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 기행 외 1편
김경호
금일휴업 홍어일번지 가게 앞
멋쩍은 기념촬영을 하며
반백의 허방 선생이 웃는다
사천 통영 진주 광주 나주 지나
숨 가쁘게 달려 온 남도 땅
불 꺼진 등대만 영산포를 지키는데
흐르지 않는 천정천(天井川)에는
언 땅 휘저으며
붉은 공룡들이 낮게 울고
남도 유배길 팻말이
저녁 어스름에 젖는다
기다려도 그 배는 돌아오지 않고
홍탁 삼합
보리앳국에 취해
광주행 막차도 떠난
낯선 식탁엔
흑산도 먼 바닷속
그 진한 향기만
어둠처럼 깊어가는데
끝내 마지막 배 오지 않던 영산포
그날 밤 흘러 닿은 녹향월촌,
우리가 꾼 긴 꿈속엔
돛단배 가득 영산포에 모여
푸른 물결에 비치고 있었다
월남리 흥건한 달빛에 젖어
허방* 선생 춤추고 있었다
* 이승찬 화백의 호
안동 가는 길 2
안동시 운안동 옛집
양지쪽 툇마루엔 오늘도
살찐 고양이들
오후의 잠이 묻어 있다
홍수에 밀려난 그해 여름 이후,
먼 강가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안개는 피어나
나를 미행해 왔는지
여기는 아직 모래알만 서걱이는
엄동설한,
마른 달맞이꽃 씨방에 갇혀
달그락거리며 살아온
세월들,
긴 굽이 돌아
저무는 골목 나서려는데
늙은 감나무 아래 서릿발 걷어내고
겨울 대파 한 움큼 뽑아주시며
파뿌리처럼 하얗게 웃으시던
당신,
그 웃음도 함께 오래오래
신문지에 싸안고 돌아오는 길
아직도 그 옛집 뒤안에는
쉰 해 넘도록
녹지 않는 잔설 있다,
언 손 불며 푸른 새벽길 나서시던
당신의 뒷모습
ㅡ『시에티카』 2011년 상반기 제4호

김경호
경북 의성 출생. 1977년 영남일보, 198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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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지 『시에티카』
시
영산포 기행 외 1편/김경호
황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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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0 20:2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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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말 남도 기행 잘 하셨는지요. 문득 영산포 기행 나서고 싶습니다.
하동 쌍계사, 순천 와온해변을 거쳐, 여수에서 김진수시인과 봄도다리회 맛있게 한 접시, 조정래문학관, 강진 청자 박물관, 진도가서 세방낙조 보고, 목포에서 세발 낙지, 채석강에서 백합죽, 선운사에서 정윤천 시인이 사주는 풍천장어,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돌아 2박3일 막내 아들과 아름다운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모두모두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