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인 75년,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센터)에 특별직으로 들어가서 그 번돈으로 야간 검정
고시 학원을 다녔다.
주민센터에서 내가 하는 업무란, 일찍 출근해 물조롱으로 마당에 물을
뿌린 후 대빗자루로 깨끗히 청소한 다음, 주민등록 등.초본을 떼어 주는
일이었다.
주민이 와서 등.초본 몇 통을 원하면 검은먹지(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를
죽 뒤에 겹겹이 대고선, 한자를 꾹꾹 눌러 떼어 주던 그런 시절의 일.
오후 4시에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어머니가 싸준 누룽지를 몰래 화장실
가서 냄새나는 줄도 모르고 간단히(먹을 시간이 없어) 때운 후, 퇴근하여 책
가방을 들고 부천 역까지 30여 분간 땀나도록 뛰어(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
이니 맨날 달음질 할 밖에) 전철(74년 8월15일 부천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개통)에
올라야만, 종각(종로)역 화신백화점(지금은 없어진) 뒤 검정고시 학원으로
유명한 고려학원에 도착해 6시에 첫 수업을 듣기 때문이었다.
낮에 일을 하고 달려온 몸인지라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느라 혀를 깨물
기를 셀수도 없는 나날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친 시각은 밤 10시.
종각 역에서 전철에 올라 출입문 옆에 기대어 영어 단어를 외우며 (낮에 일
하느라 외울 시간이 없으므로) 부천 역에 닿으면 밤 11시가 다 되어 간다.
환한 불빛이 있는 전봇대에서 영어 한 단어 확인한 뒤, 암기하면서 60m
정도 걸어가면 다음 전봇대가 나온다.
이번엔 수학공식 하나 중얼거리면서 외웠다 싶으면 또 다음 전봇대가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전봇대 중간에는 컴컴해 단어를 볼 수 없었기에 철저하게 전봇대 불빛을
이용해 단어,숙어,수학공식만이라도 해결해야만 촌음의 시간을 아낄 수 있
어서였다.
밤길 뚫고 11시30분에 집에 도착해 저녁 먹고 그날 배운 거 복습하고 나면,
잠자리에 드는 건 언제나 새벽 2시였다.
당시 대입 검정고시(고등학교 졸업 과정)를 공부하러 온 친구들은 저마다 나이
와 사연은 다르지만,꼭 배우고자 하는 의지 하나는 그 누구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낮에는 각기 다른 일터에서 돈을 벌어 밤에 고려학원에 모여 어렵사리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합격하여 공부를 마친 학생들은 모임을 가졌는데, 그 이름하야 고려학원을 뜻
하는「고우회」다.
40년이 되도록 끈끈하게 친목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다들 어렵게 공부했던지라 지금은 자기 자리에서 제몫을 충분히 지켜내면서.
한 20여 년이 넘었을까.
'고우회' 가족 동반 설악산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어린 자식들 앞에 두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꺼내보니 세월이 쏜살 같은
게 벌써 커서 결혼을 하여 부모님 둥지를 떠나고 있는 마당이니.
첫줄 왼쪽에서 4번 째가 김은선 프로 4단(둘째 딸),
두 번째 줄 왼쪽에서 3번 째가 김은옥 아마 6단(큰 딸) 맨 뒤 가운데 넥타이 사진이 필자.
그 40년 지기〈고우회〉가 부부 동반 송년회 모임을 가졌다.
여의도 한강 '애슐리'에서 격조 있는 음식과 포도주로 분위기를 띄운 후, 한강
유람선을 타고 강바람을 맞는 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 뒤에 평생 고생만 한 아내가 서 있다.
조선 권율 장군이 왜군을 무찌른 행주산성 아래서 메밀국수와 박정희 대통령
이 14년 간 청와대에서 즐겨 마신 '배다리 막걸리'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