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석산 주릉
滿庭月色無煙燭 뜰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이요
入座山光不速賓 둘러앉는 산 빛은 청하지 않은 손님일세
更有松絃彈譜外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을 연주하니
只堪珍重未傳人 소중히 지닐 뿐 남에겐 못 전하리
―― 최항(崔沆, 1932~1024), 「絶句」
▶ 산행일시 : 2021년 9월 25일(토), 흐림, 안개, 비
▶ 산행인원 : 4명
▶ 산행시간 : 9시간 23분
▶ 산행거리 : 도상 16.6km(산길 10.0km, 도로와 임도 6.6km)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 타고 평창역에 내려, 재산1리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신리로 감
▶ 올 때 : 대화에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평창역에 와서, KTX 열차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22 - 청량리역, 평창 가는 KTX 열차 출발
07 : 39 - 평창역(08 : 15 대화 가는 버스 출발)
08 : 21 - 신리, 산행시작
08 : 54 - ┣자 갈림길, 직진은 모릿재, 오른쪽은 건해골로 감
09 : 05 - 헤븐리 빌 입구
09 : 30 - 임도
10 : 21 - 946.7m봉
10 : 47 - 1,000m봉
11 : 54 ~ 12 : 33 - 백석산(白石山, △1,364.8m), 점심
12 : 52 - 1,360m봉
13 : 35 - 1,264.8m봉
14 : 35 - △1,350.2m봉
15 : 06 - 1,200m봉, ┣자 능선 분기
16 : 40 - 임도, 발내동
17 : 15 - 던지교
17 : 44 ~ 19 : 21 - 대화, 산행종료, 저녁
19 : 31 - 평창역(20 : 09 상봉역 가는 KTX 열차 출발)
21 : 23 - 상봉역
2-1. 산행지도(백석산, 영진지도, 1/50,000)
2-2. 산행지도(백석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도암 1/25,000)
2-3. 산행지도(백석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도암 1/25,000)
가을날 아침 한가로이 걷는 시골의 신작로는 각별한 정취가 있다. 마당은 물론 마루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을 지날 때면 열심히 짖어대는 어린 개들조차 정겹다. 바깥 울과 그 밑에는 여러 화초를 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과꽃을 보면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장모님 생각이 난다. 장모님은 시집간 딸이 보라
고 해마다 뜰에 과꽃을 심었다. 뜰이 없으면 화분에라도 심었다. 그때는 6개월마다 이사를 가야 했던 시절이었
다. 과꽃도 함께 이사 갔다.
오랜만에 박꽃을 본다. 박꽃은 옛날 농촌의 초가지붕 위에서나 보았다. 지금은 그런 초가가 없다. 여기서는 돌
담장 위에 가지 늘어뜨리고 핀 박꽃을 본다. 호암 문일평은 그의 『花下漫筆』에서 박꽃(匏花 포화)을 다음과 같
이 소개하고 있다.
“田家의 지붕 위에 또는 울타리 우에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피는 박꽃은 확실히 田家의 特色있는
꽃으로 詩人이 田家를 吟咏할 때는 반드시 이 박꽃을 그리게 되나니 그렇지 않으면 田家의 澹泊한 韻致가 한
귀퉁이 沒却되고 만다. 有名한 朴燕岩의 田家시에도 박꽃이 나온다.”
翁老守雀坐南陂 늙은이 새 지킨다 언덕 위 앉았건만
粟拖狗尾黃雀垂 개꼬리 드리운 듯 늘어진 조 이삭에 참새 달리었다
長男中男皆出田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 다 일 나가고
田家盡日晝掩扉 밭집은 대낮에도 삽짝문 지쳐둔다
鳶蹴鷄兒攫不得 소리개 병아리를 채려다 못채가니
群鷄亂啼匏花籬 박꽃 울밑에서 뭇닭만 요란컸다
小婦戴棬疑渡溪 젊으신 며느님은 밥함지 머리 이고 꼿꼿이 내 건널제
赤子黃犬相追隨 누런 개 벌거숭이 뒤따라 쫓아간다
주인이 있는지 모를 울 밖 대추나무에는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몇 알 훑어 맛본
다. 은근히 달다. 나팔꽃은 볼 때마다 곱게 화장한 얼굴이다. 한때 우리나라도 나팔꽃을 조안화(朝顔花)라고 했
다. 일본에서는 박꽃이 아닌 나팔꽃을 지붕에 올렸나 보다. 일본 에도 시대 하이쿠 시인인 잇사(一茶,
1763~1828)는 나팔꽃을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나팔꽃으로
지붕을 새로 엮은
오두막
(朝顔の花で葺いたる庵かな)
3. 과꽃
4. 미국쑥부쟁이
5. 쑥부쟁이
6. 나팔꽃
7. 나팔꽃
8. 자주닭개비
9. 멀리 오른쪽이 올라야 할 백석산 서릉
10. 박꽃
11. 나팔꽃
12. 어수리
저 앞에 보이는 백석산 서릉의 산정은 운무에 가렸지만 우리가 거기를 갈 때쯤이면 맑으리라. 오늘 새벽에 집
을 나설 때 바라본 예봉산 너머의 여명은 무척이나 장려했었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자 갈림길. 직진은 모릿
재로 가고, 오른쪽은 대화천 다리 건너 임도로 건해골로 간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개울가에 핀 어수리와
달맞이꽃, 쑥부쟁이 등등 들여다보며 0.5km 정도 갔다. 왼쪽 능선에 붙을 때가 되었다.
‘이곳은 전원주택 사유지입니다’와 병기한 ‘헤븐리 빌(Heavenly Vill)’이라는 방향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을
무시하고 가다가는 괜한 시비에 들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 옆에 이제 막 건축을 끝낸 전원주택 앞으로 간다.
아무도 없다. 곧바로 산속에 든다. 소로가 잘났다. 나는 죽어도 이런 데서는 살지 않을래. 전원주택을 벗어나자
마자 한 하운 님의 말이다. 얼마 안 있으면 정년퇴직하게 될 메아리 님이 들으시라고 한 말 같다. 하긴 이런 외
진 산속에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아예 정착하여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창살 없는 감옥이리라.
첫 발걸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의외로 길은 잘났다. 이정표나 산행표지기 한 장 보이지 않아 정규 등산로일
턱이 없는데 가늘지만 밧줄까지 길게 달려 있다. 가쁜 숨에 씩씩대며 오른다. 임도와 만난다. 배낭 벗고 첫 휴식
한다. 입산주 얼린 탁주가 덜 녹아 씹어 마신다. 폐부까지 시원하다. 임도 절개지는 절벽이다. 한 피치 잡목 붙
들어 늑목처럼 오른다. 방금까지의 잘난 길은 임도를 따라갔는지 못난이 길이다. 잡목 숲 헤친다.
그간 백석산을 몇 번 왔으나 그 남북주릉으로만 왔다. 잠두산에서 또는 중왕산에서 거쳐 오갔다. 오늘은 모처럼
그 서릉을 오른다. 가보지 않은 산길은 언제나 설렌다. 조망은 어떨까, 여태 보지 못한 기화이초는 없을까 하고
말이다. 두 눈에 잔뜩 힘주고 걸음걸음 신중하여 걷지만 결론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수렴은 전후좌우를 가리
고, 등로와 그 주변은 숫제 돌밭이다. 오지라는 무미한 맛으로 간다.
946.7m봉. 오른쪽에서 인적과 함께 오는 지능선을 만난다. 다시 한 피치 길게 올라 1,000m봉이다. 오른쪽으로
직각방향(동쪽) 틀어 내린다. 안부는 펑퍼짐한 풀숲이다. 참취 밭이기도 하다. 이제 백석산 정상까지 1.4km로
줄곧 땀 빼는 오르막이다. 그러나 등로 약간 벗어난 사면은 풀숲이라 누벼가니 심심한 줄 모르겠다. 어쩌면 조
망이 트일 되똑한 바위가 보여 잡목 뚫고 어렵사리 다가갔더니만 안개가 순식간에 덮치고 만다.
안개 속을 간다. 자욱하다. 안개비가 내린다. 풀숲은 젖었다. 정상에 가까워서는 너덜지대를 오른다. 이끼 낀 너
덜이 상당히 미끄럽다. 인적을 놓쳤다. 일로 직등한다. 달달 긴다. 잡목 숲 헤쳐 남북주릉 잘난 길에 올라선다.
정상은 아직 멀었다. 부부 등산객을 만난다. 반갑다. 수인사 나눈다. 그들은 잠두산 넘어 모릿재로 간다고 한다.
길은 우거진 풀숲에 가렸다. 발로 더듬어 간다. 백석산 정상. 너른 헬기장이다.
백석산 정상에서는 서쪽과 북쪽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캄캄 가렸다. 헬기장 한가운데 자리
펴고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자연 님이 불고기를 볶아왔으니 한결 든든하다. 안개비가 부슬비로 내린다. 춥
다. 그저 걸을 수밖에. 당분간 1,200m가 넘는 고지대를 간다. 봉봉 큰 오르내림은 없다. 풀숲 너른 평원이다. 여
기는 한겨울에 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광활한 설원과 무수한 나목들이 장관이었다.
13. 어수리
14. 앞이 우리가 지나온 능선
15. 백석산 정상에서, 자연 님과 하운 님(오른쪽)
16. 백석산 주릉
17. 백석산 주릉
18. 백석산 주릉 1,264.8m봉에서
19. 거목인 참나무
20. 나무숲 너머는 허허벌판이다
21. △1,350.2m봉 오르막
22. 주릉 주변
활엽의 큰 나무를 건들다가는 앞서 내린 부슬비 모은 소낙비를 맞는다. 백석산에서 20분 정도 진행하여
1,360m봉이다. 직등은 인적이 드물고 가파른 바윗길이라 완만한 왼쪽 사면을 돈다. 길을 잘못 들기 쉬운 데다.
안개 속에서 믿을 건 나침반뿐인데 그도 의심한다. 이대로 잘난 길을 따라가면 될 것 같다. 그러나 나침반은 동
쪽이라며 남진하려면 사면을 한 차례 더 도라고 한다. 메아리 님이 과연 그러한지 척후하러 간다. 맞았다. 느낌
으로는 1,360m봉을 한 바퀴 돌아 백석산 쪽으로 다시 가는데 오룩스 맵의 궤적은 그 반대다.
초원을 간다. 봉봉 정상을 약간 비킨 길이지만 그 정상에 다가가면 조망이 트일 것 같아 꼬박 들른다. 만천만지
한 안개라 보이는 게 없다. 또한 숲속 저편이 하얗기에 그 끝까지 가본다. 벌목하고 잣나무 묘목을 식재한 허허
벌판이다. 안개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1,313.3m봉 내린 야트막한 안부는 ┣자 갈림길로 오른쪽은 지금은 폐사
한 영암사 쪽으로 내려 던지골로 간다. 안개 속 수풀의 풍경도 가경이다. 안개는 묵화의 여백이다.
펑퍼짐하고 너른 초원의 연속이다. 인적이 어지러이 나 있어 길을 잘못 가기 쉽다. 지도와 나침반에 눈 박고 간
다. 제법 긴 오르막인 △1,350.2m봉이다. 이끼 낀 삼각점을 어렵게 판독한다. 도암 26, 2006 복구. 길게 내리다
1,222.8m봉을 대깍 넘고 ┣자 갈림길인 1,200m봉이다. 여기서 서릉 타고 던지1교로 내릴 요량이다. 물구덩이
로 변한 산죽 숲 옅은 인적을 쫓는다. 가파른 잡석 길로 이어지고 절반은 잡석과 함께 구르며 내린다.
이런 까탈스런 내리막이 얼마나 지속될까 궁금하여 지도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방향착오다. 골로 가고 있는 중
이다. 1,200m봉에서 한 발짝 삐끗한 것이 회복불능인 지경에 이르렀다. 미구에 맞닥뜨리게 될 골은 대체 어떠
한 모습일까? 너덜 속 울창한 잡목 숲은 디폴트값이려니. 고개 뒤로 젖혀 보이는 건너편 능선을 오르는 편이 나
을까? 거기도 당장 절벽이다. 주춤주춤 내린다. 절벽에 막히면 돌부리 나무뿌리 움켜쥐고 트래버스 한다.
예상했던 너덜지대에 들어선다. 너덜마다 미끄럽다. 다행히 잡목은 성기었다. 누그러진 사면을 고르느라 온 골
을 누빈다. 운이 좋았다. 인적을 만난다. 너덜 길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오래전부터 누군가 오간 길이라는 게
큰 위안이다. 이 길 놓칠까봐 주변 살피며 살금살금 내린다. 너덜 길, 잡석 길, 풀숲 비탈길을 차례로 내려 임도
다. 임도는 발내동(발래동) 지나 농로로 이어진다. 길섶을 수놓은 들꽃에서 가을을 본다.
뒤돌아 바라보는 백석산 연릉은 안개에 가렸다. 덜 서운하다. 택시 부르기가 어중간하다. 쉽사리 산행시간과 산
행거리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어서 좋다. 3.5km. 걷는다. 중대화 지나 하대화가 더 큰 동네다. 대로 주변에 영업
중인 음식점이 드물다. 버스승강장 뒤편에서 춘천 닭갈비집을 찾았는데 삼겹살도 한단다. 손님이 뜸하여 귀빈
으로 대접받는다. 평창 가는 택시를 예약해놓고서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더덕주 건배한다.
23. 노루궁뎅이버섯
24. 노루궁뎅이버섯
25. 주릉 주변
26. 초원, 젖은 풀숲 헤치느라 등산화 속까지 젖었다
27. 1,200m봉 ┣자 갈림길
28. 발내동 가는 길
29. 발내동 가는 길
30. 발내동 가는 임도에서 바라본 등용봉 연릉
31. 뚱딴지
(번외) 백석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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