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진정인 지인의 추천으로 경기도 시흥에 소재한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01년 백남준과 경기도 간에 미술관 건립을 논의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2008년 개관했는데, 그는 2006년 사망했다. 생전에 그는 이곳을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으로 명명했었다고 한다.
건축물은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독일 건축가 키르스텐 쉐멜과 베를린 KSMS 쉐멜 스탄코비치 건축사무소의 마리나 스탄코비치가 공동으로 설계했다. 외관은 백남준 작품에 등장하는 그랜드 피아노 및 백남준의 Paik의 "P"의 형상이며, 외벽은 겹겹의 거울로 되어 있어 걷는데 지루함이 없다.
건물명 옆에 빨간색으로 공식같은 것이 눈에 보여 의구심이 발동해 찾아본 바, 백남준이 54세 생일을 기념해 제작한 작품 속의 기호라고 한다. 물음표에서 거꾸로된 물음표를 빼면 무한대라는 말인가? 설명서에 따르면, "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그것을 뒤집어 새로운 질문으로 변형시킬 때 무한한 변형과 순환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은 끊임없이 질문해라 이다~
전시 관람 전에 건물 주변을 먼저 탐색하여 순서를 바꿔보기로 했다. 건물 옆으로 돌담길이 놓여 있어, 올라가보시오 하는 듯했다.
위로 올라가니 건물 2층 카페와 연결되어 있다. 언덕에 건물을 짓게 되면 디자인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빨간색 컨테이너박스 앞으로 내리막길은 아래 사진처럼 환상적이었다. 왼쪽 건물의 유리벽과 오른쪽의 벽돌로 이루어진 곡선이 만나 데칼코마니를 이루었다.
주차할 때 놓여 있는 안전콘(Safety Cone)은 분명히 예술작품이리라. 왜냐면 너무 커다랗게 때문이다^^ 데니스 오펜하임(1938~2011)은 대지예술, 퍼포먼스, 설치예술, 공공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이다. 안전콘 크기를 확대해 공공장소에 두어 거리의 풍경을 바꾸고 관람자의 의식을 깨우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는데, 설명이 왠지 어거지로 느껴진다^^
데니스 오펜하임 작 <안전콘>(2008)
가까이서 보는 것과 멀리서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언덕을 깎아서 그 안에 건물을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뒤쪽으로 산책로 혹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안전콘이 언덕 위쪽으로 1개 더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길이 끝나지 않고 언덕 뒤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다. '용인 상갈동 유적발굴지'라는 팻말이 있어서 읽어보니, 백남준아트센터 부지 문화재 좌에서 확인된 유적이라고 한다. 3세기 후반의 무덤 유적이다. 2천년 전의 역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우연이다. 우리는 우연으로 발견된 것을 엮어서 역사를 만든다. 언덕 뒤로 이어져 있는 곳은 일단 전시 관람을 마치고 다시 오기로 하고 내려왔다.
2022년 2월 20일 현재 1층은 공사중이었고, 2층 국제예술상 수상작가전을 하고 있었다. 우선 1층의 LIBRARY를 들어가본다.
크기는 방대하지 않지만, 이런 서재 한번 가져보고 싶을 정도로 팬시하고 정돈되어 있다. 책장이 벽쪽으로 붙어 있지 않고, 방 한 가운데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각형에 문이 있어 들어갈 수 있다.
방안에 들어가면 미래도시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머리 위쪽을 보면 책장이 돌출되어 풍부한 입체감을 경험할 수 있다.
LIBRARY 사각형 책장 내부 한 켠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어, 관람자가 앉아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데, 투명하여 바깥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아래 사진을 보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다.
위의 책상이 바깥쪽에서는 아래처럼 보인다. 오픈되어 있다.
본격적인 전시 관람을 위해 2층으로 올라왔다. 안에서 바라본 밖의 모습이다.
백남준의 실험적이고 창의적 예술 정신을 확장시킨 아티스트 발굴을 목적으로 2009년 국제예술상이 제정되었다. 2020년 수상한 아티스트 캠프(CAMP)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캠프는 인도 뭄바이에 기반한 협업 스튜디오이다. 건물 외관 디자인과 태양빛의 효과로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복도마저 작품처럼 느껴졌다.
깜깜한 공간에 여기 저기에서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전시 타이틀은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이다. 거대 미디어 인프라는 우리 삶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친다. 뭄바이, 영국 맨체스터, 이스라엘 예루살렘, 카불 등지에서 그동안 캠프가 작업한 작품들을 극장처럼 조성된 공간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져 관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람할 수 있다.
아래 동영상은 뭄바이의 어느 지역인데, 1000년 전 그 자리가 호수였다고 한다. 그것을 형상화 해 놓았다. 겹겹의 과거가 흘러 오늘에 이르른 이 땅은, 언제는 물이었고, 언제는 흙이었고, 지금은 시멘트이다. 추후는 모르지만, 이후 세대는 동영상과 사진으로 과거를 알게 되겠지 한다.
이곳은 백남준 비디오 아카이브에 대한 파일럿 프로젝트로 꾸며졌다. 동시대 예술은 너무나 형식이 다양하여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경우들도 많다. 본 전시도 미술관, 시네마, 아카이브, 웹사이트르 서로 교차하며 각각의 플랫폼 간에 시프트가 일어나는 전시이다. 전시를 보면서 의문이 생기면 질문해야 한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면 항상 기분좋게 대답해준다.
한 켠에 마련된 이 공간은 백남준의 생전 공간을 꾸며놓은 곳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브라운관에 아래와 같이 낙서를 하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언뜻보면 지저분해 보이지만 지저분함 속에서 포스트잇으로 나름대로 상자에 이름을 붙여놓았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다시 들어갔던 복도를 통해 나왔다. 내가 방문했던 2022년 2월엔 1층이 공사중이라, 2층만 개방되어 있었다. 백남준전 일부를 증강현실(AR) 앱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가이드가 제작되어 있다. 추후에는 직접 방문 없이 전시도 앱으로 보는 날이 올 듯하다.
나오는 길에 플럭스룸이 마련되어 있어 잠시 들러보았다.
밖으로 나와 뒷동산에 오르니 바로 뒤가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이다. 자녀들이 있다면 함께 돌아보면 유익할 것이다.
그 옆으로 상갈공원 산책로가 놓여져 있어 잠시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오늘 방문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