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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해 밝히는 한국과학]③ 강원도 산골 지하 1000m 철광석 광산에서 우주비밀 캔다
IBS 예미랩, 지하 1000m 아래에서 우주 탐사
암흑물질, 중성미자 찾기 위한 준비 순항 중
입자물리학 연구 동시에 첨단 산업 연구에도 최적화
“관심 못 받던 연구에 풍부한 지원, 산업 발전으로 보답하겠다”
예미랩이 있는 지하로 연결되는 승강장 표지판. 예미랩은 국내 유일의 철광인 한덕철광과 연결돼 지하 600m 수직갱도를 타고 내려가야 닿을 수 있다./정선=이병철 기자
정선=이병철 기자
입력 2024.01.02 06:00
강원도 정선군 예미리는 한때 국내 유일의 철광석 광산인 한덕철광에서 철광석을 옮기기 위해 수많은 덤프트럭이 바쁘게 오가던 곳이다. 1980년대 정선군 인구가 13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정선의 광산업은 급격한 쇠퇴기에 들어섰다. 채굴량은 급격히 감소했고, 광산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정선의 인구도 빠르게 감소했다. 지난해 정선 인구는 약 3만5000명 수준으로 전성기 시절의 27%에 불과하다.
지난 2023년 12월 12일, 정선군 예미리의 한 폐교를 찾았다. 함백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던 교정에서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구 감소로 문을 닫은 수많은 학교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황량한 모습만 남은 건 아니었다. 학생들이 떠난 운동장에는 ‘기초과학연구원’이라고 쓰인 거대한 간판이 서 있었다. 철광석을 캐던 강원도 산골의 폐교는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실험 시설을 운영하는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연구소로 탈바꿈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전 세계 물리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소중호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암흑물질은 이론적으로는 존재해야 하지만 그 실체를 아무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지하 1000m 아래 깊은 실험실에서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정선군 예미리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예미랩 내부. 예미산 정상에서 1000m 지하에 있는 이 곳에서는 암흑물질, 중상미자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정선=이병철 기자
◇지하 1000m 철광에 마련된 실험실
IBS는 2022년 9월 한덕철광 한켠에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실험실 ‘예미랩’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실험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실험시설 구축과 함께 예비 실험이 진행 중이다. 양양실험실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2024년 말까지 모두 옮기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지상연구소에서는 예미랩에 설치된 실험 장비의 작동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실험인 만큼 내부 환경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소 책임기술원은 “현재 예미랩 온도는 28도로 꽤 더우니 겉옷은 벗어두고 내려가는 게 좋다”며 “안전모와 안전화, 마스크도 꼭 착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이야기한 후 다시 차를 타고 10분을 달려 예미랩의 입구에 들어섰다. 철광 안전담당자의 안전교육을 다시 듣고 난 후에야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었다.
예미랩은 예미산 정상에서 1000m 아래에 있는 철광과 연결돼 있다. 지하 수직갱도를 통해 600m를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깊이다.
2분 30초가량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닿자 철광석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한 철광 한쪽에 있는 거대한 문을 열자 쾌적한 공간이 드러났다. 이곳에서 전기카트를 타고 또 5분을 달려서야 예미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덕철광에서 예미랩으로 이동하는 통로. 전기카트를 타고 800m 가량 이동하면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실험실이 펼쳐진다./정선=이병철 기자
한덕철광에서 예미랩으로 이동하는 통로. 전기카트를 타고 800m 가량 이동하면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실험실이 펼쳐진다./정선=이병철 기자
◇수수께끼 속 우주입자 비밀, 정체를 찾아서
“워낙 예민한 장비가 많아 내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예미랩 안에서는 마스크는 벗어도 좋습니다.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시설은 환경 유지를 위해 출입이 통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예미랩 내부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소 책임기술원의 말대로 예미랩 내부 환경은 예상보다 깨끗했다. 폐광을 이용한 시설이라는 말에 지레 갱도를 떠올렸던 게 무색했다. 벽면은 흰 페인트로 칠해 철광 내부와 달리 화사한 느낌마저 들었다. 소 책임기술원은 “방사선마저 최소화하기 위해 내부 마감할 제품은 엄격한 조건으로 선정했다”며 “흰색 페인트가 방사선이 가장 적어 내부 마감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예미랩은 지하실험실답게 개미굴처럼 복잡한 복도로 연결돼 있었다. 복도 곳곳에는 실험을 위한 방이 여럿 마련됐다. 예미랩에서는 암흑물질 탐색과 함께 중성미자의 특성을 찾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암흑물질 탐색 실험 ‘코사인(COSINE)’과 중성미자 특성 연구 ‘아모레(AMoRE)’가 예미랩의 주요 임무다.
암흑물질은 질량은 있으나 관측은 불가능한 미지의 물질이다. IBS 연구진은 아이오딘화나트륨 결정에 암흑물질이 충돌하는 과정을 포착해 암흑물질을 찾을 계획이다. 암흑물질을 직접 관측할 수 없으니 간접적인 방식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암흑물질이 아닌 다른 입자에 의한 반응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점에서 예미랩은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소 책임기술원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주 입자 뮤온(muon)이 지면에서는 면적 100㎠에 1초에 1개씩 떨어지고 있다”며 “지하에서는 하루에 2개꼴로 차이가 크게 난다”고 말했다. 그는 “지상에서 이런 환경을 만들려면 사방을 200m 두께의 납으로 둘러싸야 하는 만큼 지하가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코사인(COSINE) 실험이 이뤄질 냉동고(왼쪽)와 성능 시험 중인 검출기의 모습. 암흑물질이 검출기에 충돌해 나타나는 반응으로 암흑물질을 찾을 예정이다./정선=이병철 기자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코사인(COSINE) 실험이 이뤄질 냉동고(왼쪽)와 성능 시험 중인 검출기의 모습. 암흑물질이 검출기에 충돌해 나타나는 반응으로 암흑물질을 찾을 예정이다./정선=이병철 기자
코사인 실험이 이뤄질 방은 예미랩 내부와 달리 영하 30도의 냉동 창고로 만들어졌다. 조명도 붉은색으로 준비했다. 모두 검출기의 민감도를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서다. 소 책임기술원은 “빨간색 파장은 가시광선 중 에너지가 가장 낮아 검출기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포착할 수 있는지가 암흑물질을 찾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검출기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기존의 지하실험시설이었던 양양실험실과 환경이 다른 만큼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보다 거대한 규모로 이뤄지는 아모레 실험도 준비가 한창이다. 아모레 실험은 중성미자의 특성을 찾는 것이 목표다. 중성미자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다가 1950년 처음 발견되면서 현대 물리학의 근간 중 하나인 표준 모형을 흔들어놨다. 표준모형에서는 중성미자를 질량이 없는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험에서는 질량을 갖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완벽히 설명하기 위해 중성미자의 특성을 명확히 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성미자 특성 연구 '아모레(AMoRE)' 실험이 이뤄지는 실험실. 1층에는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하고 2층에는 초순수를 넣어 검출 정밀도를 높였다./정선=이병철 기자
중성미자 특성 연구 '아모레(AMoRE)' 실험이 이뤄지는 실험실. 1층에는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하고 2층에는 초순수를 넣어 검출 정밀도를 높였다./정선=이병철 기자
아모레 실험에서는 몰리브덴이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중성미자를 이용해 특성을 밝힐 예정이다. 예미랩에서는 세계 최대 수준인 200㎏의 몰리브덴 결정을 이용해 중성미자를 연구할 예정이다.
아모레 실험실은 다소 특이한 모습이었다. 마치 2층집 같은 형태로 아래에 있는 1층에는 중성미자 신호를 검출하기 위한 검출기가 설치돼 있었다. 위층에는 물이 가득한 방을 별도로 마련했다. 이 물은 순도 100%의 초순수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뮤온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소 책임기술원은 “아무리 지하 깊은 곳에 실험실을 마련했어도 미세한 양의 뮤온이 실험을 방해할 수 있다”며 “뮤온은 초순수와 만나 빛으로 바뀌는 특성이 있어 뮤온을 차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미랩에서 진행 중인 실험 모습. 암흑물질, 중성미자 연구 외에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상청,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의 실험실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정선=이병철 기자
예미랩에서 진행 중인 실험 모습. 암흑물질, 중성미자 연구 외에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상청,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의 실험실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정선=이병철 기자
◇입자물리학 실험실 넘어 과학산업 중심지가 목표
“예미랩이 단순히 입자물리학을 위한 시설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에서도 자랑할 만한 연구 시설인 만큼 다른 과학 분야는 물론 산업과학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미랩을 중심으로 과학산업 단지가 만들어지는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소 책임기술원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예미랩이 단순한 과학 연구시설이 아닌 종합 연구시설, 더 나아가 강원도 정선을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바꾸고 싶다는 기대도 드러냈다. 이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상청,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같은 연구기관과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은 기업 스페이스린텍의 연구 시설이 입주를 확정했다. 기상청과 수리연은 이미 장비 설치를 마치고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주축으로 중성미자 특성을 연구하는 ‘아이소다(ISODAR)’ 가속기 연구 시설의 입주도 협의 중이다.
스페이스린텍은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약물을 먹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한덕철광 수직갱도에서 자유낙하 실험을 할 예정이다. 우주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우주비행사들의 건강을 책임질 중요한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장비의 검출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환경 덕에 반도체 산업계의 관심도 한 몸에 받고 있다. 방사능으로 인해 반도체에 오류가 발생하는 ‘소프트 에러’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 시설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소 책임기술원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서 소프트 에러를 측정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올해까지 11건의 실험을 해줬다”며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적합한 시설이 없어 일본에서만 할 수 있었던 실험”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한덕철광에서 생산되는 칼슘을 이용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도 틈틈이 구상하고 있다. 선뜻 실험 공간을 내어 준 한덕철광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다음은 소 책임기술원과의 일문일답.
소중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이 지난해 12월 12일 강원 정선군 예미랩에서 실험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예미랩이 과학산업의 중심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정선=이병철 기자
소중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이 지난해 12월 12일 강원 정선군 예미랩에서 실험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예미랩이 과학산업의 중심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정선=이병철 기자
-입자물리학 전문가이지만 산업 기술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IBS의 지원이 있기 전까지 암흑물질, 중성미자 연구는 큰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항상 없는 살림에 고군분투해 연구해야 했다. 그러나 예미랩 구축을 계기로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예미랩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중이다.”
-본격적인 실험은 언제 시작되나.
“내년 후반기 양양실험실에서 장비를 모두 이사하고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사실 계획보다는 다소 지연됐다. 국내에서는 광산에 실험실을 만든 것이 이번이 처음이고, 법령이 달라 다소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지금은 장비 이사와 함께 사전 실험이 여럿 진행 중이다.”
-해외에서도 예미랩에 관심을 보이나.
“MIT에서도 일본에 실험실을 만들려다가 포기하고 예미랩에 공간을 요청한 상태다. 우리 실험과 마찬가지로 중성미자 특성을 찾으려는 실험이다. 일본에서는 내부에 실험을 방해하는 특정 원소의 함량이 너무 높아 포기했다. 예미랩에서 측정해보니 실험에 최적화돼 있어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다. 몰리브덴의 붕괴 대신 직접 가속기를 이용해 중성미자를 만드는 방식이다.”
-추가로 계획하는 실험도 있나.
“최근 양자컴퓨터가 이슈다. 문제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해 장치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인데, 예미랩에서는 이미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중성미자 특성 연구 환경에서 양자컴퓨터의 최적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극저온 환경은 물론 외부 방사선에 의한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언제든 요청이 있다면 양자컴퓨터 연구에도 협력할 생각이다.”
-내년도 R&D 예산 삭감 등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연구비가 풍족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우리는 항상 부족한 예산으로 연구를 해왔다. 대부분 장비를 직접 만들어 연구비를 최대한 아끼고 있다. 내부 환경을 감시하는 장비도 직접 개발했고 측정기도 우리가 만들기도 한다. 워낙 없는 살림에 오랜 시간 연구했던 만큼 연구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
-예미랩이 국내 과학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미랩은 ‘과학자들의 놀이터’라고 부르고 싶다. 예미랩이 가진 독특한 환경을 이용해 누구나 원하는 실험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싶다. 산업 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 과학계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이 예미랩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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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비즈 이병철입니다. 과학계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고 생생한 과학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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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kim
2024.01.02 08:46:34
암흑물질 ?기 ! 과연 가능한가 , 엄청난 인내심이 있어야 되는것 같다. 평생 괄목한 성과없이 청춘을 사르고 은퇴하게 되는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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