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 : 3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은혜와 평강에 대한 신약에서의 개념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그 개념이 더욱 완전하게 드러났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은혜와 평강은 삶에서 누리는 분복으로서의 추구할 가치로 여겨졌지만, 신약은 인간 구원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인데 기쁨이라는 <카라>에서 온 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이다.
평강은 <에이레네>이며, 히브리어로는 <솰롬>인데,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 따라서 평강은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뜻하며 이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시기까지 하셨다. 따라서 은혜와 평강이란 삶에서 누리는 분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은혜와 평강을 뜻한다. 즉, 사도는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의 보전과 영적인 평화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혜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것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또 평안은 사람이 은혜로 구원받은 결과로 누리는 복이다. 죄인은 평안의 길을 알지 못했다. 악인에게는 평안함이 없다.
* 사 48: 22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 평안하게 해주셨다.
* 마 11: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평안이라는 말은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안정 등을 다 포함한다.
이 세상은 언제나 불안정하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참된 평안이 있다.
* 요 14: 27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이 구절은 전형적인 바울의 인사 형식이다.
당시 헬라 세계의 일반적인 인사말은 삼인칭을 사용했지만, 바울은 일인칭이나 이인칭을 사용하여 훨씬 가까운 친밀감을 표현하였다.
바울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란 말은 본장의 1절부터 9절까지 아홉 번이나 반복되었다.
바울의 문체의 독특성 중의 하나는 핵심 되는 단어를 계속하여 되풀이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히 보여준다.
전치사 '좇아(*, 아포)는 하늘의 은사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3]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런 형식의 인사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 롬 1: 7 -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갈 1: 3 -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엡 1: 2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빌 1: 2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은 바울 사도의 '구원의 복음'을 요약한 표현이다.
'구원'이란 하나님과의 평화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평화, 그리고 자신과의 내적 평화로서 화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은혜'(*, 카리스)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값으로 계산 불가한 것을 대가 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평강'(*, 에이레네)은 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인사말 '샬롬'(*, '평화')에서 온 말로 분쟁과 싸움이 없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축복이 있어서 풍요로운 영적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Morris).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 것은 그들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 고후 8: 9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엡 2: 8, 9 -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 롬 5: 1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우리로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
* 엡 2: 14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본 절에서 바울은 비록 은혜와 평강을 얻는 방편인 믿음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 믿음을 소유한 모든 자에게는 이 은사가 주어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혜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것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만 온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이 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이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는 평강의 길을 알지 못했다.
* 롬 3: 16-17 -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 사 48: 22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 사 57: 21 -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러나 예수께서 참 평안을 주셨다.
* 마 11: 28-29 -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요 14: 27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안정 등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은 언제나 불안정하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평강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감사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계속 사모하며 늘 받아 누리자.
2. 항상 하나님께 감사 ( 1 : 4 - 9 )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였다.
그는 감사한 이유를 좀 더 설명한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과 지식의 풍족함을 주셨고 그리스도의 증거, 즉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견고케 되게 하셨음을 감사하였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즉 그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하셨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만에 승천하셨다는 사실들에 근거한다.
그것들은 다 증인들의 증언들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그 사실들이 긴 시대적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믿어지는 이유이다.
성경은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 책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 위에 근거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들을 확신했다.
둘째, 그는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기 때문에 감사하였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모든 성도에게 항상 있어야 할 요소들이다(고전 13: 13).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사역을 믿는 것이며,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행하는 것이며, 소망은 주의 재림과 천국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도의 소망이요 큰 힘과 위로이다.
셋째, 그는 주 예수께서 그들을 그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였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이시다. 바울은 빌립보서 1: 6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구속(救贖)하신 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영생에 이를 것이다.
* 요 6: 39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요 10: 28 -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롬 8: 30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주께서는 피흘려 사신 자들을 다 찾으실 것이며, 그가 찾아 구원하신 자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다.
성도의 구원은 보장된다. 그는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인격자로 훈련시키시고 보존시키실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위로와 담대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다. 그가 한번 우리를 불러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셨다면, 끝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주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주를 대항하며 죄 가운데 살았을 때 그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셨다면, 그는 우리가 지금도 부족과 연약이 많을지라도 끝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망치 말고 더욱 분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