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느리게 달린다
올봄 한국철도공사에서 운행하는 중장거리 열차 누리로를 관광 전용 열차로 재정비한 ‘중부내륙순환열차’가 개통되면서 중부 내륙 지역을 여행하는 좋은 방법으로 급부상했다. 중부내륙순환열차는 한반도에서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 가까이에 조성된 태백선, 중앙선, 영동선을 달린다. 모두 1970~1980년대에는 석탄, 시멘트, 목재 등을 실어 나르며 ‘근대화의 대동맥’이라 불렸던 산업 철도지만 1990년대 들어 화물의 철도 이용 빈도는 뜸해졌다. 대신 이제는 그 주변의 청정 자연을 보려고 모여든 여행객들의 이동을 도와 편리하고 매력적인 여행 수단이 됐다. 중부내륙순환열차는 서울에서 출발해 충북 제천까지 직통으로 운행하며, 제천에서 영월·추전·태백·철암·봉화·영주·단양 등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를 넘나들며 14개 역에 정차한다. 1회 순환에 걸리는 시간은 5시간 정도로 O자로 돌며 여러 지역을 ‘하나One’로 연결한다고 해 ‘O-트레인’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형상화한 내부 인테리어에 카페칸, 전망칸, 유아놀이방, 패밀리 룸, 커플 룸 등 다양한 객실이 마련되어 있어 동행과 즐길거리도 가득한데, 혼자라고 해도 걱정할 건 없다. 쉴 새 없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반도 중심의 비경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으니 여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 아날로그 기차 여행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풍경의 파노라마를 관람해도 그만이지만 “잠시 정차해 포토타임을 갖자”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면 잠시 역 근처를 배회해보자. 그것이 순환선의 장점 아니겠는가. O-트레인이 정차하는 철암역에서는 승부, 양원, 분천에 이르는 약 30km 구간을 왕복하는 백두대간 협곡Valley열차, ‘V-트레인’으로 갈아탈 수 있다. V-트레인은 이전엔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닿을 수 있었던 오지의 작은 시골 역에 정차하는, 중부 내륙 여행의 ‘꽃’이다. 열차의 좌우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속도도 시속 30km로 KTX의 10분의 1에 불과해 마차를 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찬찬히 달리는 열차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면 솔숲의 향, 단풍의 색, 청량한 물의 감촉이 순식간에 몸 안으로 스민다. V-트레인의 기종은 전기 기관차에 밀려 퇴역하는 디젤 기관차로 당연히 실내에 각도를 기울일 수 있는 의자나 에어컨 같은 건 없다. 알록달록 색칠해진 나무의자, 천장에 달린 선풍기와 양은도시락 올려놓고 데우던 그 옛날 목탄 난로가 전부다. 그렇지만 열차의 외관을 장식한 꽃분홍색이며 1970년대풍의 복장을 한 승무원들까지도 촌스럽기보단 낭만적이다. 아날로그 향이 폴폴 풍기는 이 느림보 열차가 세상의 시간까지 그리운 그때에 멈춰 세운 듯하다.
때 묻지 않아 순수한 백두대간의 속살
V-트레인이 데려다주는 곳들은 그동안 외지인의 발길이 뜸했던 곳이어서 자연도 사람도 하나같이 순수하다. 태백의 가파른 고개가 겉으론 근엄해도 그 안에서 만나는 오지마을은 수수하고 정겹기만 하다. 승부, 양원, 분천은 모두 V-트레인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아주 작은 역으로 여행객조차 드물었으니 주변 편의 시설도 잘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승부역 앞에 ‘승부역은 하늘도 꽃밭도 세 평이지만 영동의 심장’이라는 시가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만큼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역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양옆으로는 가파르게 산세가 솟아 있으며, 골짜기는 좁은데 계곡은 깊다. 지형이 워낙 험준해 60여 년전 영암선 철도 공사 당시 희생된 사람들이 있었다. 시비는 그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다음 역인 양원은 승부역보다도 작다. 전국에서 제일 작다는 이 기차역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교통수단이 전무했던 시절 주민들이 직접 세운 것으로, 역사 안에는 박물관으로 가야 할 듯한 오래된 TV와 시계가 있다. 분천역은 기차 외에는 어떤 교통수단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청정 자연을 지켜낸 스위스의 체르마트를 빼닮았다고 해 그곳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역사에 스위스의 목조 전통 가옥인 샬레를 짓고 체르마트 역에서 기념으로 준 시계도 걸어놓으니 자연스레 유럽의 분위기가 물들었다. 어쩌면 이 작은 시골 역은 낯선 이들이 몰고 온 지금과 같은 활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땅덩이가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아직도 순수의 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행운이 아닐까.

운행시간 - O-트레인은 서울역에서 매일 오전 7시 45분에 출발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는 오후 8시에 제천역에서 출발해 오후 10시 5분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소요시간 - O-트레인은 서울에서 제천까지 가는 데 2시간가량 걸린다. 제천에서 태백, 영주 등을 지나 다시 제천으로 4회 순환하며 약 5시간 소요된다. V-트레인은 분천과 철암에서 각각 오전 8시 50분, 10시에 첫차가 출발해 3~4시간 간격으로 철암과 분천 구간을 왕복한다. 편도에 1시간 10분 소요된다.
이용요금 - O-트레인은 서울에서 제천을 거쳐 1회 순환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요금이 6만4,200원이다. 일부 구간만 편도로 이용할 수도 있다. V-트레인은 8,400원이다.
Tip
조금 더 여유롭게 여행하는 법
‘여행패스(O-train Pass)’를 이용하면 최대 일주일까지 자유롭게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패스는 1일권(5만4,700원)부터 7일권(12만3,100원)까지 다양하고, 패스 사용 기간 내에는 O-트레인과 V-트레인은 일반 열차도 탑승 가능하다. 정차역과 연결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역에서 자동차나 자전거를 빌려 조금 더 깊숙이 살펴보고픈 지역을 둘러볼 수 있다.
문의 코레일 1544-7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