때에 믿음을 가장 필요로 했습니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더욱 신뢰해야 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적 권면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불신앙적 태도를 심히 미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열 정탐꾼과 스무 살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엎드러지게 하셨고, 그들이 그 땅을 탐지했던 40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시편 106편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시106:24–25 )
우리의 삶에 험로가 예상됩니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두렵고 낙심됩니까? 바로 그 때가 우리의 믿음을 발휘해야 하는 때입니다.
어려움의 때는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무엇을 더욱 굳게 잡으려고 합니까?
언제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살았습니까? 그런데 형편이 나빠지고 어려워지니까 너무 막막하다고,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다고, 더는 못 견딜 것 같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합니까? 절망하고 포기하고 두려워합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히 11:1).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삽시다. 우리가 메뚜기같이 여겨질 때,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해하겠습니까(롬 8:31)?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두려워한 것은 불신(不信) 때문이었습니다.
불신앙의 눈으로 보니까 아낙 자손들이 거인처럼, 네피림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메뚜기 같이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거인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아무리 거인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앞에서는 먹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보면 세상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입니다. 반대로 육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 세상의 문제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영적인 안목이 생기고 신앙이 커지면 세상이 작아 보입니다. 세상의 문제들이 별게 아닙니다. 영적인 안목을 키우면 세상이 소인의 나라로 보입니다.
셋째 :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8절)
하지만 이런 대혼란의 시기에, 열 두 정탐꾼 중의 두 사람,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7절)고 보고하면서. 그 땅이 심히 아름다우니 소망을 가질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한 의지를 다시 북돋아 준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8절).
그들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느냐?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서 출애굽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냐?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지금 가나안 땅에 크고 강한 민족이 있다고 하니, 우리의 힘과 역량으로는 정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해서, 두려워하며 통곡하느냐! 언제는 우리들의 힘과 역량으로 살았던 때가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요,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믿습니까?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약속하신바 있습니다.
(신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출애굽 1세대 중 그 2사람만 가나안 땅의 축복을 차지하고 신앙의 영웅으로 성경에 기록됐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과 나를 향한 약속이 됩니다. 그 말씀을 붙들면 그 어떤 불안도,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