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2-17 / 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우리는 사탄이 사는 곳에서 내 생각과 마음과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요한은 증언합니다.
지금 잠시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는 사탄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성도의 믿음을 미혹하는 것들 천지입니다.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속하여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루터는 이 땅에 마귀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살벌한 영적인 세계의 현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도 속하였지만 세상에도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도 두 나라가 전쟁을 할 때 이편도 저편도 아니면 그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 아니면 사탄에게 속한 것입니다.
흰 옷도 아니고 검은 옷도 아닌 회색 옷을 입은 자들의 결국은 심판인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며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옷을 입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당연히 구원을 받은 줄 아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처럼 핍박이나 환난에서는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와 물질주의와 타협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라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눈 먼 바리새인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먼저 내 안을 깨끗히 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행위와 열심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처음 사랑을 지켜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의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영광으로 배를 불리려고 하면 미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사탄이 공략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생각부터 말씀으로 대적하고 지켜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로 지키면 내 몸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게 됩니다.
어쩌면 이 시대는 하나님과 발람을 즉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된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면 사람들은 안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생명의 길은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요?
넓고 편한 길이 아닌 힘들고 어려워도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날마다 못을 박으며 십지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그 좁은 길만을 가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그 좁은 길의 끝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납시다!
오늘도 내 마음과 생각이 주님으로 충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