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창건 설화(1)
옛날 도솔산은 첩첩산중이었다.
그러기에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일정한 터를 잡지 못하고 유랑하거나 때로는 도적으로 변하여 근동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였다.
이에 검단선사(黔丹禪師)는 이들을 모아 교화하고 소금 굽는 법을 가르치고 선도하여 자염(煮鹽)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유랑민들의 생활은 차츰 안정되어 정착하면서, 염부가 된 양민들은 검단선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보은염(報恩鹽)을 정기적으로 선운사에 공양함으로써 그 전통이 근세에까지 계속되어 왔었다.
이 이야기는 선운사 창건 설화의 시작이며 창건설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운사를 창건하기에 앞서 인근 유랑민들을 교화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절터를 닦아야하고, 그 절터에 절을 지어야할 필연적 사실이 존재해야한다.
그래서 선운사 창건 설화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옛날에는 지금의 절터인 선운사 경내가 늪지대였다.
절을 세우기 위해서는 늪지대를 메워야하는데, 용문암에 사는 사룡인 이무기가 용문암과 늪지대를 휘젓고 다니며 사람들을 해하므로 늪지대를 메울 수가 없었다.
이에 검단선사가 도력(道力)으로 이무기를 쫓아내자 이무기가 쫓겨 가면서 요동을 치며 바위를 뚫고 나가는 바람에 바위에 남북으로 큰문이 생기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에 뚫린 구멍을 사룡이 나간 문이라 해서 용문굴(龍門屈)이라 했다.
이때 용문굴을 통하여 서해바다로 도망간 이무기가 다시 와서 늪지대를 못 메우게 심술을 부렸다.
부처님에게는 수제자인 10대 제자와 16나한이 있듯, 검단선사에게도 16제자가 있었다. 이무기의 심술을 보다 못한 검단선사의 16제자 중 한 사람이 도력을 발휘하여 이무기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이무기는 서해바다로 도망가지 않고 내륙 방장산 쪽으로 달아났다. 제자는 이무기를 쫓아갔는데, 그 한 제자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도솔암 나한전에는 16제자가 모셔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오지 않은 한 사람이 있어 15제자만을 모셨던 것이다.(※그런데 최근에 슬그머니 한 제자를 모셔 지금은 16제가 안치되어있다)
그때 선운사 주변에는 눈병이 돌고 있었다. 눈병은 백가지 약을 써보아도 낫지 않았다. 이에 검단선사는 도(道)력을 써서 “눈병을 낫게 하려면 늪지대에 자갈과 숯을 한 가마씩 가져다 부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갈과 숯을 한 가마씩 늪지대에 부었더니, 신기하게도 눈병이 낫는 것이었다. 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자갈과 숯을 늪지대에 부으면 눈병이 걸리지 않았다.
선운사 근방에 사는 사람들도 예방차원에서 모두 이와 같이 자갈과 숯을 부어 늪지는 곧 좋은 절터가 되었다.
이때 인천강 하구에 돌로 된 배가 들어왔는데, 배 안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배는 스스로 멀리 가버렸다. 사람들은 궁금하였으나 자기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 검단선사에게 말씀드렸다. 검단선사는 그 돌배가 있는 곳에 가보았다. 검단선사가 가자 돌배는 스스로 검단선사 있는 곳으로 왔다.
검단선사께서는 돌배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배 안에는 ‘옥축대장경’과 ‘금동지장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석불(石佛) 등이 있었다. 검단선사는 그 불상 등을 정중히 모셔와, 석불은 참당암(懺堂庵)에 모시고,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선운사에, 지장보살좌상은 도솔암(兜率庵)에 모셨다.
참당암에 모신 석불을 혹자는 약사여래라 하나 스님복장의 머리의 두건 등으로 보아 지장보살이 틀림없다고 한다.
선운사에 모신 세 분의 지장보살은 전설 속의 그때 돌배 속에 있었던 분들이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도솔암에 모신 지장보살이 천지장(天地藏)이며, 참당암에 모신 지장보살은 인지장(仁地藏), 선운사에 모신 지장보살은 지지장(地地藏)이다.
선운사 일대는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三仁里)인데, 보살을 한역(漢譯)하면 인자(仁者), 즉 어진자라고도 하니, 세 분의 보살을 모신 리(里)란 뜻에서 삼인리(三仁里)라 한 것이란 설도 있다.
이렇게 세 분의 보살을 모셔놓고, 89개의 암자와 189개의 요사를 지어 선운사를 크게 창건하시었고, 선운사를 영원히 보호하기 위하여 선사께서는 스스로 산신이 되어 지금도 선운사의 청정도량을 지키고 계신다는 전설이다.
그 전설을 증명이라 하듯 선운사 영산전(靈山殿) 뒤에 있는 산신당 안 정면에 벽화로 창건주이신 검단선사와 또 하나의 창건주 의운국사를 모셔놓고 있다.
그렇게 많은 암자와 요사를 두고 번창했던 선운사는 지금은 그 많던 암자와 요사가 다 없어지고, 선운사 본절과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등만 남아있을 뿐이다.
선운사 터가 늪지대였다면 바닷물이 선운사 앞까지 들어왔다는 얘기다.
자갈과 숯은 천년을 썩지 않고 모든 독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보면 절 밑 땅속에서는 지금도, 아니, 영원히 숯이 물을 정화하여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고창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도솔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다른 계곡의 서해안 물과 달리 흐른다.
보통의 서해안으로 흐르는 물은 동쪽에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나 도솔계곡의 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서출동류(西出東流)하면서, 선운사 앞에서 숯으로 정화된물과 만나 인천강물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 바다와 만나는 특이한 흐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고창의 풍천장어가 왜 좋은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설과 현실이 부합(符合) 되는 현상 같기도 한 것이다.
나는 선운사 창건설화 중 ‘검단선사 창건설화’를 굳게 믿고 있는데 그렇게 믿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