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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산에서 덕룡산, 석문산으로 이어지는 산릉, 강진만 가우도도 보인다
낮이면 한 잔의 차요
밤들면 한바탕의 잠일세.
청산과 백운이
함께 무생(無生)을 이야기하네.
--- 두륜의 종주(宗主)인 청허휴정(淸虛休靜) 선사가 대흥사에 주석하며 중생에게 남겼다는
무상한 깨달음의 노래
▶ 산행일시 : 2012년 1월 7일(토), 오전에는 강풍, 맑음, 박무
▶ 산행인원 : 17명(영희언니, 버들, 솔잎, 동백, 드류, 감악산, 대간거사, 사계, 진성호,
신가이버, 제임스, 백작, 하늘재, 서농, 가은, 승연, 메아리)
▶ 산행시간 : 10시간 12분(휴식과 중식, 이동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5.4㎞(1부 9.3㎞, 2부 6.1㎞)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23 : 5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4 : 52 ~ 05 : 11 -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九林里) 대흥사(大興寺) 주차장, 산행시작
06 : 00 - 바위지대
06 : 50 - 고계봉(高髻峰, 638m)
07 : 23 - 오심재, 헬기장
07 : 52 - 노승봉(老僧峰, 凌虛臺 685m)
08 : 15 - 가련봉(迦蓮峰, 703m)
08 : 37 - 만일재(晩日재)
08 : 52 - 두륜봉(頭輪峰, 627m)
10 : 25 - 대둔산(大屯山, △673.2m)
11 : 45 - 308m봉 직전 ┤자 갈림길 안부
12 : 06 ~ 12 : 59 - 해남군 북일면 동해리 동해2제(東海2堤), 1부 산행종료, 중식
13 : 22 -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西亭里) 미황사(美黃寺) 주차장, 2부 산행시작
13 : 54 - 달마산(達摩山, 470m)
15 : 01 - ┣자 갈림길 안부, 대밭삼거리
15 : 23 - 미황사 주차장, 산행종료
16 : 03 ~ 17 : 43 - 해남, 목욕, 석식
22 : 30 - 동서울 강변역 도착
1. 일출 준비
▶ 고계봉(高髻峰, 노성봉, 638m)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대흥사 입구까지 402㎞. 멀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졸다 깨
다를 반복하여 대흥사 입구 매표소다. 매표소는 불이 꺼졌다. 그대로 통과한다. 대흥사에 이
르는 꽤 긴 길옆 수림은 밤의 실루엣도 장관이다. 두륜산을 새삼스레 등로 따라 오르자며 주
차장에 차 대놓고 산행채비 갖춘다. 불 켠 화장실을 들렸더니 클래식이 울려 퍼진다. 클래식
또한 졸린지 한껏 늘어진 선율이다.
헤드램프 켜고 열 지어 간다. 장관이다. 피안교(彼岸橋) 건너고 갑자기 멈춘다. 철문이 닫혀있
다. 무릎 높이의 철문이라 넘으려고 하자 철문 앞 스피커폰에서 들어오지 마시라는 묵직한 음
성이 들린다. 당직스님(?)이 CCTV로 우리의 행동거지를 관찰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간거사
님이 당직스님과 스피커폰으로 대화한다.
주차장의 등산안내도에 이리로 오르는 길이 있던데요?
밤이라 가실 수 없습니다.
몇 시에 갈 수 있나요?
7시 30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디로 오를 수 있나요?
오소재로 가십시오. 여기서 7.5㎞됩니다.
뒤돌아선다. 그렇다고 문 열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오소재로 돌아갈 우리가 아니다. 등로 벗어
나면 그 대단한 산죽 숲일까 염려하였는데 이제는 불사해야 할 판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 촬
영지로도 유명한 유선(遊仙)여관 앞이다. 저 여관에서 묵었다는 것은 이력으로 자랑할 만하
다. 여관 맞은편 백화암(白華庵) 가는 길로 들었다가 바로 왼쪽 생사면을 뚫는다.
눈이 쌓여 미끄럽다. 다행히 산죽과 잡목이 성긴 동백나무 숲이다. 집집의 개들이 궐기하여
오래도록 시끄럽다. 설사면 한 피치 오르자 능선으로 들고 흐릿한 오솔길이 나온다. 이 길은
고계봉으로 이어질 것. 주저 않고 따른다. 능선이 가팔라지자 오솔길은 옆으로 게걸음 친다.
우리는 직등한다. 백화암과 대흥사 절집 불빛이 내려다보인다. 혹 스님이 마당에 나왔다가 우
리의 헤드램프 행렬을 바라본다면 유성(流星)으로 알리라.
06시. 대애앵 하고 대흥사 범종소리가 울린다. 저음으로 파장이 길다. 바위지대가 나온다. 오
른쪽 사면의 잡목 숲을 잠시 헤집다가 직등한다. 직등이 낫다. 눈에 가렸지만 인적이 분명하
다. 바람이 세게 분다. 하늘 우러르면 별빛이 차갑다. 어둠 틈 탄 잡목이 달려들어 고개 숙이
고 앞뒤 안전거리 유지하며 전진한다. 슬랩을 눈 쓸어 더듬는다.
가시철조망 넘으니 고계봉 정상이다. 올라서자 장막을 확 젖힌 듯 생각지 않았던 광경이 펼쳐
진다. 새날 일출을 준비하는 다도해의 역사(役事)를 목도한다. 끝 간 데 없는 수면 위 붉은 띠
는 가히 장관이다. 해가 솟으려면 아직 멀었다. 별다른 광경이 있을까 고계봉 옆 전망대에 오
른다. 바람이 굉음 내며 횡행하는 전망대다. 영암 월출산도 목 빼고 일출을 기다린다.
2. 천관산
3. 주작산, 덕룡산 산릉
4. 일출
5. 일출 부근
6. 월출산
7. 다도해
8. 대둔산
9. 다도해
▶ 두륜봉(頭輪峰, 627m)
고계봉의 ‘계(髻)’는 상투이니 곧 ‘높은 상투봉’이다. 그 이유를 알겠다. 오심재 쪽에서 바라보
는 산정의 모양새가 그러하거니와 내림 길이 바위절벽이다. 철조망 넘어 밧줄잡고 내린다. 눈
부신 여명이 길 비춘다. 내리다 멈춰 서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수면의 붉은 기운을 맘 졸
이며 바라보곤 한다.
바닥 친 안부는 오심재. 오십치(五十峙)라고도 한다. 산이 험하고 수목이 울창하며 도둑이 숨
어서 행인을 괴롭히므로 50명 정도의 많은 사람이 모여서 넘었다고 한다. 김장호는 이 오심
재를 건너다보는 서쪽 혈망봉과 향로봉 사이의 오도재(悟道峙)와 짝하여 悟心峙로 새긴다.
07시 23분. 치기(稚氣)로 급하다. 일출시각은 07시 40분 근처일 것. 그 시각까지 노승봉을 오
를 수 있을까? 서둔다. 숨은 넘어갈 듯 할딱이는데 발걸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숲속 오르막길
끝나고 암봉 밑자락을 돈다. 딱 맞췄다. 암벽 돌아 전망 트이자 막 해가 솟는다. 해수면을 두
껍게 덮은 구름 위로 솟아 섬광이 눈 못 뜨게 부시다. 실눈으로 잠깐 바라보았는데도 한참동
안 어리어리하다.
바람이 무척 세다. 몸 가누기가 어렵다. 노승봉 슬랩은 쇠줄과 밧줄, 쇠고리가 달려있다. 발판
도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긴다. 노승봉(老僧峰) 능허대(凌虛臺). 능허(凌虛)는 ‘허공을 가르
다’, ‘비상하다’라는 뜻으로 절경에 위치한 정자나 누각 등에 많이 사용하던 관용어라고 한다.
여기가 그러하다.
노승봉 내림 길도 밧줄 달린 슬랩이다. 안부에 모여 술추렴으로 한속 달랜다. 암릉은 이어진
다. 가련봉(704m). 두륜산의 주봉이다. 두륜산의 이름은 크다는 뜻의 '한'에 ‘둥글다’거나 ‘덩
어리’란 의미를 가진 ‘듬’이나 ‘둠’을 써서 ‘한듬’, ‘한둠’, 혹은 큰 대(大) 자를 써서 ‘대듬’이었다
가 나중에 ‘대둔산(大芚山)’이라 했다 한다. 그러다 중국 곤륜(崑崙)산맥이 동으로 흘러서 백
두산을 이루고, 그 백두산 줄기의 끝부분에 일어난 산이라 하여 두륜산(頭崙山), 두륜산(頭輪
山)이라 표기했다고 한다(월간 산, 1999년 4월호).
내림 길은 데크계단이다. 길게 내린다. 바람 등진 남쪽이라 살 만하다. 너른 헬기장인 만일재
를 지나고 암봉을 돌아 협곡으로 오른다. 홍예(虹蜺) 모양의 구름다리를 살살 기어 지나고 너
덜 길 내리는데 대둔산 가는 능선이 왼쪽 어깨 너머에서 ‘나, 여기 있다’는 듯이 우리를 내려
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차, 떼로 길을 잘못 들었다. 선두로 내닫던 신가이버 님 뒤를 생
각 없이 쫓은 결과다.
암릉 내리고 왼쪽으로 주봉(冑峰) 넘어 쇠노재로 가는 ┤자 갈림길 지나 평탄한 길이다. 산죽
숲이 자주 나온다. 키 큰 산죽터널을 허리 숙여 지난다. 입석 사이 가파른 협곡으로 한 피치
오르면 멀리서는 평원으로 보이던 산죽지대다. 등로는 땅끝기맥 종주하는 등산객들의 발걸
음으로 훤하다. 대둔산 정상. ‘도솔봉’이라 새긴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사방 조망이 거
침없다.
남진(南進). KBS와 MBC 방송 중계탑 시설의 철조망 울타리를 돌아간다. 직진하면 불과 10여
미터일 거리를 잡목 숲 헤치며 크게 돈다. 암릉이 수시로 출몰한다. 빙판이거나 눈이 쌓여있
어 통과하는 데 재미 본다만 애 먹는다. 닭골재 바람재로 땅끝기맥을 이어가려는 당초 생각은
순진했다. 길이 풀려 줄달음하여도 턱없다.
도시락을 가져 오지 않기 잘했다. 도시락을 가져왔더라면 달마산은 고사하고 기껏 닭골재였
으리라. 308m봉 직전 ┤자 갈림길 안부에서 왼쪽의 동해리로 내리 쏟는다. 산기슭 명감덩굴
뚫어 농로로 들고, 동네 고샅길로 내려 보호수 거목인 푸조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우러르고,
동해2제 저수지를 돌아 도로에 다다른다. 도로 옆 창고가 보여 주인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쾌
한 승낙을 받아 왁자한 점심자리 편다.
10. 다도해
11. 다도해
12. 두륜봉
13. 만일재와 두륜봉
14. 대둔산 가는 길
15. 왼쪽부터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16. 대둔산에서, 왼쪽부터 백작, 제임스, 가은, 진성호
▶ 달마산(達摩山, 470m)
달마산 들머리로 잡은 미황사로 이동한다. 미황사 절집 계단 아래에서 바라보는 달마산의 연
이은 암릉이 가슴 설레게 한다. 달마산 주봉인 불선봉(佛仙峰)을 오르고 문바위와 작은 금샘
지나 대밭삼거리에서 미황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달마산의 하이라이트를 얼추 맛보
는 셈이다. 등산안내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왼쪽 산허리 돈다.
솔숲 길 너덜 길 역주(力走)한다. 땀난다. 풀무질 거친 숨소리로 추진하여 대번에 달마산 불선
봉을 오른다. 그러고 봉화대 납작돌 위에 널브러진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달마산을 達馬山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여지승람」에 보
이는 고려 때 무외(無畏) 스님의 글에 의하면 남송(南宋)의 벼슬아치가 ‘우리나라에서는 단지
그 이름만 듣고 아득히 경배만 해왔는데 그대들은 여기에서 생장했으니 부럽도다 부럽도다.
여기가 바로 달마화상이 상주(常住)한 곳이라’ 하고 그림으로 그려 갔다고 한다.
무외 스님의 글은 계속된다.
‘위대하고녀 이 산! 오로지 험준하기 짝이 없어 기이하고 빼어난 모양새라. 산과 바다의 품
이 넉넉함을 다 지녔으니 거기 성스럽고 영험스런 자취가 허다하여 남의 나라 사람도 그같이
경배하였도다. 그러나 워낙 거친 변두리 땅에 놓여 거기 올라 상찬하는 자 세상에 없으니 슬
프다.
만약 어느 날 도를 완성하고자 하는 자 있어 능히 정수리에 올라 그 뼈대 밖에 바람을 쐬
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른바 세상에 전해 오지 않는 진리를 터득할 것이니, 그야말로 소림(少
林)의 진수를 깨치는 자일진대 과연 그는 누구일까.’(월간 산, 1998년 1월호, 김장호의 ‘명산의
유적을 찾아서, 해남 달마산’)
달마산은 낮으면서도 큰 산이다. 돌부리 나무뿌리 움켜쥐며 슬랩 오르내리노라면 심산유곡
의 맛이 난다. 가급적 직등한다. 세미클라이밍 코스의 연속이다. 봉마다 걸음마다 기암기봉이
다. 올려다보는 문바위는 중국 장가계 금편바위를 방불케 한다. 두고 가는 것이 아까워서 돌
아보고 또 돌아보다가도 앞의 장면이 궁금하여 얼른 발걸음을 옮긴다.
대밭 삼거리. 3D 파노라마는 끝났다. 하산. 길 좋다. 조망 없는 숲속이라 줄달음으로 내린다.
임도가 금방이다. 임도 따라 산허리를 이슥하니 돈다. 담 너머로 부도군을 일별하고 엉뚱한
골로 갈 뻔하다 길 바로 잡는다. 임도 따라 더 돌아야 한다. 산모퉁이 돌아 미황사 주차장으로
내리는 방향표시가 보인다. 미황사 뒤 달마산 연릉을 다시 한 번 우러른다.
17. 왼쪽이 달마산, 오른쪽은 가공산(335m)
18. 달마산
19. 미황사
20. 달마산 연릉
21. 달마산
22. 달마산 문바위 주변
첫댓글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16번 사진 아주 멋집니다. ㅎㅎㅎ
구름넘어 떠오르는 일출을 보니 장관이옵니다....
왔다갔다 길에 투자한 시간이 산행시간보다 많이 걸린...그렇지만 조망이 좋고, 산우들이 좋았던 산행이었습니다...금년 한해도 멋드러진 산행기...부탁해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