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에게 투사되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된다. 40대 중반의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전문직 여성 J는 남편의 외도로 자존심이 상해 내원했다.
자신보다 세 살 위인 고위직 공무원 남편과는 각방을 쓴지 오래다. 남편은 주말이면 혼자 취미 생활을 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평소 아내가 밖에서는 존경받는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남자로 취급하는 게 불만이라고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는 존경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으며, 그렇게 잘난 척하는 것이 마음에 안드는 이유라고 말한다.
권위적이고 어울리지 않게 마초 행세하는 점도 너무 싫다. 자신보다 똑똑하고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기대했는데 그냥 사회적 지위만 내세우고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라 실망스러웠다.
남편이 만나는 상대 여성은 남편보다 세 살 연상의 이혼녀인데 수준도 낮은 것 같아서 아내는 자존심이 상한다. 남편은 그 여자는 잘난 척하지 않고 남자를 떠받들고 편안하게 해 준다며 아내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사례 역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갈등으로 보인다. 남편은 자신의 기분을 잘 맞춰 줄 수 있는 여성스럽고 모성적인 아내를 원한다. 여자가 자신을 받들고 따르기만 하면 책임지고 돌봐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의 아내는 도도하고 지극히 독립적이다. 남편에게 숙이는 법이 없고 오히려 잘못 을 지적하고 야단치고 가르치려 든다. 아쉬울 게 없는 아내 역시 권위적이면서 어린애 같은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내는 자신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남편을 기대한다. 지혜롭고 존경할 수 있는 남자면서 매너 좋고 멋을 아는 남자이길 바란다. 그렇다고 남편을 항상 무시한 것은 아니다. 권위적이고 툭 하면 삐치고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 때도 있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은 한 번도 이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여자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두 부부 사이는 남편의 외도로 더욱 복잡해졌다. 자존심이 무척 상한 아내가 그래도 참고 남편에게 다가가려 하나 바람핀 남편은 오히려 당당하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버지가 심하다고 느낀 대학생 딸이 엄마 편을 들고 나선다. 아니마에 사로잡힌 남자는 어느 순간 마음속에 그리던 바로 그 여자라고 느끼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형빈이 윤주를 대할 때 그러했다. 아내보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객관적으로 볼 때 아내보다 나을 게 없다. 남이 볼 때는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사실 아니마는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 주기만 할 뿐이다. 조강지처와 달리 어려울 때 함께할 사람은 아니다. 아니마는 마음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외부 현실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옷을 되찾은 선녀는 어느순간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나무꾼에게 남는 것은 허탈한 마음뿐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긍정적인 기능은 살리되 부정적 영향에서는 헤어나야 한다. 이는 전적으로 각자 자신의 내면의 문제이고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마음속의 문제지 외부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