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1] 정수원(鄭壽源) - 소명하신 뜻길 따라 8. 협회부장에서 개척 교회장으로 1 나는 협회전도부장으로 새로운 보직을 받게 되었다. 먼저 전국교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2번이나 전국을 순회하였다. 그런 가운데서 느낀 것이 절대적인 원리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부흥이 잘 안되는 원인은 인도자들의 실력부족이라고 생각하였다.
2 인도자들 대부분은 심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식구들을 지도하지 않고 아벨의 입장에서서 명령하는 식이었으니 식구들과 심정과 사정이 통하지 않고 화합이 되지 않았다.
3 그래서 순회하면서 일깨워 주고 한편으로는 인도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연차적으로 원리강의와 설교학과 상담학 등의 교육을 하면서 공부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그리고 교회를 신축하였으니 주일학교를 운영할 것을 강조하여 반사교육을 실시하고 주일학교 공과책도 발간하였다.
4 1976년도야말로 나에게 기쁨과 슬픔이 엇갈린 해였다. 하늘은 4월 1일부터 5월말까지 60일의 특별 전도기간을 설정해 주시고 6천 년의 역사를 탕감케 하시는 크신 은사를 베풀어 주셨고 나의 가정에는 8남매의 자녀로 인하여 선생님께서 상금을 주셔서 피아노와 냉장고를 구입하여 애기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5 애기들은 주일학교 예배를 마치고 친구끼리 놀다 오면 “누구 집은 무엇이 있는데 우리 집에는 왜 없느냐” 면서 푸념을 하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된 도리를 못해서 무척 난처했다.
6 11월 4일에는 나의 부친 정석천(鄭錫天) 장로가 10년 가까이 반신불수로 고통을 당하시다가 71세를 일기로 타계 하셨다. 부친의 회갑때에도 참석치 못하고 500원을 드렸는데 병석에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회갑일에 쓰라고 500원을 줄 수 있느냐”고 섭섭해 하셨다고 한다. 나는 부친의 시신 앞에서 뉘우쳤다.
7 1977년에는 총무부장으로 전보되었다. 1978년도는 중요한 해이니 열심히 일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여 100일간 아침 금식을 하였고 5월 16일부터 집사람과 청평에 들어가 3일 금식을 하면서 선생님의 신변을 위해서 기도드렸다.
8 1979년도부터는 전도부장을 겸직하면서 바쁘게 보냈고 1980년도에는 선생님을 모시고 일본간부 150여 명과 한국의 교구장들이 함께 설악산과 동해안을 거쳐 경주, 부산 등을 순회하였다.
9 1981년도에는 예진씨 결혼식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는데 단독결혼식 진행은 처음해 봤기 때문에 당황하여 혼이 나기도 하였다.
10 나는 내가 선생님과 같은 입장에 서지 못했으니 선생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행하여야겠다는 신조로 27년간 뜻길을 따라 나왔기 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이제까지 남아질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의 염려와 사랑의 손길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하므로 개척 교회장으로 있으면서도 나는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며 복된 자가 되어 보겠다고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