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순서 20.11.22]
44장(지난 이레 동안에)찬양하시며 묵은 땅을 기경하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한국교회와 함께 신앙을 고백 하겠습니다.
293장(주의 사랑 비칠 때에) 찬양하시며 준비한 ‘헌금’하시겠습니다.
[공동체 기도]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 3차 유행이 현실화되고 있는 주일아침입니다. 여러 감염병으로 고통 하는 지구촌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고 특별히 극빈층에 크신 은총을 내려 주기시를 바랍니다. 저들이 더 쉽게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세계적 관심과 리더쉽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코로나19 백신만 해도 그렇습니다, 백신을 1세계국가들이 독차지 하지 않도록, 개도국에도 충분한 백신과 치료제가 공급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세계교회가 이 일을 위해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단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됨을 감사합니다. 치료제와 백신의 공급에서도 공의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외국인노동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부부가 깊이 연합함으로 가정천국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자녀들이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건강하게 자라게 하소서.
우리 마음에 아직도 미움과 불만 그리고 비교로 말미암는 열등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묵음 땅을 갈아엎을 수 있도록 용서하는 마음과 더 사랑하는 의지를 주시옵소서.
한국교회와 이 사회에 공의와 정의를 사랑으로 심는 ‘묵상하는 교회’되게 하셔서 하나님나라를 교회와 이 땅 가운데 이루게 하소서.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합니다. 공부하는 이나 미래를 설계하는 이, 묵은 땅을 갈아엎으려는 우리 교회와 함께 하소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보시겠습니다.
201122
사랑 때문에(호3: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1)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2)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3)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만나게 되면 큰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만나게 되는 이유를 이사야서에서 3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공허하고 형식적인 관계맺음, 둘째 스스로 만든 신을 우상으로 섬김, 셋째 정의와 공의는 버리고 포악을 일삼는 모습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만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만나면 돌이켜 회개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려고 도울 힘이 없는 것들을 의지하고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11월15일 설교).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사야선지자가 지적한 3가지 죄를 지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울 힘이 없는 힘과 세력을 하나님보다 더 바라고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동시대 북이스라엘에는 호세아라는 선지자가 활동했는데, 오늘은 호세아선지자가 선포하는 말씀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호세아는 ‘사랑 때문에’ 노예가 된 아내 고멜을 사옵니다. 그럼으로 호세아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끝없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더 사랑함으로 더 큰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호세아는 섬겨오던 하나님께 이해하기 어려운 명을 받습니다. 품행이 좋지 못한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여 자녀를 셋이나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를 고치지 못하여 외간 남자를 따라 집 나가 노예로 전락한 고멜을 그 값을 지불하고 사오라는 명령을 또 다시 받습니다. 이 불합리한 명령에 호세아는 순종합니다.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배은망덕한 우리를 고멜를 통해서 드러내시고, 끝없이 참고 기다리시며 희생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사야는 3년을 벗은 몸과 발로 다니며 도울 힘이 없는 것들을 의지한 결과 우리가 당할 수치와 부끄러움을, 호세아는 고멜을 사랑함으로 끝없이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과 삶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1.무엇이 죄일까요?
“과녁을 빗나간 화살”등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이사야와 호세아의 메시지를 통해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공허하고 형식적인 관계맺음, 스스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행위, 정의와 공의는 버리고 포악을 일삼는 모습이 ‘죄’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호세아는 무엇이 죄라고 말할까요?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남편 호세아의 사랑을 저버리고 떠난 고멜은 죄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늘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 ‘죄’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이 ‘음행(성경의 은유)’인 것입니다(사44:1-5참고).
하나님과 그 사랑을 저버리고 거절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호세아의 사랑을 저버린 고멜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영적 음행에 빠진다면 우리는 누군가에 혹, 무엇인가에 종이 될 것입니다.
호세아는 자신의 사랑을 저버림으로 노예로 전락한 고멜을 ‘은 열다섯과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사서 아내로 다시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음행으로 종이 된 우리를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사서 다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지요.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종이 된 우리를 위해 치러야 하는 아버지하나님의 값비싼 대가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멜입니다. 처음부터 품행이 바르지 못했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없는 사랑과 인내로 기다리십니다. 사랑 때문에!
공허하고 형식적인 관계맺음, 스스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행위, 정의와 공의는 버리고 포악을 일삼는 모습(이사야의 증언)을 버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놓으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호세아의 메시지)을 이제 그만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앞에 닥친 심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직면한 수치와 부끄러움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우리가 거친들(광야)에 서고, 아골(해골)골짜기를 헤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멜이 호세아를 떠나서 행복했습니까? 아닙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을 떠나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아버지를 떠나면 거친 들에 서게 될 것이고 아골 골짜기를 헤매게 될 것입니다(2:14,15). 거친 들은 물 한 방울 풀 한 폭이 없는 곳이고, 아골 골짜기는 환란의 골짜기입니다. 우리가 오늘 선 곳이 거친 들이라면, 오늘 우리가 환란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다면 하나님을 떠난 탓입니다. 고멜이 남편에게 돌아갈 때 평안히 누울 수 있었듯이(2:18하), 우리도 하나님아버지께 돌아갈 때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 때 누렸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선 거친 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말, 말씀)를 들을 수 있는 곳이고, 우리가 오늘 헤매는 환란의 골짜기는 소망의 문이 될 것입니다. 거친 들과 아골 골짜기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우리의 거친 들은 포도원(기쁨)이 되고 숲(낙원)이 될 것이며 우리를 막고 서있던 문들은 소망의 문으로 활짝 열릴 것입니다.
호세아 5장 마지막절과 6장 첫절에는 무어라 말씀합니까?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당신의 얼굴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난가운데 하나님아버지를 간절히 찾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하나님께 돌아가면 우리의 병든 몸과 맘은 낫게 될 것이고, 우리의 상처는 싸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고난가운데 있습니다. 그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과 너무 멀어 보입니다. 우리의 잘못과 죄악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만들고 예배한 결과로, 세상의 힘과 권세를 바라고 의지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우리 모두 호세아서의 이 말씀을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6:1)”,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적 삶으로 돌아갑시다. 교회의 참모습으로 돌아갑시다.
3.여호와께 돌아가는 행위는 어떤 모습입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오랫동안 많은 교회에서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께 돌아가는 무리는 너무나 적어보입니다.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호세아서는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귀담아 들어 봅시다.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입니다(10:12상). 우리 마음이 묶은 땅이 되어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없게 되고 뿌리더라도 자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갈아엎어야 할 묶은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공의(정의)를 행하고 인애(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됩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정의)를 비처럼(10:12하)” 우리에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정신이 실현되는 한반도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같은 내용을 이사야는 이렇게 말씀합니다(사32:15-17).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15)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16)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17)”.
자, 우리 가정과 사회 그리고 이 땅에 평화가 깃들도록,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 성취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한국교회를, 이 묵은 땅을 기경합시다. 그리고 정의와 공의를 사랑으로 심읍시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우리를 아직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도 ‘사랑 때문에’ 여호와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묵은 땅을 기경하여 정의와 공의를 심읍시다. 사랑 때문에.....
460장(뜻 없이 무릎 꿇는) 찬양하시겠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공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요약;
하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그모든 일을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이제 그만 그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그 사랑때문에 정의와 공의를 인애로 행하며 삽니다.
[서로 나누어 봅시다]
1.우리를 두렵게 하는 죄는 무엇일까요?
(이사야와 호세아가 말하는 죄?)
2.상대(하나님, 부모, 배우자 등)가 사랑때문에 참아주는 자신의 묵은 땅(습관이나 모습 등등)은?
3.여호와하나님께 돌아간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1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지않는삶이
죄라고 하는것 같음
사랑이 없으니 관계가 형식적이고
하나님아닌 우상을 섬기게 되고
공의와 정의를 저버림
2 급한성격
비효울적으로 동시다발로 가사일을 처리하느라 큰 사고를저지름
3 우리의 묶은땅이 새로워져서
정의와공의가 우리자신을 넘어
우리의 공동체에 넘쳐나는 세상이 온다!
1.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인간관계
미움이 있으면서 사랑하는척 하는 인간관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
ㅡ돈, 세상의 시선,세속적 성공
공의와 정의에 무심한 삶
약자에게 관심없고 본인의 생존에만 집착하며사는 삶
2.자기중심성, 개인주의, 성급함,
3.묵상의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기
마음깊이 버리지못하는 욕심을 인식하고
버리기 위해 의지를 다하기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인지하고
진실된 사랑으로 대하기
화요일 저녁입니다,
묵상하는 주간 만들어 가고 계십니까?
요한복음 15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열매맺는 신자인지를....(1,2절)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의 사랑안에서 머무를 수 있다 하십니다
계명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쉬운게 아니란걸
느낍니다
끝없이 마음의 미움을 지우고 용서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웃을 사랑하는 더 큰 그릇을 담게 약점들을 고치기위해 노력해야할것입니다
수요일, 25일.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2,33)
목요일입니다, 요한복음 17장.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7:1) ㅡ예수.
예수님의 유언적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목사인 제가 저를 부르신 성부께 드리게 됩니다.
"아버지여...."
목자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예수안에 하나되길 기도합니다
금요일, 요18장.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안나스에게, 가야바에게(제사장들),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죽이게 합니다.
빌라도 앞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땅에 속한것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묵은 땅을 기경하여 사랑으로 정의를 심어도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마지막에 가서야 서는것.
"긴 사역에 긴 호흡으로 임하게 하소서~"기도하게 됩니다.
완벽한 하나님나라를 추구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사역이 지치지 않고
필요한 곳에 아름답게 쓰여지길
더 깊고 더 넓은 사랑을 하는 저와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토요일, 요19장.
오늘 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제사장이라는 사람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며 성자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니....
오늘 우리 목사들이 예수님을 외면하고 세상권력과 연낙을 추구하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반성하게 됩니다. 반성을 넘어 돌이키도록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