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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상은 에취 지 언더우드 박사라. 쥬강생 천팔백팔십오년 사월에 박사 - 이십오의 장년으로 걸음을 이 땅에 옴겨 삼십삼년동안 선교의 공적이 널리 사방에 퍼지고 큰학교론 연히전문이 이루히니 그럴사 박사 - 늙으시도다. 신학문의 높은 학위는 박사 - 이를 빌어 묵어움이 아니라 얼굴로 좇아 얼른 살피기 어려우나 이렇듯이 연세보다 지나 쇠함을 볼 때 누구든지 고심으로 조선 민중의 믿음과 슬긔를 돕든 그의 평생을 생각할지로다. 베푼배 날로 늘어남을 달아 우리의 사모 - 갈수록 깊으매 적은 힘을 모아 부은 구리로서나 방불함을 찾으려 함이라. 뉘 박사의 일생을 오십칠세라하리뇨. 박사 - 의연히 여기 계시도다. 1927년 10월 30일 조선인 동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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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우(元杜尤 호레이스 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인천(제물포)로 입국한 장로교 최초 선교사.
31년간 종교, 교육, 문예, 자선활동에 힘썼으며 새문안 교회 등을 설립하였다.
기독신문창간, 한영사전 편찬, 찬송가 제작, 경신중고교를 설립하였다.
어려운 대한제국시절 고종황제는 사석에서 형제라 부를 정도였으며,
언더우드가 방문을 지킬 때에야 비로소 편안히 취침할 때도 있었다.
2세 원한경(元漢慶, Horace Horton Underwood, 1890-1951)
연희전문대 학장. 3·1운동 때 제암리 교회 사건 폭로. 일본에 의해 1942년 추방.
목사안수 후 다시 내한하였으며, 해방 후 연세대 재건에 힘썼다.
죄우익 갈등으로 1949년 부인이 좌파에게 피살되었고, 1951년에 과로로 부산에서
소천하였다. 부친(우측)과 함께 백두산 천지(天池)의 깊이를 첫 측량하였다.
1923년 부 원한경, 자 원일한, 모친의 모습.
3세 원일한(元一漢, Horace Grant Underwood 1917-2004)
“나는 75%가 한국인이고, 25%가 미국인이다.”
교육 발전과 한미우호증진에 이바지하였으며. 연세대와 경성제국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교수, 연대 도서관장, 새문안 교회 장로, 태평양 전쟁 참전의 이력이 있으며.
선교 활동 중 한국전쟁 발발하자 대위로 재참전하였고 휴전협정시 수석통역을 하였다.
재밌는 일화: “한번은 북한군 소장이 UN 대표에게 ‘반말’을 하는 거예요.
저도 질 수 없어서 UN군 소장의 말을 통역하면서 막 반말로 해댔죠. 그러니까
북한군 소장이 ‘어디서 대위 따위가 장군에게 반말하냐’며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2004년 안병만 부총리, 교육부 장관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
4세 원한광(元漢光 Horace Horton Underwood 1943.3.29-현재)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로 부름.
선교사 및 연세대 교수로 30여년 봉직, 2004년11월 한국 떠남.
우리 교육의 국제화 노력에 힘써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설립하였다.
부인 게일 클락도 먼저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넵... 그렇죠...
연남동 쪽으로 나가는 문 옆에 있는 기념관...
여기서도 인증샷 찰칵.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있는 언더우드 일가 묘역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학문의 전당, 대학...
그 중 연세대의 한 면을 이렇게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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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복받은 곳입니다 아시죠? ^^ 연세의 연: 끌 연 세:^^ 세상을 이끄는 대학 ! 멋지죠? 신촌의 요지, 너른 대지..
선견지명 ! 누가 주셨을까요? 예~ 세상을 이끄는 곳에서 상아탑 높이 쌓아 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