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異端의 追憶 #89, 어느 목재상의 여(女)경리
시주에 얽힌 이야기 한토막이다.
고려 명종 때 일이다. 관리 노극청이 일을 나가있는 동안 그의 아내가 은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가세가 워낙 가난해서 그의 아내가 호구지책으로 한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를 전해들은 노극청은 집을 산 현덕수를 찾아가 집을 판 금액중에서 3근을 도로 돌려주려 했다.
자기가 전 주인에게서 9근에 집을 사서 수리도 하지 않았는데 3근을 더 받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물을 탐하는 것은 의(義)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을 산 현덕수는 이미 매매가 이루어졌고 대금 결제가 완료되었으므로 도로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노극청의 진정성을 뿌리칠 수 없어 결국 3근을 돌려받아 그 돈을 절에 시주했다. ‘고려사 현덕수전’에 나오는 얘기다.
헌금에 얽힌 어느 딱한 이야기도 한토막 전해진다.
어느 청년의 이야기다. 저희 어머니는 마음도 여리고 생각이 깊지 못해서 조금만 힘든일이 있어도 교회에 매달리고, 수입의 80%를 거의 헌금으로 낭비하고 계십니다. 특히 저희 아버지가 집안의 재산을 모두 매각하고 어머니와 저를 남겨둔체, 8년전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일이 생긴후 저희 어머니는 거의 미친사람 처럼 살았고 모든일을 교회에 의지 하시려고 하십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머니께 부담 드리기 싫어서 저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고 돈이 없어 끼니를 굶어도 어머니께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월 80만원을 받으며 일을 하셨고 대부분의 수입을 교회에 헌금으로 바치셨고 목사님의 생활비 일체를 모두 부담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다그치고, 자식의 연을 끊자고 싸워도 어머니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식을 정말 잘 키운다는 소릴 들을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저보고 어머니께 더욱 더 잘하라고 가끔 말하곤 합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이라 그얘길 들을때 마다 기가 막혔죠. 어머니의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당장 필요한건 생활비와 밥값인데 어머니는 돈은 한푼도 안주면서 기도만 하십니다.
외할머니께서 저 주시려고 짜 놓은 참기름, 쌀 20kg 등등, 저에게 보내시려던 생필품을 대신 전해준다고 하고선 교회에 전부 갖다 바쳤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대학 졸업하고 몇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외할머니 통장을 훔쳐서 현금 천만원을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 사실 역시 졸업후 한참후에 알게 되었고, 제가 정말 고생하면서 학교를 다녔기에, 자식은 돌보지 않고 교회에만 미쳐 사는 어머니때문에 교회가 정말 싫어졌습니다.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가서 어머니의 계획성 없는 헌금 때문에 상담을 하면서 어머니께서 쓸데없는곳에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하니깐 목사님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바뀌더니만 그 이후 저를 피하기만 합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께서 자기 전재산을 교회에 몰래 바쳤다는 말을 듣고 앓아 누웠고, 저희 집안에서는 엄마의 헌금 때문에 하루라도 안싸우는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겨우 제가 자리를 잡았구요.
당장 생활비가 없어 80이 넘은 나이에도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시는 외할머니때문에 어머니가 더욱더 원망 스러워 집니다. 물론 제가 도와 드리면 되지만, 더 큰 목표를 위해 힘들어도 현재 계속 공부 중이라 저 역시 넉넉치 못한 형편입니다. 어머니께서 건축헌금으로 천만원을 교회에 낸지 4년정도 지났구요. 저는 다른건 몰라도 어머니께서 부정한 방법으로 기부한 헌금에 대해선 돌려 받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돈 찾아서 더 이상 할머니께서 고생하는거 안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 돈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일단 목사님이 저를 자꾸 피하는 것 봐서는 돈을 다시 돌려줄 생각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럼 소송을 걸면 다시 돌려 받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돈을 아무런 상의 없이 훔쳐서 냈으니, 부정한 방법으로 낸 헌금을 당연히 돌려 받을 수 있겠지요? 정말 이런 거지같은 가정환경이 싫고, 교회에 미친 어머니가 싫고, 교회도 정말 싫어졌습니다... 도와주세요.
☆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절에 시주하기 위해 돈을 훔치거나 생판 모르는 남의 돈을 도적질하거나 공금을 횡령해서 그것을 신앙의 이름으로 교회에 갖다 바쳤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도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위에 기록된것처럼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돈을 훔쳐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바친 사건은 참 특이하다 하겠다.
그래도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돈을 훔친것은 결국 자기 어머니의 돈을 훔쳤다고 할 수 있으니 생판 모르는 남의 돈을 훔친 그야말로 도둑과는 좀 구별이 되는듯 하다. ‘도둑이 훔친 돈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라는 넌센스 퀴즈가 있다. 답은 슬그머니(슬그MONEY)다. 이 ‘슬그MONEY’를 매 주일마다 수년동안 세칭 동방교에 갖다바친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세칭 동방교에서 부르는 그녀의 명명(命名:세칭 동방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요엘’이다. 그녀는 키가 크고 얼굴이 길죽하게 생긴 아가씨인데 당시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건축경기가 활발하여 꽤나 장사가 잘 되던 부산의 '덕포'라는 지역에 소재했던 어느 목재상에서 경리일을 보고 있는 여직원이었다. 또한 그녀는 부산의 거제리에 있는 세칭 동방교의 지교회인 제19교회 신도(성민) 이기도 했다.
훗날 제19교회는 대연동으로 이전하였는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었던 제19교회에서 그녀는 지성(헌금)을 제일 많이 갖다 바치는 신도였다. 세칭 동방교에서는 각 지교회마다 매주일 바쳐야 하는 지성(헌금)의 목표액이 정해져 있었던지라 각 지교회를 담당하는 전도사들은 늘 매주일의 지성(헌금)목표액 달성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요엘’은 어느 여상을 졸업하고 곧 바로 목재상의 경리로 취직이 되었던지 장사가 제법 잘 되던 'O Y 목재상사'의 경리일을 맡아 보고 있으면서 매 주일마다 지성(헌금)을 듬뿍듬뿍 가져와서 그 목표액을 채우곤 했다. 월급이라고 해봐야 몇푼 되지않던 당시, 목재상의 경리 여직원이 어떻게 그런 많은 돈을 가져와서 지성(헌금)을 바쳤던가... 모두가 말은 안했지만 그것은 목재상 수입금의 일부를 횡령한 돈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할아버지(세칭 동방교의 교주 이레 노광공)의 것이니 훔쳐서 가져와도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이미 수없이 진리(?)말씀을 들었던터라 그녀는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목재상의 전표를 조작해서 돈을 빼돌려 가져왔으리라. 그래도 아마 어린 여자아이의 가슴은 전표를 조작하고 돈을 빼 낼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콩닥거리고 떨렸을까...
세월이 흐르고 그일이 상습이 되어 갈수록 그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겠지만... 그러나 많이 훔쳐와서 더욱 많이 바칠수록 그녀의 지성(헌금)은 감천(感天)이 되어 하늘나라에서 더 많은 보화로 쌓여져 가고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우리는 모두가 공공연한 그 비밀을 아무도 입밖으로 내지는 않고 그녀를 믿음이 좋은 성민(동방교에서 부르는 신도들의 통칭)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었지만, 그렇게 해도 괜 찮을까... 혹시나 발각되지 않을까... 가슴을 조리고 있었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은혜였던가, 그 여직원의 업무 뒤처리가 깔끔했던가, 내가 세칭 동방교를 떠날때까지도 그 횡령행위가 들통이 나서 말썽이 났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니 그 목재상의 사장은 물독이 새는 줄도 모르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그 여직원을 철석같이 믿고 계속 수입금의 관리를 맡겼을 것이고 이력이 난 그 경리 여직원은 깜쪽같이 사장을 속이고 전표를 조작하여 돈을 빼내 동방교에 계속 갖다 바쳤고...
목재상의 횡령사건은 내가 알기로만도 수년간 지속되었으니... 그 이후로 얼마나 더 계속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세상은 요지경이라...
신앙은 각자를 행복하게도 하지만 우매한 맹신은 그를 장님으로도 만든다. 더구나 맹목적인 이단사이비 종교의 맹신은 미신으로 추락하고 이윽고 맹신자 자신에게 매서운 배신으로 보복해 올 것이다.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살고있는 세계의 차이에 따라 말만으로는 의사의 전달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현실을 인식하는 의식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차이, 즉 시비(是非)의 분간이 어려운 것이다.
----------------------------
눈에 보이는 세상살이도 그렇지만 안 보이는 정신 자리, 사는 자리도 똑같다. 그것을 천한 곳에 두면 천한 사람이 되고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에 두면 사이비 이단사설에 얽매이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망의 늪에 일생 목을 매고 허위적 거릴수야 없지 않은가. 종교적 맹신자들의 최대의 결함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독선, 즉 도덕적 기준이 전도(顚倒)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단의 추억 # 52, 회고하는 날들의 실루엣 중에서)
----------------------------
다행히 그녀는 동방교의 대기처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니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으리라. 그리고 거친 세상살이에서 남모르는 간난신고를 수없이 거치는 인생길을 걸었으리라...
지금은 이미 이순의 고개를 훨씬 넘어서고 손자 손녀들을 보았음직한 그녀에 관하여는 숱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칭 동방교에 출석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갖다 바쳤던 지성(헌금)이 엄청났었다는 동방교에의 충성의 강도(强度)를 지금은 아는 이 거의 없이 세월 속에 묻혀 버렸을 것이고 남의 재물을 엄청나게 횡령했다는 사실만 덩그러니 이풍진 세상을 살아온 나이 든 여자의 가슴속에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을 노년의 그녀는 지금 어떤 심정으로 동방교에 발길을 계속하고 있을까...
횡령, 즉 남의 재물을 훔치는 행위는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후회하거나 반성하게 된다. 그것이 일반적인 인간적 성숙이다. 그러나 이단사설로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그 도덕적 기준이 이미 전도(顚倒)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오랜세월동안 그때의 일을 외면하고 잊어버리려고 힘겨운 정신적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이단이든 삼단이든, 사이비든 오이비든 세뇌된 종교는 끊을 수 없는 아편이라더니... 그 말이 참으로 실감나는 아스라한 옛 일이라, 오랜 세월 잠재되어 있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 나는 오늘, 그 기억 한토막을 기록으로 남긴다.
첫댓글
저희 때도 세상 물건은 다 이레 조부님의 것이라는 말에 현혹되어서 운동장의 철봉을 뽑아서 교회에 박아 두고 뿌듯해 하던 일도 있었어요. 지금은 창피한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