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9-20
가문과 교회를 흥왕(興旺)케 하는 사람
오정호 목사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잠언11: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발전하고, 성숙하고, 열매를 남기게 되고, 악한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혼란시키는 부정적 영향을 확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꿈과 믿음을 주고 간증이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는 당대 최고권력자 아닥사스다왕의 최측근으로서 아무 걱정없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자원하여 고생하는 장면이 본문의 배경이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고국의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이 초토화된 것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로 구원의 성벽을 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명탑을 쌓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문과 교회를 흥왕케 하는 사람, 복의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가문과 교회를 흥왕케 합니다(12절a).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12절a).
느헤미야의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그의 마음에 담아 주셨다는 겁니다. 마음은 그릇입니다. 마음이 깊으면 깊은 삶을 살고, 마음에 감동이 넘치면 감동적인 삶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과 코드(code)가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관심이 머무르는 곳에 느헤미야의 관심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코드가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코드는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서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기대를 깨닫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살기를 작정하면, 가정과 교회를 흥왕케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좋은 아이디어, 계획, 꿈들이 부어진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읍시다. 믿음의 눈을 뜨고 믿음의 귀를 열어 주의 음성을 들읍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감동 받은 사람, 하나님의 감동을 마음에 담은 자를 통하여 오늘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둘째,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전의 사람이 가문과 교회를 흥왕케 합니다(17~18절).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荒蕪)하고 성문이 소화(燒火)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하고"(17절).
하나님의 백성답게 신앙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성(城)은 중요합니다. 요새로 말하면 비기독교적인 가치관이 물 밀 듯이 밀려올 때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보호를 받고 영적인 진리를 순수하게 지켜낼 수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눈에 보이는 건물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전에도 동일합니다.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18절).
선한 일,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은 비전의 사람입니다. 꿈을 가지고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들이 다 자는 밤에 깨어있도록 만듭니다(13절a). 물리적인 밤뿐 아니라 윤리적인 밤, 영혼이 마비되어있는 때에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마음속에 주님이 주신 등불을 가지고 깨어있습니다. 모두가 잠들고 둔감해졌을 때에라도 밤을 깨우는 능력이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집니다.
비전은 역경가운데서도 일어서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13절b).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불타 무너졌습니다(14절).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마음은 묶이지 않았기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잿더미 속에서도 찬송할 수 있는 능력이 비전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비전의 탈취자 즉, 비전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복병처럼 숨어있는 대적들도 만납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19절).
이 사람들이 힘을 합쳐 느헤미야와 같이 협력하는 꿈있는 사람들을 도전합니다. 다시금 성벽을 쌓겠다는 건축자들의 말을 듣고 업신여기고 교묘하게 말을 꾸며서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살겠다는 작정은 순풍에 돛단 듯이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 산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형통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주를 위해 살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오게 될 때에 벌써 마음에 근심하고 분노하였던(느헤미야4:1,10)대적들은 그를 비웃고(느헤미야4:2-3), 위협했습니다(느헤미야4:7,12). 위협하는 편지를 보냈고(느헤미야6:5) 거짓 예언으로 일을 그만두도록 미혹했습니다. 얼마나 교묘하게 느헤미야와 여러 돕는 형제들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축복스런 일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해 꿈있는 사람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항상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은 자답게 리더로서 섬김으로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앞에 주도적으로 섬기며 하나님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비전을 가진 인물들이기에 부정적인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끌리거나 두려움에 떨지맙시다. 우리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읍시다.
셋째, 하나님이 형통케 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가문과 교회를 흥왕케 합니다(20절a).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20절a).
하늘의 하나님이 형통케 하신다는 확신은 하나님이 이루게 하실 것이고 번영케 하실 것이다는 확신을 말합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사용해 주십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늘의 하나님이 형통케 하면 그 형통을 빼앗아 갈 자도 없고, 형통의 문을 닫아 버리면 그 문을 열 사람도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요한계시록3:8a).
하나님이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의 문을 주셨으니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하다고, 과거에 못배웠고 가진 것이 없다고 탄식하지 맙시다. 영적 세계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이미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기를 믿음으로 작정하고 나아갑시다. 꿈을 가진 자들, 하나님의 형통함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문과 교회를 복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을 움직이는 삶의 동인(動因)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가문을 움직이기를 원합니까?
우리 새로남교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이 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의 삶과 가문과 교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을 주님의 코드에 맞추고 마음에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뜻과 소원대로 살기로 작정합시다.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전의 사람들이 되어 밤을 깨우고 역경가운데서도 일어서서 섬김으로 이끄는 리더들이 됩시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열린 문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가문과 교회를 흥왕케 하는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갑시다.
내가 소원하는 나
예수 이름 없이는
내 인생
해석이 불가능하듯
나 없이는
우리 가족 은총의 역사
해석이 불가능한
사람되게 하소서
내가 소원하는 나
주님이 소원하는 나
한치의 오차없이
일치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